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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태준 (이동훈)
이태준(1904-?, 강원도 철원) 1904년 1월7일 소설가 이태준이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1남2녀 중 장남이었다. 6세가 될 때까지 이 곳에서 자라다가 아버지를 따리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했다. 당시 아버지 이문교(李文敎)는 구한말 개화파에 관여하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상허 이태준의 자전소설 「사상의 월야」에서 그려져 있듯이 이문교는 개화파라는 이유로 의병들의 습격을 받아 산 속으로 피신하기도 했으며, 가족들은 의병들에게 음식을 장만하여 갖다 바치는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결국, 이문교는 가솔을 이끌고 러시아의 해삼위(지금의 블라디보스톡 부근)으로 이주하는데, 이때가 1909년이었다. 그렇지만 얼마후 이문교는 병으로 죽고, 3년 뒤인 1912년에는 이태준의 모친 안씨마저 산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이태준이 양친을 다 잃고 고아가 되어 용담으로 되돌아온 것이 그의 나이 9세 적. 고아로 친척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까닭에 주변의 동정과 괄시를 받으면서 어렵게 봉명학교를 졸업하는데, 그래도 남다른 강인함과 성취욕을 지녀서 졸업식장에서는 졸업생을 대표해서 상장을 받기도 하였다. < 어머니를 생각하고 처음 울기는 열 네 살 되는 해 봄이었다. 소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그날 졸업식장에서는 내가 제일 빛나는 아이였다. 첫째로 내려오다 졸업에도 첫째로, 우등으로 하는 아이는 나뿐이었다. 상장을 타고 답사를 하는 아이도 나뿐이었다. 나는 제일 빛나는 졸업생이었다. 그러나 졸업식이 끝난 뒤 졸업장과 상장과 상품을 안고 구경시킬 이도 없는 일가 집 사랑 윗방에 돌아와 혼자 문을 닫고 앉을 때 나는 한없이 쓸쓸하였다. 그날 처음 '나에겐 왜 어머니가 없나?"하고 울었다. 종일 울었다.>고 이태준은 회상한 바 있다. 이태준은 용담시절, 외조부와 낚시질을 하다가 그것이 갑갑하면 외삼촌들을 따라 선비소로 가 그물놀이를 하곤 했다. 그 후 이태준은 이곳을 떠나 공부와 세상살이로 도화지를 떠돌면서도 늘상 이곳을 그리워했다. 용담은 이태준에게는 정신의 고향이자 고달픈 삶의 귀향처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전화에 휩쓸려 그 흔적조차 묘연한 땅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원산으로 가출한 것이 중학 졸업하고 15세가 되던 해였다. 원산에 도착한 이태준은 물산객주집 사환으로서 '밤중에라도 뱃소리만 나면 비가 오든 눈보라가 치든 부두로 달려가…객을 데려오고, 밥을 짓고 상을 놓고 요강과 타구를 부셔야'하는 고생스런 일을 2년 동안 하다가 주위 상황에 자극받아 상경했다. 그리고는 배재학당에 응시, 합격했으나 입학금이 없어 등록을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원산 물산객주 집에서 일할 때 안면이 있던 한 상인을 만나 그의 호의로 낮에는 상회 일을 보고 밤에는 청년회관의 야학교 고등과에 입학해서 공부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한한 뒤로는 책장사 등으로 어렵게 학비를 조달했기 때문에 늘 월사금 체납자의 명단에 끼였으며, 특히 등록 마감일에 즈음한 한두 주일은 학교를 결석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성적은 비교적 우수한 편에 속했다. 그 후 그의 딱한 처지를 뒤늦게 알게 된 교장의 배려로 교장실 청소를 전담하고 학비 면제의 혜택을 받았다. 이로 인해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된 그는 도서관에 들어앉아 투르게네프의 『전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톨스토이의 『부활』 그리고 위고의 번안소설인 『아아 무정』 등의 문학작품을 탐독했다. 이태준의 휘문고보 시절은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또 한차례 좌절의 벽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것은 학교의 비리와 교주의 횡포에 대항해서 일어선 동맹휴교 사건에 그가 깊이 관여하는 데서 비롯된다. 어떤 계기로 그가 이 사건의 주모자로 연루되었는지 그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미루어 살피건대 그는 고아라는 특수한 신분에서 연유된 사회의 냉대와 푸대접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여기에 문학적인 열정과 결백성을 소지한 젊은이의 가슴에 욱하는 반항심이 도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동맹휴교에 주모자로 인정되어' 5년제 과정중 4년 1학기에 학교를 쫓겨난다. 