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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광주항쟁의 의미-토론 (서중석)
토론 : 광주항쟁의 역사적 성격과 80년대의 반미자주화 투쟁 앞에서 이음 신군부의 등장과 광주항쟁 발발의 조건 최장집(사회) : 이 토론을 위해서 서중석 선생님이 좋은 글을 발표해 주신 데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이 발제문에서 제시된 내용을 중심으로, 여기서 제기된 해석상의 이견이나 쟁점을 여러 가지 시각에서 논의 해봤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논의의 유도를 위해서 간단하게 초점을 지적해 주시죠. 서중석 : 제 얘기는 발표를 통해서 자세하게 말씀드렸기 때문에 여기서 구태여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요점은 어째서 광주에서 그렇게 상상하기 어려운 참혹한 탄압이 있게 됐는가, 그리고 다른 때, 다른 지역 같으면 그 정도의 탄압이면 무너지고 말텐데, 오히려 거기에 맞서면서 계엄군을 내쫓고 해방지역으로까지 만들었는가를 해명하는 데 두었습니다. 이종범 : 광주지역에서 그러한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된 것은 바로 군부독재 집권의 권력을 향한 기본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해방'공간을 만들어내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물려 있겠지만, 전남 광주지역의 역사적 배경이랄까 운동경험의 문제가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의 식량 및 공업원료의 저렴한 공급원으로 되면서 호남지역이 상대적으로 농업선진지대로 위치지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 점으로 해서 일본자본의 집중적 수탈대상이 되고 그 과정에서 그에 추수야합하는 봉건매판지주세력이 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이 지역의 빈농, 소농을 중심으로 한 광범한 지역대중의, 일제에 반대하고 그와 결합한 봉건매판지주자본가 및 권력에 대한 저항이 강력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에 걸쳐서 강력하고 집요한 무장 투쟁이 이 지역을 무대로 지속적으로 펼쳐지게 된 것 역시 이 지역대중의 자기 역사경험의 축적 그리고 토지문제를 비롯한 민족적 당면과제에 대한 비원과 같은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경험들은 철저히 무시되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하에서의 외세의존적 수출주도형개발정책은 박정권의 정권안보적 차원에서의 공작정보정치와 결합하면서 전남 광주지역의 다수 대중을 경제적 소외만이 아니라 정치적 소외의식에 젖어들게 하였던 것입니다. 박정권의 지역불균형 개발 그리고 농업포기정책, 농촌분해정책이 이 지역 대중에게는 종속형적 비산업화의 불이익을 집중적으로 당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역사와 상황은 이 지역에서 보다 강력한 정치적 욕구가 전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10·26 이후 이 지역 대중은 아마, 이제 더 이상의 지역편중과 차별에서 오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1970년대 후반 이래의 농촌의 피폐가 더 이상은 진행되지 않는 정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민주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 자연스럽게 김대중이라는 대중적 상징이 존재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전남 광주지역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기본모순과 주요모순이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만큼 자기역사를 변혁하려는 강렬한 욕구와 그 실천경험이 축적된 지역이었는데, 이러한 지역적 조건이 바로 군부파시스트의 계획적 공격에 대해 일체화된 적극대응이 있을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조희연 : 저는 광주항쟁 발발의 일반적 조건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습니다. 광주항쟁까지를 포함해서 10.26부터 5.17까지의 정치적 격변의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느냐를 살펴보고, 그러한 맥락 속에서 광주항쟁을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런 일반적 조건 속에서 지역적 특수성이 매개되면서 광주항쟁이 결과됐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죠. 10·26부터 12·12, 5·17에 이르는 정치적 격변은 기본적으로 1970년대 말에 지배체제의 위기, 그리고 그런 지배체제의 위기를 창출한 정치경제적 위기 및 민족민주운동의 발전, 이런 측면과 연결시켜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통 얘기하다시피 1945년부터 1950년까지는 민족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전면적인 계급투쟁의 시기였는데, 민중세력의 패배로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가 형성되고 변혁운동의 역사적 전통이 일정하게 단절되게 됩니다. 크게 보면 6·25 이후의 한국사회의 변화과정은 이런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모순의 심화 그리고 균열의 과정이고 그것에 대응하는 민중운동의 변혁적 전통의 복원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6·25 이후 한국의 지배체제사를 보게 되면 몇 가지 유사한 위기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1950년대 지배체제의 위기를 배경으로 4·19라는 민중운동의 고양기를 맞게 되고 그것에 대한 지배체제의 반동적 대응으로서 5·16군사정권이 등장하는 시기가 있겠고, 그 다음에 1960년대 지배체제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배경으로 1970년대 초반의 민중운동의 고양과 그것에 대응한 유신체체의 성립이 있습니다. 10·26 이후의 과정은 이런 맥락에서, 1970년대 지배체제의 정치경제적 위기와 민중운동의 발전을 일정하게 반영한 것인데, 이런 민중운동의 발전을 전제로 한 1970년대 지배체제의 위기에 대응한 지배체제의 재편과정으로서 10·26 이후에 12·12, 5·17까지의 과정 전체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사태 역시 바로 이러한 일반적 변동과정 속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전과 다른 1970년대 말의 위기를 규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하면, 먼저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추진된 1960년대 이후의 종속적 자본주의화가 창출한 계급적 모순의 심화를 들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그처럼 심화되는 계급적, 경제적 모순을 해결하면서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연화된 파쇼적 억압통치로부터 유래되는 정치적 모순이 있는 것이죠. 이런 모순적 통치에 대한 대중들의 광범위한 불만이라고 할까, 이런 것들이 1970년대 말에 한국사회에 기본적으로 존재했던 것이죠. 그런 구조적 위기들이 현상적으로는 1970년대 말에 김영삼의 국회의원직 제명이라든가, YH무역사건이라든가 총체적으로는 부마사건 등으로 표현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1970년대 말의 위기에 대응한 지배체제의 재편으로서 10·26을 전후한 일련의 과정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 경우 지배체제의 변화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민중적 대안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세력 자체가 주도하는 지배체제의 제한적 재편입니다. 1970년대 민중운동의 발전수준으로 볼 때 전자를 관철시킬 수는 없는 수준이었고, 따라서 결국은 지배체제 개편의 주도권이 지배세력 내에 있게 되는데, 여기서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면서 온건파에 의한 일종의 위기해소를 위한 예방혁명적 궁정쿠데타가 10·26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군부강경파에 의한 12·12로 역전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광주사태를 촉발시키는 직접적 요인이 되는, 강경군부세력에 의한 역쿠데타가 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기존 지배세력이 주도하는 온건한 방향에서의 체제재편 가능성은 애초부터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1970년대 말 독점자본의 물적역량 곧 지배세력의 경제적 기초기, 분출하는 민중적 요구를 수용해내는 데 제한적이었다고 봅니다. 1978년 이후 한국경제는 불황국면으로 빠져들었고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 성장은 실패로 인해서 한국독점자본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온건한 체제 개편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의 또 하나는 카터의 인권외교에서 표상되는 일시적인 '군부통치 온건화 전략'이 이란혁명 등의 사태에 의해 후퇴하고 미국의 대한정책에 있어서의 보수화경향들이 일정하게 대두되고 있었던 점입니다. 또 하나의 요인은 10.26온건주도세력이 굉장히 약체라는 점입니다. 체제개혁의 구상 자체도 불철저하고 군부내의 기반 자체가 취약했어요. 이런 맥락에서 불가피하게 12·12라고 하는 군부강경파에 의한 체제개편, 유신체제보다도 더욱 후퇴한 더욱 폭압적인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게 되고 여기서 광주사태의 지배체제측 조건이 예비되게 되는 것이죠. 왜 '광주'인가 사회 : 한국에서는 10년마다 모순이 증폭되어 나타나고, 이렇게 민중운동의 고양과 함께 지배구조가 재편되는데, 유신 후반기에는 미국 카터 대통령의 인권외교가 큰 애로를 맞으면서 이란이나 중미에서의 혁명으로 나타나고, 카터 말년에는 유럽 같은 곳에서도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유럽 꼬뮤니즘이 해체되거나 약화되고 붕괴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크게 보면 이런 세계적 미국 지배질서의 사이클과 우리나라의 내부세력간의 대립에서도 광주사태를 조명해 볼 수 있다고 보는데, 김민석씨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말씀을 해주시죠. 김민석 : 저는 이 토론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관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광주문제를 지금 평가하는데 있어서 가져야 할 실천적 관점이란 것은 범주적으로 두 가지 차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국민대중적 차원에서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 한 가지 범주는 보다 더 의식적이고 목적적으로 과거를 평가하고 사후에 전개될 사태에 개입해 들어가겠다는 입장에서의 평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차원의 문제는 청문회 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겠죠. 