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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항의 역사 12 (부산)
부산항의 역사 12 광복이후 1 일본의 패전과 우리의 광복 일본은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을 일으키기 전인 1937년 7월부터 중일전쟁(中日戰爭)을 치르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영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갔다. 1940년 5월부터는 독일이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항복시키고 영국본토 상륙의 기미를 보이자 일본은 40년 9월 독일과 이탈리아 3국동맹을 체결하고 동남아 남침(南侵)의 호기(好機)로 삼았다. 그리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네덜란드령 인도차이나를 침공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은 영국과 결속하고 중일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장정권(蔣政權)을 원조 강화하였다. 1941년 6월에는 독일과 소련의 독소전(獨蘇戰)이 시작되었다. 41년 7월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남부에 진주하자 미국은 미국에 있는 일본자본을 동결하고 일본에 대한 석유수출을 단절했다. 이 미국의 조치는 일본 군부를 자극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미국 진주만(펄하버)을 기습공격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로써 세계의 여러 전장(戰場)은 이분화되어 연합군(민주주의 국가군)과 대 추축군(파시즘 국가군)이라는 기본적 대항관계가 명료해졌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과 함께 말레이반도 해역에서 영국의 신예전함 2척을 격침하여 제해권을 확보했다. 또 개전과 동시에 육군은 말레이반도·필리핀에 상륙하여 42년 2월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영국 극동군을 무조건 항복시켰다. 필리핀에서는 일본이 42년 1~3월 마닐라를 위시하여 수마트라섬~자바섬을 점령하고 네덜란드군을 항복시켰다. 그리고 중국의 蔣정권을 원조하는 루트를 절단하고 버마에 침입하여 랭군을 함락시켰다. 이리하여 남방작전은 일단락된 듯 했다. 그러나 주전장(主戰場)으로 되어 있는 중국전선은 교착상태가 계속되었고 중국의 항전체제는 강화되어 갔다. 42년 1월 일본의 내각 수반 東條수상(首相)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건설방침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의 일본의 침략과 점령지에서의 가혹한 점령정책에 따라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반일저항운동이 일어나고 이 저항을 통하여 민족해방운동이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서전에 성공한 일본은 42년 6월 미드웨이해전에서 중대한 타격을 받았다. 이때 일본 해군기 등 함대의 주력이 상실되었고 태평양에서의 전략적 주도권은 미국이 장악하게 되었다. 42년 8월 미국은 과달카날섬에 상륙하였다. 격전 끝에 일본군은 패퇴하였다. 이후 미군의 반공(反攻)은 격렬하여 뉴기니·솔로몬군도·길버트제도·마샬군도를 향하여 반공은 전개되었다. 43년 12월 1일 카이로선언에서 미국·영국·중국은 전후 일본의 영토처리 방침을 분명히 하였다. 44년 3월 버마의 일본군은 인도에 침범하였으나 7월 대패하였다. 미국은 7월 사이판섬을 점령하여 일본본토 공습의 기지를 얻었다. 태평양방면 총사령관 맥아더는 필리핀 탈환을 위하여 10월 레이테섬에 상륙하였다. 중국전선에서도 43~44년 사이 八路軍과 新四軍에 의하여 華北과 華中에 해방구(解放區)가 만들어져서 일본군은 간신히 점(點)이 되는 도시(都市)와 선(線)이 되는 철도(鐵道)를 지배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44년 12월 이후 미군폭격기 B29에 의한 본토 공습은 격화되었다. 45년 2월 미군은 마닐라를 탈환하고 硫黃島에 상륙했다. 4월에는 오키나와 본섬에 상륙했다. 7월 26일 연합군은 『포츠담 선언』에서 전후의 대일(對日)처리 방침을 명시함과 아울러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일본이 이를 묵살하자 미국은 8월 6일 히로시마(廣島)에, 9일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소련은 8월 8일 대일참전(對日參戰)을 하여 만주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여 9일에는 함경북도 웅기를 폭격하고 경흥으로 진격하여 12일에는 청진에 상륙했다. 이에 이르러 일본군부도 항복을 결의하고 9일 밤 포츠담 선언 수락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국체수호(國體守護)를 둘러싸고 일본 수뇌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다가 14일에서야 가까스로 수락을 통고하고 15일 천황(天皇)은 그 사실을 국민에게 방송하였다. 30일 미군은 일본본토를 점령하였고, 9월 2일 도오쿄만(東京灣)의 미주리 호(號)에서 항복문서가 조인되면서 태평양전쟁이 끝났다. 태평양전쟁이 끝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부산에서 본 광복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것은 1945년 8월 15일이었다. 일본의 항복으로써 36년 동안 일제에 빼앗겼던 국토는 돌아오고 일제의 압박에서 신음하던 겨레는 그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와 함께 우리의 항구 부산항과 우리의 땅 부산이 우리의 손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겨레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동안 부산이 겪은 영욕(榮辱) 또한 말할 수 없었다. 그 부산의 영욕은 바로 이 나라 역사의 영욕이었다. 고려와 조선조로 이은 왜구의 침탈, 그 왜구를 유화( 和)하기 위한 조선조의 부산포 왜관 설정, 임진·정유왜란으로의 피침(被侵)과 그 7년간의 부산포의 왜군 병참기지화, 조선말기 일본의 강요에 의한 부산항 개항, 그 뒤로 일제가 부산에 구축한 대륙침략에의 교두보화(橋頭堡化) 등 부산이 입은 피침과 피해는 바로 나라의 피침과 피해로 이어졌다. 그것은 부산이 대마도와는 약 50㎞, 시모노세끼(下關)와는 약 250㎞로 가까운 거리라는 거리로서의 조건과 항구가 좋다는 입지적 조건이었다. 그러나 비록 일본과 가까운 거리라 해도 일본의 호전성(好戰性)만 아니었다 해도 그러한 피침의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들은 선사(先史)시대부터의 대륙문화를 이 곳에서 옮겨 받았었다. 이 곳에서 옮겨 받은 호양(互讓)의 도덕적 인륜문화를 그들은 침략의 호전적 전쟁문화로 바꾸어 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호전성을 지녔다 해도 우리의 국력이 대응할 힘을 가졌다면 그들의 침략행위는 거듭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조정이나 중앙정부는 무기 하나, 배 한척 보태어주지 않고 변방 해역을 지방관아에 내맡겨 지키게 했다. 