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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3-06 (수) 07:49
분 류 시대
ㆍ조회: 3014      
[중세] 2. 중세의 정치 개관 (7차 지도서)
2. 중세의 정치

(1) 개관

고려 시대사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경향은 고려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집약되었다. 우선 크게는 한국 중세의 기점과 고려 시대의 시기 구분론, 사회 성격론이나 사회 변동론에 입각한 큰 틀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연구 성과를 어떻게 자리 매김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인 관심이 일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의 기정 논의는 이미 1960년대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하면서 내재적 발전론의 관점에 따라 고려 시대 연구가 축적되고 사회 성격에 대한 토론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논점들이 제기되었다. 이때의 주요 논쟁점은 고려 전기 사회를 고대로 보는 견해와 중세로 보는 견해로 구분되었다. 고려 시대사의 경우, 나말 여초 시기, 무신 집권기, 여말 선초 시기의 사회 변동 양상과 함께 지배 세력의 성격과 변천, 사적 토지 소유의 존재 등이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 그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고려 전기를 고대로 보는 시각과 나말 여초의 사회 변동을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으로 보는 시각이 제시되었다. 이후 국내에서는 고려 시대를 중세로 보는 입장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이후 1970, 1980년대의 한국사 연구의 여러 분야에서 개별적이고 미시적인 사실의 분석과 이해가 축적됨에 따라 그러한 연구 성과들이 한국사 시대 구분이라는 거시적 접근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문제 의식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그 력과 1995년 [한국사 시대구분](신서원, 1995)이라는 주제 아래 3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왔고, 한국 중세의 기점과 관련하여서도 다양한 관점들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김기흥은 통일 신라의 세제(稅制)를 검토하면서 8세기를, 노명호는 나말 여초를 변동기로, 이태진은 후삼국을 중세의 시작으로 파악하였다.

한편, 채웅석은 고려 사회의 시기 구분론을 검토하였는데, 고려 중기 설정의 유용성을 모색한 것 역시 고려사를 종합적으로 살피려는 연구 성과로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다양하게 제시된 고려사의 시기 구분론 중 지배 세력의 성격을 기준으로 시기 구분하는 방식은 경제사, 항쟁사, 향촌 사회사 등의 연구가 잘 반영되지 못하여 역사 발전의 총체적인 이해에 다소 미흡하여, 무신 정변을 계기로 양분하는 견해는 그 앞 시기인 12세기 전반기를 동태적ㆍ계기적으로 연결하여 인식하는 데 한계를 보일 뿐 아니라 원 간섭기 이후의 사회 변화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이어서 12세기 초부터 13세기 중반에 걸친 고려 중기 사회의 변화를 지배 체제 내에 내포된 모순의 발현, 사회 변화의 배경, 변화에 대한 지배층과 민의 대응, 중앙과 지방 사회의 관계 변화의 잣대에 맞추어 살펴본 후 이 시기에 전후 시기와 비교되는 일정한 성격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고려 시대 지배 세력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로 시작된 사회 성격론은 1770년대 초에 귀족제와 관료제 논쟁이 시작되면서 본격화하였다.  그 결과 귀족제 입장에서는호족과 6두품 세력이 대두하는 배경과 출자(出自), 존재 양태 등을 연구하여 그들에게 고대 골품제의 모순을 극닦하는 나말 여초 사회 변동기의 주역으로 성격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호족은 고려의 중앙 집권화 정책 과정에서 중앙에 포섭되어 중앙 귀족화하거나 지방 향리화하는 길을 걸었다. 성종대 이후 집권 체제가 확립되면서 이 호족 출신과 구신라 귀족 출신 그리고 개국 공신 계열의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지배층을 형성하면서 귀족이 되었음을 밝혔다.

관료제의 입장에서는 고려의 일반적인 관인 선발 제도가 개인의 능력을 기준으로 선발하는 과거(77뜰)였으며 그렇게 선발된 관료들이 정치를 주도하고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귀족 사회로 보기 어렵고, 관료제 또는 막스 베버가 말한 가산 관료제로 보아아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며 귀족제론을 옹호하는 연구자들은 조상의 음덕(蔭德)에 의해 관인이 되는 음서(蔭敍)의 비증이 더 커졌다고 강조하고, 가산 관료제의 개념을 적용할 때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논쟁이 진행되면서 귀족제와 관료제의 개념이 재검토되고, 과거제와 음서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 유지 수단으로서의 통혼권, 그리고 경제 기반과 관련해서 공음전시과 제도(功蔭田柴科制度) 등을 쟁점으로 하여 연구가 심화되었다. 그 결과 귀족 사회론에서는 고대(신라). 고려, 조선의 지배 세력으로 진골 귀족(전기 귀족), 문벌 귀족(후기 귀족), 양반(사대부)을 설정하였으며, 지배 세력의 성격에 바탕을 두고 고려 사회의 성격을 규정할 정도로 중요한 사회 성격론은 지배 세력이 문벌을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문벌 귀족이라고 파악하여 왔다. 이에 기초하여 고려
사회를 문벌 귀족 사회라고 부르거나 귀족 사회로 일컬어져 왔다.

이에 대하여 찬반 양론이 최근에 다시 제기되었다. 유승원은 귀족 사회를 부정하고 그 대안으로 문벌 사회를 제안하였는데, 박용운은 귀족 사회론 비판의 근거로 삼았던 귀족의 개념, 음서제와 과거제 문제, 문벌의 지속성, 문벌의 가문 의식 또는 문벌 의식을 차례로 검토하여 다시 한번 고려가 귀족 사회임을 주장하였다. 한편 박종기는 문벌을 강조하고 고려의 특징으로서 문화의 다양성과 통일성, 다양한 의례와 관료 문화, 전업적이고 분업적인 신분 체계와 사회 구조 등을 들어 고려가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토양으로 전체의 통일성을 추구한 사회였다고 하였다. 특히 조선 왕조와 비교하여 조선이 종속의 원리가 관통하는 수직적 사회 구조였다면, 고려는 평행의 원리가 관통하는 벌집 구조의 사회였음을 지적하였다.

참고 문헌

한국경제사학회, [한국 고대 시대 구분론], 을유문화사, 1970
김기흥, 한국사의 고ㆍ증세 시대 구분, [한국사의 시대 구분-고대ㆍ중세], 1995.
노명호, 나말 여초의 사회 변동과 친족 제도, [한국사의 시대 구분-고대ㆍ중세], 1995.
이태진, 사회사적으로 본 한국 중세의 시작, [한국사의 시대 구분-고대ㆍ중세], 1995.
채웅석, 고려 사회의 고려 중기론, [역사와 현실], 1999.
김의규 편, [고려 사회의 귀족제설과 관료제론], 지식산업사
김용선, 고려 문벌의 구성 요건과 가계, [한국사 연구] 93, 1996.
유승원, 고려 사회를 귀족 사회로 보아야 할 것인가, [역사 비평] 30, 1997.
박용운, 고려는 귀족 사회임을 다시 논함(상ㆍ하), [한국학보] 94, 1997.
박종기, [5백년 고려사], 푸른역사, 1999.

출전 : [고등학교 국사 교사용 지도서], 교육인적자원부, 2002, pp.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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