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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9-21 (화) 23:17
분 류 사전2
ㆍ조회: 347      
[고려] 정방 (브리)
정방 政房

고려 후기 관리들의 인사(人事)를 담당하던 정치 기구.

1225년(고종 12) 무인집정 최우(崔瑀)가 자기 집에 설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관제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았고 설치 당시에는 정색승선(政色承宣)을 비롯하여 3품의 정색상서(政色尙書)와 4품 이하의 정색소경(政色少卿), 그리고 이속(吏屬)으로서 정색서제(政色書題) 등이 있었다.

본래 고려의 관리 인사는 주무 부서인 이부(吏部)와 병부(兵部)에서 각각 문신과 무신들의 근무 연한과 성적 등을 참작하여 정안(政案)을 작성하면 이것을 중서문하성에서 심의한 다음 국왕의 재가를 받아 시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방이 설치된 뒤에는 관리들에 대한 인사권이 정방에 집중됨으로써 권력의 독점과 인사의 문란 등 많은 폐단이 일어났다. 이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이 재편될 때마다 폐지되거나 다시 설치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1258년에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뒤에는 최의(崔)의 집에 있던 것을 편전(便殿) 옆으로 옮기고 관리 인사를 그대로 주관하게 했을 뿐 아니라 국가의 기무(機務)까지도 모두 처결하게 하여 그 권한을 더욱 강화했다. 그리고 1278년(충렬왕 4)에는 필도치[必赤]를 두고 역시 국가 기무를 회의ㆍ결정하게 함으로써 '별청재추'(別廳宰樞)라 불렸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여 관제를 개혁하면서 정방을 혁파하고 인사권을 이해에 새로 설치한 사림원(詞林院)에 돌렸으나, 곧 충렬왕이 복위하자 사림원을 혁파했고 이와 동시에 정방을 다시 둔 것으로 보인다. 그뒤 1307년에 충선왕이 정방을 없애고 문ㆍ무 관리의 인사는 이부와 병부의 후신인 전리사(典理司)와 군부사(軍簿司)에서 각각 주관하도록 했다. 1325년(충숙왕 12)에 정방을 다시 두었으며, 1344년(충목왕 즉위)에 혁파했지만 1개월 만인 1345년에 다시 설치했다.

1352년(공민왕 1)에도 혁파했다가 곧 다시 설치했으며, 1356년에 또다시 혁파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두었다. 고려 말에 이르러 1388년(창왕 1)에 정방을 상서사(尙瑞司)로 고쳐 영구히 폐지했다. 이후 상서사에서 주관하던 인사권을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05년(태종 5)의 관제 개혁에서 이조와 병조에 귀속시켰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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