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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삼팔선 (이완범)
미국의 38선 획정 이완범 (정치외교학,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연구위원) 동유럽에서 소련점령이 가져다주는 의미와 그 대립상을 인식했던 미국은 소련의 진군에 대항하여 만주·화북·한국에 신속히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진군 전인 1945년 8월 10일에 이미 일본의 포츠담선언 조건부(천황제 존속조건) 수락의 뜻이 스위스로부터 전달되었다. 일본의 항복이 늦어진다면 소련군이 중국 만주로부터 화북과 조선을 점령하고 일본 본토에 상륙하여 발언권을 강화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 국민의 여론은 천황제존속을 원하지 않았으나(1945년 6월 갤럽 여론조사 : 천황을 처형하라―33퍼센트, 천황을 재판에 넘겨라―17퍼센트, 그냥 둬라―4퍼센트, 꼭두각시의 역할을 맡기자―3퍼센트, 의견없음―23퍼센트) 빠른 항복접수를 위하여 8월 11일 천황제의 존속을 인정하는 의미가 담긴 번스의 회답문을 발송하였다.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군사점령은 1943년부터 일부 외교관을 중심으로 검토되었으며 1945년에 들어와서 하나의 정책대안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것이 분할점령이 될지 안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단지 소련의 참전이 시작된다면 분할점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을 것이다. 이런 막연하고 한편으로는 급박한 상황에서 8월 10∼11일 사이에 38선은 확정되었다. 확정된 38선은 형식적으로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편의적 군사분계선이었다. 원래 한반도는 일제 대본영의 직할지역이었으나 1945년 5월경부터 경성과 강원 북부의 이북은 일본 관동군이 관할하고 있었으며 그 이남은 일본 남방군이 관할하였다. 여기서 군사분계선 획정의 근거를 제공한 일제의 분단에 대한 책임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설명에 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분계선과 38선이 거의 일치한 사실을 미국은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8월 10일 이후 제주도를 포함한 전 한반도가 관동군 관할이 되었으므로 5월의 조치는 임시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미·소 양군의 진주는 단순한 무장해제뿐 아니라 바로 점령을 의미하였다.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세력관계는 군사적 승리를 얻는 측이 정치적인 문제를 지배한다는 원칙에 따라 누가 항복을 받느냐 또 어디서 항복을 받느냐에 따라서 좌우되는 상황이었다. 실무담당자는 몰랐다 하더라도 분할선의 획정을 지시한 정책결정자는 그러한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얄타에서 거론된 '군사주둔 없는 탁치안'과 같은 불확실하며 구두합의밖에 되어 있지 않아 준수할 의무도 없으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실행방법조차 결정되지 못한 것보다 더 확실한 군사점령의 방식을 택하게 되어 잠시 탁치안은 무시되었던 것 같다(선점령 후탁치). 다음은 한반도의 분할을 결정한 '일반명령 제1호'의 내용이다. ① 중국(만주 제외), 대만 및 ……은 장개석(蔣介石) 총통에 항복한다. ② 만주, 북위 38도 이북의 한국, 카라후토 및 쿠릴 열도내에 있는 고위 일본지휘관과 모든 육·해·공군 및 그 부속군은 소련군 극동사령관에 항복한다. ③ ㄱ. 안다만 제도, 니코바 제도 ……은 동남아사령부 연합최고사령관에게 항복한다. ㄴ. 보르네오 ……은 오스트레일리아군 총사령관에게 항복한다. ④ 일본위임통치제도 ……은 미국 태평양 함대총사령관에게 항복한다. ⑤ 일본 본토 및 그 부속 소도, 북위 38도 이남의 한국, 류큐 및 필리핀에 있는 제국총사령부, 그 고위지휘관과 모든 육·해·공군 및 그 부속군은 미국 육군 태평양총사령관에게 항복한다. ⑥ 이상에서 지적한 사령관이 항복을 받을 권한이 있는 연합군의 유일한 대표자이며, 모든 일본군의 투항은 오직 이들 또는 그 대표자에게만 할 수 있다. 이는 전후 아시아에서의 세력관계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미국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작성되어 소련과 영국에 통고되고 승인을 받은 것이다. 소련은 8월 16일 쿠릴 열도가 빠진 안을 보고 추가시킬 것을 요구하였으며, 홋카이도 북부를 항복지구에 포함시켜 줄 것과 일본점령에 참여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38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수락하였다. 구체적으로 문서화되어 드러난 것은 9월 2일 미·일간의 항복문서조인식 때였다. ②항과 ⑤항이 우리가 주목할 부분인데 전시에 세력분할에 관한 명확한 논의가 없었던 한반도를 제외하고는 얄타밀약에서의 흥정 범위와 일치한다. 