진상들을 규명하고 이런 것들의 확인을 통해 국민들의 민주적인 의지를 결집한다는 측면이라고 한다면, 두번째 차원 즉 의식적인 측면에서는 광주의 전과정을 둘러싸고 발견되는 법칙들을 발견하고,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향후에 우리가 전개해 나갈 활동이나 운동에 있어서의 관점을 수립하는 문제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토론은 최소한 그 두 가지 차원을 매개하는 지점에 서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견지에서 발제문을 볼 때 적어도 이런 것이 고려되어야 하겠다는, 나름대로의 누락부분이 발견되는데요. 그것은 주로 투쟁형태와 방법, 당시 운동주체의 정치노선과 조직노선의 문제 등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단 그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만 지적해 두고 넘어가지요. 첫째 광주항쟁의 원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광주항쟁과 같은 민중항쟁이 당시에 한반도 남부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필연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러한 조건들을 규명하고 나아가서 왜 특수하게 광주였던가 하는 문제, 그것은 다시 광주의 지역적 특수조건이라는 문제와 당시 군부내에서의 파쇼세력의 의도를 규명하는 문제가 전체적으로 포괄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서 선생님께서 발제문에서 지적하신 파쇼의 음모 내지 조작설 부분까지를 우리의 시야에 넣는다면 광주항쟁의 필연적, 민중적, 구조적 원인과 광주항쟁의 의도적 유발 그리고 광주항쟁, 광주학살로 이루어진 전 과정, 즉 박정권에서 전 정권으로 넘어왔던 파쇼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폭력적으로 체제를 재편하게 되는 과정의 원인이 무엇이었던가를 규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거기에는 일반적인 원인과 특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일반적인 원인으로는 몇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여기에서의 특수한 원인은 왜 광주였던가 하는 것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토대상의 위기가 있겠죠. 그러니까 1970년대 계속됐던 경제정책의 구조적인 한계, 1970년대 말에 세계적으로 야기된 공황, 그리고 그 여파가 남한경제에 불황으로 나타났던 경제적 위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요, 두번째로는 상부구조의 위기인데, 특별하게는 박정권이 말기에 가서 미국의 지배세력과 일정한 갈등이 표출했던 것을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이것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자칫하면 1970년대 말 우리가 가졌던 자유주의적인 경향으로 갈 수도 있겠죠). 또 한 가지는 이 나라에 있어서의 권력형태는 극악한 식민지적 파시즘의 형태, 폭력을 기본적인 통치형태로 하는 것이므로 이 나라에서 다소 민주적인 체제의 개편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또 한 가지는 미국이 이란혁명 이후에 제3세계의 혁명적 움직임에 대해 강경해지는 것도 고려에 넣어야 하겠지요. 이런 일반적인 원인 속에서 그럼 왜 특수하게 광주라는 것으로 드러났는가, 누구나 지적하듯 특별히 광주지역, 호남지역이 저 발전되고 소외된 지역이었다는 점, 그리고 두번째로 수미일관하게 억눌린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것을 표현할 정치가가 없는 상태에서 김대중이라는 지도자가 특별히 호남지역의 지역적인 지지를 받는 지도자로서 부각되었다는 점, 세번째로 파쇼가 그런 조건들을 이용해 광주를 의도적으로 선택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광주항쟁과 학살이란 것은 1980년 체제개편에서 어느 곳에선가 필연화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었고, 광주지역의 특수성을 매개로 당시 운동의 역량 때문에 비조직적이고 자생적으로 표출한 항쟁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신군부의 출생상의 성격 사회 : 광주항쟁은 드디어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역사적 현상 그래서 기존에 존재했던 강압적 지배질서와 최초로 본격적으로 접점하는 시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광주항쟁은 이후 1980년대 민족민주운동과 1987년의 민중항쟁으로 이어졌지요. 이것을 길게 볼 때는 민중의 힘은 상승, 강화하고 지배블럭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힘의 균형적 대립관계를 거쳐서, 결국에는 민중이 지배구조를 극복해 가는 힘의 역전으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광주항쟁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은, 광주항쟁으로 시작된 지배질서-국가의 폭압적인 기구까지를 포함해서-와 민중의 저항이, 아직도 서로 힘의 균형 비슷한 것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서로 격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함께 신군부세력으로 대변되는 세력이 광주에서 왜 그런 폭압적인 방법으로 나왔는가는 두 번째 중요한 측면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만행이었거든요. 정치적으로 볼 때 신군부세력 자체가 약간 종류가 다른 세력이 아닌가, 이를테면 5·17 이전의 군부 지도층은 한국전쟁과 같은 전통적인 전쟁을 경험했고 훈련도 그런 훈련을 받은 어떻게 보면 구군부세력인데, 신군부세력은 월남전시대, 이를테면 공수특전 단에서 주로 활동하고, 동족을 적으로 간주하여, 전쟁에서 가장 잔혹한 살상을 통하여 소탕할 수 있었던 점에서, 도덕에 대한 기준이나 멘탈리티 같은 것이 상당히 다른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5·17군부의 등장은 유신체제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가장 폭력적인 군부엘리트들을 유신체제 말기는 의도적으로 양성 해냈고, 박정희라는 지도자가 암살됨으로써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힘의 공백상태에서이 그룹들이 필연적으로 전면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신체제를 지탱했던 것은 군부세력이기는 하지만, 최종적인 권력의 기반이었지 통치의 전면에 나서진 않았는데, 우리 역사상 가장 군부파쇼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광주항쟁으로부터 시작되고, 그 군부통치의 전형을 드러내보이는 제5공화국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 : 특수하게 형성된 정치군인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이란 점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972년의 유신쿠데타의 경우, 사회경제적으로 그 당시 상황을 볼 때 필연적으로 유신독재로 갈 수밖에 없지만 그러면서도 박정희란 한 개인이 갖고 있는 권력에의 야욕, 어쩔 수 없이 영구집권을 할 수밖에 없는 박정희의 인간적인 약점과 결함, 이런 것들도 유신체제를 몰고 가는데 큰 역할을 했거든요. 마찬가지로 12·12쿠데타 군부세력의 핵심들은 김재춘 전중앙정보부장인 회고하듯 이미 5·16 얼마 후에 쿠데타를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득은 박정희에 의해서 육성되면서 하나회라는 형태로도 윤필용그룹, 차지철그룹이라는 형태로도 똘똘 뭉치면서 언젠가 박 이후에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권력에의 집착욕을 처음부터 강하게 갖고 있었던 사람들 같아요.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극우적 상황에서 커온 사람들로 일본군국주의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들이 했던 방법이 가장 실감있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이지, 민주주의, 민중 하면 '개나발 부네' 하는 생각밖에 가질 수 없는, 그래서 모든 것을 '작전'과 '지배'로만 연결시켰던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 : 광주사태에서의 만행은, 12.12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체제구축의 과정 속에서 일종의 초전박살을 통해 사실상 군부체제의 정립에 대한 민중의 저항에 쐐기를 박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전박살의 대상으로 광주지역이 좋았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저는 광주사태에서 드러난 지배권력의 폭력적 성격을 지배권력의 본질적이고 일반적인 성격이라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권력은 기본적으로 폭력에 기초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통치과정에서는 그것을 잠재화시키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권력은 총칼로부터 나오지만 총칼을 사용하지 않을 때 가장 강한 거죠. 그 폭력성리 노정되는 것은 국가권력 자체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이 가열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배권력은 일단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고 위협이랄까 이런 것을 통해 민중들의 저항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는데, 이런 위협에 대해서 민중들이 알아서 기면(위축되면) 지배권력의 폭력성도 노정되지 않고 좋은데 그렇지 않고 저항이 전면적으로 나타나게 되련 그 폭력성이 노정된다는 것이죠. 서울지역에서는 5월 15일 서울역 회군에서 보이듯이 일단 학생운동 지도부가 상당히 투항적인 자세로 변화되게 됩니다만 광주의 경우는 일단 5월 15일 이후에도 16일, 17일, 학생시위 대열에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투쟁의 연속이 존재하고 그 연속선상에서 5·17을 맞게 되고, 거기에서 치열한 접전이 붙게 되어 제도화된 엄청난 폭력성이 노정되는 것이지요 광주사태에서 보여지는 폭력성 자체를 예외적인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상당히 일반적인 것인데 지금까지는 왜 폭로가 안됐느냐, 그것은 폭력 자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정도로 민중의 정치적 진 아니면 민중의식의 발전이 낮았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한 이해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 지금까지 광주민중운동이 굉장히 체제를 위협했고 그래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군이 나섰다 하는 식으로 폭압적 진압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집권세력들이 내세워 왔습니다. 