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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19 (수) 13:11
분 류 사전3
ㆍ조회: 1588      
[근대] 변관식 산수화의 독자성 (이구열)
변관식 산수화의 독자성 小亭과 금강산展 1999.2.12~4.11 호암갤러리

이구열 (미술비평)

청전 이상범과 함께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평가받으며, 검고 파격적인 그림으로 전통의 현대화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소정 변관식(1899~1979)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삼성미술관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향토적 서정이 넘치는 시골 풍경을 비롯, 역동감 넘치는 구도와 둔중한 필치의 금강산 그림, 그리고 한국 산수화의 전형을 이룩한 동연사(同硏社) 동인들(청전 이상범·심산 노수현·묵로 이용우)의 그림까지 소개되었다.

역사적으로 빛나는 예술가의 업적을 적절한 시기에 재조명해 보며 평가를 새로이 하는 것은 자못 뜻깊은 일이다. 1976년에 타계한 근대 한국화단의 한 거봉인 소정 변관식의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한 삼성미술관 기획의 <소정과 금강산전>도 그런 전시이다.

2월 11일에 호암갤러리에서 개막된 이 전시(4월 11일까지)에는 변관식이 1950년대 중반부터 끊임없이 즐겨온 금강산 실경 작품 17점이 나와 우리 시대의 대표적 ‘금강산 화가’로서의 그의 진면을 되새겨 보게 한다.

그 외에 그의 전형적인 토속적 향취의 한국 산천과 시골마을 풍정의 전통적 수묵담채 실경 작품들도 23점이나 함께 전시되었다. 그러면서도 기획 주제가 ‘소정과 금강산’인 것은 그 천하명산으로의 여행과 탐승이 마침내 가능해진 지금의 분위기와 연관시키려고 한 것이리라.

국토분단 반세기를 지나서야 뚫린 그 길을 소정이 얼마나 갈망했던 것일까. 상세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그는 1945년 해방과 남북분단 이전에 여러 차례 금강산 유람과 스케치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이번의 전시 카탈로그 연보에는 1930년에 의재 허백련·이당 김은호와 함께, 그리고 1936년에(다른 화집 연보에는 1937년)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며 곳곳을 스케치해서 돌아왔으며, 1939년 3월의 개인전(서울 화신화랑)에 그 실경 작품들을 출품했다고 돼 있다.

변관식 자신은 <나의 회고록>이란 짧은 에세이(1974년 《화랑》 여름호)에서 ‘8년에 걸쳐’ 금강산을 자주 찾았던 것처럼 쓰고 있으나, 구체적 확인은 어렵다. 그렇더라도 그는 풍류적 유랑기의 화가로 금강산을 여러 번 탐승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기의 금강산 그림이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고 스케치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그 당시 영남과 호남 체류 때의 체험적 향토색 실경과 농촌마을 풍경들은 본격적 대작을 포함하여 상당수가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범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변관식의 금강산 그림들은 1950년대 중엽부터의 작품이다. 민족 상잔의 참혹한 6·25전쟁이 휴전협정으로 멎은 직후부터인 셈이다. 국토 자연미의 상징인 금강산 체험의 향수가 그의 화의(畵意)를 새롭게 자극했던 것일까.

휴전으로 국토분단과 민족화합의 단절이 더욱 고착되어 버린 상황에서 변관식 화필의 심정적 금강산 향수 내지 예찬과 휴전선 너머의 그 영원한 절승경개 재현은 많은 애호가의 각별한 환영을 받을 만했다. 1959년에 정부의 위촉을 받아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던 원각사 극장(서울 을지로 입구)의 내부 벽화인 대작 <금강산 진주담> (396×145cm, 그해 건물화재로 소실)은 그의 마음속에 감동이 살아 있던 금강산에 대한 충분한 표출이었다.

그에 앞서 변관식은 <해금강 총석정> (1955)과 이번 전시에 나온 <외금강 옥류천>(1958) 등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역작과 대작은 1959년 무렵부터 제작되었다.

이번 기념전에서 볼 수 있는 그 대표작과 역작·대작은 <외금강 삼선암 추색> (1959), <내금강 보덕굴>(1960, 호암미술관), <외금강 구룡폭 춘색>(1960), <내금강 진주담>(1960, 호암미술관), <내금강 단발령> (1969) 등이다. 앞의 화제(畵題)들은 크기와 구도들을 달리하며 거듭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한 집중성은 변관식의 여생을 통해 지속되었다. 타계하기 2년 전인 1974년에 76세의 노령으로 가진 마지막 개인전 (현대화랑 초대)에서도 소품 <외금강 삼선암>과 <내금강 진주담 추색> 외에 대작으로 <내금강 진주담 만추> 등을 출품했던 내면을 당시 카탈로그에서 엿볼 수 있다.

순박하고 서민적인 현실 감정의 필치

그 금강산 연작에서 발휘된 변관식의 기법적 특질과 표현적 독자성은 뚜렷하다. 그 독특한 형태는 1920년대 초기부터 향토적 시각의 실경 그림을 추구하면서 그의 창의적 필법이 된 개성적 특질을 반영하고 있다.

