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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3-15 (토) 05:28
분 류 사전2
ㆍ조회: 2622      
[고대] 한국사4-삼국시대 역사 개관 (브리)
삼국시대 역사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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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왕국시대의 특징은 한 국가에서도 왕실이 교체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에서는 연나부(那部)에서 계루부(桂婁部)로 왕실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아마 이때 해씨(解氏)로부터 고씨(高氏)로 바뀐 것 같다. 백제에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으나 그런 징조가 엿보이며, 신라에서는 박(朴)·석(昔)·김(金) 세 성의 왕위교체가 있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왕실은 고정되기에 이르는데, 고구려에서는 태조왕(53~146경 재위), 백제에서는 고이왕(234~286 재위), 신라에서는 내물마립간(350~402 재위) 때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왕실이 고정되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도 정비되었다. 그 표현이 율령의 반포인데, 고구려에서는 373년(소수림왕 3)에, 백제의 경우는 기록이 없으나 신라에서는 520년(법흥왕 7)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국가체제의 정비를 토대로 하여 크게 대외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는데, 고구려의 광개토왕(391~413 재위), 백제의 근초고왕(346~375 재위), 신라의 진흥왕(540~576 재위)이 그러한 정복군주들이었다. 그결과 연맹왕국시대의 여러 왕국은 정리되어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정립하는 시대가 되었다. 낙동강 유역에 가야가 있었으나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신라에 병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연맹왕국시대에 비교해서 왕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서 국왕의 시조를 국조(國祖)로 모시고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정치의 실권이 국왕에게 전적으로 위임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의 실권은 귀족들에게 있었는데, 국가의 중요한 일은 귀족들의 회의체에서 결정했다. 이러한 귀족회의에 고구려에서는 제5관등 이상이 모였다고 하며, 국무총리격인 대대로(大對盧)를 귀족들이 선거했다는 기록도 있다. 백제에서는 재상을 투표에 의해 선거한 것으로 해석되는 정사암회의(政事巖會議)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가장 명백한 귀족회의의 예는 신라의 화백(和白)이다. 화백은 귀족 출신의 대등(大等)으로 구성되고 상대등(上大等)을 의장으로 하는 회의체로서 왕위의 계승, 대외적인 선전포고, 불교의 수용 같은 종교적 문제 등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했다. 이러한 귀족회의의 존재를 통해 당시의 사회가 귀족연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족회의의 참가 자격은 귀족신분 중에서도 고위 귀족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짜여져서 특권층이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령 고구려에서는 고추가(古鄒加)라는 존칭을 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왕족인 계루부와 왕비족인 절노부(絶奴部)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백제에는 8성대족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 중요한 관직은 왕족인 부여씨(扶餘氏)와 왕비족인 진씨(眞氏)나 해씨(解氏)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던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신라에서는 골품제라고 하는 엄격한 신분제가 있어서, 성골과 진골의 2골(骨)과 6두품에서 1두품에 이르는 6두품이 있어서 모두 8등급의 신분층이 갈라져 있었다. 성골은 김씨왕족 중에서도 왕이 될 자격이 있는 최고의 골품이었으나 뒤에는 소멸되었다. 진골도 왕족이지만 왕이 될 자격이 없다가, 성골이 소멸된 뒤에는 왕위에 올랐다. 6두품·5두품·4두품은 일반귀족이고, 3두품 이하는 일반 평민층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골품에 따라서 관직에 취임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었다. 이같이 살펴보면 화백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골품도 진골에 한정되어 있었던 듯하다. 즉 신라는 진골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귀족의 수는 제한되어 있었다.

이같이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귀족국가가 형성되면서, 그 문화도 과거와는 달리 발전했다. 우선 각기 그 나라의 국사(國史)가 편찬되었는데, 고구려의 〈유기〉, 백제의 〈서기〉, 신라의 〈국사〉 등이 그것이다. 또한 불교를 수용하여 중앙집권국가의 왕권 강화를 정당화하고, 아울러 귀족들의 신분적 특권을 정당화하는 정신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에 따라서 백제의 미륵사(彌勒寺)나 신라의 황룡사(皇龍寺)와 같은 거대한 사찰과 미륵반가상 등 아름다운 불상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또 국왕과 귀족을 위한 대규모 무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고구려의 기단식 돌무지무덤이나 벽화고분이 특히 유명하며, 백제의 무령왕릉(武寧王陵)과 같은 벽돌무덤[塼築墳], 신라의 천마총(天馬塚) 같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등이 대표적이다.

<이기백(李基白) 글>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사' 항목,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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