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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28 (일)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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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701      
[조선] 시조 (한메)
시조 時調

고려 말기에 형성된 한국 고유의 정형시. 3장(三章) 6구(六句) 45자(四五字) 안팎으로 이루어지는 시형(詩型)이다.

신라 향가(鄕歌)나 고려가요(高麗歌謠)·경기체가(景幾體歌)가 일정한 사회 계층의 시가였고 한시(漢詩) 또한 짓기가 어려워 지식층들이 즐긴 데 반하여, 시조는 시형이 간단하고 인간의 생활이나 감정을 진솔하게 읊을 수 있어 위로는 군왕·사대부로부터 아래로는 초동(樵童)·급부(汲婦)·천기(賤妓)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한국의 고전 시가는 시조에 와서야 전사회 계층이 공동으로 즐기는 시가가 되었고, 비로소 언문일치(言文一致)의 시가가 되어 한국 문학사상 가치가 크다. 시조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이후 쓰였는데 영조 때의 시인 신광수(申光洙)가 쓴 《관서악부(關西樂府)》 제15에 <일반으로 시조의 장단을 배(排)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일세(一般時調排長短來自長安李世春)>의 구절이 보임으로써 시조 명칭이 이때 처음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시조는 본래 <시절가조(時節歌調)>, 즉 <당시에 유행하는 노래>라는 뜻이었다는 것이 정조 때의 시인 이학규(李學逵)의 시 《감사(感事)》 24장 안에 있는 주석에 의해 밝혀졌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시조는 문학 부류의 명칭이라기보다는 음악 곡조의 명칭이었다. 조선 후기에도 그 명칭은 통일되지 않아서 단가(短歌)·시여(詩餘)·신번·장단가(長短歌)·신조(新調) 등의 명칭이 시조라는 명칭과 함께 혼용되었다.

그 뒤 근대 문학 부류로 창가(唱歌)·신체시(新體詩)·자유시(自由詩) 등이 나타나면서 이들과 시형을 구분하기 위하여 시조를 문학의 한 장르로 고정시키게 되었다.

[형식]

시조는 3장 6구 45자 안팎으로 구성되는데, 3행(三行)으로써 1연(一聯)을 이루며, 각 행은 4음보격(四音步格)의 2구로 되어 있다. 각 음보는 3개 또는 4개의 음절로 이루어진다. 시조의 기본형은, 초장 3·4·3(4)·4/중장 3·4·3(4)·4/종장 3·5·4·3이다. 음수율은 3·4조 또는 4·4조가 기본 운율인데, 기본 운율에 1음절에서 2음절 정도를 더하거나 빼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반드시 종장의 제1구는 3음절, 제2구는 5음절 이상이어야 한다.

구수율(句數律)은 학자들마다 의견이 달라서 이광수(李光洙)·이은상(李殷相)은 12구체를, 이병기(李秉岐)는 8구체를, 안확(安廓)·조윤제(趙潤濟) 등은 6구체를 주장해 왔지만, 오늘날 6구체로 보는 것이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6구체는 제각기 2구씩 짝이 되어 하나의 행, 즉 1장을 이룬다. 이상과 같은 음수율과 구수율을 지닌 기준형에 해당하는 시조를 단형시조(短型時調) 또는 평시조(平時調)라고 하는데, 《청구영언》에서 보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라도 지척이오/마음이 천리오면 지척도 천리로다/우리는 각재천리나 지척인가 하노라>.

또한 종장 제1구를 제외한 어느 한 구절이 길어진 것을 중형시조(中型時調) 또는 엇시조라 하고, 두 구절 이상이 길어진 것을 장형시조(長型時調) 또는 사설시조(辭說時調)고 한다. 엇시조와 사설시조의 보기를 각각 《남훈태평가》과 《병와가곡집》에서 차례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과가 ?어 이져야 오르냐, 네가 사라 평ㄸ에 그리워야 올타삳랴/?어 잇기도 어렵뜨니와 사라 때니별 더욱 셜럭/차라리 과 먼뎌 ?어 도라갈떼 네 날 긔리워라>

<사랑사랑 고고이 ?친 사랑 왼 바다를 두로 덥? ?친 사랑/왕십리 답십리라 ?외너출 슈박너출 얼거지고 트러져서 골골이 버더가는 사랑/아마도 이님의 사랑은 ? 간듸를 몰나 삳노라>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쓰여진 시형은 평시조이다. 이 밖의 형태로 몇 편의 시조가 내용상 연결되어 흔히 같은 제목 아래 쓰여진 것을 연시조(聯時調)라고 한다.

