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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4-13 (일) 06:49
분 류 사전2
ㆍ조회: 1240      
[조선] 민영익 (한메)
민영익 閔泳翊 1860~1914

조선후기의 문신. 자는 우홍(遇鴻), 호는 운미(芸楣)·죽미(竹楣)·원정(園丁)·천심죽재(千尋竹齋). 본관은 여흥(驪興).

1877년(고종 14)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枓)로 급제하여 이조참의(吏曹參議)를 거쳐 81년 경리통리기무아문군무사당상(經理統理機務衙門軍務司堂上)·군무변정기연사당상(軍務邊情譏沿司堂上), 이어 협판통리아문사무(協辦統理衙門事務)가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민씨 척족의 거물로 지목되어 난군에게 집을 파괴당했고, 난이 수습된 후 사죄사절(謝罪使節)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권지협판교섭통상사무(權知協辦交涉通商事務)로 톈진[天津]에 파견되어 해관사무(海關事務)를 교섭했다.

1883년 전권대신(全權大臣)으로 미국에 건너가 국서(國書)를 전달, 한국 최초로 서양문물을 시찰하고 귀국 후 혜상공국총판(惠商工局總辦)이 되어 개화당(開化黨)을 탄압했다. 1884년 개화당의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부상, 미국의 의사(醫師) 알렌의 치료로 생명을 건졌으며 그해 12월 친군우영사(親軍右營使)가 되어 일본에 망명중인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을 암살하기 위하여 자객을 밀파했다.

1886년 정부의 친로거청정책(親露拒淸政策)을 반대,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이 사실을 밀보(密報)했다가 자신의 정치적 거취가 곤란해지자 홍콩[香港]으로 망명했다. 후에 귀국, 통위사(統衛使)·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찬정(贊政) 등을 역임했으며, 1905년 러·일전쟁 후에 친일정권이 수립되자 상하이[上海]로 망명, 그곳에서 죽었다. 행서(行書)를 잘 썼고, 묵란(墨蘭)도 잘 그렸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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