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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7-29 (월)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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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357      
[조선] 이순신의 생애 (여수 문화 기행)
충무공의 위업

충무공의 휘(諱)는 순신(舜臣)이고 자는 여해(汝諧)며 성은 이씨이고 본은 덕수(德水)인데 충무는 1643년(인조 21년) 공이 순국후 내린 공의 시호(諡號)이다. 공은 1545년 3월 8일(음력) 한성부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부친 덕연군 이정의 사형제중 셋째아들로 태어나셨다. 공의 모친 초계(草溪) 변씨의 꿈에 시부(媤父)가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는 반드시 귀인이 될 것이니 이름을 순신이라고 하라"고 한 이조(異兆)가 있어서 선공이 그대로 명명을 했던 것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무인의 용력(勇力)과 문인의 재지를 겸비하여 문학을 공부하다가 뜻한 바 있어 22세에 들어서 무예를 연마하기 시작하여 32세 때 비로소 무과에 등제하셨다. 그래서 그 해 겨울에 일종의 초급장교인 권관(權管)으로 임명되어 함경도에 부임하니 공으로서는 첫 벼슬에 오른 셈이다. 공은 말과 행동이 엄격하고 지혜와 용맹이 특출하였으므로 다른 무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학문과 서예에까지도 실력을 겸비하셨다.

소년시절부터 같은 동리(洞里)에서 자라온 유서애(柳西厓)는 그의 초인적인 능력을 일찍이 알아 왔는데 그때에 전랑(銓郞)(정부의 인사관)이었던 이율곡이 서애를 통하여 상면을 청하였으나 "우리는 종친이라 당연히 만나야 하지만 전랑으로 있을 때만은 만날 수 없다"고 거절하였으니 이는 그의 청렴함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리라.

국경경비에 3년간 임하다가 훈련원을 거쳐 36세가 되던 해 전라도 발포만호(鉢浦萬戶)로 임명되어 포구를 수비하셨다. 그러나 공을 시기하는 무리들 때문에 모함을 받아 38세가 되던 해 만호에서 파직당하셨다. 이 과정에서 감사인 손식(孫軾)이 공을 불러다가 진상을 알아보던 중 병서를 강(講)하고 진도(陣圖)를 그리게 하여 공이 작도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탄하였다.

공은 39세가 되던 해 부친상을 당하고 다시 복직되어 함경북도 권관으로 근무하면서 호적(胡賊)의 괴수(魁首) 울지내를 사로잡아 양민을 보호하였다. 42세 정월 조산만호(造山萬戶)가 되었고, 43세에 록도둔전(鹿島屯田)을 관리하는 중에 호적의 습격을 받아 60여명이나 포로가되어 잡혀가는 것을 구출하다가 화살을 맞고 좌고(座股)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도리어 모함을 받고 투옥되기도 하셨던 것이다.

45세 겨울 전라도 정읍현감에 태인관을 겸해서 산적한 모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고 선정을 베풀어 온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이럴 즈음 시국은 차차 어지러워 군란이 닥쳐올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공은 유성룡의 천거로 마침내 전라좌수사가 되어 여수로 초임하니 47세 2월 임진란이 일어나기 바로 전해였다. 공은 장차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직감했다. 조정에서의 분당에 의한 의견대립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한과 범위내에서 전쟁준비에 열중하셨다.

좌수영 관할 아래 모든 장정의 군사훈련과 장비를 점검하고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무기였던 거북선을 만들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야말로 세계 철갑선의 원조요 임진란에 큰 공을 세웠던 것이다. 48세 되던 해 1592년 4월 13일 드디어 왜적이 부산에 상륙했다. 다음날 부산진이 무너지고 15일에는 동래성이, 5월 3일에는 서월이 함락되었다.

공은 전라도 관할이지만 4월 16일 부산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제장(諸將)을 본영으로 소집하여 작전계획을 세우는데 모두들 "본도의 수군은 본도만 지키지 경상도까지 가서 적을 치는 것은 우리 임무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유독 군관 송희립(宋希立)이 반대하고, 만호 정운(鄭運)은 동조하니 공이 대열(對悅)하여 "국가가 위급한데 어찌 타도(他道)라고 좌시할까, 이에 후퇴하는 자는 참징(斬懲) 하리라."고 엄하게 명하고 5월 1일 제장을 모아 전함 24척을 당포 앞바다로 집결시켯다. 이 때 도피하려던 여도수군 황옥천을 참해서 효시(梟示)하고 옥포에서 약탈하는 왜적들을 무찔러 쳐부수니 이것이 5월 7일 제 1차 옥포해전 대승첩(對勝捷)이다.