그 지방의 관아가 세부족으로 무너지면 그 책임과 죄과를 지방 관아에 물었다. 임진왜란 때 그처럼 격렬한 싸움으로 이곳 주민의 희생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쳐들어 온 왜적을 막아내지 못했다하여 부산을 관장한 동래도호부를 동래현으로 떨어뜨린 일도 조정의 위정자가 공을 죄로 몰아 그들의 정치적 실책을 지방에 떠넘긴데 지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의 인구밀도가 가장 많았던 부산은 일본인의 득세에 또 시달려야 했다. 광복 이전만 해도 부산의 인구는 30만명이었는데 6만명이 일본인이었다. 그때 부산의 관리(도청·부청 ·법원·검찰청·전매청·경찰서 포함) 1,430명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불과 130명이었다는 사실로도 그들의 득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도 다같은 일을 하며 급수가 같은 공무원이라 해도 일본인에게는 가봉(加俸)이란 이름 아래 월급을 우리나라 사람보다 60%를 더 가산해 주었다. 그러한 그들은 또 부산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다. 주거지만 해도 그들은 부산에서 가장 살기 좋은 광복동·중앙동·대청동 부평동 등 도심지에 모여 산 반면 우리나라 사람은 생활조건이 나쁜 영도의 산비탈이나 구덕산·천마산·초량·좌천동 산기슭 또는 서면·동래 등 그 당시는 변두리라 할 만한 지역에 살면서 그들의 군국주의 정책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했던 그 모두가 연합군에 대한 그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풀려난 것이었다. 그리고 8·15의 광복은 부산을 위기에서 모면케 해 주었다. 그것은 생명의 보존과 직결되었다. 부산은 일본본토와 우리나라 그리고 중국대륙을 연결하는 교두보(橋頭堡)로 일본의 군용선박과 군수물자가 집결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광복 바로 직전이 되는 1945년의 7~8월은 미공군기(美空軍機)의 폭격이 빈번했다. 그 폭격기는 태평양 괌도(島)를 기지로 한 B29 폭격기거나 미공군 함재기에서 오는 그라만 폭격기였다. 1945년 7월 말의 밤 초량동 산밑에 미 공군기가 지나면서 폭탄 하나를 떨어뜨린 일을 시작으로 그 뒤 구포 만덕고개에도 폭탄을 떨어뜨렸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8월 11일의 수정동의 공습피해는 15명의 사망자를 내었다. 종전(終戰) 며칠 전에는 미 공군 함재기가 매일이다시피 오륙도 주변을 배회하고 영도의 지금의 한진조선 자리인 당시의 조선중공업에는 직접 폭격을 가했다. 그러한 일련의 폭격에 대해서는 보도관제(報道管制)로 신문이나 라디오에 보도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부산사람은 직접 그 상황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었다. 일본의 대륙침략의 병참기지가 되어 있는 이 부산이 최후의 결전(決戰)지가 될거라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국제시장 터나 역전(驛前 :구 역전으로 현재의 중앙동에 있었음)은 건물 일체를 소개(疏開)시켜 그 번화했던 도시 중심지를 빈 터로 비우기까지 했다. 그러한 위기일발의 때에 광복을 맞았으니 부산사람은 조국의 광복, 겨레의 해방이란 그 거대한 환희에 앞서 내 생명의 존재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부산은 광복을 보아도 딴 지역과 달랐다. 일본군인 부산요새사령부(釜山要塞司令部)와 일본군 아까쯔기(曉) 부대가 무장해제를 하지 않은 그대로 있었다. 무장을 해제시켜야 할 미군의 진주(進駐)가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군이 진주하여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시킨 것이 9월 17일이었다. 일본군은 무장해제를 당할 때까지 그들은 무장을 한 그대로 초량초등학교에 주둔하여 일본거류민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패전을 했음에도 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주서 패전으로 돌아오는 관동군(關東軍)들은 부산역으로 몰려와서 『관동군은 살아 있다』 『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마지막 발악같은 오기를 부리기까지 했다. 일본인 부산항에서 철수(撤收) 조선조 때의 왜관으로, 개항 이후의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일제강점 이후의 일본 식민지로, 이곳 부산을 자기들의 자기 땅인 양 행세하던 그들 일본인은 그들의 패전이 우리의 광복으로 상황이 바뀌자 그 동안의 군림(君臨)의 자세가 자복(雌伏)의 자세로 둔갑했다. 그때의 경상남도 지사는 일본인 노부하라(信原)였다. 그는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자 도내 경찰에 지시하여 일본인을 울산·진해·마산·통영·삼천포·부산의 각 항구에 집결시켜 미군이 진주하기 전에 본국에 귀환시키게 했다. 그는 그동안 기세등등했던 학정(虐政)에 대한 우리 주민의 보복이 두려웠고, 연합군이 진주하기 전에는 패전이 되어도 일본군이 무장을 해제하지 않아 그들 일본거류민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곳에서 해운업과 어업을 영위하여 선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선박으로 가재도구를 싣고 바다로 빠져가기에 조건이 좋았다. 이 곳에서 오래 살아 일본에는 연고권 하나 가지지 못했다 해도 이 곳에서 일본인으로 행세한 이상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졌던 집과 땅과 공장과 사업체 그 모두를 버리고 돌아가야 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도 자손만대를 누리리란 생각 아래 넓힌 땅과 쌓은 공장과 집이 아쉬워 헐값으로라도 우리나라 사람에게 팔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헐값으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판 부동산을 광복 전에 판 양 날짜를 거슬러 매매 계약서를 써 주기도 했다. 그렇게 짜맞춘 계약서로 뒷날 치부를 한 이곳 사람도 있었다. 그 동안 그들 사업체에서 고용원으로 일하던 우리나라 사람에 집과 가재도구를 넘겨준 대가의 그 고용원의 손을 빌어 밤을 새워가며 그들은 부두로 짐을 날랐다. 일본인 가운데는 그동안 쌓은 생활기반과 재산에 대한 미련으로 한국이 독립되면 이곳에서 귀화하여 계속 살겠다는 자도 있었지만 그동안 일본이 저지른 착취와 오만의 학정(虐政)을 되씹고는 가능한 일이 못된다는 깨달음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약삭 빠른 자는 약삭 빠르게 서둘렀다. 그래서 8월 16일부터 맡긴 돈을 찾으러 일본인들은 은행으로, 금융조합으로, 우체국으로 몰려들었다. 부산에는 부산에서 거주하던 6만 일본인뿐이 아니었다. 만주와 중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각지에서 살던 일본인이 제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철도편 또는 화물차로 부산부두로 몰려들었다. 