[전개]

<고시조 형성>

시조는 14세기 무렵 고려 말기 때 형성되었다. 시조의 기원에 대하여 첫째 신요(神謠)나 민요 또는 무당의 노랫가락으로 보는 견해, 둘째 향가로 보는 견해, 셋째 《정읍사(井邑詞)》 등의 6구체가로 보는 견해, 넷째 고려 가요가 붕괴되면서 단형의 시조 시형이 발생하였다는 견해 등이 있는데, 고려 가요 가운데 《만전춘(滿殿春)》에서 시조의 형식과 가까운 면을 찾아볼 수 있어서 시조는 그 기원을 고려 가요에 두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시조는 고려 말 이래의 새로운 지도 이념인 성리학(性理學)을 신봉하는 유학자들에 의하여 지어지고 발전되었다. 이 시기의 시조들은 역사적 사건과 결부되어 설화와 함께 전하거나 작품 제목이 붙여진 것이 많은데, 특히 이방원(李芳遠)이 조선의 건국을 앞두고 옛 세력을 대표하는 정몽주(鄭夢周)의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불렀다는 《하여가(何如歌)》와, 이에 답한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는 유명하다.

정치적 격변기인 이 시기의 작품은, 고려 멸망 후 옛 도읍지 송도(松都)를 찾아 감회를 읊은 고려 유신(遺臣)들의 회고가(懷古歌)와, 고려의 충의 지사들이 그들의 충성심과 단심을 노래하며 기울어가는 국운을 개탄한 절의가(節義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시조를 지은 유학자로는 고려 충숙왕 때의 우탁(禹倬), 충혜왕 때의 이조년(李兆年), 공민왕 때의 길재(吉再)·원천석(元天錫)·이색(李穡)·변계량(卞季良) 등을 들 수 있다.

<조선 전기>

이 시기에는 단종의 퇴위에 관련된 사육신(死六臣)과 생육신(生六臣)이 그들의 절개를 읊은 작품들이 많은데,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 등의 절의가와 함께 15세기의 시조작품으로 한가롭고 평화로운 경치를 읊은 서경시(敍景詩)가 등장하였다.

새로 건국된 조선 왕조가 안정되면서 사대부의 여유 있는 생활이 시조의 소재가 되고, 낙관적이며 관조적인 사고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긍정적 삶의 자세가 시조의 주제를 이루었다. 자연미(自然美)를 감상하면서 유교적인 충의를 노래하는 것이 이 시기 시조의 특정이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4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와 그 속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평화로운 삶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은혜라는 뜻의 종장이 반복되는 연시조로서 그 뒤 계속된 서경시의 한 전형이 되었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건국 당시의 공훈으로 권위를 유지해온 옛 세력에게 도전하는 신흥 세력의 역량이 축적되자, 조선 왕조의 정치사를 지배하는 이른바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다. 이것은 그대로 시조에 반영되어 신흠(申欽)·이항복(李恒福) 등의 작품에서는 붕당 정치로 희생된 인재들에 대한 애석함, 서경덕(徐敬德)·권호문(權好文) 등의 작품에서는 자기 수행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적인 자성(自省) 등이 주제로 나타났다. 이들 유학자들은 붕당 정치에 패배하고 먼 곳에서 귀양살이를 할망정 군주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었다.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시조는 세 방향에서 각기 우수한 작품을 산출하였는데, 그 하나는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이이(李珥)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로 여기에서는 정치적 이념과 태도가 저변에 깔린 채 자연에 투영된 인생관의 한 극치를 시조가 수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정철(鄭澈)의 《훈민가(訓民歌)》처럼 유교적 윤리관을 주제로 하되 백성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부류와, 끝으로 황진이(黃眞伊)로 대표되는 기녀(妓女)들의 작품으로서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애정의 형상화가 시조시형을 통하여 이루어진 시들이 있다.

<조선 후기>

17세기의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사람인 윤선도(尹善道)는, 4계절마다 각 10수씩, 총 40수로 된 연시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에서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갈고 닦아 간결하면서도 품격이 돋보이는 표현으로 세속의 자연을 시적인 흥취로 엮어 자연과의 교감을 승화시켰다.