퇴학처분을 받은 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동경 유학길을 떠나게 되었다. 동경에서 이태준은 신문, 우유배달을 하는 등 매우 어려운 생활을 했다. 동경 상지대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할 무렵, 와세다 대학 강사로 있으면서 선교사업을 하던 미국인 배닝 호프박사의 각별한 후의를 받았던 기록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미국선생님은 지금도 조대(早大)에 강사로 게시며 「스콜홀-」이란 건물을 중심으로 선교사업을 하고 게신 어른인데 그때도 이분 밑에는 여러 고학생들이 그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 나도 그 중의 한 학생으로 이분의 사무실에서 혹은 가정에서 약간의 노동을 하고 지냈었는데 이분은 여러 학생 중에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 같았다. 나의 공부 시간을 위해서 자기의 방을 늘 자유로 쓰게 빌려주시었고 사무실로 오라고 하시어 가보면 일거리를 맡기기보다는 이야기를 꺼내시는 때가 더 많았다. 그분은 일본내지에 온 지 그때 이미 십팔년이나 된다고 하시며 누구에게나 유창한 일본말로 대하기를 좋아하시었다. 선생은 조선사정에 깜깜하시었다. 그러나 조선을 화제에 올리기를 좋아하시었고 나 또한 그것을 이야기하기에 연설과 같이 흥분하곤 하였다. 그리고 조선청년에게는 당신네가 인도하려는 종교생활보다 더 급한 생활이 있다고 하고 얼마 뒤에는 자유로 사상청년들과 접근하기 위해서 신문배달을 하면서까지 이분의 보호를 뿌리치고 나오고 말았었다. 그러나 선생은 이 성미 괄한 이국청년을 괘씸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가끔 와달라는 편지를 주시였으며 댁으로 가면 같이 산보나 극장이 아니면 긴 시간을 이야기로 보내었고 또 내가 돌아올 때는 늘 무엇을 주시곤 하였다. 한 번은 내가 병이 났다. 여러날 병고와 주림과 고독에 시달리고 있는데 내 반학우에게서 들었노라 하시고 이 빼닝호프 선생은 곧 자기 집으로 와달라는 편지와 함께 인력거까지를 보내주시였다. 나는 너머나 염치가 없었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 손수 쫓아오실 그분이었다. 선생은 나의 여윔과 열이 높은 것을 보시고 곧 자기의 침대에 눕게 하고 의사를 부르고 손수 접시를 들고 조대(早大) 앞 거리로 내려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다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처럼 인간에게 감사한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다. 한 사흘 뒤 병이 나았다. 나는 선생에게 끓어엎디여 울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것은 내가 처음 불러본 말이었다. 무론 일상생활에서 「고맙소」「감사하오」하는 말을 한번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정말 마음속에서 깊은 양심 속에서 울음이 터져나오 듯이 말이 절로 터져나와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깊이 반성하였다. 자문하였다. 「나는 불평이 있을 때 불평을 말하듯이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진실로 감사를 말할 줄 알아왔는가? 아니 불평을 발견하듯이 감사를 발견하기에 노력하였는가?」 나는 그리하였노라고 자신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람에게든 신에게든 감사를 발견하기에도 노력할 것을 그때에 처음으로 결심하였다. 그 뒤에도 이 빼닝호프 박사의 신세를 많이 젓다. 감사할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제일 감사한 것은 나에게 감사의 의식을 깨쳐주신 그 은혜다.> 그의 동경생활은 한마디로 가난과 병고, 그리고 고독감 등으로 점철된 매우 암담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안톤 체호프의 애수의 향기>에서 이태준은 가난했던 생활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차표가 떨어져 학교에 못 가고 비 소리와 벌레소리에 싸인 벌판 외딴 집에 누워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이태준은 이같은 어려움을 끝내 감내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학업을 포기한 채 귀국길에 오른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여러 신문사와 모교인 휘문고보에 취직을 의뢰했지만 냉담한 반응만 보였을 뿐 어느 누구 하나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일본 유학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모국에서 마음껏 펼쳐보리라 기대했던 이태준으로서는 심한 좌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파고다공원 주위를 서성거리는 등 서울 거리를 방황하는데 특히 이 시기는 그가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냉대를 체험하면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축적하던 준비기라 할 수 있다. 