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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4 (금) 13:15
분 류 사전2
ㆍ조회: 2086      
[근대] 한국의 근대사회 개관 (두산)
한국의 근대사회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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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시대구분
원시사회
고대사회
중세사회
근대사회
현대사회

5. 근대사회

한국사에서의 근대사회의 태동은 실학(實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세사회는 17ㆍ18세기에 이르러, 특히 사회ㆍ경제 분야에서 전통적 사회의 특성을 잃고 있었다. 사회붕괴의 여건이 바탕이 되어 사상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사조(思潮)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전통적 사회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일련의 사상체계인 실학이 발달하였다.

유형원(柳馨遠)ㆍ이익(李瀷)ㆍ정약용(丁若鏞) 등 중농적 개혁사상을 주창한 실학자나, 유수원(柳壽垣)ㆍ박지원(朴趾源)ㆍ박제가(朴齊家) 등과 같이 상공업 중심의 개혁안을 제시한 실학자 모두가 비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사회 개혁과 제도 개편을 주장하였다.

비록 실학이 유교적 기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고, 실학자들의 개혁안이 모두가 실천되지 않았다 해도, 그것은 서서히 근대사회로 지향하는 데 기여하였다. 중세사회의 태내(胎內)에서 근대 지향적인 사상으로 발달한 실학은 개항(開港) 이후의 개화사상으로 연결되어 한국 근대사상에서 하나의 맥락을 이루게 되었다.

일부 지식인들에 의하여 실학사상이 제시되었으나, 19세기의 정계는 세도정치(勢道政治)로 말미암아 파국을 맞았다. 정치 기강의 문란으로 국가재정이 어려워지고, 농촌경제는 파탄에 빠졌다. 아울러 동요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신분제는 양반 중심의 지배체제에 커다란 위기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농민들의 의식이 점차 높아져 곳곳에서 민란(民亂)이라 지칭되는 민중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가톨릭과 함께 서양세력이 들어와 양반사회를 더욱 위협하였다. 이러한 때에 집권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전제왕권(專制王權)을 재확립함으로써 조선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마침내 1876년 개항을 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은 오랜 유교적 전통사회로부터 새로운 근대사회로의 지향이 가속화되었다. 정치제도 개혁과 외교관계 혁신, 교통ㆍ통신ㆍ의료ㆍ교육 등에서의 근대 문물 도입 등이 서서히 추진되었다. 그러나 근대사회를 예비하지 못한 정계(政界)는 개화사상과 척사사상(斥邪思想)의 갈등 속에서 임오군란(壬午軍亂:1882)ㆍ갑신정변(甲申政變:1884)ㆍ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1894)ㆍ갑오개혁(甲午改革:1894)ㆍ을미사변(乙未事變:1895)ㆍ아관파천(俄館播遷:1896) 등 극심한 혼란을 거듭하면서 제국주의 세력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길을 잃었고, 한반도는 거문도사건(巨文島事件:1885), 청ㆍ일전쟁(淸日戰爭:1894), 러ㆍ일전쟁[露日戰爭:1904] 등의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 침략세력에 대항하는 민족적 각성과 근대문화에 대한 선각 지식층의 이해가 깊어지면서 독립협회(獨立協會)가 조직되고, 자주자강운동(自主自强運動)이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일어나 1899년 근대국가로서의 대한제국이 수립되었다. 대한제국은 관제를 개혁하고 교육시설을 확충하며, 민의가 반영되는 개혁정치를 실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끝내 열강의 간섭을 배제하지 못하고, 무력을 앞세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1910년 이후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한민족의 민족운동을 탄압하고 경제적 착취를 강행하여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해체해 갔다. 그럼에도 한민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수호하고자 궐기하였으니, 그것은 일본의 야심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을미사변 이래 의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의병의 항전은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시해와 단발령(斷髮令)에서 비롯되었는데,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의 강제체결로 본격화되고, 1907년 고종(高宗)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최익현(崔益鉉)ㆍ신돌석(申乭石)ㆍ허위(許蔿) 등은 의병대장으로서 대대적인 대일항쟁(對日抗爭)을 전개하였다. 의병들은 산간 벽지를 근거로 유격전을 벌이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나 10년 국권피탈을 계기로 점차 활동의 기반을 잃어 이후 만주와 시베리아로 자리를 옮겨 영속적으로 항일독립운동(抗日獨立運動)을 전개하였다.

한편 을사조약의 체결을 전후하여 전국적으로 활발히 일어난 애국계몽운동은 10년 이후에도 줄기차게 국내외에 확산되었는데, 일제의 무단통치(武斷統治)로 활동이 어렵게 되자 신민회(新民會)와 같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였다. 3ㆍ1운동은 이와 같이 국내외에서 추진된 거족적 구국운동의 결실이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대한민국-역사'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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