9월 하순에서 10월 사이 타지에서 3만명 가까이가 몰려들었지만 거처할 곳이 없었다. 일본으로 철수할 패전군도 3만명 가량이 남아 있었다. 패전군인은 집단행동을 했지만 타지에서 부산으로 온 일반 일본 민간인은 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하고 부두와 창고에서 노숙을 하며 일본으로 돌아갈 배를 찾아 헤맸다. 10월 16일부터는 미군 주관 아래 부관연락선이었던 興安丸과 德壽丸과 11척의 기선이 동원되어 일본인을 실어내었지만 제1부두는 계속 붐비기만 했다. 거기다가 우리의 귀환동포가 돌아오고 있었다. 부산항은 돌아가는 일본인과 돌아오는 귀환동포로 대혼잡을 이루었다. 그 때는 우리나라 안에서는 일본은행권과 조선은행권이 다같이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본인은 일본은행권을 가지려 혈안이 되었다. 그런 그 혈안에 우리 귀환동포가 가져온 일본은행권을 일본인이 가진 조선은행권으로 서로 바꾸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쫓겨가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일본인 상호간의 협조와 연락을 위해 처음은 일본군 병참부가 서울에 있던 총독부 기구로서 종전연락(終戰連絡) 보호부(保護部)를 두고 부산에 안내소를 두었다. 그러나 전후의 혼란으로 질서를 잃은 그때였다.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9월 1일 일본인은 일본인 『세와까이(世話會)』를 조직했다. 이 世話會는 일본인이 제나라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편의와 수속절차를 도모해주는 민간단체였다. 그 世話會는 부서별로 나누어져 관공서와 미군과 선박회사를 두루 교섭하는 일을 했다. 미군이 주둔하기 이전은 일본군요새사령부에 교섭하는 일을 하다가 9월 17일 미군이 주둔하여 미군정이 시행되고는 미군정과 교섭하는 역할을 그 世話會가 맡았다. 10월 중순에는 서울·인천·대구·군산의 일본인 世話會 대표가 부산世話會와 합류하여 자기 연고 지역 사람들을 도와 주었다. 패전으로 갈팡질팡의 그런 때에 그들은 민간단체인 世話會를 조직하여 보수없는 봉사를 해갔다. 내일을 헤아릴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해서도 그들은 그들 나름으로 서로 사이 민족을 생각하는 단결을 가졌다는 것을 이 곳에서 마지막으로 보여 주었다. 부산의 일본인 世話會는 18개 사원(寺院)에 안치되었던 일본인들의 유골을 거두어 연고자가 있는 유골은 일본의 博多에 있는 聖福寺에 안치하도록 하고 연고자 없는 유골은 아미동의 일본인 묘지에 매장하고 떠나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들이 부산서 떠나기는 이듬해 봄까지 계속 되었지만 떠나는 일본인에 대한 지방민의 보복행위 같은 것은 그리 없었다. 그것은 시민들이 가진 관용성에도 까닭이 있었지만 그리도 등등거리던 기세의 일본인이 하루 아침에 맥을 잃은 꼴이 애처로운데다가 하루 속히 일본세력을 이 고장에서 몰아내려는 생각도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귀환동포의 안전 귀국을 위해서도 안전하게 보내주자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광복 이튿날인 8월 16일 서울에서 조직된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安在鴻씨가 서울 중앙방송을 통해 『현재 일본에 있는 우리 동포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조선에서 떠나는 1백 수십만명의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고 국민에게 호소한 인도적인 조치에도 영향이 있었다. 그때 일본재벌의 전초기지이자 아성인 부산에는 일본인 3대(大) 재벌이 있었다. 부동산으로 착취한 하사마(追間房太郞 :일본 패전 당시는 그 아들 追間一男), 고리대금으로 악명이 높았던 오호이께(大池忠助)와 바다의 어장으로 영세 어민을 괴롭힌 가시이(香椎原太郞)가 그들이었다. 追間은 선대에서부터 착취로 모은 재물을 10여척의 배에 실어 떠났고, 大池는 일본은행권을 수십가마니에 넣어 배에 실어 갔고, 香椎는 그 동안 모은 골동품과 진귀한 보물을 자기 소유의 배에 실어갔다. 그때 가져간 香椎의 문화재와 서화(書畵)들은 일본 도쿄(東京) 박물관에 전시된 한국문화재보다 많을 것이라는 것이 그 당시 관계자의 말이었다. 이 3대 재벌에 맞먹는 당시의 三和고무 사장 요네쿠라(米倉淸太郞)는 그들의 패전과 함께 비축해 두었던 고무 신발과 광목을 마구 팔아넘긴 엄청난 돈을 가마니에 넣어 8월말 일본으로 무사히 건너갔다. 귀환동포 부산항으로 환국(還國) 광복을 맞자 부산항은 모국으로 돌아오는 귀국선을 맞이하는 감격과 눈물의 항구가 되었다. 그 귀국선을 탄 사람은 삶의 길을 찾아 일본으로 갔던 사람도 있었고, 징용·징병·학병으로 갔던 남자에 정신대(挺身隊)로 끌려갔던 젊은 여성도 있었다. 그 대부분은 일본에서 오는 배였지만 중국 또는 남양에서 오는 배도 있었다. 남양에서 오는 배는 그 주가 징용·징병·학병·정신대로 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을 태운 배였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돌아오는 귀국선은 미국 점령군의 지시에 따른 것도 있었지만 그러한 공식적인 길이 아닌 세내어 오는 배도 있었고 영업으로 귀환동포를 태워오는 배도 있었다. 그렇게 오는 귀환동포는 일본은행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광복 이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일본은행권과 조선은행권을 함께 쓰고 있었다. 광복이 되자 일반 국민은 일본은행권을 가지고 있으면 일본정부가 책임을 지고 뒷날 보상을 해 줄 것이지만 조선은행권은 휴지가 되고 말거라는 풍문이 돌았다. 그래서 광복을 본 뒤에도 나라 안 사람은 일본은행권을 가지려 했는데 9월 7일 미군의 맥아더사령부 포고 3호로 북위 38도선 이남 전 지역에서는 일본은행권은 통용 못하게 되었다. 그 포고로 일본은행권을 가졌던 국내사람은 조선은행권으로 다시 바꾸려 혈안이 되었다. 거기다 일본에서 오는 귀환동포는 일본은행권을 가져왔다. 일본은행권으로서는 여기서 밥 한 그릇 사먹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귀환동포도 일본은행건을 조선은행권으로 바꾸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10월 14일부터 경상남도 당국의 해리스 미군정(美軍政) 지사(知事) 지시에 따라 조선은행권을 가지지 못한 귀환동포에게는 부산 제1부두에서 일본은행권을 조선은행권으로 교환해 주게 했다. 이 일은 조선은행 부산지점이 주관하여 시내 각 은행지점에서 현금출납의 경험이 있는 은행원을 뽑아 3교대로 10명씩 부두로 나가 교환업무를 보게 했다. 처음은 상륙하는 귀환동포에게 1인당 5백원씩을 바꾸어 주다가 11월 1일부터는 1천원으로 액수를 높였다. 밀선(密船)을 타고 돌아오는 귀환동포에게도 시내 각 은행에서 1천원 한도로 교환해 주었다. 그러나 교환사무소에서의 비행이 끊이지 않았다. 브로커와 은행원이 결탁한 나머지 조선은행건이 대량으로 시중에 유출되는가 하면 교환소에서 교환한 사람 가운데 50원 내지 100원 모자란다는 소리가 퍼져났다. 그러한 부정의 속출로 46년 3월 10일자로 이 교환사무는 중지되었다. 이때 부산 제1부두와 구호연합회(救護聯合會)에서 취급한 일본은행권 교환총액은 7억2천9백6십6만7천원으로 그 혜택을 입은 인원은 약 80만명이었다. 