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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9 (목)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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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20      
[국가] 모로코 (한메)
모로코 Morocco

아프리카 북서부에 있는 왕국.

면적 44만 6550㎢. 인구 2391만(1988). 정식 명칭은 모로코왕국(al-Mamlakaal-Mag낙hrib겻ya). 지브롤터해협을 끼고 에스파냐의 대안에 위치한다. 동부·남동부는 알제리, 남서부는 서(西)사하라와 접해 있다. 수도는 라바트.

[자연]

북아프리카를 동서로 달리는 아틀라스산맥은 서고동저(西高東低)로 모로코에서 가장 높다. 그래서 모로코에는 높이 3000m가 넘는 산맥이 있으며 최고봉인 투브칼산은 높이 4165m이다. 이 나라에서는 아틀라스산맥이 지중해연안의 리프산맥,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중부아틀라스산맥, 고아틀라스산맥, 안티아틀라스산맥 등 4개로 나누어진다. 중부아틀라스산맥과 고아틀라스산맥의 북쪽 산록은 메세타고원에서 대서양연안의 평야 쪽으로 점차 낮아진다.

세부강·움에르르비아강·수스강 등이 흘러서 모로코의 대표적인 농경지역을 이루고 있으며, 안티아틀라스산맥의 남쪽 산록은 사하라사막의 일부를 이룬다. 암석사막이 넓어서 산록과 골짜기에는 오아시스가 있다. 또한 아틀라스산맥은 신기조산대이기 때문에 모로코에서는 지진이 일어나는 횟수가 비교적 많다. 일반적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연강수량이 적어지고 기후는 아가디르와 우지다를 연결하는 선을 경계로 크게 양분된다.

이 선의 북쪽은 여름은 건조하지만 겨울에 비가 내리는 지중해성기후이다. 연강수량은 200∼800㎜이지만 리프산맥과 고산지대인 대서양쪽 사면(斜面)에서는 800㎜ 이상에 달하므로 산지를 수원(水源)으로 하는 하천은 비교적 수량(水量)이 풍부하다. 이와는 반대로 남쪽은 연강수량 200㎜ 이하의 건조기후로 스텝기후에서 갑자기 사막기후가 된다.

해안쪽의 기온은 겨울에 온화하고 여름은 비교적 지내기 쉬우며 특히 남부해안은 카나리아해류(한류) 때문에 여름에도 시원하다. 한편 내륙은 한서의 차가 커서 겨울에는 저온, 여름에는 고온이다. 또한 고산의 겨울은 눈에 덮이고 여름에도 눈이 남아 있는 곳이 있는데 봄에는 사하라에서 시로코라고 하는 열풍이 불기 시작하여 산록에서는 푄 현상 때문에 고온이 되는 곳도 있다.

모로코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면 대서양연안지역·아틀라스산맥지역·동부지역·남부 사하라지역 등 크게 4지역으로 나뉜다. 대서양연안지역은 리프산맥·중부아틀라스산맥·고아틀라스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해안평야와 고원으로 이루어졌다. 이 나라에서 가장 풍족한 지역으로 농업·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인구도 집중되어 있다. 해안 쪽에는 수도 라바트를 비롯하여 카사블랑카·사피 등 근대적 도시가 늘어서 있으며 철도와 도로의 정비도 잘 되어 있다.

세부강 유역의 세부평야·라르브평야와 남쪽의 샤위아평야·두칼라평야가 펼쳐져 있고 식민지시대에 유럽인이 다수 이주하였다. 밀·쌀·감귤류·야채 등이 재배된다. 해안평야와 고원의 경계에는 마라케시·메크네스·페스 등의 고도(古都)가 입지하였고, 관광객이 많다. 남쪽의 고원에서는 목축이 행해진다. 아틀라스산맥 지역은 리프·중부아틀라스·고아틀라스·안티아틀라스 등의 여러 산맥들을 포함한다.

베르베르계 주민이 많이 살며 올리브·코르크나무의 재배와 양·염소 등의 목축을 겸하는 전통적인 농목업을 하고 있으나 이러한 생업으로는 농촌생활을 지탱할 수 없어서 도시로의 유출자(流出者)와 돈을 벌기 위하여 외국으로 나가는 노동자가 많다. 물루야강 동쪽의 모로코 동부지역은 주로 높이 500m 이상의 고원이다. 비가 적어서 예전에는 조방(粗放)한 목축과 전통적인 곡물 재배, 제지원료인 알파초(草) 재배가 주요 생업인 빈곤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근래 물루야강의 수리개발이 진행되어 그 주변 평야에서는 관개시설을 이용하여 밀·쌀·과수·야채·사탕수수 등의 근대적인 재배가 행하여지고 있다. 또한 납·아연·망간 등의 광산물의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남부 사하라지역은 고아틀라스산맥의 남쪽 산록 이남의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국토의 약 1/3을 차지하는데 비가 극히 적고 남쪽은 사하라사막의 일부이다.

