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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5-23 (금) 13:31
분 류 사전2
ㆍ조회: 1632      
[종교] 천도교 (두산)
천도교 天道敎

조선 후기 1860년에 최제우(崔濟愚)를 교조로 하는 동학(東學)을 1905년 제3대 교조 손병희(孫秉熙)가 천도교로 개칭한 종교.

I. 개관

최제우는 전통적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 지방의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 후기는 국내적으로는 외척(外戚)의 세도정치와 양반·토호들이 일반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자행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민란이 각지에서 발생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의 무력침략의 위기를 맞던 시대였다.

최제우는 21세에 구세제민(救世濟民)의 큰 뜻을 품고 도(道)를 얻고자 주류팔로(周流八路)의 길에 나서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 양산 천성산 암굴에서 수도하고 도를 갈구하여 1860년 4월 5일 '한울님(하느님)'으로부터 인류 구제의 도인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도의 이름을 '무극대도'라고만 하였다. 최제우가 포교를 시작하여 많은 교도들이 모이자, 관(官)과 유생들이 혹세무민한다는 구실로 탄압하여 부득이 전남 남원 교룡산성(蛟龍山城)으로 피신하였다. 이 때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많은 저술을 하였다.

특히 1862년 1월경에 지은 《논학문(論學文:東學論)》에서 처음으로 무극대도는 천도(天道)이며 그 학은 서학이 아닌 ‘동학(東學)’이라고 천명하였다. 이로써 동학이라 지칭하게 되었다. 이 해에 다시 경주의 박대여(朴大汝) 집에 머물면서 포교하자, 충청·전라 지방에서까지 수천 명의 교도들이 모여들자 교도들을 조직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1862년 12월 동학의 신앙공동체인 접(接)제도를 설치하고 접주(接主) 16명을 임명하였다.

최제우는 1863년 3월 경주 용담정으로 돌아와 대대적인 포교활동에 나섰다. 접주들로 하여금 교도들을 수십 명씩 동원하여 용담정에 와서 강도(講道)를 받게 하는가 하면, 동학 교단 책임을 맡을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해월(海月) 최경상(崔慶翔:時亨)을 선임하였다.

한편 관의 탄압을 예견하고 그 해 8월 14일에는 도통(道統)을 최경상에게 완전히 물려주었다. 날이 갈수록 동학 교세가 커지자, 놀란 조정은 그해 12월 10일에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를 파견, 최제우를 체포하여 이듬해 3월 10일 대구에서 정형을 집행하여 최제우는 41세를 일기로 순도하였다.

ll. 종교사상

동학, 즉 천도교는 신, 즉 한울님을 모시는 유신적(有神的) 종교인데, 신관을 비롯하여 인간관·윤리관·역사관·수행체제가 모두 독특하다.

① 신앙대상인 한울님(天主)은 유일신으로 인격적이며 모든 사람들이 모시고 있는 초월적이면서 내재하는 신이며, 아직도 참뜻을 펴려고 애쓰는 신이다. 그러나 창조주나 심판의 신은 아니다. 그리고 신은 영적인 것과 기적(氣的)인 것을 아울러 갖고 있다고 본다.

② 인내천(人乃天)으로 대표되는 천도교의 인간관은 사람을 한울님처럼 존엄한 존재로 본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사람의 존엄성이 곧 한울님의 존엄성과 같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간평등과 존엄성을 신앙의 실천적인 핵심으로 삼는다.

③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대표되는 윤리관은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섬기듯이 하자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보고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처럼 섬겨야 한다. 1920년대의 천도교가 어린이운동의 목표로 어린이의 윤리적 해방을 내세웠던 것도 역시 어린이도 한울님을 모셨다고 보는 천도교의 신앙에서 연유된 것이다.

