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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4-18 (금) 13:46
분 류 사전2
ㆍ조회: 1792      
[조선] 개화당=개화파 (브리)
개화파 開化派

19세기 중엽 이후 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위로부터 부르주아적 개혁'을 실현하려던 정치집단.

개화파를 형성하는 데 계기가 된 사람은 북학파의 거두 박지원(朴趾源)의 손자인 박규수(朴珪壽)와 중인 출신인 오경석(吳慶錫)· 유홍기(劉鴻基:일명 유대치)였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 사건에 대한 조선왕조의 위문사절단의 부사(副使)로 청에 갔던 박규수는 구미 열강의 침략으로 피폐해진 청의 현실을 보고 위기의식 속에서 조선의 문호개방을 통한 부국강병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한편 역관으로서 전후 13차례나 중국을 다녀왔던 오경석은 구미 열강의 침략과 그에 따른 중국의 현실을 보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조선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는 서양문물을 소개한 중국의 신서(新書)인 〈해국도지 海國圖志〉·〈영환지략 瀛環之略〉·〈이언 易言〉 등을 국내에 가져와 연구하였다.

그는 자신의 친구인 유홍기에게 그것을 전하고 연구를 권한 뒤, 두 사람은 조선 형세의 위태함을 깨닫고 '일대혁신'의 필요성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은 중인 출신이기 때문에 혁신의 주체를 북촌(서울의 고관양반의 집단거주지)에 있는 젊은 양반자제 가운데서 구하여 혁신의 기운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들이 주목한 북촌의 양반자제는 김옥균(안동김씨 부사 김병기의 양자)·박영효(판서 원양의 아들이자 철종의 부마)·박영교(박영효의 동생)·서광범(참판 서상익의 아들)·서재필(서광범의 조카)·김윤식·김홍집·홍영식·유길준·어윤중 등이었다. 이들은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등과 함께 신서를 익히면서 개화사상과 개화파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개화파는 1876년 개항을 계기로 민씨 정권이 중국의 양무개혁론을 모방, 체제유지의 차원에서 추진한 개화정책에 참여하면서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은 '충의계'(忠義契)를 조직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또한 개혁의 수단으로서 당시 서구문물에 관심을 표명하던 고종을 개명화시켜 평화적인 개혁을 추구하려 하였다.

특히 1880년과 1881년의 일본 수신사와 신사유람단 그리고 청의 개화문명을 배워오기 위한 영선사 등의 파견은 개화파가 세계정세의 흐름과 새로운 서구문명을 직접 확인하고 배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개화파는 양반의 자제뿐만 아니라 광범한 층의 청년들을 모아 외국에 유학보내어 근대적 제도와 문물을 배우게 하였다. 이들은 일본의 군사사관학교와 경응의숙(慶應義孰) 등에 유학하여 근대적인 군사학과 학문, 사상을 배웠다.

박영효는 1883년 8월 박문국을 설치하여 〈한성순보〉를 발행, 나라 안팎의 정세는 물론 구미의 입헌군주제와 삼권분립의 우월성을 소개·선전하였다. 이런 속에서 개화파는 점차 조선 개혁의 모델로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주목하게 되었다.

개화파의 활동은 점차 정부 안에서 친청수구적인 민씨정권과 마찰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도 급진개화파와 온건개화파로 분화되었다. 그것은 개화의 방법과 청에 대한 외교대책의 차이 때문이었다. 김홍집·어윤중·김윤식 등의 온건개화파는 부국강병을 위한 개화정책을 실시하되 민씨일파와의 타협 아래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개화의 방법도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서양의 근대적인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점진적으로 수행하고, 청과는 종래대로 사대외교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온건개화파의 이러한 개혁입장은 당시 청의 양무론적 개혁을 모방한 '동도서기론적(東道西器論的) 입장'이었다.

반면에 김옥균· 박영효·서광범 등의 급진개화파는 서양의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사상·제도까지 수용해야 하고 민씨일파와는 타협이 아니라 타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개혁의 관건적 문제로서 민씨일파를 지원하던 청에 대한 사대관계의 종식을 우선과제로 삼았다. 이런 점에서 급진개화파를 이후에 '개화독립당'이라고도 하였다. 급진개화파의 개혁구상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델로 한 '변법적(變法的) 개화'의 입장이었다.

급진개화파는 1884년 5월 안남문제를 두고 청·프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에 있던 청군의 일부가 철수하는 정세변화를 이용하여 정변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당시 조선 침략의 강화를 위해 접근하던 일본의 도움을 약속받고 10월 마침내 정변(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들은 신정부를 구성하고 그들의 개혁이상을 담은 '신정강'을 발표, '위로부터의 부르주아적 개혁'을 단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민씨일파의 요청을 받은 청군의 무력간섭과 일본의 배반으로 정변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홍영식·박영교 등은 청군에 의해 살해되고, 김옥균·박영효·서재필·서광범 등 9명은 일본으로 망명함으로써 급진개화파는 몰락하게 되었다. →개화사상

홍순권(洪淳權)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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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내셔널리즘의 연구 : 김영작, 청계연구소,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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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강좌 - 근대편 : 이광린, 일조각, 1981
한국의 개화사상 : 강재언, 정창렬 역, 비봉출판사, 1981
독립협회연구 : 신용하, 일조각,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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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지배층연구 : 김영모, 한국문화연구소, 1972
한국개화사연구 : 이광린, 일조각, 1969
김옥균 :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편, 1964(주진오 해제, 역사비평사, 1990 재간)
한국근대의 온건개화파연구 : 최진식,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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