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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1-11 (월) 23:02
분 류 사전3
ㆍ조회: 1777      
[현대] 신탁통치반대운동 (민족)
신탁통치반대운동(信託統治反對運動)

1945년 광복 직후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결정된 한반도 신탁통치안에 대하여 범국민적으로 전개했던 반대운동.

[배경]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로 인하여 피식민국이었던 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대한 전후처리 문제가 연합국의 중요 과제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전후처리 문제의 일환으로 한반도에 대한 4개국(미국·영국·중국·소련)의 최고 5년 기한의 신탁통치안이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광복의 기쁨으로 들떠 있던 우리 국민들은 즉각 거세게 반발하였다.

36년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우리 민족에게 독립자주국가 건설이라는 과제는 지상명제였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이든 또다시 외국의 지배가 연장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국민감정이었다. 한국의 독립은 ‘카이로선언’·‘포츠담선언’ 등으로 여러 차례 공언되었지만, 광복 직후 미소의 군사분계선으로 38선이 확정되고 남과 북에서 모두 군정이 개시되자 남북 분단이 고착화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전해진 모스크바3상회의에서의 신탁통치안 결정이라는 소식은 즉각적인 독립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현실화시켰으며, 아울러 민족적 자존심에도 크게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 신탁통치안이 보도된 1945년 12월 28일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이 중심이 되어 각계 대표자들의 회합이 열리고 이튿날에는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로써 전국적인 반탁운동이 시작되었다.

[경위]

임시정부측은 긴급히 비상국민회의를 통하여 민주의원(民主議員)을 구성함으로써 비록 의결기관은 아니었으나 자주적으로 선출된 국민대표기관을 형성하는 한편, 신탁통치를 적극 배격함으로써 독립국가건설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고 나왔다. 이에 반하여 인민공화국으로 대표되는 좌익은 민주주의민족전선을 만들어 과도적 임시국회로 자처하면서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을 지지, 촉진시켜 신탁통치를 통하여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처음에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모두 신탁통치에 반대의사를 표시하였으나, 모스크바의 지령으로 며칠 사이에 이른바 찬탁으로 갑자기 태도를 바꾼 좌익 계열의 이탈로 말미암아 통일된 전민족적 반탁운동에 균열이 생겼던 것이다. 그 뒤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찬탁과 반탁의 두 갈래 흐름은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을 이행하기 위하여 설치된 미소공동위원회가 2년여에 걸쳐 성과없이 폐막되기까지 우리 나라 정치사에서 주된 논쟁점이 되었다.

신탁통치는 한국독립에의 진일보이며 현단계에서는 필연적이며 정당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반탁운동은 국제정세의 무지에서 비롯된 민족자멸책이라고 우익을 비난하는 좌익의 찬탁 움직임에 대하여 김구(金九) 주석은 임시정부를 모체로 하여 반탁운동을 선도하고 나섰다.

1946년 정초,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이 개최되고 있는 가운데 임시정부는 1월 21일부터 비상정치회의주비회의를 열어 2월 1일 비상국민회의를 정식으로 소집하였다.

비상국민회의에서는 최고정무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이승만(李承晩)·김구 두 지도자에게 일임하였다. 그러나 혁신 계열 및 좌익이 참가를 거부함으로써 비상국민회의는 민족진영만으로 구성되고 이것이 전국적인 반탁운동 전개의 기반이 되었다.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회(28명)는 1946년 2월 14일 미군정고문기관인 남조선대한국민 대표 민주의원(약칭 민주의원)으로 개편되어 일종의 입법기관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비상국민회의는 존속되어, 1947년 2월 16일 제2차 본회의를 열고 국민의회로 개칭하는 한편, 주석에 이승만, 부주석에 김구를 추대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광복 직후 이승만 주도하에 결성되었던 독립촉성중앙위원회는 1946년 2월 8일 독립촉성국민회로 개칭되었고, 이승만은 이 회를 중심으로 하여 자율정부수립운동을 펼쳐나갔다. 이처럼 신탁통치반대, 즉 반탁운동은 이승만과 김구로 대표되는 우익 및 민족진영에 의하여 주도되어 나갔으나, 반탁운동은 남한단독정부수립문제를 둘러싸고 결국에는 이승만의 단정(단독정부)노선과 김구의 단정불가·통일정부노선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1946년 3월 20일, 서울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됨에 따라 모스크바결정에 의한 신탁통치를 반대해 오던 우익 및 민족진영은 처지가 미묘하게 되었다. 이에 민주의원의 의장인 이승만은 사의를 표명하였으나 민주의원의 만류로 유보되었으며, 민주의원의 활동은 부진한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4월 17일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의대상이 되려면 모스크바협정을 지지하는 선언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이른바 미소공동위원회 ‘코뮤니케 제5호’가 발표되었다.