곧 기교적이거나 세련된 붓맛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순박하고 서민적인 현실 감정의 필치로 성실하게 전통적 수묵담채의 산수 또는 시골 풍경을 사실적으로 주제삼으면서 그의 독자적인 작풍을 구현시킨 것이다. 거기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기발하고 혹은 변환자재한 풍경 분위기의 특이함, 그리고 먹붓 구사에서 그의 투를 실현시킨 내면이다.

변관식은 그 특징을 20대부터 자득한 독자적 ‘적묵법(積墨法)’이라고 말하곤 했다. 스스로 만든 이 용어는 그 뒤로 변관식 화법의 대명사처럼 고착되었다. 모든 필치의 선과 점이 그렇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산이나 능선을 비롯하여 암벽 또는 암석의 입체적 형상과 실재감을 강조한 부분 등에서 주로 활용된 적묵법은 담묵의 선행 필취 위로 농묵의 필의(筆意)를 중복시키면서 질감효과와 먹빛을 한결 깊이 있고 무게 있게 표현한 방법을 일컫는다.

그는 산세나 암벽 등의 굴곡 및 입체감을 위한 전반적 준법으로 정통 남종화법의 피마준법(披麻峻法), 곧 마피(麻皮=섬유)가 흐트러지듯 운필하는 수법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표현 의도에 따라 먹물기 없는 갈필(渴筆)과 축축한 습필도 자유자재로 병용하였다. 그로써 변관식 풍의 산냄새· 흙냄새, 그리고 시골맛이 창출되었다.

그런가 하면, 보기에 서투른 듯이 그려지거나 간략하게 표현된 거리 마을의 가옥들, 그리고 인물 등장의 미숙한 듯한 묘사 등은 오히려 변관식 화필의 소박한 친근감으로 작용한다. 사실 그것은 변관식의 약점이면서도 하나의 토속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팡이를 짚은 촌로(村老)가 갓을 쓰고 두루마기 자락을 날리며 이리저리 걸음을 서두르는 모습은 1950년대 초기부터 정형화된 것으로, 어느 그림에서나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변관식 작품의 전형적인 맛이자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 정해진 인물 형태의 반복적 도입은 금강산 주제에서도 으레 엿볼 수 있다. 흰색 외에 누른빛 도는 청색의 두루마기 노인들의 등산 모습과, 하나 같이 꾸부정한 자세의 바쁜 움직임에서 보이는 그 획일적 표정들은 해학적이기도 하다. 옛날의 풍정으로 그렇게 인물상을 고정시킨 형식적 고집은 청전 이상범의 그림 속 농부 또는 어부의 반복적 모습과 비교되는 동질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관식은 이상범에 비해 한층 더 소박하고 직인적인 화가였다. 같은 시대에 작품활동을 한 이상범·노수현 등이 중년기부터 이미 시대적으로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형식적 전통의 한문 제시(題詩)를 화면에서 배제시켰음에도 변관식은 그것을 전통적 형식으로 고수했다.

향토적 정서와 금강산의 힘

그는 자신의 한시(漢詩) 교양과는 상관없이 좋아한 제시들을 적당하게 되풀이해 애용하곤 했다. 그러한 제시의 형식주의 고집은 문제가 있었으나, 그림의 필법에서의 뚜렷한 자기 방식은 독창성에 속한 것이었다. 그가 가장 친밀히 지낸 선배화가인 이당 김은호는 앞에 언급한 1974년의 현대화랑 초대전 카탈로그 서문에서 평생의 화우였던 변관식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종화의 전통을 잇고 거기에 소정 풍의 새 맛을 곁들였으니, 아마 독창성 있는 화가로서 그를 따를 자 몇 안 되리라. … 먹을 치되 제 마음대로요, 구도가 있으되 자기 풍이 독특한 바, 현금 남종화로는 그가 제1인자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듯하다. 이 점은 당사자인 소정도 익히 아는 바여서, ‘나 죽으면 봐!’하고, 자신의 가치평가에 불만을 표시함에 주저치 않는다. 평소 소정의 적묵법에 대해 내 나름대로 너무 검다고 평해도 그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기로 더 시꺼멓게 그리는 것만 같다.”

그렇듯 변관식은 오기와 고집이 기질적으로 강했으나 60대 이전까지 취미의 단소불기를 수십년간 즐긴 풍류인이기도 했다. 게다가 낭만적 애주가였다. 그는 칠순 노경에도 서울의 인사동 골목에서 술집과 노소를 불문하고 막걸리와 독한 소주로 자족하곤 했다.

필자가 1971년에 서울신문사에 재직하며 세칭 ‘6대가전’을 기획하던 중 미아리 고개 못 미처의 초라했던 변관식 화실 ‘돈암산방 (敦岩山房)’을 방문 취재할 때 들은 말이 있다.

“(책장에서 오랜 단소 2개를 꺼내 보이며) 내가 이 단소를 잘 불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림에도 장단과 가락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 변관식의 예술생애와 광범위한 한국의 자연 산천 및 향토적 정서, 그리고 금강산 심취의 작품들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앞으로도 더욱더 다각도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출전 : 월간미술 199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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