우리의 토론 속에서 공통적인 견해는 그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미 사전에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그리고 지역적으로 선택된, 그리고 권력이 위기에 봉착하고 해체 내지는 붕괴의 위기에 있을 때, 베일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폭력적인 세력이 군부파쇼체제를 수립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그 당시 3김씨가 보인 정치행태는 1987년 말 대통령선거에서 보인 양상과 상당히 비슷한데, 1980년 당시도 민주화되는 날이 상당히 가까워오는 듯한 착각이랄까 정세인식을 했던 것은 상당히 크게 틀린 판단이었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그 당시를 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과연 광주항쟁과 같은 가혹한 탄압을 회피할 수 있었던 탈출구나 대안은 없었을까요? 5·17 전야의 상황인식 조 :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쟁점을 안고 있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12·12 부터 5·17까지의 정치적 공간은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군부세력에 의한 새로운 체제구축의 과도기적인 성격이 있는 것이고 군부세력 내에서 일정한 실세가 제도권력 내의 실세로 전화되어 가는 과정이며 그것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과 명분의 측면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민주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지배체제의 과도기적인 성격이 갖고 있는 불안정성, 이것 자체는 사실상 민주운동이 활동하는데 중요한 열린 공간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지배체제의 과도기성에서 나오는 불안정성을 계기로 말하자면 민중들의 정치적 발전을 확보해내고 강경 파시즘적인 지배체제의 등장을 막으면서 민주정부를 강화해 내는 과제를 수행해야 했던 시점이고, 지배세력에서 보면 무리없이 지배체체를 장악해야 하는 그런 시점이었죠. 바로 이러한 각축기에 있어 올바른 전술적 방침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 문제는 핵심적으로는 어떻게 대중투쟁으로 전화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고 봅니다. 당시 운동의 주력은 학생운동이었는데 그때 주전론, 주화론 내지는 전면적 투쟁론과 단계적 투쟁론의 논쟁이 있었지요. 단계적 투쟁론의 경우에는 군부세력에 명분을 주지 않으면서 다른 여타의 운동이 고양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는, 말하자면 다른 여타운동이 고양되면서 전면적인 정치투쟁으로 나가자는 그런 것이고, 전면적 투쟁론이란 사북사태 같은 것을 중요한 사태로 보면서 대대적인 정치투쟁, 가두투쟁을 통해서, 말하자면 가두투쟁 자체를 통해서 적의 본질이 폭로되고 그것을 통해서 대중들이 합류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죠. 이런 것에서 보이듯이 불안정한 과도기에 있어서 대중투쟁을 어떻게 확보해 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 때 부르조아 언론이 굉장히 기회주의적인 보도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또 중산층은 부르조아의 언론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 것이고, 그렇다 보니까 결국 일반 대중이 투쟁에 상당히 관망적인 태도를 취하고 투쟁에 합류하는 것이 상당히 늦어지는 측면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5월 17일을 경과하면서 그런 것이 깨지기 시작하는, 그러니까 학생들의 투쟁이 일정한 정도로는 대중투쟁으로 전화되기 시작하는 것이죠. 김 : 당시 3김씨와 관련하여 생각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로는 우리의 기본적인 태도는 그 시기든 현재든 반파쇼민주연합전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제반파쇼민족민주전선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관점에 따라서는 미제와 예속적인 반동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의 연합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는데, 그 당시에도 공화당은 빼고 양김씨로 나타났던 제도야당까지를 견인하면서 민주연합전선을 구상하는 것이 우리의 역관계에 있어서 올바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번째로 정치인들의 정치적 지향과 그들이 딛고 있는 실질적 기반에는 다소 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1980년에 2원집정부제 얘기가 나왔지만 2원집정부제는 불가능했다는 것이죠. 파쇼체제가 상당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그런 식의 개편은 불가능하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그것을 감수할 만한 군부의 이념적인 준비조차, 양보할 태도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었고, 또 신식민지 사회에서 과연 그런 대규모 권력이동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세번째로 바로 그런 것에 주목해서 소위 얘기되는 보수대연합 문제에 대해서 다각적인 의미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대연합에 대해 실질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데, 극우세력과 제도야당이 현실제도권정치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일정한 관계들을 가져나갈 수 있고 또 자신들이 민중세력의 진출이 미약한 조건 속에서는 더욱 더 그러한 경사가 심회되어 나타날 것이지만, 그런 것을 하나의 경향으로 일면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우리의 전술을 좌경적으로 나가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보수대연합을 저지하는 문제는 민중의 역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봅니다. 서 : 1980년 초에 굉장히 첨예하게 맞서 있던 모순은 새롭게 변화하려는 욕구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 사이의 모순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처럼 첨예할 정도로 경제적 구조의 모순-지금과는 다를 정도로 그때는 훨씬 더 심각하게 느낄 수 있는 경제적 구조의 모순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가의 모순, 또 전국민 대중이 소망했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그것에 대해서 군부파쇼를 비롯한 지배블럭의 대응에서 빚어지는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나 있으면서도, 이러한 모순을 터뜨려 주도해 갈 만한 역량이 민주세력에 있었느냐, 그 점에 대해서는 사실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단적으로 민주세력의 대부분이 12·12쿠데타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2·12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환상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 대해서도 역시 환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 학생 사회에서 강경투쟁을 주장한 선배 가운데 몇은 정치권과 연관이 있었는데, 이들은 미국이 지금 우리를 지원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했어요. 유신체제에서는 민주세력이 성장하기 어려웠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민청학련에서 민주세력을 결집해 보겠다고 했습니다만, 그것을 포함해서 그 이후는 어떤 운동도 민주세력을 결집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마사태 등 많은 투쟁이 있었으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10·26은 사실상 민주세력에게도 엉겁결에 온 것입니다. 이 때문에 민주세력의 집결은 10·26에서 5·17 사이에도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양김씨 때문에 5·17이 일어난 것은 전혀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들이 그 때 한 짓은 준렬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정치군부는 호시탐탐 등장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문제는 저들이 나오는데 어떻게 하면 구실을 적게 주면서 국민 대중적인 힘을 배경으로 민주역량이 그것과 얼마나 강하게 싸워 나가느냐, 그리하여 권력을 탈취한 파쇼세력이 얼마나 빨리 힘을 상실한 채 쓰러져 가느냐, 저들이 집권한다는 것은 틀림없는데 그 다음에 우리가 싸울 수 있는 힘까지를 이 대결상태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의들을 했었지요. '해방' 광주로의 과정과 그 한계 사회 : 이제 광주항쟁에 대하서 얘기를 해 보죠. 이 : 제가 앞서 광주민중항쟁의 객관적 역사적 조건을 지역차원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당시의 정치군부의 공격에 대해 전시민적 적극 대응이 이뤄질 수 있었던 데에는 그 나름의 한기국면에서의 주체역량의 축적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5월 15일 도청앞 민족민주화성회에서의 제2시국선언문은 당시의 어느 선언, 성명에서보다도 다수 대중의 생활상의 요구를 수렴하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에서 보면 낮은 수준이겠지만 농민, 노동문제로 시작하여 학원, 언론, 그리고 개헌문제에 이르기까지 초보적 수준의 강령이 대중차원에서 제시되었습니다. 