그러자 반탁진영에서는 즉각 거부의 뜻을 비추었으나 미군정청의 하지 중장의 강력한 설득과 종용으로 5월 1일 일제히 선언서를 제출하였다. 그렇지만 반탁진영의 주장은, 선언서 제출이 신탁통치를 수락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반탁 민족진영이 미소공동위원회를 통한 임시통일정부 수립에 참가함으로써 신탁통치를 실질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뮤니케 제5호’에 대한 하지의 해석을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 사이의 의견대립이 심각해져 5월 6일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이승만은 6월 3일 이른바 ‘정읍발언’으로 남한단독정부수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반탁운동 속에서도 노선 대립이 분명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6월 27일에는 독립촉성국민회를 중심으로 민족통일총본부를 구성하여 명분상으로 남북통일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내세웠다.

원래 한반도의 전후처리 문제의 방식으로 신탁통치안이 제기되었을 때, 미국과 소련의 의도는 신탁통치의 전개과정 속에서 각자 한반도 경영의 주도권을 잡아보겠다는 전략이었다. 이처럼 같은 전략적 출발점에서 비롯된 미국과 소련의 계산이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정으로 현실화되어 신탁통치안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소련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정치세력들이 일사불란한 행동을 보여주었던 반면, 남한에서는 신탁통치의 추진을 위한 정치적 지지세력, 즉 미군정의 동맹세력을 구하지 못한 것이 미국의 난관이었다. 그리하여 신탁통치를 추진하기 위한 미군정의 남한내 정치적 동반자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여운형(呂運亨)과 김규식(金奎植)으로 대표되는 좌우합작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좌우합작운동은 반탁운동의 처지에서는 엄청난 장애물임에 틀림없었다.

좌우합작운동은 기본적으로 신탁통치의 테두리 안에서 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해 보자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1947년에 들어서 미소공동위원회의 속개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지자 김구는 1월 24일 반탁독립투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로써 김구는 반탁과 독립을 명백히 등식화시켰다. 이승만의 단정노선에 대항하여 김구는 반탁·반단정노선을 분명히 하고 나선 셈이었지만 이것은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의 기조가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 및 의의]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협의대상 문제로 또다시 좌초되자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신탁통치를 포기하고 한반도문제를 국제연합으로 이관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하여 미소공동위원회가 종막을 고하고 따라서 그의 존립근거였던 한반도의 신탁통치문제도 사라지게 되었다. 당연한 귀결로 신탁의 반명제였던 반탁운동도 그 공격목표의 소멸로 명분을 잃게 되고, 그 뒤 미군정의 대한반도정책은 38선 이남에 대한 배타적 기득권의 확보라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이승만과 한민당의 남한단정노선으로 미군정의 정책이 선회한 것이었다. 신탁통치반대운동은 민족주체성이라는 명분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였지만, 광복 뒤 냉전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에서의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에 대한 대응책으로서는 상당한 한계를 갖는 정치운동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解放三十年史(宋南憲, 까치, 1985), 해방40년의 재인식 Ⅰ·Ⅱ(송건호 외, 돌베개, 1985), 분단전후의 현대사(Cummings,B. 외, 일월서각, 1983).

<문창주>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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