전반적으로 유목, 조방적인 목축, 대추야자 재배 등의 오아시스농업이 이루어지지만 고아틀라스산맥 남서쪽 기슭의 수스강 하류에서는 근대적인 관개농업에 의하여 과수·야채가 재배된다. 광산물로는 구리·코발트·망간이 생산된다. 주민은 베르베르계가 많고 오아시스에서는 흑인계의 하라틴계족도 산다.

[역사]

북아프리카는 예로부터 주민의 대부분이 베르베르인이었는데 BC11세기∼AD 7세기까지 페니키아·그리스·로마·반달 등 지중해 북쪽의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7세기에 침입한 아랍인은 아랍어와 이슬람교를 가지고 들어와 베르베르인 속에 침투·토착화시켰다. 이러한 시기에 베르베르인 국가가 탄생하고 8세기에는 페스를 수도로 모로코와 서알제리를 판도로 한 이드리스조(789∼926)가 성립하였다.

11∼13세기에 걸쳐 흥성한 무라비트조와 무와히드조(1130∼1269)는 모로코·알제리·튀니지에서 이베리아반도까지를 지배하에 둔 마그레브통일국가를 세웠다. 13세기부터 15세기 초의 마린조(1196∼1465)는 모로코를 지배지역으로 하였으며 이 왕조의 세력범위가 현재 모로코의 영토로 거의 정해졌다. 와타스조가 통치한 15세기 말,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에스파냐·포르투갈은 이어 북아프리카로 침공하여 모로코에서는 아가디르·사피를 점령하였다.

1510년 페스에서 세워진 사드조(1549∼1659)는 에스파냐·포르투갈을 격퇴하였으며 다른 마그레브제국과 달리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도 들어가지 않고 모로코의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16세기에는 현재의 모리타니를 포함한 서(西)수단의 송가이왕국(15세기 중반∼16세기)을 공략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대모로코주의의 근거가 되었다.

1660년 이후에는 알라위조(1631∼현재)가 정권을 잡고 이 왕조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19세기가 되어 유럽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압력이 강해지자 모로코는 1845년 탕헤르시(市)만을 개항하는 쇄국체제로 대응하였으나 곧 무너지고 영국·에스파냐·프랑스와 연이어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맺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재정·군제(軍制)의 근대화, 산업개발 등이 진행되었는데 이것은 재정위기와 내란을 초래하여 오히려 국력은 약해졌다.

3국 중 영국은 후에 관계를 끊고, 모로코사건에 개입한 독일의 야망도 저지되어 최종적으로 모로코는 프랑스·에스파냐에게 지배되었다. 1912년의 페스조약으로 국토의 대부분이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으며, 프랑스-에스파냐조약으로 북부의 리프지방은 에스파냐령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외교상의 분쟁으로 탕헤르는 1923년 국제관리의 자유항(自由港)이 되었다.

식민지화에 대한 저항은 극렬한 양이(攘夷)의 형태가 되었으며 모로코 독립운동 지도자인 A.크림의 리프전쟁(1921∼1926)으로 대표되듯이 보호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말기부터는 당시의 술탄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해졌으나 프랑스는 일시적으로 술탄을 폐위시키고 꼭두각시 술탄을 내세웠다. 그러나 운동은 더욱 격렬해져서 1956년 3월 독립협정이 맺어지고 보호령조약은 폐기되었으며 같은해 4월에는 에스파냐지구, 10월에는 탕헤르지구도 주권을 회복하였다.

독립한 이듬해 1957년에 술탄은 칭호를 국왕(말리크)으로 개칭하고 이름을 S.무하마드 5세라고 정하였으며, 나라의 이름도 모로코왕국으로 개칭하였다. 1961년 왕이 사망하자 황태자 M.하산 2세가 뒤를 이었으며 1962년 입헌군주제 헌법을 제정하였다. 무하마드 5세는 민족독립의 아버지로서 카리스마적인 존재였으나 하산 2세의 치세(治世) 때에는 학생과 노동자의 시위가 자주 발생하였으며 1971년·72년에 연이어 왕을 암살하려는 미수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런 가운데 하산 2세는 1975년 35만 명을 동원하여 에스파냐령 서사하라로 사하라대행진을 하였다. 서사하라는 세계적인 인광석이 있는 곳이라는 점과 대모로코주의 때문에 오랫동안 모로코가 영유(領有)를 주장하고 있었던 곳으로, 대행진 결과 마드리드협정으로 에스파냐군의 철수와 모리타니와의 분할·합병이 결정되었다. 또한 1979년 모리타니의 영유권 포기로 모로코가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서사하라 영유에 따른 위신 고양을 배경으로 왕제(王制)의 위기는 일단 모면하였으나 서사하라의 독립을 요구하는 폴리사리오전선이 1976년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고, 격렬한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공화국에 대한 승인국이 증가하여 1984년 모로코는 아프리카통일기구(OAU)를 탈퇴하였다. 또한 전비(戰費)의 증대와 불황으로 경제상태는 악화되었으며, 1981년·84년에 물가폭동이 일어났다.