당시 학생운동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고려를 한다면, 학생운동의 방향과 목표를 일차적으로 낮은 수준에서의 대중적 연대활동에 두고 한편으로는 정치군부의 총격이 있다면 언제든지 전력투구하여 맞서 싸우겠다는 결연한 투쟁의지를 확실히 하면서도 평화적이고 질서있는 행동통일을 결의하고 있었던 점은 그런 구체적인 예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전남대학교 교수를 선두로 한 빗속의 시가행진, 그를 바라보며 성원하는 시민들의 숙연, 비장한 그리고 박관현의 - 들불야학에서 활동하고 사회조사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의식을 다져나간던 - 대중적인 지도역량 등은 이미 5·18 이전에 시민, 학생연대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군부의 공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선전해내면서도 거기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합의를 끌어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휴교령에 대해서도 학생차원이었지만 대비는 하였습니다. 5·18광주항쟁의 시발점이었던 전남대 정문 충돌 역시 미리 결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대 정문에서 일방적인 수세에 몰리자 학생들은 그냥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시내까지 전두환의 쿠데타, 김대중 체포사실 등을 대중에게 알리면서 분산 진출을 감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빈민청년들이 합세해나갑니다. 계엄군의 무차별 체포, 구타 등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청년, 학생들은 수세적이고 분산적 이나마 저항을 반복함으로써 불굴의 투쟁을 대중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계엄군에 대한 전시민적 항쟁의 발단이 이렇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면서 항쟁의 주도역량은 학생이 아니라 도시빈민대중으로 이행하여갔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투사회보팀을 비롯한 선전대의 역할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사회 : 광주항쟁의 중요만 특징이나 의미는 해방자치기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해방 직후에 인민위원회가 있었고, 5·3 인천사태 때도 사태를 주도했던 활동가들의 머리 속에는 꼬뮨형태의 해방구를 건설하려는 발상도 없지 않아 있었다고 보는데, 이런 실험들이 과연 어마어마한 공권력을 갖는 군부체제와 부딪쳐서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곁들여서 광주해방 당시 내부의 지도부의 성격, 꼬뮨의 가능성과 문제점 이런 것들을 연결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이 : 당시의 시민군은 그 주된 구성이 도시빈민층이었습니다. 여기에 일부 재수생까지 포함된 학생들이 있었지요. 최대의 희생도 이 계층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빈민 밀집지역에서 시장구역에서 자발적인 지원역량이 생겨났다는 점입니다. 일부이긴 합니다만 그런 지역의 통, 반장이나 부녀회장 등은 적극 나서서 식사를 준비하고 광목을 모아 날랐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문화운동 그룹이 이 기간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사실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역량의 상호 결합이 범시민궐기대회를 통해서 하나의 대체권력을 마련해갔고, 그 과정에서 절제와 도덕성에 기초할 민중자치의 단서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 역사에서의 자치의 경험들의 복원이자 한편으로는 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항쟁지도부는 통일적인 단일 조직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었습니다(이는 1970년대 운동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초 의 양심적 지식인, 성직자 그리고 관료 등으로 구성된 수습위가 명분있는 타협론을 제시하고 나온데 대해 무장력을 갖춘 시민군은 반대하였고, 그 결과 진보적 학생운동 그룹과 전투적인 기층민중으로 구성된 새로운 지도부가 결성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러한 지도부의 성격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자를 투항파, 후자를 투쟁파 등으로 말입니다. 김 : 그렇다면 말이죠. 시민군과 지역주민들로 이루어진 지원그룹, 선전을 목표로 하는 활동가조직 등 3가지 정도의 조직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실지로 일정하게 군의 물리력을 몰아낸 이후에, '해방구'라고 표현되는 그런 조건이 형성된 이후에 도대체 우리가 가장 역점을 두었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문제가 제기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량의 결집 같은데, 이런 의문이 들거든요. 가령 아주 많은 수가 낮에 움직이다가 밤에는 어느 지역에 모이는 수가 아주 적고 다 집으로 돌아가고. 또는 10일간의 항쟁 중에 뒤로 갈수록 보수화하는 것이 있잖아요. 도청을 마지막으로 사수할 때 소수만 남게 되잖아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화나 주전이냐가 아니라, 어떠한 방침이 결정되는데 있어서 다수의 의사를 결집해서 최종결정을 할 수 있는 그러한 구조를 어떻게 확보해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거든요. 예컨대 수습위도 있었지만, 무기를 들고 계속 항쟁할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든 채로 교섭에 임할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할 것인가 하는 세 가지 정도의 입장이 이론상 있을 수 있었다고 보는데, 그 어떤 입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조차도 그 결정을 하는 과정에 다수의 의사를 결집할 수 있는 방안이 찾아지지 못했지 않았나 싶어요. 조 : 그 역사적 시기는 아무래도 4차까지 열렸던 범시민궐기대회 이래, 직접 민주주의가 하나의 원형이 되는 형태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광주사태의 구체적 전개과정에 대한 분석과 연관시켜서 이렇게 구분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5·18직전의 단계라고 할까요. 이 시기의 성격은 학생들의 선도적인 투쟁과 시민들과의 부분적인 연대의 시기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서울과 달리 광주시민이 민주화투쟁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 바로 그 때문에 광주사태에서 보여지는 전민중적 항쟁이 가능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광주민중항쟁의 발단시기, 즉 5월 18일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공수부대의 진입과 대대적인 살륙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 다음 시기가 5월 19일부터 21일의 시기인바, 이 시기는 학생, 시민군의 조직화와 그에 기초한 지배권력과의 전면적 투쟁 및 그 결과로서의 민중적 무력에 의한 '지방정부 권력 장악 시기'라고 볼 수 있죠. 군부 강경파의 초기의 도발적인 진압이 광범위한 시민군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면서 확산되어가는 초기 단계에서 야만적인 살육에 대항한 민중들의 자발적인 무장과 투쟁의 중반 단계에 오면 항쟁의 주체가 학생에서 시민, 일반대중으로 전환되어 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3·1운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민중들의 자발적인 항쟁으로 전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중간세력이나 학생들이 민중들의 투쟁발전에 부응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시민군의 무장화에 기초해서 광주지역의 민중항쟁이 전남 제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광주에서 무기를 확보할 수 없으니까 결국 트럭같은 것을 타고 화순이나 목포같은 데를 가서 무기고를 습격하고 해서 무장력을 확충하는 그런 시기로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다음 22일부터 27일까지의 시기를 민중의 자치시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시기는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첫째는 5월 24일 정도까지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목사, 신부, 변호사 등 지방유지가 주도하는 수습위원회의 시기지요. 혹자는 '투항파가 주도하던 시기'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지배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광주를 고립화시키고 봉쇄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광주항쟁이 다른 여타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지배권력은 여타 지역에 상당한 정도의 계엄군을 확대배치하여 여타 지역에서의 유사한 사태 발생 자체를 저지하고 매스컴을 통해서 대중의식을 일정하게 마비시키며 광주항쟁을 지역감정에 기초한 투쟁으로 몰았지요, 그래서 광주 내부에 있어서 투쟁열기가 일정하게 쇠락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진압을 한다. 이런 각본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민중자치의 두번째 시기는 초기의 수습위원들이 물러나면서, 진보적 학생운동 출신 인사와 기층민중 자신에 의한 '반투항파적' 지도부가 형성 지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결국 20사단 및 공수부대의 재투입에 의한 도청진압으로 종결됩니다. 이렇게 해서 광주민중항쟁은 끝을 맺게 됩니다만 당시의 민중자치는 하나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동학혁명 때의 집강소시대 이후에 상당히 초보적인 형태입니다만 민중자치가 실현되었거든요. 그리고 이때 무질서나, 약탈. 방화 같은 건이 없었어요. 이런 자치를 통해서 지배이데올로기가 얘기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민중적 질서라는 것이 민중주체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상당히 중요한 측면이 있으면서 또 이 민중자치라는 것이 상당히 자기방어적인 것이었고 어떤 민중권력의 맹아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그 당시로서 보면 대중의 정치적 수준, 변혁에의 전망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고, 수습위 등 지도세력의 이념적. 계급적 성격 역시도 1980년대 초기의 한계에 의해 규정되고 있었지요. 물론 이 한계는 광주항쟁 자체의 한계라고 보기보다는 1980년대 초의 민중운동의 총괄적 한계의 한 반영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 투쟁노선의 문제 이 : 그렇습니다. 마지막 국면인 해방국면에서의 서로 다른 두 개의 지도노선을 부정하고 없었던 것으로 해서도 안되겠지만 그것을 너무 과장해서도 안됩니다. 