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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24 (월) 22:08
분 류 사전2
ㆍ조회: 1296      
[조선] 안병찬 (브리)
안병찬 安秉瓚 1854(철종 5) 충남 청양~1921

한말의 의병장·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順興). 이명은 안병찬(安秉燦)·한일선(韓一善). 자는 치규(穉圭), 호는 규당(規堂).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김복한(金福漢)·이설(李)·임한주(林翰周)·이근주(李根周) 등과 함께 충청도 지방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관찰사 이승우(李勝宇)의 배신으로 붙잡혀 10년 유배형을 받았으나 특사로 풀려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법부주사(法部主事)로서 이에 반대했고, 이듬해 다시 민종식(閔宗植)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일으켰으나 전투에서 크게 패했다. 그뒤 그는 변호사가 되어 1909년 안중근 공판의 변호를 맡았고,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했다.

1919년 11월 안둥 현[安東縣] 훙퉁구[弘通溝]에서 59개 청년단체에 약 3만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 총재로 추대되었다. 안병찬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고, 각 지방에 의용단을 조직하여 대규모의 독립전쟁은 정부의 명령을 받아 수행하되 우선적으로 일본군경·친일세력 토벌에 상당한 수단을 취하고, 기관지를 발간하여 세계의 대세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방침을 선전할 것을 공포했다.

1920년 일본군에 체포되었으나, 관뎬 현[寬甸縣]의 지사(志士) 황조안(黃祖安)의 알선으로 석방된 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무차장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이르쿠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제1차 대회에 참석하여 중앙위원으로 선출된 뒤 상하이[上海]로 돌아와 국내 연락기관으로 고려공산당 상하이 지부를 결성했다. 다시 모스크바에 가서 레닌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받아오다가 반대파 공산당원에게 암살당했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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