46년 2월 21일에는 군정청 법령 57호로 38선 이남 전 지역의 일본은행권 동결을 단행하면서 일본은행권은 모두 각 금융기관에 예금할 것을 명시했다. 이로써 일본은행권은 한국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부산항에 내린 귀환동포는 바로 연고지로 가는 사람도 많았지만 적수공권(赤手空拳) 빈주먹으로 돌아와서 구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 귀환동포의 구호를 위해 경상남도 도청에 근무하던 한국인 관리가 중심이 되어 8월 30일 귀환조선인원호본부(본부장 李興培 鑛工部長)가 구성되었다. 그 당시의 부산은 경상남도 행정구역에 속해 있었다. 또 같은 날에 민간 유지의 발기로 조선귀환동포 구호회가 역시 부산에서 조직되었다. 조선귀환동포 구호회는 뒤에 건국준비 위원회가 흡수하여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원호회 경남지부(위원장 李貴興)로 바뀌었다. 8월 31일에는 경남건국의사회(회장 鄭鎭杓)가 결성되고, 9월 1일에는 건국경남약제사회가 결성되어 구호단체와 협력하여 의료단체로서 귀환동포의 의료면의 구호에 앞장섰다. 당시 부산의 한국인 의사는 40명 정도였다. 그 적은 수의 의사가 무료구호소에서 교대근무를 했다. 李貴興·朴己出·李瑾鎔·金炯璣·盧永民 등이 크게 활약했다. 이 때의 귀환동포 가운데는 廣島와 長崎 등에서 원자탄에 의해 부상을 입고 돌아오는 원폭환자도 많았다. 安載九 같은 젊은 의사도 민주중보의 촉탁으로 무료진료에 힘썼다. 의약품은 지금의 영주동 창고에 산더미로 쌓였던 일본군 군수약품을 썼다. 그 의약품은 광복 직전 일본군이 남방전선에 보내기 위해 집결시킨 것을 압류한 것이었다. 그 양은 당시로 보아서는 경상남도 도민이 2년 동안 쓸 수 있는 막대한 양이었다. 이 귀환동포의 구호사업은 이들 단체나 사회인사만이 한 것은 아니었다. 부산을 포함한 경남 도민 모두가 베푼 범도민의 일이었다. 동회에서는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밤을 세워 주먹밥을 만들어 부두로 날랐다. 신문사에서는 구호금을 모아 역전과 부두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헐벗은 귀환동포에게 구호금으로 전달했다. 「民主衆報」에서는 권번 기녀들의 협조를 얻어 예기가무(藝妓歌舞) 대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구호자금으로 삼았다. 경남건국 준비위원회와 조선재외 전재동포구제회(朝鮮在外 戰災同胞救濟會) 부산사무소에서는 9월에서 10월 두 달에 걸쳐 일본의 下關과 仙崎 등지로 귀국선 선단(船團)을 보내 3천여명의 귀환동포를 태워왔다. 귀환동포에 대해서는 차도 무임으로 승차케 했다. 뜻있는 이들이 이러한 구호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는 반면으로는 구호사업을 빙자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유령단체가 생겨났다. 미국에서 나온 구호물자를 부정매매하는 모리배가 생겨나고 구호선이 밀수선으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일이 드러나자 헤리스 미군정(美軍政) 경남지사는 10월말 구호단체 통합을 지시했다. 이에 그동안 중심적 활동을 해 왔던 6개 합법단체가 통합되어 조선귀국동포 구호연합회를 발족시켜 연합회 회장에 金秉圭(뒤에 경남지사가 됨)가 선임되었다. 이 구호회는 46년 12월 7일 보건협회에 업무 일체를 인계하고 해산했다. 귀환동포 구호의 어려움은 사는 길을 찾아 고국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길 또한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빈털터리였다는데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마저 가지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광복이란 환희로 돌아왔지만 고향으로 간들 논밭 한뙈기 없는 사람들이었다. 38도선 이북에 고향을 두고 늦게 돌아온 사람은 그새 38선이 생기고 그 38선이 굳어져 돌아갈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 일본에서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던 사람은 일본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되돌아 가는 사람은 오자마자 되돌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몇 년을 있다가 일본에서 마련한 터전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기도 했다. 그렇게 되돌아갈 때는 밀선을 타고 가서 밀항이라 했다. 돌아온 귀환동포 가운데는 일본사람이 떠난 빈집을 용케 차지했다가 뒷날 귀속재산 불하로 자기집을 삼은 사람도 있었다. 일본사람이 떠난 큰 집에는 여러 세대가 함께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 집이 흔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사람이 떠날 무렵 대체의 적산가옥은 그 동안의 연고권으로 이곳에 정착하고 있던 사람이 차지한 뒤였다. 귀환동포가 돌아오자 겨울이 되었다. 갈 곳 없는 귀환동포는 역(驛) 대합실이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다가 빈터 찾아 겨울을 지내기 위해 판잣집을 우겼다. 그것이 부산에 판잣집이 곳곳으로 생겨나는 시초가 되었다. 8·15광복에서 오는 귀환동포의 수는 그 당시의 행정력 미비로 정확하게 헤아릴 수는 없지만 38선 이남을 대상으로 한 미군정 외무처(外務處)의 조사에 따르면 앞면의 귀환동포 현황과 같다(1947년 6월 1일 현재). 미군정청의 업무시행 이전에 이미 돌아왔거나 공적 수속없이 온 사람은 이 통계에는 빠져 있다. 그 빠진 수를 60만으로 보면 귀환동포의 총인원은 2백77만9천2백63명이 된다. 그리고 이 통계 이 후에도 계속 돌아왔으니 일본에서의 귀환동포는 약 2백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광복 이후의 귀환동포의 전체 수는 3백만명이 훨씬 넘는다. 그 때의 우리나라 38선 이남 인구를 2천만으로 본다면 인구 6명 중의 한 사람이 귀환동포가 된다. 민족의 대변혁이 일어난 셈이다. 그때 일본·대만·남중국·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귀환동포는 대개가 부산항을 통해 들어왔다. 그 수를 반으로 잡더라도 150만이 된다. 그때 일본에서 돌아오는 귀환동포는 대한해협을 건널 수 있을 만한 배라면 돛단배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한 귀환선이 전시중(戰時中)에 부설해 놓은 기뢰(機雷)에 부딪쳐 침몰한 배도 있었고 9월 상순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침몰한 배도 있었다. 그것이 정기여객선이 아닌데다 행정력도 해양관계의 구조나 감시도 전무한 상태의 그때였다. 사고를 당해도 알 길마저 없었다. 일본 군부가 저지른 고의적 폭파사건으로 여겨지는 우끼시마마루(淨島丸 :4,730톤)사건 같은 것도 그러한 것이었다. 그 우끼시마마루는 일본열도 북쪽 끝에 있는 靑森縣의 大溱港에서 45년 8월 22일 한국인 노무자와 그 가족 등 귀환동포 3,725명을 태우고 부산항을 향해 귀환중 8월 24일 하오 5시경 舞鶴 앞바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542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이 폭발을 일본 厚生省 당국은 기뢰에 부딪쳐 침몰하였다고 했지만 생존자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 군부 군인들의 고의적인 폭발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한다. 