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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22 (토) 01:54
분 류 사전2
ㆍ조회: 302      
[조선] 박세채의 졸기 (숙종실록 보궐)
좌의정 박세채의 졸기

좌의정 박세채(朴世采)가 졸(卒)하였다. 시호는 문순(文純)이고, 뒤에 태묘(太廟)에 배향(配享)되었다.

박세채는 어린 나이에 도학(道學)에 뜻을 두어 조예(造詣)가 정심(精深)하였다. 성리(性理)에 침잠(沈潛)한 것은 이황(李滉)을 배우고, 경제(經濟)를 담당하는 것은 이이(李珥)를 배웠으며, 예학(禮學)에 깊은 것은 김장생(金長生)과 같았다. 기위(奇偉)ㆍ괴걸(魁傑)한 자품은 비록 송시열(宋時烈)에 미치지 못했으나 자상(慈詳)ㆍ온자(溫藉)함은 그보다 나았고, 화후(和厚)ㆍ근독(謹篤)의 풍도는 비록 윤증(尹拯)에게 미치지 못했으나 명백(明白)ㆍ솔직(率直)함은 그보다 더하였다. 공부(工夫)의 각고(刻苦)와 문로(門路)의 정당함, 그리고 출처(出處)와 언행(言行)이 깨끗하여 하자가 없음에 있어서는 거의 근세(近世) 제유(諸儒)의 미칠 바가 아니었다.

당론(黨論)이 있은 이후로부터 세상의 학자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경우가 적었는데, 박세채는 오직 의리만을 위주로 하고 전적으로 찬동하거나 전적으로 부정하는 경우가 없었다. 경신년469)에 청의(淸議)를 주장한 것과, 무진년470)에 역종(逆宗)을 논한 것과, 갑술년471)에 장희재(張希載)를 토죄(討罪)한 것은 일에 따라 바른 말을 한 것으로 모두 세도(世道)에 공로가 있었으며, 비록 피차(彼此) 간에 서로 기뻐하지 않았지만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송시열과 윤증 양가(兩家)의 분쟁에 있어서 선비들의 추향이 분열되어 비호하고 억제함이 모두 한쪽에 치우쳤지마는, 박세채는 능히 은혜와 의리를 헤아려 정론(正論)을 저술하여 백세(百世)의 공안(公案)이 되기에 충분했다. 만년의 제우(際遇)472)는 천재 일우(千載一遇)의 훌륭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지치(至治)가 회복되기도 전에 철인(哲人)이 갑자기 별세하니, 군자(君子)가 이 세상을 위하여 슬퍼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9책 386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註 469] 경신년 : 1680 숙종 6년.
[註 470] 무진년 : 1688 숙종 14년.
[註 471] 갑술년 : 1694 숙종 20년.
[註 472] 제우(際遇) : 어진 신하가 어진 임금을 만남.

숙보 28권, 21년(1695 을해 / 청 강희(康熙) 34년) 2월 5일(정유)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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