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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02 (목) 20:32
분 류 사전2
ㆍ조회: 1038      
[고려] 문종 (민족)
문종 文宗 1019(현종 10)∼1083(문종 37)

고려 제11대 왕. 재위 1046∼1083. 이름은 휘(徽), 자는 촉유(燭幽).

현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혜태후 김씨(元惠太后金氏)이다. 형인 제10대 왕 정종에게 아들이 있었으나, 형제 상속의 형태를 취해 정종의 사후 왕위를 계승하였다. 1022년(현종 13) 낙랑군(樂浪君)에 봉해지고, 1037년(정종 3) 내사령(內史令)에 책봉되었다.

[제도 정비]

재위 37년 동안 문물 제도는 크게 정비되어 흔히 이 시기를 고려의 황금기라고 한다. 불교ㆍ유교를 비롯해서 미술ㆍ공예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을 보았다. 이것은 신라 문화를 계승하는 동시에 송나라 문화를 수용해 창조적 고려 문화를 형성한 것이었다.

양반 전시과(兩班田柴科)가 갱정(更定)되고, 관제가 개편되며, 백관의 반차(班次)와 녹과(祿科)가 제정되는 등 집권적 지배 체제의 확립을 의미하는 정치ㆍ경제의 여러 제도가 완비되었다. 제도의 정비 과정에서 송제(宋制)를 모방, 수용한 흔적도 많이 보이나, 대개 고려의 실정에 알맞게 수정되어 실시되었다.

특히, 하부 구조인 사회ㆍ경제의 상태는 송나라와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송제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해 전시과 제도와 같은 고려 독자의 토지법이 여러 번 개편되어 실시되었다.

지방 통치 체제도 성종 때 처음 외관(外官)이 설치된 이래, 현종을 거쳐 문종대에 이르러서는 양계(兩界)에 방어사ㆍ진사ㆍ진장의 수가 늘어나고, 남방의 제도(諸道)에서는 지주부군사(知州府郡事)ㆍ현령(縣令)이 증설되어, 수령의 관료제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제도의 완비는 물론 집권적 지배 체제의 확립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치적]

문종의 치적과 재위 기간 중의 중요한 사건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년(1047) 시중 최충(崔冲)에게 명해 법률가들을 모아 종래의 율령(律令)ㆍ서산(書算)에 대해 상세한 고정(考定)을 가하게 하였다. 이 결과 고려의 형법(刑法)이 크게 정비되었다.

3년(1049) 공음전시법(功蔭田柴法)을 정하였다. 이것은 5품 이상의 고급관료들에게 상속이 가능한 일정한 토지를 지급해, 양반 신분의 유지에 필요한 재정적 후원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4년(1050) 재면법(災免法)을 마련하고,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을 보충하였다. 재면법은 농사의 피재액(被災額)에 따라서 피재액이 4분 이상일 경우 조(租)를 면하고, 6분인 경우 조ㆍ포(布)를 면하고, 7분인 경우 조ㆍ포ㆍ역(役)을 모두 면제해주는 법제였다.

답험손실법은 현지의 농사 상황을 관(官)에서 잘 조사한 결과 피해의 정도에 따라서 조세를 경감, 조절해 주었다. 16년(1062) 삼원신수법(三員訊囚法)을 마련하였다. 이는 죄수를 신문(訊問)할 때, 반드시 형관(刑官) 3명 이상을 입회하게 하여 범죄의 조사가 공정히 이루어지도록 한 조치였다.

17년(1063) 국자감 제생(諸生)의 고교법(考校法)을 제정해 학생의 재학 연한을 제한하였다. 이에 따라 유생(儒生)의 재학 기간은 9년, 율생(律生)은 6년으로 제한해서, 자질이 부족해 재학 기간 중 학업의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자는 퇴학시켰다.

23년(1069) 양전보수법(量田步數法)을 규정해 결(結)의 면적을 확정하였다. 이에 의하면, 양전(量田)의 단위는 보(步)로써 정하되, 6촌(寸)을 1분(分), 10분을 1척(尺), 6척을 1보로 하고, 방(方) 33보를 1결, 방 47보를 2결로 하여 이하 10결에 이르기까지 그 면적을 명시하였다.