[정치·외교·군사]

1962년 입헌군주제의 헌법이 시행된 후 70년·72년에 개정되었지만 기본은 변하지 않고 국왕의 권한은 강화되었다. 국정의 최고 권위는 국왕에게 있고, 국왕은 군림할 뿐 아니라 직접 통치한다. 국왕은 총리·관료·공무원·법관·군간부의 임면(任免)과 칙령만으로 국회해산·법률공포(法律公布)·특별사면을 할 수 있다. 외교에서도 사전에 국회에 자문하지 않으며, 조약에 조인·비준(批准)할 수 있다.

그리고 국교인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국왕은 신도의 장(長)으로서 최고의 권위자이다. 입법기관은 국민의회의 단원제이며, 의원 정수는 306명으로, 206명은 직접선거, 100명은 직업대표로서 간접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정당은 복수정당제이며 헌법동맹(UC), 독립국민연합(RNI), 인민운동, 이스티크랄 등이 있고, 비판세력으로는 인민세력사회주의동맹(USFP), 사회진보당(PPS)이 있다. 행정의 최고기관으로 내각이 있고 총리·각료는 국왕이 임면한다.

지방행정은 35주와 2개의 특별시(카사블랑카·라바트)가 있다. 각 주에는 주의회가 있고 의원은 선거로 선출한다. 사법제도는 프랑스를 모범으로 하여 정비하였으며 지방법원·고등법원·최고법원이 있다. 이 외에도 공무원의 비리를 재판하는 특별법정과 노사분쟁조정을 위한 조정법정(調停法廷)이 있다.

외교는 친미·친서유럽으로 프랑스의 영향이 강하고, 미국과 기지협정을 맺고 있으며 소련과도 문화협정 등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문제에서는 온건파로서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친밀하다. 알제리와는 서사하라 문제와 국경분쟁으로 대립관계에 있으며, 리비아와는 1984년 양국의 연방화 협정을 맺었으나 1986년 이스라엘총리의 내방으로 파기되었다. 또한 서사하라 영유로 아프리카통일기구를 탈퇴하여 제3세계에서는 고립되어 있다.

군대는 아프리카 최강이며, 총병력은 국왕친위대를 포함하여 20만 5000으로, 이 중에서 육군 17만, 해군 7000, 공군 1만 5000이다. 공군은 미라주F謠·F饒 등 119기, 헬리콥터 100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서사하라에 파견되어 있는 병력은 13만이다. 징병제이며, 병역기간은 18개월이다.

[경제]

모로코는 전체적으로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가 많은 농업국이며 인광석을 중심으로 한 풍부한 광산을 가진 광산국이기도 하다. 또한 페스·메크네스·마라케시 등의 고도(古都), 탕헤르·카사블랑카 등의 국제도시, 사하라의 오아시스 등의 관광자원이 풍부한 관광국으로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제구조상에서 농업생산성의 낮음, 1차산품에의 의존, 에너지자원의 결여라고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근래에는 인구 급증에 따른 식량 수입의 증가, 실업자 증가, 석유 위기 이후의 인플레이션, 서사하라 분쟁으로 인한 군비 지출의 영향 등으로 경제는 극히 심각한 상황이다.

1인당국민총생산은 560달러(1985)로 마그레브 3국에서는 가장 낮다. 농림·어업은 취업자 인구의 39.2%(l982)를 차지하는 기간산업(基幹産業)이지만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7%로서 매년 저하되고 있다. 경작이 가능한 경지는 760만ha로 국토의 17%이며 이 중 농경지는 540만ha 정도이다. 토지 소유가 편중되어 있어서 농민은 영세농으로, 소작농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농업 형태는 자급용 곡물재배를 주로 하는 전통적인 농업과 수출용의 과실·야채 재배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인 농업의 2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천수의존(天水依存)의 구식경작방법으로 행해지며 후자는 식민지시대의 유럽인 이주자들이 점유하고 있었던 100만ha에 전개되어 있고 관개시설도 정비되어 있다. 독립 후 유럽인의 농원은 반 정도가 모로코인의 소유로 되었으며 나머지는 국유화되거나 토지를 갖지 못한 농민에게 배분되고 있다. 관개농지는 53만ha이지만 100만ha로 확장할 계획이다.