일본이 그렇게 일본 해군 소속의 우끼시마마루를 귀환선으로 내어준 것은 大溱港 일대의 한국인 노무자들을즉 시 송환시키지 않으면 폭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배를 조종하는 사람은 일본군의 지시명령에 따른 일본 군인들이었다. 그들이 부산으로 가면 총살을 당하고 배도 몰수될 것이니 차라리 배를 자폭시키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나라의 생존자가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입증하기를 일본 군인이 작은 보트를 타고 우끼시마마루를 빠져나온 뒤 폭발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기뢰에 의한 폭파라면 기뢰의 위력으로 보아 3,725명 중 3,000명이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과 폭발음이 안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우끼시마마루 사건은 태평양 전쟁 유족회의 끈질긴 탐색끝에 사건의 그날에서 46년 6개월이 지난 92년 2월에서야 사몰자(死沒者) 410명의 명단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부산항으로 돌아온 귀환동포들이었다. 그때의 부산은 일본사람 6만이 나간 뒤가 되어 1945년의 부산인구는 1944년에 비해 약 5만명이 감소한 28마1천1백60명이었다. 그러나 1946년에는 귀환동포가 계속 불어나서 36만2천9백20명으로 한해 사이 8만2천명 가까이 불어났다. 그 이듬해인 47년은 또 7만6천명이 불어났다. 그렇게 부산에 귀환동포가 불어나서 정착했다 해도 광복 직후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공장이나 사업체는 가동이 머문 상태였다. 그들 귀환동포는 생업을 얻지 못해 유리결식하는 사람이 많아 우환(憂患)동포란 달갑잖은 말까지 생겨났다. 그러한 달갑지 않은 말이 생겨난 것은 귀환동포로 말미암아 식량 및 주택이 부족해진데 원인이 있었다. 이처럼 이 나라의 정치적 변혁기마다 부산항과 부산은 변혁의 중심축에 놓였다. 이것이 부산항과 부산의 진면목이었다. 미군정기(美軍政期)의 부산항 부산의 미군진주(美軍進駐)와 미군정(美軍政) 일본이 패전한 한달 뒤인 9월 16일 미군 24군단 제6사단 선발대 장교 60명, 사병 280명이 전차 및 장갑차를 앞세우고 부산에 진주했다. 이 선발대는 주력부대가 도착하기 전에 대대병력이 거처할 막사건립과 지역정찰을 위해 앞서 온 것이었다. 9월 16일에 진주한 선발대 미군과 17일에 진주한 미군이 9월 17일 일본군 부산요새 사령부와 아까쯔기(曉)부대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부산부(釜山府) 청사를 접수했다. 미군이 부청 청사를 접수한다는 접수란 용어와 형식을 취하자 부청에 근무하고 있던 한국인 직원들은 청사를 비워주면서 토성초등학교, 신창동의 상공회의소, 보수동의 사세청 등으로 서류와 함께 사무용품들을 가지고 분산 이사했다. 당시에 진주한 미군은 점령지에 진주한 것 같은 위협적 행동이어서 부청의 한국인 직원들은 부청 안에 미군이 주둔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서류와 사무용품 들을 가지고 분산 이사한 것이었다. 초대 미군정 경상남도 지사가 될 해리스 육군준장이 부산에 도착하여 철도호텔에 여장을 푼 것은 9월 20일이었다. 이어서 23일 미(美) 제20사단 소속 경남지역 주둔군 1천여명이 서울서 열차편으로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으로 온 미군주둔은 현재까지도 미군 하야리야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서면의 옛 경마장과 우암(牛岩 :옛 赤崎)에 일본군이 주둔해 있던 자리와 각 학교 건물 및 지금의 옛 시청 남쪽 별관인 일제때의 미나까이(三中井)백화점 등에 주둔했다. 부산에 미군정이 실시될 당시의 초대 부윤(府尹 :현 市長)에는 죤 P·H 케리소령이 임명되었다. 비서겸 총무부장에는 한국인 2세인 다니엘 文대위가 임명되고 서무과장 孫燦祚, 내무과장 金甲兆, 학무과장 鄭慶浩, 경리과장 朴鳳鈺, 세무과장 朴敎俊, 토목과장 黃南錫, 청소과장 金方祐, 수도과장 沈周日, 산업과장 崔丙奎, 동래출장소장 金永讚, 부산진출장소장 孫泗鉉, 수영출장소장 金德出, 사하출장소장 張富質이 임명되었다. 1946년 1월 24일에는 한국인 부산부 부윤에 梁聖奉이 임명되었다. 부산부의 상위관청인 경상남도 도지사는 해리스 준장이었다. 해리스는 20일부터 청내 각 부마다 부하 미군 군인을 고문으로 둔 미군정을 시작하였다. 해리스 군정지사는 한국인 경상남도 내무부장 金秉圭(뒤에 한국인 지사가 됨), 경찰부장 金局泰 , 재무부장 尹相殷 , 농산부장 尹炳昊를 임명했다. 도청은 일제시대에 경상남도 도청인 서구 부민동의 오늘날의 검찰청 청사였다. 해리스 지사는 한국인 부장을 임명하고 부장들에게 “모든 행정은 각 부의 미군 고문관의 최종 결재를 마쳐야 효력이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의 행정부서 부장 위에 미군 고문관이 있었다. 그래서 공문에는 영문해석을 붙여야 했다. 미군정이 실시되어 1주일이 지난 9월 25일에는 통행금지령을 발표함으로써 부산시민은 이날부터 밤 8시에서 새벽 4시까지 통행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주요간선 도로만 통행금지가 해당되었지 뒷골목을 나다니는데는 그다지 불편은 없었다. 10월 9일에는 일제(日帝)가 언론·집회·결사·종교를 구속하고 탄압하는 근거가 된 악법인 정치처벌법, 예비검속법, 치안유지법, 출판법, 정치범보호 관찰령, 신사법(神社法), 경찰의 사법권 등을 군정법령 제11호를 공포하여 폐지했다. 그에 따라 국민은 정치적인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45년 12월 12일에는 조선인민공화국(38선 이남에 조직되었던 정치단체)은 한국민족의 자유독립에 방해가 된다는 판단 아래 해체시켰다. 45년 10월 24일에는 정식으로 일본인 철퇴령을 미군정이 공포하였다. 12월 15일에는 일본인 소유였던 국유 및 사유재산을 접수했다. 이같이 미군정청에서 내리는 법령이나 시행세칙은 경상남도로 시달되고 경상남도는 부산부(釜山府)에 시달되어 시행되었다. 46년 4월 8일에는 일제시대의 악법인 집회취체령, 조선불온문서 임시취체령, 조선임시 보안령 등을 군정법령으로 폐지했다. 그렇게 종전의 전제적(專制的) 일제악법을 고쳐가는 한편 45년 10월 5일에는 미군정 법령 제9호를 발표하여 농민의 소작료를 그 산물 총액의 3분의 1을 초과할 수 없게 하였다. 이 당시 남한의 총경작면적 2백 32만 정보(町步 :1정보는 3천평) 중에서 자작농지는 불과 86만 정보이고 나머지 1백 47만 정보가 소작농지였다. 총농가 호수는 약 2백 6만호 중 자작농가는 28만 4천호이고 자작겸 소작농가가 71만 4천여호이고 순소작농가는 약 1백만호였다. 군정법령으로 소작료 징수의 제한규정이 나오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정조(正租 :벼)는 생산고의 40% 내지 50%를, 타조(打租 :타작한 뒤에 수확량에 따라 지주가 분량을 정하는 소작료)는 생산고의 40% 내지 60%가 수취되었다. 