당시 광주지역에서의 계급구성 내지는 노동운동의 역량으로 봐서도 지속적인 투쟁을 주장하는 입장의 대중적 토대는 도시빈민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만, 도시빈민역량은 당시 수준에서 무장역량을 제외하고는 그 조직화가 대단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 계층적 기본 속성이기도 하지요. 결국 이런 입장은 소수로서 마지막의 순간을 처절한 자기산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윤상원 열사 등이 전투적 기층대중과 함께 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지금도 살아있는 귀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온건투쟁론 내지는 투항파라고 되어 있는 입장을 우리는 강경투쟁론의 대립적인 노선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먼저 초지 수습위를 하나의 단일한 입장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투항적 수습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교수, 성직자의 입장은 무장투쟁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명예로운 협상을 하려고 한 경우입니다. 그런 노력들인 가능하게 된 데에는 그들의 1970년대 운동에 대한 시민, 학생의 일정한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엄군은, 아니 정치권력장학의 절호의 계기포착으로 광주학살을 자행한 정치군부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거부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강경투쟁론과 온건투쟁론이 대립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입장에 대립한 것은 초기 수습위의 투항주의적 관료 및 재야보수명망가 그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광주학살에 숨을 죽이고 있었던 군부독재와 예속 독점의 지방지지보수집단이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항전 전기간에 걸쳐 자기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광주진압' '광주평정'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그리하여 극우보수질서가 다시 안정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5공 시절에 다시 활개를 치기 시작하였습니다(예를 들자면 5월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광주의 한 호텔에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던 것을 상기하면 당시의 실정을 잘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항쟁기간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광주시민의 무장화가 진행되면서 광주의 시위대가 광주 외곽으로 무장을 확충하기 위하여 진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외로의 진출과정의 구체상을 보면 시위대가 지방군청소재지 등지에 들어서면 지역주민들이 환영하고 그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 지역차원에서도 일정한 운동의 확산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시위대가 광주로 떠나고 그 후 계엄군에 의한 광주봉쇄작전이 감행되자 지역적 열기가 갑작스레 사그라드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얼 말하냐 하면 광주민중의 민주화를 향한 실천을 지지하고 군부의 학살만행을 규탄하였지만 군차원의 자기완결적 투쟁조직을 건설해내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하면 1970년대 농민운동은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고양되었으면서도 그것의 정치운동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던 한계를 내포한 것입니다. '광주'-80년대 민중운동의 기폭제 사회 : 이제 세번째 주제로 넘어가볼까요? 광주항쟁과 1980년대 민족민주운동이 어떻게 연결되고 광주항쟁의 의미가 어떻게 운동을 통해서 드러나느냐 이런 측면에서 얘기를 하도록 합시다. 저는 일단 그런 생각이 듭니다. 광주항쟁이 이후 1980년대 민족민주운동에 미친 영향 중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배블럭의 입장에서는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탄압의 강도가 과연 어느 정도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주항쟁은 폭압적 지배구조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민중의 의지와 결연함이 어느 정도일 수 있느냐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1980년대 민족민주운동의 성격과 방향을 결정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무자비한 방법으로 탄압하는 그런 공포의 정치를 보여주고, 또 민족민주운동의 입장에서는 가장 가혹한 탄압을 감내하면서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잠재적인 에너지, 이런 것을 자각하는 두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있다는 것이지요. 체제를 수호하는 세력과 민중의 저항이 이토록 강하게 격돌하는 사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의 광범한 민중운동과 제국주의 세력간의 투쟁과정을 통해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그 다음에 한국전쟁을 통해서 이러한 격렬한 민중운동은 소멸되어버렸거든요. 그러니까 30년 동안은 지배권력과 민중세력이 정면으로 처절하게 격돌할 만한 위기가 없었다가 최초로 광주항쟁을 통해서 이러한 양상이 재현되었습니다. 아까 계급적 민중운동의 복원이라는 표현을 썼나요? 하여튼 그런 면에 있어서도 대립의 양상이 한국전쟁 후 가장 폭넓고 격렬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 말하자면 광주항쟁으로부터 1980년대의 운동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이에는 역사적, 민중운동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30년이라고 하는 하나의 역사적 단절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전쟁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이 한국전쟁이 그 이전의 모든 민중운동과 지배권력 더하기 제국주의 세력간의 충돌의 전통을 말살시켰어요. 그래서 완전히 단절될 만큼 없어졌는데, 그 후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급속한 종속적 자본주의 산업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경제적 배경이 조성되고, 그 기반 위에서 민족민주운동의 주체적인 힘들이 축적되어, 그동안 일방적으로 지배해 왔던 지배권력 구조와 국가기구에 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같은 반외세적인 성격을 포함하고 있지만 내용면에서 있어서는 한국전쟁 이전의 민중운동의 양상과 1970년대의 산업화를 배경으로 한 1980년대 광주의 운동에서 출발한 민중운동은 상당히 질적으로 상이한 면이 있어요, 다시 말하면 민중운동이라는 운동사적인 연속선상에서 볼 때는 연속성이 있지만, 운동주체로서의 민중의 성격은 크게 다르다고 봐요. 말하자면 질적인 단절을 통한 주체의 형성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광주항쟁을 통해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지평에서 민족민주운동의 더 높은 시야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단절적이고 분절적이고 제한적인 투쟁으로서, 같은 민주화를 생각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모순구조가 외세에 있다는 점과, 그 외세와 지배구조의 성격이 어떠한지를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격돌을 계속해왔는데, 광주를 통해서 비로소 민주화운동을 가로막는 것이 세계적 수준에서 조직화된 세계적 지배구조다, 때문에 민족운동은 이것과 대결하는 것이다 하는 총체적 시각을 획득하였습니다. 반미자주화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바로 그거라고 보는데, 어쨌든 탄압의 강도도 어마어마하게 높았고 또 저항의 강도도 어마어마하게 높은 본격적인 대립양상으로 치달았다는 의미에서 1980년대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광주가 이루어낸 것 김 : 광주항쟁을 통해 첫번째로는 신식민지 파쇼의 폭압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이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 같고요. 두번째로 미국의 본질이 드러났다는 점인데, 1980년 5월 22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2대가 떠서 한쪽은 북한을 둘러보고 한쪽은 남한을 분석하고 그리고 24일에는 공격용 항공모함 미드웨이호가 뜨는 것들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최악의 경우에 어떤 선까지 나올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 밝혀졌다고 보여집니다. 직접개입이라는 카드까지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세력들이 정말 자신의 의사를 민중적으로 관철했을 때 그들이 어떠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가 분명히 드러났다고 보여집니다. 세번째로는 운동 내지는 변혁의 주체에 있어서의 구성변화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운동의 민중성과 계급성이 드러난 것이지요. 네번째로 운동이 고도하게 발전하는 형태의 문제, 경로와 그 방법, 승리의 가능성 이러한 문제가 전체적으로 제기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와 함께 굉장히 중요한 것이 광주가 1950년대 이래 최초의 무장항쟁이었다는 점이예요. 이것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법칙성을 도출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됐는데 그 대중투쟁의 발전은 합법칙성이 어느 정도 도출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대중투쟁이 지배세력의 탄압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물리적인 성격을 띠게되고, 도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의미에서 '폭력투쟁화'해나가고, 그리고 그것이 한 단계 더 나아간 투쟁형태로 고양되고 그것이 최고도로 발전해가는 이런 합법칙성이 도출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은 1987년 이후의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처럼 생산대중,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이념적 성격뿐 아니라 자신이 담지하고 있는 물질적 성격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힘의 중요성의 인식과 관련해서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 생각이 들고요. 