현재 이태준의 유년기 추억이 얽힌 고향 마을은 흔적도 없어졌으나, 다행스럽게도 그가 살던 집의 모습은 여전히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뒷날 자수성가한 이태준은 자신이 자랐던 철원 용담의 옛집을 서울에 그대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248번지. 성북2동 동사무소 바로 뒤편에 이웃하고 있는 고급 빌라들 사이에 끼어 그 고풍스런 자태가 이채로운 1백여 평 남짓한 한옥. 이태준은 이곳에 있던 초가를 헐고 그 터에 지난 기억을 더듬어 고향의 옛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이 집은 1933년, 그러니까 이태준이 30세가 되던 해에 지어진 것이다. 이화여전 음악과를 졸업한 이순옥과 결혼한 지 3년이 되던 당시 이태준은 장녀 소명과 장남 유백을 두고 있었고, 22세에 「오몽녀」로 등단한 이래 「산월이」, 「봄」, 「실락원 이야기」등을 발표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사회적으로 조선중앙일보 학예부 기자를 하면서 이화여전에 출강하고, 박태원·정지용 등과 어울려 구인회를 조직하는 등 기반을 잡아가던 시기였다. 그런 까닭에 남다를 애착을 갖고, 고향의 뿌리 하나를 옮겨 놓는 심정으로 이 집을 지었으리라. 신기한 것은 이태준이 섬돌 밑에 심어 놓은 난초가 해마다 피고 지고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품인 낡은 책장과 함께, 난초는 옛 주인의 숨결을 잊지 않고 토해내는 모양이다. 「난」이라는 수필에서 이태준은 책이 지루하거나 붓이 막힐 때 난초 잎을 닦아주는 것이 제일이라고 했다. 이렇듯 주인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까닭에 아직도 난은 잎을 틔우는 것인지. 가람 이병기로부터 사란(絲欄) 한 분(盆)을 받고 즐거워했다는 이태준이 지금껏 꽃망울을 틔우는 난초를 본다면 어떠한 심정을 가졌을는지. 이태준은 이 성북동 집에서 그를 대표하는 「달밤」 「촌띄기」 「손거부」 「가마귀」 「복덕방」 「패강냉」 「영월영감」 「밤길」 「토끼이야기」 등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써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은 대부분 이태준의 안정된 생활을 반영하듯이 간결하고 치밀한 문장과 빼어난 분위기, 인물묘사를 특징으로 한다. 이태준은 1930년대 단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들은 성격 묘사의 깊이나 구성의 완결성 양쪽에서 한국 현대 소설의 바탕을 마련했다. 이태준의 산문에 대한 평가는 이미 당대에 드높았던 듯하다. “시에 정지용, 산문에 이태준”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이태준은 1933년 김기림ㆍ이효석ㆍ유치진ㆍ정지용ㆍ이무영 등과 함께 문학동인회 ‘구인회(九人會)’를 만들어 탈(脫)정치문학을 옹호했다. 구인회에서 함께 활동하던 작가들 태반이 그랬듯, 이태준도 자기 작품 속에 흔히 감상적이고 회의주의적인, 더 나아가 패배주의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그는 1932년부터 다섯 해 동안 이화여전에서 작문을 가르쳤고, 1940년에는 ‘문장강화(文章講話)’라는 글쓰기 교본을 냈다. 문장의 정의에서부터 갈래별 문장 작법과 퇴고 요령을 거쳐 구두점 사용법까지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느낌이 크지 않다. 그는 《문장》지의 편집자로 활약하면서 신인 추천작품의 심사를 맏아 최태웅·임옥인 등의 작가를 문단에 배출시켰으며, 창작 활동을 계속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가열해지자 별로 저항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현실에 순응했다. 그리하여 그는 황군위문작가단·조선문인협회 등의 단체활동에 관여하고, 그들이 주는 '조선예술상'을 수상하는 한편 친일적 경향의 글을 몇 편 쓰기도 하였지만, '춘원처럼 일본 제국주의의 주졸이 되지 않고' 그 활동이 소극적이고도 미온적이었으며 작품 내용 또한 친일성향이 그다지 격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자신의 양심에 용납되지 않은 듯 『왕자호동』을 마지막으로 붓을 꺾고 고향 인근의 안협으로 낙향하여 낚시를 하는 등 유유자적하다가 이윽고 해방을 맞는다. 해방 후 그는 지금까지의 문학적 태도와는 달리 좌익계열의 문학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해방전후」를 발표하면서 일대 사상적 전환을 보였다. 