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11-29 (월) 16:00
분 류 사전2
ㆍ조회: 354      
[조선] 서인 (브리)
서인 西人

조선 시대 붕당(朋黨)의 하나.

붕당의 성립은 1575년(선조 8)의 동ㆍ서 분당을 기점으로 한다. 이때 심의겸(沈義謙)의 집이 서울의 서쪽인 정릉방(貞陵坊:정릉)에 있었고, 김효원(金孝元)의 집은 동쪽인 건천동(乾川洞:인현동)에 있었으므로 각각의 지지자들을 서인과 동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초기 서인의 구성원은 이이(李珥)를 중심으로 박순(朴淳)ㆍ김계휘(金繼輝)ㆍ정철(鄭澈)ㆍ윤두수(尹斗壽)ㆍ윤근수(尹根壽)ㆍ구사맹(具思孟)ㆍ홍성민(洪聖民)ㆍ신응시(辛應時)ㆍ성혼(成渾)ㆍ조헌(趙憲)ㆍ남언경(南彦經)ㆍ이귀(李貴) 등이었다. 특히 이이와 성혼의 제자는 이후에도 서인의 주요 학맥이 되었다.

서인은 대부분 전통적으로 중앙 정계에서 활약해온 명문 가문 출신과 기호 지방 사림 출신들로 경기도ㆍ충청도ㆍ전라도와 황해도 지역에 든든한 기반을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인은 조선 후기 중앙 정계에서 가장 유력한 당파로서, 세력이 위축ㆍ실각했을 때는 있으나 완전히 축출된 적은 없었고 정계에서 항상 일정한 기반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들도 연산군 때의 갑자사화(甲子士禍), 중종 때의 기묘사화(己卯士禍), 명종 때 윤원형(尹元衡)의 전횡을 거치면서 왕권의 지나친 비대화나 외척의 일방적 성장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때문에 윤원형을 제거한 뒤에는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기묘ㆍ을사 사화 희생자들의 신원을 주장하고, 경상도ㆍ전라도 사림의 등용을 주선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 그러나 토지 문제를 위시한 국정 혁신 정책에 대해서는 동인보다 소극적인 편이었다.

1588년(선조 21) 정여립(鄭汝立)의 역모 사건을 계기로 서인은 기축옥사를 일으켜 동인을 몰아내고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때의 동인에 대한 탄압은 서인ㆍ동인 간의 대립을 굳히고 동인을 남인ㆍ북인으로 분리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1591년 정철이 세자 책봉 건의로 노여움을 사게 되어 실각하면서 동인이 다시 진출했다(건저의사건 建儲議事件).

그러나 서인 실각의 결정적 계기는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등극이었다. 서인은 선조 때 정국의 주도 세력으로 군제 붕괴와 초반 패전에 책임이 있었다. 물론 전쟁중에 대명외교를 성공시켜 명나라의 원조를 얻어냈고, 의병 활동에서 조헌ㆍ고경명(高敬命)ㆍ김천일(金千鎰)의 활약이 있었으나 전반적인 공로는 남인과 북인이 앞섰다. 또한 서인은 광해군의 등극을 반대하고 영창대군을 지지했으므로 광해군이 등극하면서 크게 위축되었다.

광해군 때 서인은 비교적 중도적 입장을 유지했던 이항복(李恒福)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광해군 후반기에 대북 정권이 주도한 인목대비 폐위와 서양갑(徐洋甲) 사건(七庶事件)을 빌미로 일어난 계축옥사로 서인은 일대 위기를 맞았으나, 인조반정을 성공시킴으로써 위치가 공고해졌다.

인조반정 뒤 서인은 소수의 남인과 소북(小北)ㆍ중북(中北) 일부를 등용하는 한편, 김장생(金長生)ㆍ김집(金集)ㆍ송시열(宋時烈)을 주축으로 한 기호 사림을 포섭하여 정국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다. 이후 서인의 내부에 여러 번 당(黨)이 생겨났지만 대부분 분당이라기보다는 유력 인물을 중심으로 한 계파(系派)로서 김유(金鎏)ㆍ김자점(金自點)ㆍ이귀(李貴)ㆍ최명길(崔鳴吉)ㆍ이시백(李時白)ㆍ장유(張維)ㆍ원두표(元斗杓)ㆍ심명세(沈明世)ㆍ구굉(具宏) 등 공신ㆍ외척 세력을 포함한 훈신 세력과 사림 인사로 구분된다.