부차적인 얘기입니다만 광주항쟁 때 방송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어요. 그러면 긴긴밤 TV를 끄지 않고도 계속 투쟁을 대중화해나가는 선상에서 그 기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인데, 한 마디로 조직력과 선전력, 재정력, 기획력, 실제적인 힘으로서의 무장력. 이런 것들이 민중의 자치조직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섯 번째로 대중의 투쟁과 항쟁은 광주만이 아닌 전국적 차원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1987년 6월 항쟁 때 맹아적 형태로 보여줬지요. 마지막으로 군이 민주화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광주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군이 자기를 낳아준 민중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4·19 때 군이 시민의 편에 섰지만 최근에 초급 장교들이 민주화 대열에 뛰어든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조 : 저는 1980년대 한국의 사회운동이 광주에서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하여, 변혁운동으로서의 자기발전을 해왔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발전의 계기가 된 중요 측면은 광주사태에서의 폭력성을 통해서 우리 사회 지배체제의 본질적 성격, 즉 반민중적 반민족적 성격이 대중의 의식 수준에 떠올랐다는 점이 아닌가 합니다. 광주항쟁을 통해 1980년대 운동은 자신의 이념, 대상, 동력, 방법, 이런 변혁운동의 제 측면들을 고민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따라서 광주항쟁은 1980년대 운동의 출발점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인죠. 우선 광주항쟁을 통해서 1970년대의 소시민적인 민주화운동 혹은 포퓰리즘적인 민주화운동을 뛰어넘어 어떻게 우리 운동을 변혁운동으로서 자기정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제기되었고, 다음으로는 대중의 자연발생적 투쟁만을 가지고서는 한국사회의 변혁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중의 자연발생적 투쟁을 목적의식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지도역량의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광주사태를 통해서 민중의 혁명적 진출이랄까 이런 것을 보면서, 민중의 잠재적인 변혁 역량을 확인하고, 그런 것들이 올바른 방향성 속에서 올바른 지도와 결합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죠. 세번째로는 1980년대에 왜 광주사태가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반성의 하나로 노동자 계급을 포함한 주력군의 미성장문제를 광주항쟁의 역사적 반성을 토대로 고민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문제는 반드시 광주사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는 할 수 없는데, 1970년대까지의 민주화운동 추진세력의 계급적 구성은 여전히 기층민중, 특히 노동계급 중심적이 아니었다는 반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주력군의 성장이란 것이 변혁의 형태를 가늠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한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이 반성 속에서 나타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다음에 앞에서도 얘기했습니다만, 반외세 자주화 역량이라고 할까요, 그런 역량이 확보되지 않는 한 변혁은 불가능하다, 변혁의 궁국적인 지점에서 결국 외세와 맞닥뜨리게 된다 하는 인식들이 생겨나는 거죠. 서 : 광주항쟁이나 1980년대 후반기의 투쟁을 볼 때, 참 입이 딱딱 벌어졌습니다. 저는 광주항쟁이 없었더라도 민주화, 자주화 투쟁은 상당히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요인들을 해방 이후부터 쭉 더듬어보면 적어도 1980년 들어와서는 이런 민주화, 자주화운동이 상당한 정도로 일어나게 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광주항쟁은 민주화, 자주화운동을 훨씬 격렬하고 훨씬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그리고 훨씬 더 본질적인 데 접근해 가지고 일으키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만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봐요. 광주항쟁이란 것은 권력을 잡고 있는 군부지단한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반대로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그렇지만 광주학살을 상기할 때마다 피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란 말예요. 파시스트 권력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의 분단지배체제가 갖고 있는 성격 이런 것들을 인식하게 하는 데 광주학살, 광주사태가 없었다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냥 표피만 빙빙 돌게 하고 복잡하게 했을 텐데 광주학살이라는 아주 훌륭한 교사가 있음으로 해서 현재의 권력과 그 권력을 낳게 한 국내외의 역사까지도 자세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또 1960,70년데 운동하던 사람들의 입을 벌어지게 한 데에는 세대적인 요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6·25세대, 1950년대에 교육받은 세대들은 반미자주화투쟁의 구호가 쉽게 입에서 안나옵니다. 이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웃음). 엄청난 악몽 속에서 우리가 살아왔기 때문에 40대,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민주화, 자주화 투쟁에서 아주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빼놓고는 오히려 반대되는 역할밖에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1960, 70년대에 새롭게 교육받고 자라난 세대들, 이런 20대, 30대의 세대들에 의해서 1980년대 후반기 민주화, 자주화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된다는 것, 그것이 갖는 의미를 우리가 역사적으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은 민중진영으로 연결되는데, 현재 산업체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40세 이합니다. 이들은 불만이 있었어도 인식이나 투쟁면에서 과거에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는데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화투쟁, 생존권투쟁, 반미자주화투쟁을 굽힘없이 헌신적 희생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어떻게 싸워야 하고 왜 싸워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배웠단 말예요. 같은 동세대가 바로 산업노동자가 되어서 그래서 그 사람들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민중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따지고 보면 세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죠. 40세 이상에게 파업을 하라고 해봐요(웃음). 광주항쟁과 6월항쟁 사회 : 저는 운동차원을 떠나서 광주가 없었더라면 1987년 6월항쟁 때 피를 흘릴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는 군부가 그 때 개입했으리라고 봐요. 극악한 군부파쇼체제가 광주항쟁으로 들어섰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망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억압을 하고 탄압을 할 때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느냐 하는 것을 뼈저리게 배운 곳이 광주입니다. 아무리 정권욕이 강한 군부 지도자라 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저항에 부딪칠 때 얼마나 많은 피묻은 손을 갖고 통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한 경험을 광주에서 한 것이지요. 그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그에 못지 않은 교훈을 줬다고 봅니다. 미국도 앞으로 광주항쟁 같은 경우에 직접 개입했을 때 심각한 민중의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광주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을 거예요. 그래서 1987년의 6월 19일인가 군이 나올 수 없었던 것도 미국이 작용한 측면도 상당히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6월항쟁이 결과적으로 6·29로 연결되고 이러한 정도의 민주화라고 할까, 이런 수준의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광주의 피는 결코 헛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7년 뒤의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큰 민족사적인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방금 세대문제를 말씀하셨는데, 30세 중반 이후 40대 세대들은 일단 한국전쟁 이후 세대고, 우리보다 이전의 세대는 보다 생사를 건 격렬한 계급대립에서 살아남은 세대죠. 