양전척(量田尺)의 실체는 알 수 없으나 고주척(古周尺, 19.8㎝)은 아닌 듯하다. 이것에 의해 산정된 결의 면적은 약 1만7천평(坪)ㆍ6,800평ㆍ4,500평 등으로 추정하는 견해들이 서로 대립되어 있다. 이 해 또 종래 1결에 대해 5승(升)을 징수하던 전세(田稅)가 7승(升)5홉(合)으로, 10부(負)에 대해서는 7홉5작(勺)으로 각각 인상되었다.

고려의 전품(田品)에 관해서는 8년(1054) 3등급의 전품제(田品制)가 마련되었다. 해마다 경작하는 불역지지(不易之地)를 상전(上田), 1년 쉬고 1년 경작하는 일역지지(一易之地)를 중전(中田), 2년 쉬고 1년 경작하는 재역지지(再易之地)를 하전(下田)으로 하였다.

전품제가 산전(山田)에만 적용되는 것인지, 혹은 산전ㆍ평전(平田)에 고루 적용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가령, 전품제가 산전에만 적용되고 평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면, 평전에서는 이미 세역휴경(歲易休耕)이 아닌 상경연작(常耕連作)의 농법이 시행되어 있었다는 매우 중요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앞으로 더 깊은 연구를 거쳐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23년(1069) 면적이 확정된 전결(田結)이 재래와 같은 동적이세(同績異稅)의 면적단위를 말하는 것인지, 혹은 조선 시대와 같은 이적동세(異積同稅)의 수세 단위를 말하는 것인지, 이 문제도 현재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

30년(1076) 양반전시과가 갱정되어 고려 전기의 토지법이 최종적으로 완비되었다. 또한 녹봉 제도가 문ㆍ무 백관 및 유역인(有役人)들에게 실시되었다. 이것은 모두 집권적 지배 체제의 물질적 토대가 정비되어간 것을 의미한다. 31년(1077) 선상기인법(選上其人法)이 제정되었다.

향리의 자제를 인질로 서울에 보내어 출신 지방의 계문(啓聞)에 대비한 것인데, 이 제도 역시 집권적 지배 체제의 강화ㆍ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주목되는 치적으로 23년(1069) 경기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이에 경기는 종전의 13현에서 50여 현으로 팽창되었다.

이러한 경기의 확대는 종래 양반전시과의 개편을 앞두고 양반의 전시지(田柴地)를 경기의 땅 안에서 확정 지급하기 위한 조처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 양반에 지급된 과전(科田)은 경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하도(下道) 전역에 걸쳐 지급되었으리라는 견해가 유력시되어 있다. 따라서 경기 확대의 이유와 동기는 앞으로 다른 각도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문종대에 남반직(南班職)의 최고위가 종래의 4품위(品位)에서 7품위로 떨어져 격하되었다. 이것은 문무 양반에 비해 남반이 천시된 결과이며, 양반관료의 신분의 우월성이 정착된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외적인 관계는 4년ㆍ6년ㆍ18년ㆍ22년ㆍ27년에 각각 변방에서 동여진(東女眞)의 침구를 보았으나 격퇴하였다. 대여진 관계는 대체로 평온해 여진측이 토산을 바쳐 내부(內附)하였으므로 후일에 보는 큰 변동은 아직 예측되지 않았다.

문종은 고려 전기의 문물 제도가 완비되는 문화적 황금기를 상징하는 영매한 국왕이었다. 장지는 경릉(景陵), 시호는 인효(仁孝)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韓國史-中世篇-(李丙燾, 震檀學會, 乙酉文化社, 1961), 高麗土地制度史硏究(姜晉哲, 高麗大學校出版部, 1980), 麗代南班考(曺佐鎬, 東國史學 5, 1957), 高麗時期의 量田制(金容燮, 東方學志 16, 1975), 畦田考(李泰鎭, 韓國學報 10, 1978).

<강진철>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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