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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과 역사] 41. 서울 종로구 경희궁 터와 흥화문
[땅이름] 서울 종로구 경희궁 터와 흥화문(興化門) 주간한국 / 2000년 9월 27일 20:00 경희궁(慶熙宮)의 본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다. 조선조 광해군(光海君)이 집권하면서 풍수지리설에 따라 당시로서는 거의 불필요한 궁을 서둘러 지었다. 불필요한 궁을 짓다보니 백성의 원성도 많았다. 결국 궁이 완성된지 3년만에 인조반종(仁祖反正)로 광해군은 밀려났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순조(純祖) 29년(1829년) 10월에 불이 나서 경희궁의 희상전, 융복전, 흥정전, 정시각, 집경당, 사현각 등이 모조리 불타버렸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순조 31년(1831년) 4월에 복구를 시작했으나 고종(高宗) 26년(1889년) 9월에 또 불이나 숭정문이 박살났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던 경희궁이 이번엔 일제가 우리 국토를 유린하면서 순종(純宗) 3년(1909년) 일본인 자제와 조선인 자제에게 신교육을 실시한답시고(실은 일본인 거류민단립 중학교) 통감부 중학교(뒷날의 총독부 중학교, 서울 중고등학교)를 세우는 통해 경희궁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오직 남은 것은 숭정전, 희상전, 흥정당, 흥화문과 회랑 만이 잡초더미 속에 유령처럼 버티고 서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26년에 그나마 숭정전과 희상전은 조계사(曺溪寺:동국대학교)에 옮겨버렸고 흥정당은 1928년 장충동 2가 광운사(光雲寺)로 옮겨갔다. 이쯤 되면 경희궁이 완전분해돼 박살이 난 셈이다. 남은 것은 경희궁의 정문격인 흥화문(興化門)뿐. 그런데 1932년 일제가 목멱산(木 山:남산) 자락이 동쪽으로 흘러내린 끝자락 춘무산(春畝山)에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영혼을 위로한답시고 이토오의 이름을 따 ‘박문사’(博文寺)라는 절을 지었다. 그러면서 하필이면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뜯어다 박문사의 정문으로 만들어버렸다. 궁궐의 정문을 뜯어다가, 그것도 일본 제국주의의 괴수격인 이토오의 영혼을 위로하는 절의 문으로 삼았으니 나라의 체면은 여지없이 박문사 앞에서 박살이 난 꼴이다. 마치 이토오가 안중근(安重根) 의사에게 저격당한 것을 분풀이라도 하려는 앙심이 담겨져 있는 듯한 처사였다. 광복이 되고 박문사는 영빈관(迎賓館)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신라호텔이 들어섰다. 흥화문은 그때까지도 굴욕을 참으며 여전히 정문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한 나라의 궁궐 정문이 이쯤 되었다면 그 나라 문화의식의 현주소를 알만 하다. 그 뒤 올림픽 경기가 열리던 해인 1988년 흥화문은 다시 경희궁으로 돌아왔다. 오기는 왔으되 제 자리는 이미 다른 주인(빌딩)이 차지하고 있어 멋쩍은 표정으로 원래 궁성의 남서쪽 모퉁이에 남향으로 아주 어색하게 들어앉았다. 원래는 궁성의 동남 모퉁이에서 운종가(雲鐘街:종로)를 맞으며 동향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 그러니 지금은 그 자리와 좌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좌우 담장은 물론 흥화문의 위용을 돋보이게 하던 월대(月臺)마저 없이 덜렁 문만 있으니, 문이라기도 그렇고 아니라기도 그렇고 참으로 어정쩡한 모습이다. 일본인 자제들을 교육하던 옛 서울 중고등학교 건물은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또 미술관의 동쪽 넓은 터에는 서울 시립박물관이 새로 들어섰으니 경희궁 터와 흥화문은 ‘박’(博) 자와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09/27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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