그래서 이들 세대는 사회관계의 위치면에서나 의식면에서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그리고 그 바로 뒷세대들 역시 강력한 냉전반공이데올로기에 완전히 통합됩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교육과 인식이 약화되고 그리고 반공교육의 효과가 체감되는 새로운 세대들이 후발국가독점자본주의적 사회경제발전으로 인해서 계급모순이 심화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운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 앞에서도 지적하셨습니다만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민족민주운동이 그 대중주체성을 확립해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 운동의 과학적 모색이라고 할 수 있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우리 운동의 과제가 분명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주·민주·통일을 향한 대중조직이 지역차원에서 그리고 전국 수준에서 새롭게 모색되고 결실을 맺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고 했을 때 광주민중항쟁은 세계사와 우리 역사의 근현대사의 합법칙적 필연적 도정의 불가피한 통과점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적 수준에서의 근현대사는 소수의 제국주의 지배국가의 식민지·반식민지적 착취수탈 지배의 과정을 다수의 피 압박민족이 거치면서 이를 이겨내고 새로운 체제를 지향해나가면서 자주와 발전으로 향하여 전진해 나가는 승리의 도정이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러한 보편성은 그대로 관철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이하면서도 결국 분단으로 귀결되었습니다. 해방과 함께 응당 달성되었어야 할 과제들이 그리고 일차적으로 마무리되었어야 할 과정들이 우리 민족 전체역량의 문제 그리고 이를 압박하는 외세의 개입작용 때문에 좌절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친미극우보수세력의 수중에 매판독점의 강화를 통해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사에서의 굴곡 왜곡이 광주민중항쟁을 통해서 폭로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광주민중항쟁은 한국전쟁 이래 우리 민주화운동의 축적과 그 한계를 딛고 선 분수령적 의의가 있다. 그리고 향후의 반외세자주화운동의 단서를 열어냈다고요. 그리고 그것의 쟁취와 승리, 그 가능성이 확인되어가는 계기가 아니겠느냐 생각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1980년 5월에 좌절한 것은 광주민중, 고립분산적 악전고투와 엄청난 희생을 치룬 광주민중이 아니었습니다. 좌절은 오히려 외세의 지원이 없으면 이제 하루라도 존속할 수 없는 군부독재와 매판독점측이 겪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에 기생하는 제집단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유주의적 소시민적 경향은 더 이상 대중차원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봅니다. 광주학살과 친미적 세계관의 붕괴 조 : 광주학살은 1970년대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친미적 세계관이 붕괴하는 결정적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친미적 세계관의 지적 헤게모니라고 할까요. 이런 것이 상실되는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죠. 우리는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미국이 제3세계의 정권에 대해서 보여줬던 본질적인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건 같습니다. 우리가 보통 1970년대까지도 독재정권을 견제하는 자유민주주의세력으로서의 미국이라고 하는 인식이 있었는데, 실상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인 이익을 보호하고 세계적 하원에 있어서의 미국중심적 질서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그 다음에 현재에 있어서 그러한 우파독재정권을 위협하는 민주운동의 성장, 특히 남미나 후진국에 좌익세력 자체가 민주운동에 상당한 정도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경우에 드러납니다만, 어쨌든 좌익세력을 포함한 민중운동의 발전을 저지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런 것을 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의 외피로 우파독재정권을 감싸주고 정당화하면서 친미우파정권을 유지하는 것이지요. 특정 시기에 있어서는 친미우파독재정권을 견제한다거나, 온건화시킨다거나 민간화시키는 전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민중운동의 발전으로 지배체제가 극도로 위태롭게 되는 시기가 아니고는 본래의 전략적 기조로 회귀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사태와 같은 엄청난 만행을 저지른 제5공화국 군부세력을 미국이 지지한 것도 바로 이리한 전략적 기조와 관련시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김 : 1982년 3월 18일에 있었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당시 수준에서는 전 운동권의 어떤 부분보다도 앞선 문제의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받아들일 만한 조건과 의식수준이 널리 퍼져 있지 않았던, 오히려 전반적인 운동의 기조에서 돌출해 있었던 사건입니다만 이것이 가지는 선도적 의미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선도적 투쟁이 비로소 대중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1985년 5월의 서울 미문화원점거농성이죠. 이 사건은 5월투쟁의 기조 속에서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원흉처단을 내세우고 파쇼문제와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미국의 문제를 동시적으로 공격하고 범국민적으로 확산한 선전전의 의미가 큰 투쟁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이 투쟁이 가지는 적극적인 의미는 첫째로 전술을 구사함에 있어서 상당히 대중적인 방식, 선전을 함에 있어서 상당히 유효한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 그리고 학생운동에 있어서의 연대의 일환이었다는 점, 주체들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적인 파급력까지 가지는 상당히 높은 관심을 모았다는 점에서 1982년 미문화원 투쟁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그것과는 달리 대중화될 수 있는 상당히 중요한 계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이 1986년에 들어서면 상당한 충격과 함께 대중적인 기조로 정착했고 1987년 이후에는 학생들을 넘어서서 구체적인 자신의 이해관계와 결합해서 노동자, 농민, 학생을 포함하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으로 확산되어나가고 있고 이것이 1988,89년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미 상당한 정도의 대중적 공감을 얻어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1980년 광주항쟁 이후에 반미자주화투쟁의 폭이 광역화했고, 투쟁내용도 민족적 과제와 관련하여 질적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것은 이런 여건에서 미국이 가능한 한 자신들이 남한의 정치과정에 직접 개입할 요소들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많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전민련 조통특위에서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을 할 때 최종적으로 부닥친 것이 미군이었다는 것이죠. 갔던 분들 말씀을 들었는데, 마지막에 철조망에서 미군병사가 영어로 얘기하면서 막았을 때, 아무것도 안보이더라는 거예요. 갑자기 분노가 확 밀어닥치면서 철창을 흔들었던 기억을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들이 미국과 한국의 관계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족민주운동의 발전과 미국 사회 : 우리나라의 지배구조의 기본적인 기조가 친미반공주의에 있다고 보고 친미반공주의는 한국전쟁에서 확립이 됐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그것이 되풀이돼서 역할을 하고 있었죠. 이를테면 한국이 분단체제에 놓여 있고 이 민주화문제가 어떤 한계를 넘어서 민족문제와 계급문제와 연결될 때는 지배질서의 본질적인 모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는데 문제는 그 동안에 이런 냉전반공이데올로기 때문에 이 민중운동이 대적하고 있는 실체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인식될 수 없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한국에서의 민주화운동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서부터는 세계적으로 조직화된 제국주의 세력과 대적하고 있는 것인데 그런데 반해서 우리나라의 민족민주운동은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민주화란 일국적인 관계 내에서 집권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공권력과 민중이 도전할 수 있는 저항력간의 대결을 통해 획득되기보다는, 한국의 지배세력의 배후에 있는 전세계적으로 조직화된 자본주의의 구조랄까, 이런 것과의 대결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까, 저는 이것이 총체적인 시각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광주항쟁이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이제 우리나라의 민주통일운동의 실질적인 저해세력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라는 전체상을 한국민중운동이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미국 주도하의 세계질서에서는 단위민족국가의 주권이 상당히 많이 제약되어 있어, 일국 내에서의 민주화투쟁이 기본적인 질서를 변화시키고 변혁시키려고 할 때는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 거의 법칙이다 싶은 점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인식이 광주항쟁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죠. 이미 우리는 한국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민중적 성격을 띤 내전이 기본적으로는 세계 최강의 미국의 군대의 개입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했거든요. 서 : 미국과 광주사태를 연결지을 때 흔히 군대 투입에 미국이 얼마만큼 동의했느냐를 가지고 많이 얘기하는데, 그것은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봐야 의미가 분명할 거예요. 