주요 작물의 생산량은 밀 240만t, 보리 210만t, 감자 57만t, 토마토 39만t, 사탕수수 78만t, 올리브 26만t, 오렌지 10만t이며, 주요 가축은 육우 260만 마리, 젖소 137만 마리, 양 1200만 마리, 염소 450만 마리 등이 있다. 식량자급률(1980)은 곡물 78%, 육류 100%, 유제품 50%이다.

어업은 연안어업만 행해지고 있었으나 대서양안의 먼바다가 세계에서도 몇 안되는 좋은 어장이어서 1970년대부터 외국과 제휴하여 근대어업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정어리·전갱이·고등어 등 연간 47만t(1985)을 어획하며 통조림으로 가공하여 수출한다.

광물자원은 풍부하고, 특히 인광석은 확인 매장량이 100억t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고 생산량이 2155만t(l984)으로 세계 제3위이며 수출량은 세계 제1위이다. 광석의 생산·가공·판매는 모두 왕립 인광석공사가 하고 있으며 후리브가·유수피아·벤구에리르 등이 주요 광산이다. 광석은 직접 서유럽 국가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 가공비율을 높이는 노력도 하고 있다. 인광석 이외에도 납 10만t, 망간 3만 7000t, 철광 15만t, 석탄 90만t(1984) 등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석유가 없어서 탐사는 하고 있지만 획기적인 발견은 없다.

공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7%이다. 중요한 근대공업으로는, 인광석을 가공하는 인산비료공장이 사피에 있으며 시멘트·섬유·식품(올리브유·포도주·설탕 등)·석유정제 등의 공장이 각지에 있다. 철광콤비나트도 나도르에 만들어졌다. 전통공예로서는 피혁·조금(彫金)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연간 발전량은 66억 ㎾/h(1984)로 화력발전이 4%이다. 인광석에서 추출한 우라늄을 연료로 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이 계획되고 있다.

주요 수출품목(1984)은 인광석(24%), 과일·야채·물고기 등의 식료품(23%)과 인산(18%)이고, 수입품목은 원유(24%), 밀 등의 식료품(17%), 기계류(10%)이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프랑스·에스파냐·인도이며 수입국은 프랑스·미국·사우디아라비아이다. 무역수지는 독립 이후 항상 수입초과하여 1975년 이후 적자폭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적자분은 관광수입, 해외근로자의 송금, 외국원조·차관 등으로 보충하고 있다. 연간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들며 관광수입은 4억 2000만 달러(1983) 정도이다.

해외근로자들의 송금은 유럽에 나가 있는 30만 명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대외채무가 1984년 말 약 137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국제수지의 악화는 심각하다. 자동차 보유대수는 86만 대(1983)이다. 철도는 국영이며 주요 도시와 광산지를 연결하고, 화물수송을 주로 한다. 해운은 13개의 항구가 있는데 카사블랑카가 취급량의 70%를 차지한다. 항공은 카사블랑카·탕헤르·라바트 외에도 5개의 국제공항과 30여 개의 지방공항, 정부출자의 왕립모로코항공, 국내선전용의 왕립 국내항공이 있다.

[사회]

주민은 주로 아랍인(65%)과 베르베르인(35%)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르베르인은 마스무다족·산하자족·제나타족의 3부족으로 나뉜다. 이 외에 흑인계와 12만의 유럽인이 있다. 공용어는 아라비아어이지만 프랑스어도 널리 통용되며 북부에서는 에스파냐어도 사용된다. 국민의 대부분은 정통파인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며 소수이지만 그리스도교도·유대교도도 있다.

인구증가율은 3.3%(1980∼84년 평균)로 높아 정부는 가족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평균수명은 남자 56세, 여자 60세이다. 의료시설이 도시에서는 갖추어져 있지만 지방은 아직 불충분하다. 기본적인 학제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5·4·3년이고 대학은 4∼6년이다.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고, 취학률은 남자 97%, 여자 60%(1981)이다. 대학은 라바트의 무하마드5세대학 등 6개 교가 있으며 학생수는 9만이다. 성인 문맹률은 66.9%(1985)이다. 신문은 프랑스어판과 아랍어판의 2가지가 있는데 발행부수는 총 36만 부(1982)이다, 라디오·텔레비전대수는 86만 대(1983)이다.

[한국과의 관계]

1962년 7월 6일 수교하였고, 같은해 9월 상주공관이 설치되었다. 1976년 5월에는 무역협정, 같은해 6월에는 경제기술협력협정을 맺었고 이어 1977년에 문화협정을 맺었다. 교민수 35명, 체류자 51명(1988)이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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