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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3 (화) 08:31
분 류 사전1
ㆍ조회: 920      
[근대] 이토 히로부미 (브리)
이토 히로부미 伊藤博文 Itō Hirobumi 1841. 10. 14 일본 스오 구니[周防國]~1909. 10. 26 중국 만주 하얼빈[哈爾濱].

일본의 원로 정치가(겐로[元老])이자 총리(1885~88, 1892~96, 1898, 1900~01).

본명은 도시스케[利助]. 현대 일본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서, 메이지 헌법(1889)의 초안을 마련하고 양원제 의회(1890)를 수립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1884년 후작작위를 받은 데 이어 1907년 공작이 되었다 (→ 색인 : 메이지 유신).

초기 활동

이토의 아버지는 하급무사 가문에 입양된 사람이었다. 이토는 1603년부터 일본을 다스려온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의 몰락과 일본 내의 서양 세력의 등장으로 빚어진 혼란스런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도쿠가와 바쿠후를 전복시키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메이지 유신(1868)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에서 미미한 역할만을 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와 같은 인물과 알게 되었는데 기도는 메이지 시대 초기의 위대한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 시기 이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과 같은 인물이었다. 메이지 유신 전에도 이토는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조슈[長州]의 지도자들에게 발탁되어 서양의 해군학을 공부하러 영국으로 갔다.

그는 기도뿐만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 초기 정계 거물인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연고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 파견 사절단(1870)과 이와쿠라[岩倉] 사절단(1871~73)의 일원이 되어 해외에서 과세(課稅)· 예산제도·조약개정 등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할 수 있었다.

권력에의 부상

정치가로서 이토의 생애는 1878년 당시 정부 내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오쿠보가 암살되면서 결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토는 오쿠보의 뒤를 이어 내무상으로 승진했으며 이로써 그와 마찬가지로 야심있고 재능있는 정치가인 오쿠마 시게노부[大重信]와 대립하게 되었다. 이토는 잇따른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1881년 오쿠마와 그의 지지자들을 정부에서 축출했으며 정부를 설득하여 헌법을 제정하게 했다. 1889년 천황은 헌법 제정을 선포했고 1890년 의회가 수립되었다.

입헌정부의 수립에 대한 준비작업은 매우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당시 메이지 정부 내에서 가장 비중있는 인물이었던 이토를 비롯한 다른 관료들은 유럽, 특히 독일에서 거의 1년 6개월 동안(1882~83) 당대의 유명한 헌법학자들에게서 헌법을 공부했다. 이토의 가장 위대한 작품인 메이지 헌법은 민권과 의회의 권한 등에 여러가지 제한을 두었기 때문에 독재정치를 영구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당시 메이지 지도자들이 대부분 무사 출신이었고 그들이 직면하고 있었던 대내외적인 문제들을 감안하면 기본권 보장과 의회 수립을 명문화한 이 전례없는 조치는 진보적·계몽적인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토나 다른 메이지 지도자들이 독재정치로 복귀할 구실로 대내외적인 어려운 문제들을 내세운 적이 없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토의 영향력은 1890년대를 통하여 계속되었다. 1890년대 중반에 그는 총리로서 2가지 중대한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첫째는 영국과 조약(1894)을 맺어 1899년까지 일본 내의 영국인에 대한 치외법권을 철폐키로 한 것이었다. 이 조약에 따라 일본 내에 거주하는 영국인들은 1899년 이후 일본법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 조약이 선례가 되어 일본은 다른 서구열강과도 동일한 조약을 맺었다. 둘째 성과는 1895년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거둔 승리였다. 이 2가지 성과는 일본이 비(非)서구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고 동아시아 문제에 있어서 좀더 비중있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토는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그다지 잘 해나가지 못했다. 그는 정당 정치인들이 공평하게 국가의 복지와 운명을 위해 일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겐로들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메이지 헌법상에 보장된 권리에 따라 정당들은 국회 내에서 정부 예산안을 방해할 수 있었다. 이토는 참을성있게 특유의 융통성을 발휘하여 정당들과 타협을 계속해나갔다.

1900년 전까지는 어떠한 내각도 정당의 묵시적 동의 없이 성립되지 못했다. 처음부터 정당들은 정부와 협조해왔었고 그에 대한 대가로 각료직과 정당 발전에 유리한 법률조항의 제정을 보상받았다. 이토는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를 떠나 반(反)정부 정당이었던 헌정당(憲政黨)에 기반을 둔 정우회(政友會)를 구성했다. 정우회는 중의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다수당이 되었으며, 이제 이토는 정부 정책들을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토는 귀족원의 방해책동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당시 귀족원의 보수적인 의원들은 이토가 정당에 관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얄궂게도 애당초 더 무책임해 보이는 중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귀족원을 발족시킨 장본인은 바로 이토 자신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토는 자신의 선거구를 관리해야 하는 정당인과 상대하는 것이 같은 배경과 야망을 가진 소수의 겐로들과 함께 일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불쾌한 일이라는 사실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으며 1903년에 정우회 총재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이토는 겐로직을 이탈했던 대가를 치러야만 했는데, 바로 뒤에 근대 일본군의 창설자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가 강력한 겐로의 지도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토의 업적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그는 고위 관료와 정당인 사이의 협조관계를 바람직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이 두 그룹이 끊임없이 비생산적인 양극화 세력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더욱이 다른 겐로들이 연이어 메이지 헌법에 충실하게 됨으로써 정당의 성장이 불가피해졌다.

암살

이토가 한국에서 통감(統監)으로 보낸 시기는 실패로 끝났다. 그의 온건하고 동정적인 접근방식은 한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으며 일본 내의 다른 지도자들이 주장했던 한국합병 움직임을 막지도 못했다. 결국 1909년 10월 북부 중국의 하얼빈 역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인 안중근(安重根)에게 암살당했는데 자신이 정치적 이유로 암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바보 같은 놈이군!"이었다. 이 말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공평무사한 대한정책(對韓政策)을 추진해왔고 앞으로도 추진할 유일한 일본 지도자인 자신을 암살한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이토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이토가 일본 근대화에 기여한 공로는 의심할 바 없지만 그는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으뜸가는 인물은 아니다. 일본인들은 낭만적인 영웅들, 특히 위대한 군사적 대의를 위해 싸우다 실패한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또한 사생활이 문란했기 때문에, 윤리 교과서에 일본 젊은이의 본보기로 실리지 못했다. 그는 허장성세로도 유명한데, "술이 취하면 나는 미녀의 무릎을 베고 쉰다. 술이 깨면 나는 권력의 고삐를 힘차게 잡아쥔다"고 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으며 그는 오쿠보·오쿠마·야마가타처럼 강력한 의지를 소유한 정치가도 아니었다. 그는 타협자의 역할, 조화로운 해결을 추구한 인물이었다. 그가 이룬 불후의 업적은 실행가능한 헌법체계를 탄생시킨 것으로서, 이로 인해 일본인들은 질서정연하고 점진적이며 평화로운 정치변혁을 꾀할 수 있었고 국민들의 정치참여라는 중요한 과정을 통해 정치의 폭을 더 넓혀나갈 수 있었다.

G. Akita 글

참고문헌

메이지유신의 주역들 : 豊田穰 외, 황성규 역, 시사일본어사, 1984
伊藤博文傳 全3卷 : 伊藤博文追頌會編, 原書房, 1970
明治の宰相 : 杉森久英, 文藝春秋, 1969
伊藤博文(三大宰相列傳) : 中村菊男, 時事通信社, 1958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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