그리고 47년 7월경 돌연 월북했다. 이후 그의 이름은 불행하게도 꽤 오랫동안 남한땅에서 지워져 있었다. 고향 주민들에게조차 그의 이름은 생소했다. 순수문학의 기수로 불리울 만큼 그가 남에 남긴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념적 색채가 없는 순수문학 작품들이다. 그래서 그의 월북은 당시 문인들에게조차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태준이 해방후 좌익에 가담하고 월북한 것은 최태응의 말대로 커다란 '문학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월북을 두고 좌익에 이용당했다느니, 묘혈(墓穴)을 자청했다느니 하는 추측이 난무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 인간의 행위가 어느 날 돌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이미 내재되어 있던 속성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이라면, 이태준의 월북을 단지 '충격적인 사건'으로만 볼 수는 없다. 말하자면 이태준의 월북은 내재된 특성이 해방이라는 특수한 국면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태준 소설의 또 다른 특성을 이루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지사적 사명감을 통해서 확인된다. 구한말 개화의 꿈을 간직한 채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던 아버지에 대한 이태준의 흠모는 「사상의 월야」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두루 발견되거니와, 그것이 이태준 소설의 중요한 축을 형성한다. 「고향」에서 발견되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단호한 분노라든가, 「꽃나무는 심어놓고」에서 보이는 일제의 기만적 농업정책에 대한 서정적인 비판, 「패강냉」에서 보이는, 일본식으로 변화된 현실과 전통의 소멸에 대한 주인공 '현'의 분노 등은 모두 작가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 또 소박한 산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청춘을 바치겠다는 소박한 꿈마져 용납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반감을 그린 「실락원 이야기」,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신문기자를 다룬 「순정」 역시 작가의 또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태준을 단순한 순수 문학자라고만 볼 수는 없는데, 그가 해방후 좌익에 관여하고 월북한 것은 이러한 특성이 중요하게 작용한 때문이다. 해방 뒤인 1946년「해방전후」에서 고백되고 있듯이, 이태준은 해방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침묵만으로 일관하는 것은 비겁하며, 어떤 식으로든 신념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에서 그는 임화 등의 조선문학가동맹 핵심들과 어울리면서 급기야 문학가동맹의 부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기에 이른 것이다. 백철의 회고에 의하면, 이태준은 처음에 임화와는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일제 말기, 임화가 「신문학사」를 쓰고 지나간 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급격히 가까워졌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해방후 이태준은 임화의 추천으로 월북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다 소련 여행 티켓의 유혹을 받은 것이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 작가적 결벽성을 갖고 있는 그가, 남한의 과도정권의 부패성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도 한 동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태준이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이 되고 결국 월북해버린 것은 해방기의 정치ㆍ사회적 정황에 대해 얘기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알맹이는 다 올라가고 쭉정이만 남았다”는 일부 재남(在南) 작가들의 자조(自嘲)에서도 엿보이듯, 해방기의 남쪽 상황은 이태준 같은 ‘순수문학자’들이 보기에도 절망적이었던 것 같다. 정지용은 후일 "소설가 이태준 군, 조국의 서울로 돌아오라"고 말한 바 있다. "자네 좌익을 내 믿기 어렵거니와 아무리 죽어도 살어도 민족의 서울에서 견딜 근기(根氣)가 없던 사람이 비행기 타고 모스크바 가는 바람에 으쓱했던가." 