소련에게는 한반도를 제외한 만주·남사할린·쿠릴 열도가 전략적 요지였으며, 38선 이북의 한국은 일종의 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38선을 획정하였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획정의 시기는 전술한 바와 같이 8월 10∼11일 사이였다. 그렇다면 획정의 당사자는 누구였으며 무슨 의도에서 선을 그었을까? 미국측의 사후 변명을 보면 몇 명의 영관급 장교들이 군사적 편의에 따라 결정했다지만, 이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편의주의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는 실무담당자에 불과하다. 이들이 국무성-육군성-해군성의 3성조정위원회(STATE-WAR-NAVY COORDINATING COMMITTEE : 약칭 SWNCC)의 위임을 받아 미국방성 4E886호실에서 결정했다고 한다. 이 위원회에서 보다 높은 차원의 의도가 낮은 차원에서는 편의적으로 소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3성조정위원회는 전략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국무성과 육·해군성의 정책담당자가 모이는 기관이다. 워싱턴 시각으로 8월 10일 밤 육군 차관보 맥클로이(JOHN MCCLOY)의 방에서 국무성 대표 던(JAMES DUNN), 그리고 해군성 대표 바드(RALPH BARD)가 참석한 가운데 일본 항복 후 극동의 미군이 취할 행동을 규정하는 명령서를 기초하였는데 한반도는 분할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상부에서 결정이 난 상태였다. 단지 어떤 선을 긋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묘안이 떠오르지 않던 던은 육군준장 링컨(GEORGE LINCOLN)을 통하여 육군성 작전군 정책과의 두 대령-본스틸 3세(CHARLES H. BONSTEEL Ⅲ)와 러스크(DEAN RUSK)-에게 어떤 방안을 고안해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후일 국무성장관이 된 러스크가 차관보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1950년 7월 12일에 쓴 비망록에 의하면 "국무성측은 (번스 국무장관의 견해로는) 미군이 (대륙에서-필자, 꼭 한반도만을 지칭한 것은 아님) 되도록이면 북상하여 항복을 접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번스가 결정의 최고 입안자라는 사실과 38선 획정결정이 단순한 군사적 편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를 포착할 수 있다. '되도록이면 북상하라'는 구절에서 이를 입증할 수 있는데, 북상의 정치적 목적은 세력확대이지만 보다 심층적으로 보면 소련의 한반도 전체 점령을 막기 위한 소련견제에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편의적으로 획정한 실무자에게도 이런 정치적 의도가 지침으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의 미군에겐 시간과 병력이 없었다. 군은 당장 사용가능한 미군병력의 부족을 지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600마일 떨어진 오키나와에 있음). 따라서 북상해야 한다는 정치적 희망과 미군진주 능력의 명백한 한계를 조화시킬 안을 작성해야 했다. 본스틸은 도계(道界)가 좋겠다고 했으나 맥클로이의 부속실에서 유일하게 활용가능한 극동(FAR EAST)이라고 씌어진 큰 지도에는 도계가 나와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하여 30분 만에 작성된 것이 38선이었는데 러스크 자신도 소련측이 보다 남쪽의 선을 고집하지 않고 수락한 것에 약간 놀랐었다고 술회하였다. 트루먼도 그의 회고록에서 소련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반도의 훨씬 남쪽에 선이 그어졌을 것이라고 술회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드너 제독은 만주 확보의 교두보인 대련항을 미국점령지역에 포함시키려고 39도선을 제안하여 해군장관 포레스탈의 지지를 받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아직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전부까지도 점령할 수 있었던 소련은 식민지 민중의 의사를 무시한 분할선을 왜 수락하였을까? 미국의 정치적 의도를 몰랐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점령에 참여하거나 일본분할 점령을 도모하기 위하여, 그리고 만주에서는 더 많은 이권확보를 원했으며, 유럽에서는 독일을 비롯한 동구지역에서의 위치를 공고하게 하기 위하여 그랬을 것이다. 따라서 소련에게 한반도는 타지역에서 더 많은 이권을 확보하기 위한 흥정대상이었다. 미국의 음모에 결코 뒤지지 않는 이러한 소련의 정치적 음모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적 원칙을 소비에트기지론이라는 소련중심의 왜곡된 일국적 관점으로 치환시킨 스탈린주의적 편향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소련도 자국의 국가이익에 따라 자기세력권을 무원칙하게 확장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국가와 다를 바 없는 민족국가인 것이다. 출전 : KRpia 한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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