그 다음 5월 29일 경상도 사천에서 승첩하고 6월 2일 다시 당포에서 승첩, 경상도 해상의 왜적들을 모조리 격파하였으니 이것이 제 2차 당포해전 대승첩이다. 그 다음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른바 <학날개 전법>으로 서해로 가려는 왜적들을 완전소탕하였으니 이것이 제3차 한산도대승첩이다. 그런데 부산의 왜적은 더욱 강해져 기지화되었으므로 공은 부산 앞바다에서 적을 공격하여 가장 큰 전과를 올렸으니 이것이 9월 1일 제4차 부산대승첩이다.

49세 7월 15일 여수 좌수영의 본영을 그대로 두고 전투본부를 한산도로 옮겨 서해로 가려는 왜적들을 무찌를 준비를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삼도의 수군을 통괄하는 주장(主將)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공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임시키니 이때가 8월 15일이었다.

원균은 자기가 선배인데도 그 하위가 되었음을 부끄럽게 알고 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공은 조금도 그에 개의하지 않고 군무에만 정진하여 수만석의 군량을 확보하고 각종의 무기를 준비하였다.

50세 때에는 전염병으로 십여일이나 고통을 당하면서도 군무에는 조금도 해태(懈怠)하지 않았으며, 전염병으로 죽은 군사와 백성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게 하고 또 글을 지어 제사해 주었다. 원균은 충청도에 가서 공을 비방하는 말만 퍼뜨렸으나 공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조금도 원균을 비방하지도 않으니 모두들 원균이 옳은 줄로 알았던 것이다.

52세 겨울 일본에서 다시 오는 가등청정(加藤淸正)을 요격하라는 소서행장(小西行長)의 밀청(密請)에 공은 불청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등(加藤)이 다음해 1월 21일에 도래하니 조정에서는 2월 26일 그 호기를 놓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원균이 통제사가 되었다. 이것은 적군의 음모와 원균의 시기로 역사의 큰 오점을 남긴 것이다.

이것을 본 많은 인사들이 상소문을 올려 출옥을 청하였다. 다행히 정탁(鄭琢)의 상소문이 주효하여 탈옥된 지 26일 만인 4월 1일 석방은 되었으나 모친상을 당하고 성복한 날에 백의종군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왜군이 다시 쳐들어오니 이를 정묘재란(1597년)이라 한다. 삼도의 수군이 모두 적멸하고 원균도 패사하였다. 그래서 공이 다시 통제사로 복직하여 여병(余兵) 백여명과 12척의 전함으로 결사항전하기로 맹서하였다.

그해 9월 16일 울독목으로 가서 세계해전상 유래없는 12척의 전함만으로 330척의 적함을 격파한 이른바 명량해전대승첩을 거두었다. 명량해전이 끝나자 공은 진을 목포 고하도(高下島)로 옮겼고 다시 고금도(古今島)로 옮기니 그때 수군의 병력이 팔천명에 이르렀다. 여기서 명나라 진도독(陳都督)이 오천의 군사와 함께 우리 수군과 합세하였다. 진도독도 충무공의 인격과 실력 앞에는 굴하여 "당신은 작은 나라 사람이 아니오"라고 감탄하기를 마지않았다.

1598년 8월 17일 임진란의 원흉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죽으매 왜적의 철군(撤軍)이 시작되었다. 공은 이를 용납하지 않고 마지막 달아나는 왜함 500여척을 추격하여 남해 노량에서 큰 격전을 벌였다. 공은 밤새 독전하다가 날이 샐 무렵에 탄환을 맞아 전순(戰殉)하셨다.(1598년 11월 19일) 임종시 유언에 따라 전투가 끝난 뒤에 발상(發喪)했으니 향년 54세였다.

이 마지막 격전으로 적은 크게 패하여 500여척의 전함중 겨우 50척만이 남해로 달아났다. 이로써 왜적은 완전히 의기소침하여 전의를 잃고 침략의 야욕을 굽히니 피비린내나는 7년간의 임진란이 종식되었던 것이다.

공의 순국후 선조는 공의 은공을 기려 우의정과 좌의정을 증직(贈職)하였고 정조는 영의정을 추증(追贈)하였다.

출전 : 여수 문화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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