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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30 (월) 23:15
분 류 사전2
ㆍ조회: 1921      
[조선] 고종 (한메)
고종 高宗 1852~1919 (철종 3~순종 13)

조선 제26대 왕(1864∼1907). 아명은 명복(命福), 초명은 재황(載晃). 후에 희(熙)로 개명. 자는 성림(聖臨), 후에 명부(明夫)로 개자(改字). 호는 성헌(誠軒).

영조의 현손(玄孫)인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아들로, 1852년 음력 7월 25일 정선방(貞善坊) 소재의 흥선군 사제(私第)에서 출생하였다. 즉위 후인 1966년 9월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민치록(閔致祿)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니 이가 명성황후(明成皇后)이다.

고종이 익종의 대통을 계승하고 철종의 뒤를 이어 1963년 즉위하게 된 것은 아버지 흥선군과 익종비(翼宗妃)인 조대비(趙大妃)와의 묵계에 의해서였다. 철종이 죽자 조대비는 재빨리 흥선군의 둘째아들인 고종으로 하여금 익종의 대통을 제승하도록 지명하여 그를 익성군(翼成君)에 봉하고 관례를 거행하여 국왕에 즉위하게 하였다.

그러나 국왕이 12세의 어린나이였으므로 조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게 되었고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높여 국정을 총람, 대섭하게 하였다. 그후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정권은 민비의 척족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민씨척족정권은 흥선대원군이 취했던 강력한 척사양이정책(斥邪攘夷政策)과는 달리 개방정책을 펴서, 1876년에는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고 구미 열강과도 차례로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시책을 틈타 일본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침투해 오자, 신사척사상소운동(辛巳斥邪上疏運動)·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혁명운동 등으로 개화·수구 양파의 대립이 첨예하게 나타났다.

게다가 급격하게 변하는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열강의 이권다툼의 싸움터가 되어 청일전쟁·러일전쟁이 일어났고, 민비시해사건이나 아관파천(俄館播遷)과 같은 민족의 자존심을 해치는 일까지 일어났다.

1897년 10월에 연호를 광무(光武)라 하고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여 황제위에 올랐으나, 1907년 6월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만국평화회의에 한국의 문제를 호소하고자 특사 이상설(李相卨)·이준(李儁)·이위종을 보낸 일로, 이완용(李完用)·송병준(宋秉畯) 등 일제에 아부하는 친일 매국대신들과 군사력을 동반한 일제의 강요로 한일협약을 위배한 책임을 지고 같은해 7월 20일 퇴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종의 뒤를 이어 순종이 즉위하였으며, 고종은 태황제(太皇帝)가 되었으나 실권이 없는 허위(虛位)였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합방하자, 이태왕(李太王)으로 불리다가 1919년 정월에 사망하였다. 이 때에 고종이 일본인에게 독살당했다는 풍문이 유포되어 민족의 의분을 자아냈으며, 인산례(因山禮)가 거행될 때 전국 각지에서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능은 홍릉(洪陵;金谷)이며, 저서로는 《주연집(珠淵集)》이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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