46년 7월 23일에는 군정법령 제97호로 민주적 노동조합 결성을 장려하고 46년 11월 7일에는 군정법령 제121호로 8시간 노동제를 규정했다. 46년 9월 14일에는 법령 제107호로 군정청 보건후생부내에 부녀국을 설치하고 그 국장은 부녀로서 보임토록 하는 한편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고 여성의 노동조건을 개선·확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48년 3월 22일에는 법령 제173호로써 일제의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의 소유지였다가 광복후로는 신한공사(新韓公司)가 관리하던 귀속농지(歸屬農地)를 소작인에게 연작(年作)의 20%를 15년간 연부상환하는 조건으로 분배했다. 미군정이 한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게 된 것은 입법의원(立法議院)을 구성한 뒤부터라 할 수 있다. 이 입법의원은 46년 8월 24일 군정법령 제118호로써 과도적 입법의원 설치를 공포하였다. 이 입법의원은 모스크바 외상회의의 협정에 따라 남북한이 통일된 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혁의 기초로 사용될 법령 초안을 미군정장관에게 제출하는데 있었다. 이 입법의원은 45명의 민선의원과 45명의 관선의원인 90명의 의원으로 46년 12월 12일에 개원되었다. 광복 이후 생긴 38도선으로 남북한 왕래가 차단되어 38도선 이북에 본적을 두고 이남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이북 출신은 호적을 가지지 못해 여러 면으로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48년 7월 1일 법령 제179호에 의해 『호적의 임시조치규정』을 공포 가호적을 작성할 수 있게 했다. 48년 7월 21일에는 공창제도와 매춘행위의 금지규정 등을 제정 공포했다. 미군정기의 부산부의 행정구조는 일제 강점기의 형태 그대로를 이어받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행정동명은 47년 7월 1일 한국식 동명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일제때 本町一丁目이라 한 것을 동광동 1가(東光洞 1街)라 하고 大倉町一丁目을 중앙동 1가(中央洞 1街)로 바꾸는 일들이었다. 이는 앞서 서술한 바 있어 그렇게 바뀐 동명 그 모두는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이 자리서는 줄인다. 미군정기의 경찰행정은 일제 강점기와는 다소의 변화를 보였다. 그것은 46년 9월 24일 군정법 제1호로 종전의 위생경찰사무를 보건후생국으로 이관하고 10월 9일에는 군정법 제11호로 경찰서장이 즉결 처분하던 즉결 처분권과 훈계방면권을 사법기관에 이관하면서 치안관제도를 신설하였다. 46년에는 종전까지 경찰이 관장했던 영화검열사무와 출판물 발행 허가권과 검열관을 일반행정 기관으로 이관했다. 46년 7월 1일에는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를 두고 서울·부산·인천·대구 등 주요도시에 각각 여자경찰서를 신설하였다. 이러한 경찰제도의 변경은 일제시대의 경찰제도를 서구식 경찰제도로 전환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미군정기는 이렇게 개방적 서구식 민주주의제도를 가져오는 법령과 제도가 계속 발표되었지만 국민성에 맞지 않는 시행착오적 행정도 적지 않았다. 그것이 행정적 또는 정치적 혼란을 가져오는 불씨가 되기도 했다. 혼선을 빚은 통역정치시대 미군정기(美軍政期)는 비록 짧은 3년 동안이라 해도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쳤다. 그 어려움은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을 가진 한국사람과 미군 사이의 의사소통이었다. 이 의사소통의 매개수단으로 통역관이 필요했다. 행정은 미군이 하는데 그 행정을 받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행정이란 그곳 실정을 잘 알아도 하기 어려운데 이곳 실정을 전혀 모르는 미국 사람, 그 미국 사람이라 해도 정치가도 행정가도 아닌 군인이 정치도 하고 행정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하는 정치와 행정에 도움을 주고 의논할 사람은 오직 통역관 뿐이었다. 그 미군정 때의 경남도 지사격인 미군정관은 『해리스』 준장이었고, 부산시의 초대 시장은 『죤 P·H 캐리』 소령이었다. 이들은 통역관의 말을 따라 행정을 해 나갔다. 그때의 통역관의 역할은 사법권, 행정권 그 모두를 가진 격이었다. 몇 마디 영어로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고, 위험 직전에 있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통역관의 수는 부족했다. 미군정 당국(부산지역)은 통역관 확보를 위해 신문사에 광고를 내고 1차로 40명을 공채했다. 이어 3차례에 걸쳐 100여명을 선발했다. 선발된 통역관은 관공서의 요소 요소에 배치되었다. 그때는 일본식의 영어발음으로 통역들이 그리 능숙하지 못했다. 심지어 미제(美製) 라디오 1개를 샀다가 포고령위반혐의로 붙잡힌 사람이 통역관의 통역 잘못으로 20년 징역형을 선고 받은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경상남도 도청에는 洪乙秀·朴英·禹德俊 같은 쟁쟁한 통역관이 10여명이나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군정재판과 도정(道政)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 통역들은 직업군인으로 국제관계에 밝지 못한 미군정관 또는 고문들에 일본의 학정(虐政)에 시달린 한국인의 실정을 알리면서 이해시키고 때로는 일본인의 탄압과 수탈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여 납득케 했다. 이 통역과 관계되는 일화라 할 수 있는 이야기로는 미군이 들어와서 보름이 되지 않은 1945년 9월 30일의 일을 예로 들 수 있다. 일본인 초등학교가 일본인이 떠난 뒤로 비어 있던 지금의 토성초등학교에 임시로 설치된 미군정 재판장 주위에는 우리 치안대원 30여명이 ‘일본인 世話會를 해산시켜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광복 직후 경남건국준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치안사령부가 조직되고 그 치안사령관에 姜大洪, 부사령관에 崔甲判이 임명되었는데 최갑판의 활동이 컸다. 그 최갑판이 군정포고령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고발에 의한 것인데 고발한 쪽은 그때까지 철수를 하지 않았던 일본인 世話會(일본말로 세와까이라하여 일본인의 자치적 협동단체)였다. 일본인 世話會는 일본인이 재산을 몰래 빼내가려는 것을 우리 치안대가 부산항 주위의 순찰을 강화하여 그 반출을 막고, 반출이 적발될 때는 압수해서 치안대 사령부 창고에 보관했는데 그 치안대의 일을 일본인 世話會가 우리 치안대의 활동을 모함 저지하려는 술책이었다. 피고석의 최갑판은 혐의사실을 승복하지 않았다. 일본인이 우리 민족의 피를 빨아 모은 재산을 군정의 허락없이 빼돌리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그때의 재판장은 미군정 경남지사 해리스 준장이었다. 재판장은 통역관 禹德俊(당시 39세)에게 변론을 요청했다. 