최소한 유신체제, 10·26, 12·12, 5·17, 5·18의 전체 연속에서 미국의 문제가 파악되어야 하고, 1980년대 전두환정권의 집권과 미국과의 관계를 시야에 넣고서 미국이 군사독재와 그리고 광주항쟁에 어떤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있게 됐는가 하는 것이 얘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부 정치학자들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의 한계를 강조합니다만, 사실 지극히 친미적인 정권, 미국없이는 못 살겠다는 정권은 미국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 필요가 없어요. 문제는 한국에 있어서 미국과의 관계는 체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라고 왜 미국에 비판적인 정권이 설 수가 없느냐, 그런데 현재와 같은 미국과 한국의 관계가 지속되는 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그런 정권이 성립할 수는 있어도 존속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적인 국가, 민주적인 국가를 가지려고 할 때 계속 부닥치는, 어떻게 보면 엄청나게 큰 것들을 만나게 되는 데에 미국과의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1980년대 중후반기 반미자주화운동, 이것이 국민들에게 민족적 긍지를 강하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해방 직후부터 미국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열등민족 취급을 받아왔느냐 이거예요. 사회 :한국의 정치체제가 굉장히 심각하게 변화할 수 있는 위기의 국면에 처하게되면 그 때는 정말 미국이 본체를 드러내게 되죠. 그리고 부작위의 행동, 부작위에 의한 영향력도 있잖아요. 가만있으면 그것은 간접적으로 지원한 것이죠.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그러면 마음대로 가서 하는. 이것도 엄연한 지원이죠. 그런데 요즈음 정치, 전략, 군사적인 차원과 함께 경제적으로 한국이 상당히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고, 그 중요성의 의미는 시기시기마다 조금씩 달라진다고 보는데, 어쨌거나 한국이 미국에 종속적인 국가들 가운데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특히 군사전략적인 요충지라는 요소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화의 수준과 이것을 허용할 수 있는 한도가 대단히 낮았다고 봅니다.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마지막으로 광주항쟁의 역사적인 의미와 그밖에 미처 하지 못한 얘기를 짤막하게 해보도록 하지요. 자주·민주·통일의 새 장을 연 광주항쟁의 의미 조 : 먼저 지역성의 문제를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제에서 영남 파시스트 군부에 대한 호남계 민중의 투쟁이란 측면이 다소 부각된 감을 줍니다만, 그것을 주된 측면으로 놓는 것은 지금 현재에 있어서 광주항쟁의 계승발전이란 것과 연관시켜서 볼 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광주항쟁은 한국사회의 전반적 모순의 일반적 표현이고, 민중의 자기해방과정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정치적 진출의 한 표현이다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광주민중항쟁의 일반화를 저해하는 문제로서 '지역감정'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역감정문제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광주항쟁의 올바른 이해와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지역감정이라는 것을 현 군부통치체제의 지배전략과 관련시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87년 대통령선거 이전까지는 파시즘권력이 광주문제 자체를 잠재화시키는 것이 기본전략이었는데 대통령선거에서는 지역문제를 크게 노출시켜 현재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였죠. 즉 그 이전까지의 시기에 있어서는 광주항쟁 자체를 가급적이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없었던 일로 하고 싶었으나, 국민의 정치의식의 상승, 민중운동의 전면적 문제제기에 따라 그 것을 은폐할 수만은 없게 되자, 그것을 현재화시키되 지역적인 문제로 왜소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는 것이죠. 더구나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6월 민주화대투쟁 등으로 대중의 반군부독재투쟁에의 적극적 참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후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반군부독재전선의 통일을 파괴하고 그것을 지역적 대결구조로 혼란시키느냐 하는 것이 군부독재측의 주요한 선거 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선거전략의 교묘한 시행으로 대통령 선거 자체가 반군부독재투쟁의 정점이 되기보다는 지역간 대결의 장으로 전치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조작된 '지역적 대결구도의 현실화'로 인해 광주민중항쟁마저도 지역적 현상인 것처럼 비쳐지게 될 가능성을 갖게 되었고, 군부세력측은 이를 보다 더 가속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지역적 분할구도를 '반군부독재전선의 통일화'란 각도에서 극복해내면서, 광주민중항쟁을 한국민중운동사 속의 일반적 사건으로 위치지우는 것이야말로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 :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잭슨 흑인후보가 시카코를 거점으로 해서 흑인들의 예상외의 열렬한 지지를 획득하자 잭슨을 몰락시키는 방법으로 인종주의 논쟁을 일으켜 유태인과 흑인간의 싸움으로 만들더라고요. 어떻든 지배 세력들이 권력의 유지가 여의치 않을 때 여러 가지로 동원되는 자원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반공이념이었고, 지역감정같은 것도 지배구조의 유지, 온존을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중요한 분열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조희연씨 얘기대로 그 문제를 절대로 지역적인 대결로서 이해해서는 안되고 항상 전체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 물론 초기에는 광주민중항쟁에서의 정치군부의 잔혹성을 폭로하고 우리 운동의 광주항쟁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과제가 관제언론과 국가권력에 의해 강하게 차단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지역차원에 한정해서 일정지역 대중의 경험이라고 선전된다 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외세의 작용, 세계자본주의 규정성이 강력한 데에서는 그것이 어느 일정지역에 한정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봅니다. 광주민중항쟁의 교훈들은 우리 민족민주운동세력 중심으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을 대중차원으로 전국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고립분산적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민중의 구체적 경험들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역사의 자주와 진보를 위해 노력하는 대중의 구체적 실천은 어느 지역이라도 언제라도 '압살'까지 가는 철저한 탄압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 :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그 계승 문제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민중이 주체로 나서는 자주, 민주, 통일운동의 신기원을 여는 계기였다는 점을 단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생적이긴 비조직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는데, 오늘날 그 한계들을 어떻게 돌파해나가느냐, 중간평가 연기 이후에 다소 무기력해질 수 있는 우리의 의식들을 특별히 일으켜세우고 대중화하는 데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중간평가가 연기됨으로써 오히려 중간평가가 실시 됐다면 희석되었을 수도 있는 5월투쟁이 다시 독자적으로 진행될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 : 왜 민중운동이 강력해지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 논의되었는데, 그것은 따지고 보면 지배구조가 왜 강한가 하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4·19, 6월항쟁 등에서 민중이 혁명적 조직으로 정치세력화하지 못한 것은 민중세력이 약한 면도 있지만 국가권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것을 해체시켜 민중세력화를 무산시켜왔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어쨌든 민중운동이 최초로 본격적으로 정치세력화할 수 있는 역량이 꾸려진 것이 비로소 1987년 6월투쟁 이후이고 이제 정치적 공간이 각 계급·계층·부문운동을 통해서 개방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국면에서는 이런 민주화의 낮은 수준에서부터 점점 민중적인 민주화를 추구해나가는 지속적인 민중운동이 계속됨에 따라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반동의 가능성, 이런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제는 군부파쇼적인 군부의 전면적인 정치개입은 상당히 어렵다고 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워낙 보수성이 뿌리깊고 강고하기 때문에 항상 반동적 파쇼적 체제로 회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우리는 최근에 그런 양상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반동화와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운동에 있어서 분파주의, 지역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도, 그나마 미약한 운동세력이 지역적인 분열을 통해서 갈라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민중운동이 여러 가지 방법론상의 문제에 있어서 또는 이념적인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분파주의로 상당히 분열되어 왔던 면이 있는데, 전민련 등 민족민주세력의 정치적 입장은 분파주의의 극복위에서 가능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일동박수). 출전 :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자료은행-5.18관련자료-월간지 5·18관련기사 본문-토론.좌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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