④ 천도교는 개체 영(靈)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으나 영생론을 주장한다. 영생은 종교적인 높은 체험의 경지에 이르면 가난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며, 시간 속에서도 영원을 살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⑤ 천도교의 역사관은 발전론과 순환론을 겸한 파동형(波動形:起伏盛衰論) 사관으로 보며, 문명의 단위를 동·서로 양분하여 지금은 대전환의 시기인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시점으로 본다. 즉 지금까지의 문명은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문명이 전개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⑥ 천도교는 현세주의적인 종교로서 모든 사람이 한울님처럼 대접받을 수 있는 정치·경제·문화 체제가 이루어지도록 힘써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자는 종교이다. 그 과정에서 평등한 인간구제, 부유한 사회구제를 위한 정신개벽·민족개벽·사회개벽 운동을 추진함으로써 사회변동을 위한 현실참여에 적극적이 된다.

lll. 수행체제

천도교의 수행은 개인적으로는 청원(請願)과 기복(祈福)이 수반되지만, 신앙체제를 확립하여 도성입덕(道成立德)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데 있으며, 집단적으로는 신앙공동체를 이루면서 희생·봉사로써 보국안민(輔國安民)·포덕천하(布德天下)·광제창생(廣濟蒼生)에 이바지하는 데 두고 있다.

그의 실행을 위해서 성(誠)·경(敬)·신(信)을 실천 윤리의 준칙(準則)으로 삼고 있으며, 종교행위로는 ① 주문(呪文), ② 청수(淸水), ③ 심고(心告), ④ 경전봉독(經典奉讀), ⑤ 기도, ⑥ 성미(誠米), ⑦ 시일식(侍日式), ⑧ 기념식 등이 있다. 주문은 본 주문이 13자로서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이며, 강령주문(降靈呪文)은 8자로서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다.

이 글을 수없이 반복하여 외우는데, 그 목적은 마음을 닦고(修心), 기운을 바르게(正氣) 하는 데 있다. 심고는 “한울님 감응하시기를 축원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다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청수는 모든 제례의식 때 깨끗한 물을 그릇에 떠다 바치는 것이며, 경전봉독은 《천도교 경전》(《東經大典》과 《龍潭遺詞》)을 경건하게 읽는 것이다.

기도는 심고 ·청수봉전(奉奠) ·주문 읽는 것을 시간과 날짜를 정해놓고 행하는 것을 말하며, 성미는 우리들이 끼니마다 먹는 음식을 한울님의 녹(祿)이라고 생각하여 끼니마다 쌀 등을 한 숟가락씩 뜨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모아서 교단에 바친다.

시일식은 1주일에 한 번(일요일에 교당에서 행함) 집회하여 의식을 행하는 것이며, 기념식은 창도일(創道日) 등 기념할 만한 날에 의식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중에서 주문·청수·시일·성미·기도를 특히 오관(五款)이라 하여 교인의 의무로 정하고 있다.

제사의식은 향아설위(向我設位)라 하여 제수를 모시는 사람을 향해 차려놓는데, 이것은 조상이나 스승님의 영(靈)도 내 안에 모셔져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끝으로 천도교의 수행기본(修行基本)은 기원만도, 깨달음만도 아닌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의 은총과 자력을 겸하는 데 있다.

lV. 약사

천도교는 관의 탄압으로 최제우가 순도한 이후 교세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제2세 교조 해월 최경상의 노력으로 다시 복구, 1870년경에는 신도수가 수천에 이르렀다. 그러나 영해지방에서 이필제(李弼濟)가 주축이 되어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을 일으켜 1871년 3월 10일 군아(郡衙) 습격과 8월 2일의 문경 초곡 군기고 습격사건으로 300여 교도가 희생되어 또다시 타격을 받았다.

1875년 최경상은 이름을 시형(時亨)으로 고치고 강원도 지방과 충청도 지방의 포교를 시작, 많은 교도를 얻었다. 이때 최시형은 양천주(養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실천적 수도요령과, 위생 등 생활의 합리화를 내세워 민중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리하여 1880년에는 강원도 인제와 단양 천동에서 《동경대전(東經大典)》과 《용담유사(龍潭遺事)》를 최초로 목판 간행하여 경전종교로서의 기틀을 세웠다. 이후 충청도 지방으로, 1889년경에는 교세가 전라도 지방까지 뻗치기에 이르렀다.

1892년경에 이르자 신앙자유를 내세워 충청도 공주와 전라도 삼례에서 대대적인 민중시위를 벌였는데 이후부터 교세는 급격히 늘어났다. 이듬해인 1893년에는 서울 광화문 앞에서 정부를 상대로 한 종교 자유화와 교조신원을 소청하였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자 3월에는 충청북도 보은 장내리에서 수만 교도들이 모여 보국안민·척왜양이(斥倭洋夷)를 내세운 반봉건·반제국주의적 정치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운동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894년 3월에 이르러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全琫準) 고부 접주에 의해 고부민란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전봉준·김개남(金開南)·손화중(孫華中)·김덕명(金德明) 등 지방의 동학 대접주가 공동으로 동학군을 동원,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시켰다.