그때 미군정청의 한국인 검사는 엉뚱하게도 최갑판에게 3년형을 내리게 재판장에게 요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재판장이 우덕준에게 변론을 요구한 것은 그때의 법정에는 변호인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덕준은 치안대원들의 행위는 군정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돕기 위한 일이요, 치안대원이 하는 일은 군정기관이 마땅히 해야할 일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렇게 압수한 것은 치안사령부 창고에 보관중이란 사실을 증거로 내세웠다. 그제야 사건 내용과 그 동안의 사정을 알게 된 재판장은 최갑판에 대해 무혐의의 판결을 내렸다. 이 일로 최갑판은 경상남도 경찰국의 보안과장으로 임명되고 당시의 정예 치안대원은 보안과장을 도우게 되었다. 군정당국의 시책에는 통역관의 식견이 좌우된 바도 컸다. 몇 마디 영어로 생사람을 잡을 수도 있고 위험 직전의 사람을 구할 수 있었으니 『통역정치시대』라 할 만도 했다. 46년 3월부터 해리스 미군정 경남지사 뒤를 이어 질레트 대령이 군정지사를 맡았다. 그는 ‘내가 미군정 지사인데 모든 것은 나의 결정에 따른다’고 할 정도로 안하무인격이었다. 그런 가운데 『통역정치』의 폐단이 컸다. 우리나라 사정에 밝지 못한 미군에게 통역관이 술과 미인계를 써서 귀속재산(일본인이 소유했던 재산) 불하라든가 미군 물자를 빼내 파는 일들로 축재를 한 사람도 많았다. 그때는 군수물자가 철도편 화차(貨車)로 내려오고 일본 민간인의 값진 가재도구도 실려 내려왔다. 그것을 우리나라 젊은이로 조직된 치안대가 압수하여 제1, 제2 부두창고에 쌓아두었다. 그리고 적기(赤崎 :지금의 우암동)의 일본군 군수창고와 종전(終戰) 무렵 일본군의 군수물자 하치장(荷置場)으로 삼앗던 서면의 경마장(競馬場 : 지금의 미군 하야리야부대)에도 일본군 군수물자가 많이 쌓여 있었다. 그것을 일부 몰지각한 우리나라 통역관이 미군에게 술과 여자를 제공하는 갖은 방법으로 모리배와 결탁하여 그 물자를 불법으로 빼낸 일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한데 그러한 불순 통역관은 미군정 때만 있었다는 것이 아닌 사실이 또 뼈져리는 일이다. 역사상으로 되돌아볼 때 고려 때도 조선조 때도 중국 역관(譯官)의 기세가 컸고, 일제강점기 초기도 일본인 앞잡이로 거들먹거린 것은 일본말을 지껄일 줄 아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미군정 때인들 예외일 수 없었다는 말이 되지만 남의 나라에 예속되었던 사실도 서러운데 그런 때를 그 무슨 좋은 기회인 양 내 나라 내 겨레에 못쓸 짓을 하였다는 게 못내 서럽다. 1946년 1월 23일부터는 미군 도지사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의 도지사를 두게 되었다. 그 초대지사는 내무부장을 하던 金秉圭가 승진 기용되었다. 그 김병규가 도지사 노릇을 1년도 못하고 그해 12월 20일 지사의 자리를 내어놓은 이임식 식장에서 ‘지난날은 일본말 배워야 행세한다고 일본말 배웠는데 이제는 또 미국말 알아야 도지사 노릇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고 한탄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탄을 한 김병규씨를 잠깐 소개하면 그는 1880년 동래읍에서 태어나서 외숙인 지전(芝田) 이광욱(李光昱) 아래서 한문을 익히고 일본의 早稻田大學 강의록을 독학으로 익혀 근대학문을 습득한 사람이었다. 동래의 三樂학교와 동명(東明)학교(동래고등학교 전신)에서 교편을 들며 학생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하다가 동래은행(東萊銀行), 동래산업조합 등을 창립하고 일제시대 초대 도의원(道議員)으로 민권신장에 이바지한 바 큰 사람이었다. 1962년 동래서 타계했다. 콜레라 부산항으로 들어오다 미군정기(美軍政期)인 1946년 여름 전국을 휩쓴 호열자(콜레라)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46년 5월 2일 우암(牛岩) 앞바다에서였다. 그때 중국 廣東에서 3천 2백여명의 귀환동포를 실은 귀국선이 부두에 닿았다. 곧 이어 부산시 검역반 10여명이 배 위로 올라가 귀환동포들의 건강과 전염병 유무를 조사했다. 상당수의 귀환동포들이 긴 항해에 지친데다 영양실조까지 겹친듯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검역반원들이 배 밑창으로 들어갔을 때 탈진상태로 쓰러져 있는 청년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 청년의 주위에는 싸고 토한 오물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심한 탈수상태를 보였다. 그 청년 말고도 5~6명의 남녀 귀환동포가 그런 증상을 보였다. 심상찮은 증후였다. 호열자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 청년은 이튿날인 5월 3일에 사망했다. 경기도 포천군의 高壽石(31세)이란 사람으로 싱가포르에서 징용을 살다가 돌아오던 참이었다. 그 고씨 이웃에서 고씨와 증세가 같던 6명도 연이어 사망했다. 이 사실이 경상남도 당국에 알려지자 바짝 긴장했다. 그때만 해도 호열자란 치료할 수 없는 무서운 병으로 알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부산에서 발생한 호열자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상남도 보건후생부에서는 미군정청으로부터 트럭 1대분의 예방약을 긴급 배당받아 귀환동포에게 주사하기 시작했다. 도내 각급 관공서에서도 방역대를 파견하여 항만(港灣)검역을 실시했다. 그러나 콜레라는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어 갔다. 첫 환자가 발생한 후 나흘만에 귀국선에서는 11명이 숨졌다. 이 때부터 하루 10여명씩 죽어갔다. 수십구의 시체를 배에서 바다로 버렸다는 소문이 퍼져 육지사람을 불안케 했다. 도 보건후생부에서는 국민들에게 생선회를 먹지 말고, 냉수를 마시지 말고, 생야채를 먹지 말라 했다. 7일부터 시내 어업조합을 통해 부산 해안의 조업을 일체 중지할 것을 시달했다. 생선횟집을 모두 폐쇄했다. 그래도 콜레라는 창궐일로로 치달았다. 그달 21일에는 초량의 권점학(부두 노무자) 등 8명이 심한 탈수상태를 보이다가 갑자기 사망했다. 26일까지 17명이 더 사망했다. 콜레라는 그 위세를 북쪽으로 뻗쳐 같은 날 대전(大田)에서 2명, 강원도에서 1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7월 30일께는 이환자가 부산 525명, 김해 237명, 마산 160명, 통영 481명, 고성 301명 등 경남 전역에 3,457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그 중 1,527명의 사망자를 내었다. 그 당시 경상남도 군정지사 질레트는 본국에 소환되어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벤튼 중령이 지사권한대행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전투요원이었다. 방역(防疫)을 잘 몰랐다. 10여명의 귀환동포가 사망할 때까지 미군정의 부산시장 케리는 서울의 군정청에 가검물을 보내 세균검사를 받게 했으니 진성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 이때쯤 뉴욕타임즈지(紙)도 한국에서는 진성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고 방역을 한다는 비꼬는 기사를 실었다. 경상남도 보건후생 부장이자 의사인 朴己出(뒤에 국회의원이 됨. 부통령에 입후보하여 낙선이 됨)은 벤튼 지사 대행에게 갔다. 