정지용은 이태준의 '소련기행'이 "분수없이 일러버렸다"고 단정하고, '소련기행'이 불러일으킨 민족문학의 좌우파쟁에 대한 책임을 이태준이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용의 이 편지는 일찍이 '문장파'로 활동하면서 비슷한 언어감각과 순문학적 감수성을 나누었고, 네니 내니 할 정도로 가까웠던 인간 이태준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월북 후, 이태준은 소련파의 후원을 받으면서 소련을 다녀오고, 전쟁 기간 중에는 종군작가로 참전하여 미군에 대한 적개감을 고취하고 인민군 전사들을 격려하는 내용의 작품을 써 이전과는 사뭇 다른 변화를 보여주었다. 미군에 대한 원수를 백배천배로 갚자는 결의를 서술한 「백배천배로」, 겁 많은 병사가 용기 있는 전사로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 「누가 굴복하는가 보자」, 미군들의 잔학상을 폭로한 「미대사관」, 야전병원 간호장 김옥실의 인간애를 그린 「고귀한 사람들」등은 모두 이런 시기에 쓰여진 작품들이다. 이태준은 한동안 북한 문단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김일성대 교수인 정률은 그를 들어 ‘조선의 모파상’이라고 불렀고, “로동신문” 주필 기석복은 그를 위해 조소문화협회 주최 이태준 연구발표회를 수차례 주선해 주기도 했다. 1947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초청으로 중국 대륙을 한달여간 방문, 이듬해 “위대한 새중국”이라는 중국 기행문을 발간(국립출판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그의 문학작품들은 종전(終戰) 이후 남로당소련파의 몰락과 함께 갑자기 북한 문단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53년 휴전 후 김일성계는 전쟁 책임을 남로당에게 전가시켜 그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한다. 이때 이태준은 소련파의 비호를 받아 겨우 생명은 부지하지만 계속된 정치적 와중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부르주아 반당사상의 잔재를 지닌 작가로 내몰려 작가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 채 추방되어 해주 황해도 일보사 인쇄공이 된다. 이태준은 연이은 사상투쟁회의로 몸과 마음이 상해 있었고, 자살할 생각으로 팔목 안에 손칼을 넣고 다니기도 했다. 해주 시절 그는 낚시질로 겨우 마음을 달래며 시간을 보냈다. 10년의 추방 생활 이후 평양으로 돌아왔으나, 1974년 다시 사상투쟁을 겪고 강원도 장동 탄광지구로 재추방되었다. 이때 아내 이순옥이 뇌혈전으로 쓰러지자 이태준은 아내의 기저귀를 갈고 병시중을 든다. 아내가 죽자 이태준도 '사라진다'. 남파 간첩 김진계의 구술 기록에 의하면, 1969년 당시 원산 부근 마천령산맥에 있는 장동탄광에서 사회보장으로 이태준 내외가 외로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사회보장이란 여자는 55세, 남자는 60세가 넘으면 노동법에 의해서 정부의 보조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김진계가 장동탄광에서 남파 훈련을 받던 도중 우연히 낯익은 노인을 만나, 혹시 '작가가 아니냐'고 물으니, 노인이 머뭇거리면서 '이태준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평률리 민주선전실장을 할 때 도서실에서 이태준의 단편집 「달밤」이나 「가마귀」를 읽어보았고, 「문장강화」라는 책이 좋다는 말을 여러번 들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김진계는 그 말을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느냐고 물으니, 이태준은 쓸쓸한 표정으로 '쓰고는 싶소만….'하면서 말을 얼버무렸다는 것이다. 그때 이태준의 나이가 65세였다. 남다른 심미안과 문장관을 지녔던 소설가 이태준, 탄광촌의 한 모퉁이에서 비운을 안고 기억의 피안으로 사라진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북한에서 '반동작가'로 규정되어 있지만, 그의 문필력과 문체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고, 탈북 작가 최진이는 말했다. 남한에서도 이태준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출전 : 경북여고 국어교사 이동훈 홈페이지-문인일화-이태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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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민족) |
 [근대] 이태준 (브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