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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24 (화) 16:13
분 류 사전1
ㆍ조회: 2974      
[회화] 문인화 (한메)
문인화 文人畵

직업화가가 아닌 주로 사대부층(士大夫層) 문인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

중국에서는 글씨와 그림이 다 같이 필묵(筆墨)을 사용하고 또 필법(筆法)이 공통되므로 문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특히 수묵화(水墨畵)가 유행하자 많은 문인들이 화필을 들고 이에 시문(詩文)을 덧붙이는 등 문인화는 시·서예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발전하여 시·서·화에 뛰어난 3절(三絶)이 많이 배출되었다.

문인화를 단순히 문인의 그림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그 기원은 육조시대의 고개지와 종병(宗炳)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문인특유의 독자적인 예술을 전개한 것은 북송(北宋) 이후의 일이다.

소식(蘇軾;東坡)이 직업화가를 화공(畵工)이라 부르고 이와 구별하여 문인화라는 말을 썼듯이 북송 말엽 소식의 주변에서 문인화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소식은 선배인 문동(文同)의 묵죽(墨竹)을 높이 칭송하고 스스로도 간략한 고목죽석(古木竹石)을그렸다.

이러한 묵죽·묵매(墨梅) 등 이른바 하나의 예(藝)로서의 묵희는 매(梅)·죽(竹)·난(蘭) 등이 군자(君子)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성정(性情)을 내맡겨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송대 문인 사이에 행해졌다.

그 밖에 양보지(揚補之)의 묵매, 조맹견(趙孟堅)의 수선(水仙), 왕정균(王庭筠)의 고목 등이 유명하다. 미불·미우인(米友仁) 부자(父子)의 《운산도(雲山圖)》도 산수(山水)묵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소식은 그때까지 화성(畵聖)이라고 일컬어져 왔던 당(唐)나라의 오도현(吳道玄;道子)을 화공으로 간주하고 대신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그림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것은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형태를 넘어선 시적 감흥의 표출을 존중하고 작자의 교양적 품격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인화의 기초는 소식 주변에서 세워져 이를 선구로 원(元)나라 이후 광범위하게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원나라 초엽에는 직업화가 집단인 궁정화원(宮廷畵院) 중심이었던 남송회화(院體畵)에 반발하여 조맹부·전선(錢選)·이간·고극공(高克恭) 등 문인들 사이에서 북송 이전으로 되돌아가려는 복고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그림은 그들 자신이 고급관료들이었기 때문에 문인화적 성격이 결핍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원나라 말엽이 되자 강남(江南)지방에 황공망(黃公望)·오진(吳鎭)·예찬(倪瓚)·왕몽(王蒙)의 사대가(四大家;元末四大家)가 나타났다. 그들은 한때 관직에 있었던 자도 있으나 대개 은둔생활을 하며 흥취가 나는 대로 산수를 그려 새로운 문인화의 형식을 확립했다.

그것은 오대(五代)의 동원(董源)·거연(巨然)의 산수를 바탕으로 저마다 독자적인 양식을 창조한 것으로서, 시문(詩文)과 글씨의 아름다움을 갖춘 자연의 묘사라기보다 사의(寫意), 즉 내면세계의 표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가장 대표적인 예찬의 산수화는 강가에 드문드문 나무 몇 그루와 사람 없는 정자(亭子)를 배치하여 소산체(蕭散體)라고 불리는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원말사대가의 문인화는 명(明)나라에 들어와 문인화의 전형으로서 쑤저우〔蘇州〕를 중심으로 꽃핀 문징명(文徵明)·심주(沈周) 등의 오파(吳派)문인화로 이어진다.

그러나 명나라 초기부터 중기에 걸쳐서는 항저우〔杭州〕를 중심으로 남송 화원회화를 계승한 절파(浙派)라 불리는 직업화가들이 있어서 서로 격렬하게 대립했다. 이들의 대립은 결국 오파에서 나온 명나라 말엽 동기창(董其昌)의 남북종론(南北宗論)에 의해 종지부를 찍고 오파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동기창의 남북종론은 바로 남종정통화론(南宗正統畵論)으로, 중국의 회화를 남종과 북종의 두 양식으로 나누어 이사훈(李思訓)·남종원체(南宗院體)·절파로 이어지는 계보를 북종, 왕유·동원(董源)·미불·원말사대가·오파의 계보를 남종이라 하고, 북종에 대한 남종의 정통적 우위를 주장하였다.

이 계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남종정통화는 바로 문인화였다. 그 후 청(淸)나라에서는 거의 문인화 일색으로 바뀌어 사왕오운의 남종정통파, 팔대산인(八大山人)·석도(石濤) 등의 유민(遺民)화가, 금릉파(金陵派)·신안파(新安派)의 강남 도시회화, 또는 금농(金農)·정섭(鄭燮) 등의 양주팔괴(揚州八怪)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속에서 옛 그림을 형식적으로 흉내낼 뿐인 모방풍조가 만연하고,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직업화가와 구별이 애매해지는 등 문인화 자체도 변질했다. 그 가운데서 문인화 본디의 사의를 존중하는 전통은 명나라 말엽의 서위(徐渭)에서 시작되어 유민화가·양주팔괴를 거쳐 청나라 말엽의 조지겸(趙之謙)·오창석(吳昌碩)에 이르는 화가들에게서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문인화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회화관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조선시대 초기의 강희안(姜希顔)을 비롯하여 강세황(姜世晃)·이인상(李麟祥)·김정희(金正喜) 등이 문인화로 이름높다. → 남종화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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