조선 후기 시조의 표현 기교는 <어즈버·아희야·두어라> 등의 감탄사를 쓴 영탄적인 방법과, 전원(田園)의 서경을 서술적인 방법에 의해 묘사한 것으로 대별된다. 조선 왕조의 지배 계층인 유학자들에 비해 피지배 계층인 서민들은 유학자들의 미의식을 수용하는 한편 사설시조에서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소재를 선택, 희극미를 창조하였다. 사설시조는 사실적인 묘사와 상징적 은유로써 표현 기교를 바꾸고 있고, 애정·패륜·육감·거래(去來)·수탈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사설시조의 발달과 함께 시조의 발달 과정에 있어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평민 가객(平民歌客)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대개 문벌이나 지위가 낮고 사회적으로 크게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끊임없는 연수를 통하여 시조의 작법과 창법을 전수하였을 뿐 아니라, 가단(歌壇)을 이루어 시조집을 편찬함으로써 시조 문학의 항구적 발전을 꾀하였다.

18세기 초반 일군의 가객들과 가단활동을 한 김천택(金天澤)은 가단 구성원들의 협조로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을 엮었고, 김천택이 이끄는 가단의 일원이었던 김수장(金壽長)은 36수의 사설 시조를 창작한 사람으로 《해동가요(海東歌謠)》를 엮었다. 《청구영언》 《해동가요》는 19세기 후반 박효관(朴孝寬)·안민영(安玟英)이 엮은 《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작품 수가 많고 편차 체제가 정연하여 3대시조집이라고 한다.

이 밖에 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의 《고금가곡(古今歌曲)》, 이형상(李衡祥)의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김교헌(金喬軒)의 《대동풍아(大東風雅)》 등이 있다. 한편 엮은이를 알 수 없는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등의 시조집도 현전한다.

[현대시조]

현대시조는 고시조에 비하여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갖춘 시조로서, 보통 갑오개혁을 기준으로 하여 그 이전의 작품을 고시조, 그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작품을 현대시조라 한다. 형식과 내용이 고시조에 비해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 개화기시조는 1910년을 전후로 하여 발표된 시조를 비롯하여, 《소년》 《청춘》 《매일신보》 등에 실린 최남선(崔南善)과 이광수의 초기 시조까지를 말한다.

개화기시조는 외형상 시조마다 제목이 붙어 있고, 3장이라는 형식상의 문장보다 6구라는 시적 리듬의 반복 형태가 뚜렷하다는 특징이 있다. 현대시조가 논의되고 쓰여진 것은 20년대 이후의 일로 그 변화는 관념보다 구체, 집단보다 개인의 발견과 표현으로 나타났다. 근대 최초의 개인 창작 시조집이 된 최남선의 《백팔번뇌(1926)》를 비롯하여, 개화시조의 단조로움에서 현대시조의 서정시에로의 전환을 예고한 이은상의 《봄처녀》, 이병기의 《봉천행 9장(奉天行九章)》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어 주요한(朱耀翰)·변영로(卞榮魯)·정인보(鄭寅普) 등을 거쳐 《문장(文章)》지의 추천을 통한 김상옥(金相沃)·이호우(李鎬雨)로 이어지면서 시조의 근대적 변화가 진행되었다. 현대시조의 특징은 형식면에서는 개화기 시조와 같이 시조의 형태를 6구의 형식으로 분절해 놓은 것과, 이은상이 시도한 양장시조(兩章時調)를 들 수 있다. 양장시조는 3장에 담을 내용을 압축하고 평시조의 자수를 줄여 30자 안팎으로 하고, 종장의 3·5자를 지키면서 중장을 생략한 형태이다.

내용면에서는 계절이나 자연물·명승 고적 등에서 받는 느낌과 서경·회고·여정 등이 대부분을 이룬다. 30년대 이후 나온 시조집으로 이은상의 《노산시조집》, 김희규(金禧圭)의 《님의 심금(心琴)》, 오신혜(吳信惠)의 《망양정(望洋亭)》, 고두동(高斗東)의 《황산시조집》, 이병기의 《가람시조집》 등이 있다.

[시조창]

시조는 가창(歌唱)되었기 때문에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는 전통 가악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곡(歌曲)이라는 곡조로 불린 것이 가장 오랜 창(唱)이다. 이 가곡창은 5장으로 나누어 부르는데, 초중대엽(初中大葉)·이중대엽(二中大葉)·삼중대엽·북전(北殿)·이북전(二北殿)·초삭대엽(初數大葉)·이삭대엽·삼삭대엽·낙시조(樂時調)·만횡청(蔓橫淸)으로 분류된다.

이 가곡과는 달리 영조 연간에는 시조창이 나타났다. 오늘날 불리는 시조창은 크게 평시조·중허리시조〔中擧時調〕·지름시조〔頭擧時調〕·사설시조로 구분된다. 시조창은 경제(京制)·영제(嶺制)·완제(完制)라 하여 지방적 차이가 있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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