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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김지하, 15년만에 다시 떠난 사상여행
김지하, 15년만에 다시 떠난 사상여행 문화일보 / 1999년 2월 3일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의 시인 김지하씨. 그의 15년전 원고가 발견돼 시간 '김지하의 사상여행'으로 엮어 나온다.최근 실천문학사 편집실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15년 전에 일부 발표되었던 시인 '김지하의 사상여행'을 담은 원고 전체가 수고(手稿)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당시의 녹음테이프를 토대로 정리한듯 보이는 원고는 대학노트 8권 분량이었다. 지난 84년 계간 ‘실천문학’에 2회(봄호·여름호) 연재되고 중단됐던 김지하의 사상여행 원고는 지난해 여름 실천문학사 사무실을 합정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장실의 원고더미들을 정리하면서 거둬들인 '뜻밖의 횡재'였다. 노트는 다시 김지하씨의 검증을 받고, 연재되었던 1,2회 원고를 정리했던 소설가 이문구(당시 실천문학사 대표)씨에 의해 나머지 부분까지 다듬어져서 이달중에 책으로 나온다. 이미 발표되었던 원고는 책의 1부가 되고 최근 다시 발견된 이후 원고들은 2부, 시인 황지우씨가 다시 김지하씨와 이후의 사연에 관한 8시간 마라톤 인터뷰 내용을 3부에 싣는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84년 당시 4박5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사상여행'을 15년 뒤인 오늘 다시 반추하기 위해 당시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시인 황지우씨가 김지하씨와 함께 여행지들을 재차 방문하면서 새롭게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제3부이다. 15년이라는 간극을 메우는 두번째 기행을 통해 책은 김씨의 생명사상 발원지에 대한 복원과 함께 오늘날 새롭게 조명해보는 '상생사상(相生思想)'의 현재를 같이 조망할 수 있게 꾸미고 있다. '김지하의 사상여행'(가제)으로 묶여 나올 책은 이른바 시인 김지하 역사관의 뼈대인 상생사상의 뿌리는 물론 그 이후 15년에 걸친 사상의 변화를 더듬어 볼 수 있게 꾸미고 있다. 부정기간행물로 나오던 '실천문학'은 84년 정기간행물로 전환하는 창간호를 펴내면서 특집으로 ‘김지하의 사상여행’을 실었다. '민중사상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사상여행은 계룡산, 우금치, 황산벌, 남원, 김제, 광주로 이어지며 동학사상을 중심으로 한 역성(易姓)혁명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김씨의 현장강의를 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여행에 참여한 인물의 면면은 이른바 80년대를 주름잡은 진보적 논객들로, 말 그대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진용이다. '여행이란 떠다니는 형식'이 담고 있는 다분히 문학적인 향취와, 그 기행의 과정에서 만난 논객들과 나누었던 불꽃 튀기는 논쟁에 대해 김씨는 "벌써 십년도 더 된 일이라서 술 마신 기억밖에 없지만, 날밤을 꼬박 새우며 계속했던 진지한 토론과정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사상여행'은 마치 4박5일간 내리 계속된 사상방담 이벤트처럼, 전체적으로는 한판놀이의 얼개를 갖추고 있다. 김씨는 여행의 주인공격으로 내내 떠오르는 생각과 제언들을 쏟아내듯 말하고 있고, 소설가 이문구씨가 기록을 재구성해서 글로 썼다. 당시 '실천문학' 주간으로 일했던 소설가 송기원씨가 전체 진행을 맡았으며, 임진택씨가 녹음을,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장선우씨가 사진을 찍고 운전도 했다는 사상방담의 인적구성도 흥미롭다. '초대손님'으로 밤새워 진행되는 이야기 마당에 참여한 논객들로는 당시 전북대 교수로 있던 최창조(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송기숙(소설가·전남대 국문과 교수), 소설가 황석영, 문학평론가 천이두(원광대 교수), 승려 보원, 송명초씨 등이 등장한다. 기록을 정리한 이문구씨는 "이 '기획'이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사상과 강증산의 상생사상에 심취해 있던 김지하씨가 감옥에서 오랫동안 정리한 내용들을 여행을 통해 확인해보는 과정이었다"고 요약한다. '사상여행'의 흐름도 계룡산이 품고 있는 신도안이라는 장소가 가지는 상징적 위치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김씨에 따르면 신도안이라는 자리나 '정감록'이라는 책도 결국은 ‘민중적인 소망의 문화, 한의 문화, 개벽을 열망하는 집단적 심리에 적층이 쌓여서 충격적인 표현으로 나타났을 뿐’이란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자칭 '땡추'라는 송명초 스님과의 만남에서 이른바 당취결사(黨聚結社)의 역사를 들추어내는 부분. 조선조 내내 전국 산야에 출몰했던 '땡추들의 민중행'에 대해 '땡추들이 힘을 모으게 된 건 불국토의 현실화에 대한 열망 못지 않게 고려 유민의 망국한이 조선조의 저변을 흐른 까닭'이라고 정리한다. 즉 고려의 멸망과 당취결사 조직, 거기다 조선조의 부패 권력에 대한 반동적 정점으로 등장한 정감록 사상, 이후 동학과 강증산으로 이어지는 '민중행'의 전체 얼개를 이 '사상여행'을 통해 통시적으로 연결해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상여행'은 80년대적 진보 사상의 새로운 모색을 전개코자 했던 김지하 사상 변모의 시작을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 '사상여행'의 연재를 중단한 것은, 당시 방담이 가진 철학적 깊이와 난삽한 주제를 정리해낼 여유가 없었다는 데 있기도 했지만(실제로 이 원고를 재구성했던 이문구씨가 실천문학사 대표직을 그만두자 원고 게재가 중단되었다), 보다 내밀한 이유는 원고가 발표되었던 84년이라는 시대 상황이 ‘민중 운동의 상생사상 찾기’라는 다분히 인문학적 담론에 눈돌릴 만한 시대가 아니었다는 데 있다. 또 15년이나 지난 이제야 이 원고가 다시 '너도 살리고 나도 사는 살림'의 목소리로 제대로 읽힐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비단 이제 발견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제야 이 원고가 제대로 읽힐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 15년만의 출간이란 시간 간극이 설명하고 있다. 이 원고가 다시 온전하게 출간되는 데는 어쨌든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배문성기자> 1999/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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