5월에는 전주화약(全州和約)이 이루어져 53곳에 집강소(執綱所:군사위원회 같은 것)가 설치되어 폐정(廢政)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청·일전쟁이 일어나 결국 청국이 패퇴하기 시작하자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강점하려 들었는데 이때 최시형은 전 동학군에 기포령(起包令)을 내려 반제국주의 무력항쟁에 나서도록 하였다.

그러나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게 패퇴, 수만의 희생을 내고 막을 내렸다. 이로부터 4년 뒤인 1898년에는 최시형마저 체포되어 6월에 순도함으로써 동학(천도교)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900년에는 지도급 인물 중 손천민(孫天民)과 김연국(金演局)이 체포되어 손천민이 순도하자, 위기를 느낀 제3세 교조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는 1901∼1902년에 망명길에 나서 상하이[上海]까지 갔다가 이상헌(李祥憲)이라는 가명으로 일본에서 1906년 1월까지 머물렀으며,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국내 동학군을 동원하여 진보회(進步會)를 조직, 10월 8일 360곳에서 30만 명이 색옷입기와 단발을 단행하는 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한국 근대화의 민중운동이었으나 동학군이 주동이 되었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곧 탄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국내 지도자인 이용구(李容九)가 단독으로 일진회(一進會)와 합동, 노골적인 친일행위를 자행하였다. 손병희는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근대적 종교체제를 갖추는 데 힘썼다. 1906년 1월 말경에 귀국하여 2월부터 천도교 중앙총부를 설치하고, 9월에는 이용구를 포함한 교도 62명을 출교 처분하였다.

1910년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자 종교적 수행을 강화하는 한편 보국안민이라는 슬로건 아래 민족해방운동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국민교육을 위해 800여 개의 강습소를 설치, 기본교육에 힘썼으며 보성전문학교·동덕여학교를 경영 또는 보조하는가 하면, 16개 학교에 보조금을 제공하였다. 1919년 3월 1일 천도교는 그리스도교계·불교계 인사 및 학생들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위한 대민중시위를 주도하였다.

1922년 5월 19일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가 생애를 마치자 한때 교세는 주춤하였다. 그러나 청년들에 의해 1919년 9월에 발족한 천도교 청년교리 강연부를 토대로 1920년 3월에 천도교청년회를 조직, 종합잡지 《개벽(開闢)》을 간행함으로써 문화운동이 시작되었고, 1921년에는 어린이운동의 선구자인 천도교소년회를 발족시켰다. 1922년 9월에는 천도교청년회를 천도교청년당(黨)으로 발전시켜 여성운동·농민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때 천도교가 간행한 잡지만도 《개벽》을 비롯하여 《신여성》 《어린이》 《학생》 《농민》 《천도교 월보》 《신인간》 《별건곤(別乾坤)》 《자수대학강의》 등이 있었는데, 일제의 탄압이 심해져서 1935년 이후부터는 거의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자 천도교 청년들은 오심당(吾心黨:22년 조직)을 조직, 1935∼1936년에 조선독립운동을 꾀하다 발각되어 많은 인사가 체포·구금되었고, 1938년에는 제4세 대도주 춘암(春菴) 박인호(朴寅浩)가 주도한 멸왜기도사건(滅委祈禱事件)이 발각되어 수십 명이 체포·구금되기도 하였다.

1945년 8·15광복 이후 국토가 양단되자 북한에서는 천도교 북조선종무원과 천도교 청우당(靑友黨)을 조직, 활동하였는데 280만 교인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 북한측이 유엔감시하의 총선거를 반대, 이미 분단정권을 세우고 국토 분단을 영구화하려 하자, 1948년 2월에 3·1재현운동, 즉 남북통일 총선거운동을 전개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1만 70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로부터 조직적인 탄압을 받았는데 그래도 많은 교도들은 영우회(靈友會)라는 이름 아래 국토통일운동을 계속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북한에서는 많은 교도들이 남쪽으로 피난하였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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