귀환선의 환자를 즉시 상륙시켜 본격적인 격리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벤튼』은 환자를 상륙시킬 수 없다고 했다. 세균검사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미 콜레라가 귀환선을 타고 꼼작 못하고 있는 동포 수십명을 숨지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 확연했다. 말해도 통하지 않는 울화통에 박기출 보건부장은 그 자리에서 사표를 내고 말았다. 콜레라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급속히 확산되어 갔다. 7월 중순께는 경상남도 도내에서 하루에 1천1백여명씩이나 발병한 날도 있었다. 8월까지 전국에서 무려 1만5천6백44명이 발병하여 1만1백82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 첫추위로 콜레라의 기세가 꺾일 때까지도 도내에서만도 1만여명이 숨졌으며 전국적으로는 3만 여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경상남도 도내에서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제약회사가 15개 있었는데 모두가 부산에 있었다. 그러나 광복후 우리나라 사람으로 그 운영을 꾀할 수 없어 콜레라 예방약이나 링게르 따위 약의 제조가 잘 되지 않아서 큰 피해를 보았다. 대청동의 계림화학만이 링게르를 생산했으나 그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직 의지하는 게 미군이 공급해 주는 약으로 방역도 하고 치료도 해 갔다. 이 콜레라 치료는 링게르를 놓아 탈수상태를 막는 일이 요긴한데 링게르가 없어 약용염(鹽)을 희석해서 링게르 대신 주사하기도 했다. 콜레라가 발생한 집 주위에는 금줄인 새끼줄을 치고 사람들의 통행을 막고 미국 헌병이 지키면서 D·D·T를 뿌렸다. 그때 발족해서 얼마되지 않는 제5경비대(대장 白善燁 소위)가 감천(甘川)에 있었는데 그 제5경비대가 미군헌병을 도와 교통차단과 경비 임무에 나서기도 했다. 콜레라가 창궐하기 극도에 이른 6월 1일부터는 콜레라 예방주사 증명서가 없으면 외부출입도 금지되었다. 각급 학교는 모두 휴교 상태였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콜레라는 날씨가 차가와지는데 따라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 1946년에서 17년 뒤인 1963년 9월 21일 다시 부산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164명의 환자를 내고 이어 서울·포항·김해·인천 등지로 번져 총이환자수 205명에 사망자 13명을 내었다. 이 해의 발생은 계절적으로 늦었고 또 방역이 철저했기 때문에 이환자수는 비교적 적은 정도에 머물었다. 미군정기의 항만운영 태평양 전쟁이 마지막 고비에 이를 때의 일본군벌은 다급했다. 일본은 ‘대동아 전쟁’이라 했지만 ‘태평양 전쟁’이라 할 만큼 태평양 둘레지역의 해양전쟁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해양을 통한 군수물자와 인력수송이 시급했다. 그래서 개인경영의 선박이나 해운회사의 선박을 가릴 바 없이 군부가 강제로 징발하여 군부의 소요에 충당했다. 그러다 일본이 패전을 보자 그 선박들은 본래 소속 선적(船籍)으로 되돌아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 항구지역 선적들은 그 대부분이 일본인 소유거나 일본인 경영 해운회사의 것이었다. 패전을 한 그들은 전쟁이 끝나 군징발에서 풀려나자 징발을 당하지 않은 우리나라 연안 또는 외항으로 운행하던 일본인 소유의 선박은 패전으로 철수하는 일본인과 일본인 재산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는데 혈안이 되다가 마침내는 일본으로 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그렇게 이 곳에서 운항하던 선박이 얼마만큼 일본으로 빠져나갔는지에 대해서는 그 수를 종잡을 수 없다. 개인은 개인대로 해운회사는 해운회사대로 서류 일체를 가져갔을 뿐 아니라 일제 감점기의 항만청 자료 또한 그들의 손으로 파기 또는 소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산선박(敵産船舶)과 일본으로 도피한 선박의 조사환수를 위해 미군정청이 일본정부와 관계기관에 접촉하였으나 그 성과는 전무(全無)상태였다. 우리나라와 일본과는 국교단절(國交斷絶)상태에 있었고 일본 또한 연합군접령 아래서 미군 군정 아래 있다해도 성의 있는 교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예로는 우리나라에 시설된 항만의 항로표시를 들 수 있다. 항만의 항로표시는 공기(公器)로서 국제성을 띠고 있는데도 태평양 전쟁과 함께 일본의 군사시설로 변형 이용되거나 연합군 진입을 막기 위해 파괴된 상태에 있었다. 파괴되지 않은 것은 일본인이 철수하면서 파괴한 것도 있어서 기존시설은 20%정도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군이 한국에 진주한 즉시 미군정청은 일본에 대해 “한국연안 각 항로표시를 8월 15일 이전의 원상태로 복귀하라는 전령(電令)을 내렸다. 말하자면 전승국(戰勝國)인 연합군이 패전국인 일본에 내린 명령이었다. 그러자 일본정부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그동안 미군정에 사무인계를 하느라 일본인 관리가 남아 있었음) 교통국장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자재부족이란 이름으로 시행되지 않았다. 다만 인천 근해에 미군 함선이 출입할 정도의 항로표시로 가등(假燈)을 설치하고 일본인 간수를 배치하는 등 소동을 벌이다가 1945년 12월 26일 항로 표시 업무는 한국인에게 인계되었다. 미군정기의 부산항만 행정 기구(機構)로는 1945년 11월 미군정청 교통국 부산부두국이란 이름의 기구가 주어졌다. 이 때는 관세(關稅)와 해사(海事)를 통합한 기구였다. 그러나 군정기가 되어 새로운 사업에 대한 계획도 수출입도 없어 부두국 직원들이 시설물을 보호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1946년 3월에는 미군정청이 일제강점기의 교통국 해사과를 운수부 해사국 항만과를 두었는데 부산항에는 부산항무청을 두었다가 8월에 부산항만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러한 조직체계를 갖추었지만 항만운영은 원활할 수 없었다. 내항(內航)운행이 주가 된 당시는 법규로 정해진 취체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자유방임상태에 있었다. 화물선이 객선 역할을 하는가 하면 객선이 화물선 역할도 했다. 운임도 선주가 임의로 결정했다. 육상의 38선 경계는 엄연한데 해양경비는 허술하여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어선같은 조그마한 선박을 이용해 오가는가 하면 일본으로의 밀항(密航)과 밀수(密輸)도 함부로 이루어졌다. 미군정기에 부산항에서 시행한 공사로는 제2부두의 교각 응급수리와 선박급수시설 및 수리, 창고 전등복구, 하역기중기 및 공사용 선박수리 등 구호품과 원조물자 그리고 미군선박이 오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수리·보수를 하는 정도였다. 이에 소요된 금액은 4,633만원이었다. (계속) 출전 : 부산라이프 부산항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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