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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06 (일) 09:41
분 류 사전1
ㆍ조회: 2410      
[조선] 태조 이성계 (한메)
태조 太祖 1335~1408 (충숙왕 복위 4~태종 8)

조선 제1대 왕(1392∼1398). 성은 이(李), 이름은 성계(成桂),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헌(松軒). 본관은 전주(全州). 즉위 후 이름을 단(旦), 자를 군진(君晉)으로 고쳤다. 자춘(子春)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비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 계비는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대담하고 궁술(弓術)에 뛰어났다. 선조들이 두만강 또는 덕원 지방에서 원(元)나라 벼슬을 하였고, 아버지 자춘도 원나라 쌍성총관부의 천호(千戶)로 있었다. 자춘은 1356년(공민왕 5) 고려의 쌍성총관부 공격 때 내응(內應)하여 큰 공을 세웠다.

이성계는 이러한 가문과 타고난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1361년 금오위상장군·동북면상만호(金吾衛上將軍東北面上萬戶)가 되어 독로강만호(禿魯江萬戶) 박의(朴儀)의 반란군을 토벌하고, 홍건적에게 유린된 개경(開京)을 1362년 적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전공을 세웠다.

1362년 원나라 나하추[納哈出]의 침입을 함흥평야에서 격퇴시켰고, 1364년 최유(崔濡)가 덕흥군(德興君)을 추대하여 원병(元兵) 1만 명으로 평안도에 침입하자 최영(崔瑩)과 함께 수주(隋州) 달천(獺川)에서 모두 물리쳤다.

이어 여진족 삼선(三善)·삼개(三介)의 침입을 격퇴, 동북면의 평온을 회복하였다. 이해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1368년 동북면원수지문하성사·화령부윤 등의 벼슬을 지냈다. 1377년(우왕 3) 경상도·지리산 일대에 창궐하던 왜구를 크게 물리쳤고, 1380년 양광도(楊廣道)·전라도·경상도도순찰사가 되어 아기바투[阿其拔都;阿只拔都]가 이끌던 왜구를 운봉(雲峰)에서 격파하였다.

1382년 동북면 일대를 노략질하던 여진인 호바투[胡拔都]를, 1384년 함주(咸州;지금의 咸興)에 쳐들어 온 왜구를 소탕하였다. 1388년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 되었고, 명(明)나라 철령위 설치 문제로 요동 정벌이 결정되자 우군도통사가 되어 정벌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回軍)하여 개경에 돌아와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한 뒤 창왕을 옹립, 정치적·군사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듬해 다시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 1390년 8도의 병권을 장악하였으며 이어 영삼사사(領三司事)가 되었다. 1391년 다시 삼군도총제사가 되어 전제 개혁(田制改革)을 단행, 신흥 세력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1392년 마지막 반대세력인 정몽주(鄭夢周)를 제거한 뒤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남은 등의 급진 개혁파 사대부들과 결탁하여 공양왕을 원주(原州)로 내쫓고, 수창궁(壽昌宮)에서 선위(禪位)의 형식으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는 민심의 동요를 염려하여 고려라는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의장과 법제도 고려의 것을 따랐으나, 1393년(태조 2) 3월 15일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바꾸었다.

또한 건국 이념으로 사대 교린 정책·숭유 배불 정책·농본 민생 정책 등 3대 정책을 내세웠다. 1393년 9월 왕사(王師) 무학(無學)의 의견에 따라 한양(漢陽)에 새 왕성 건설을 시작, 1394년 10월 천도하였고 1396년 9월에 4대문(肅靖門·興仁門·崇禮門·敦義門)과 4소문(光熙門·昭德門·彰義門·弘化門)을 갖춘 궁성의 규모를 완성하였다. 법제의 정비에도 노력하여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경제육전(經濟六典)》 등 각종 법전을 편찬하게 하였다.

그러나 왕자 사이에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태조 즉위 뒤 계비 강씨 소생인 방석(芳碩)을 세자로 결정하였으나 정비 소생 방원(芳遠)이 불만을 품어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방원의 요청대로 방과(芳果;定宗)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그리고 1400년(정조 2) 방원이 세자로 책립되고 정종이 상왕으로 되자 태조는 태상왕(太上王)이 되었다. 태조는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에 대한 증오심으로 함주로 가 지내다가 태종이 보낸 무학의 간청으로 한양에 돌아왔다.

태조가 함주에 있을 때 태종이 문안(問安) 차사(差使)를 보내면 그때마다 그 차사를 죽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함흥차사'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만년에는 불도에 정진하였고, 1408년 5월 24일 창덕궁에서 죽었다. 시호는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고, 묘호는 태조, 능은 건원릉(健元陵)이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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