인조 초기에는 반정 공신 세력인 훈서(勳西:또는 功西)와 반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김상헌(金尙憲)의 청서(淸西)로 구분되었다. 훈서는 다시 김유를 중심으로 신흠(申欽)ㆍ오윤겸(吳允謙)ㆍ김상용(金尙容)의 노서(老西)와 이귀ㆍ장유ㆍ나만갑(羅萬甲)의 소서(少西)로 나누어진다. 이는 남인 인사를 등용하는 문제로 갈라진 것인데, 각 당파의 인물을 어떻게 등용할 것이냐를 놓고 이외에도 여러 번 논쟁이 있었다. 이 문제에는 반정 공신계보다 사림계인 김상헌ㆍ김장생 등이 더욱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인조 후반에 김집ㆍ송시열 등이 중용되면서 서인 정권은 최후의 공신 계열인 원두표의 원당(原黨), 김자점의 낙당(洛黨), 김육(金堉)ㆍ신면(申冕)의 한당(漢黨), 사림계인 산당(山黨)으로 구분되었다. 한당과 산당은 김육ㆍ김집이 대동법 시행 문제를 두고 대립하여 발생했는데, 대동법 시행을 촉구한 김육의 집이 한강 이북에 있고, 산당은 연산(連山)ㆍ회덕(懷德) 지역의 사림들이므로 이런 명칭이 붙었다.

효종 때 김집이 이조판서가 되어 송시열ㆍ윤선거ㆍ이유태(李惟泰)를 천거한 것을 계기로 서인 내부의 사림은 세력을 확충하여 송시열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그외에도 이때의 주요 인물로 김수흥(金壽興)ㆍ송준길(宋浚吉)ㆍ유계(兪棨)ㆍ민유중(閔維重)ㆍ민정중(閔鼎重)ㆍ김만중(金萬重)ㆍ윤선도(尹善道)ㆍ남구만(南九萬) 등이 있다. 이들은 철저하게 주자의 사상에 입각한 정책을 시행하여, 주자의 명분론에 기초한 신분제와 지주전호제의 안정을 기축으로 한 사회 재건을 추구했다.

동시에 주자 도통 계승 운동과 율곡의 문묘 종사 운동을 일으켜 주자ㆍ율곡(기호학파)으로 이어지는 자신들의 학문적 계보와 정책의 정당성을 강화하여 당시 최대의 정적이었던 남인에 대항하는 한편, 일부 진보적 학자들에게 도입된 반주자학적 경향과 토지 개혁론에 대처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신들의 국정 주도를 강조하며 왕실의 비대와 척신 정치(戚臣政治)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서인 내부에서 훈서ㆍ한당 계열 인물과 송시열계의 대립이 깊어졌다. 결국 현종 때 예제 논쟁을 시발로 척신인 김석주(金錫胄)와 윤휴(尹鑴)ㆍ허적(許積)을 대표로 하는 남인이 연합하여 정계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서인도 개혁론과 다른 당파에 대한 대응책을 놓고 노론ㆍ소론으로 분리되었다.

인맥과 정책으로 보면 서인의 주류는 노론으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간의 역학 관계 속에서 숙종~경종 때의 정국은 출척(黜斥)과 환국(換局)이 반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론은 숙종 때 송시열이 사형당하고, 소론의 지지를 받는 경종이 즉위하자 이이명(李頤命)ㆍ김창집(金昌集) 등 노론 4대신이 처형되는 위기를 겪지만 영조 즉위와 함께 다시 세력을 회복했다. → 동서분당, 붕당정치, 동인, 노론, 소론

참고문헌

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 : 이성무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조선후기 당쟁사 연구 : 이은순, 일조각, 1988
조선후기 정치와 군영제변천 : 이태진, 한국연구원, 1985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 이태진 편, 범조사, 1985
이조당쟁사연구 : 강주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1
16세기 사림의 진출과 정치구조의 변동과정 : 최이돈,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조선후기 국가재조론의 대두와 그 전개 : 김준석,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조선 현종대 정국의 동향과 산림의 역할 <국사관논총> 22 : 우인수, 국사편찬위원회, 1992
선조 초년의 신구갈등과 정국동향 <국사관논총> 34 : 김항수, 국사편찬위원회, 1992
17세기 중엽 산림세력의 정치운영론 <택와 허선도 선생 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 정만조, 일조각, 1992
17세기 전반 서인산림의 사상 <역사와 현실> 8 : 오항녕, 역사비평사, 1992
17세기 전반 서인관료의 사상 <역사와 현실> 8 : 조성을, 역사비평사, 1992
조선조 당론의 전개과정과 그 계보 <한국사학> 8 : 이이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예송과 노소분당 <아세아학보> 5 : 강상운, 아세아학술연구회, 1968
한국당쟁사 <한국문화사대계 2> : 성락훈,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65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윗글 [조선] 대북 (브리)
아래글 [조선] 동인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800 사전2 [근대] 국민대표회의 (위키) 이창호 2013-07-15 1130
799 사전2 [조선] 서원철폐 (두산) 이창호 2012-05-25 1030
798 사전2 [조선] 서원철폐령 (위키) 이창호 2012-05-25 1597
797 사전2 [고려] 귀법사 (민족) 이창호 2012-02-18 1011
796 사전2 [현대] 신탁통치반대운동 (브리) 이창호 2011-09-13 991
795 사전2 [근대] 송진우 (브리) 이창호 2011-09-13 1087
794 사전2 [근대] 송진우 (한메) 이창호 2011-09-13 991
793 사전2 [근대] 송진우 (두산) 이창호 2011-09-13 1051
792 사전2 [근대] 송진우 (민족) 이창호 2011-09-13 985
791 사전2 [근대] 수신사 (한메) 이창호 2011-04-24 1117
1234567891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