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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1-04 (월) 12:27
분 류 사전2
ㆍ조회: 1169      
[조선] 김석주 (한메)
김석주 金錫胄 1634~1684 (인조 12~숙종 10)

김석주의 영정.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사진조선 후기 문신.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 본관은 청풍(淸風).

1657년(효종 8) 진사(進士)가 되었고, 1662년(현종 3) 증광(增廣)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전적(典籍)·이조좌랑(吏曹佐郎) 등을 지냈다. 1674년(숙종 1)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南人) 허적(許積) 등과 결탁해 송시열(宋時烈)·김수항(金壽恒) 등을 숙청하고 수어사(守禦使)·도승지(都承旨) 등으로 특진되었다.

그러나 남인의 정권이 강화되자 이를 거세하기 위해 다시 서인들과 제휴하여 송시열을 사형하려는 남인들의 책동을 꺾음으로써 송시열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허적 일당이 유악사건으로 실각된 뒤 이들 남인의 잔여세력을 제거하고자 허견(許堅)이 모역한다고 고변(告變)케 하여 이들을 추방하고 그 공으로 보사공신(保社功臣) 1등으로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이어 김익훈(金益勳)과 함께 남인의 완전 제거를 위해 전익대(全翊戴)를 사주하여 남인들이 모역한다고 고변하게 하는 등 음모를 꾀하였다.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남인의 타도를 획책했다 하여 같은 서인의 소장파로부터 반감을 사서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한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공신호를 박탈당하였으나 나중에 복구되었다. 숙종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저서로 《식암집(息庵集)》 《해동사부(海東辭賦)》 등이 전한다. 시호는 문충(文忠).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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