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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23 (목)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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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25      
[현대] 핵무기 (브리)
핵무기 核武器 nuclear weapon

핵분열이나 핵융합에 의해 엄청난 파괴력을 얻는 무기의 총칭.

핵무기 운반수단(미사일)과 핵탄두를 통칭하여 핵무기라고 하며, 핵반응 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원자력 잠수함 등은 핵무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에너지를 방출하는 주된 핵반응 여부에 따라 핵분열무기는 원자폭탄이라 하며, 핵융합무기는 수소폭탄이라고 한다.

핵분열무기의 역사

1930년대에 인공방사능을 발견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당시 주기율표의 마지막 원소인 우라늄(원자번호 92)이 아닌 다른 물질을 발견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것들을 아우세늄(원자번호 93)과 헤스페륨(원자번호 94)이라고 명명했는데 그는 이 발견으로 193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같은 해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이 세 원소들 중 하나가 실제로는 바륨(원자번호 56)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1939년 1월 덴마크의 과학자 닐스 보어는 오스트리아의 망명과학자인 리제 마이트너와 그녀의 조카 오토 프리시와 함께 미국을 방문해 오토 한의 새로운 자료에서 발견한 놀라운 화학과정을 설명했다. 즉 저속 중성자가 우라늄 핵의 분열을 촉진하여 그것을 2조각 내고 그 2조각의 원자번호를 합친 것(바륨과 크립톤)이 우라늄 핵의 원자번호와 같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분열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보어는 이 문제를 가지고 프린스턴대학교의 존 휠러와 실험을 했다.

이들 두 과학자는 우라늄 동위원소인 우라늄-235(235U)가 핵분열을 하고 나머지 다른 동위원소인 238U은 중성자를 흡수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핵분열과정에서 중성자가 생성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평균적으로 분열하는 원자는 2개 이상의 중성자를 생산했다. 그리고 이 중성자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또한 특정상황에서 이 연쇄반응을 가속화시키면 놀라운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즉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원리가 발견된 것이었다 (→ 색인 : 핵연쇄반응).

많은 과학자들은 이런 가공할 무기가 나치 독일에 의해 먼저 개발될 것을 우려했다. 그결과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이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우라늄 자문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뒤 미국에서는 컬럼비아·캘리포니아·시카고 대학교로 이어지면서 핵분열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 계속되었다. 한편 우라늄 자문위원회는 1940년 6월 국방연구위원회의 한 분과로 개편되었고 1941년 12월에는 과학연구개발국(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OSRD)으로 이관되어 과학자인 배너바 부시가 국장으로 보임되었다.

1941년 12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면서 대규모 연구기금의 마련과 핵분열 물질의 확보 노력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1942년 5월에는 가능한 모든 핵무기 생산방법을 동원하겠다는 중대한 결정이 내려졌다. 과학연구개발국 국장인 부시는 생산공장 건설에 미국 육군도 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육군 공병분과 내에 원자폭탄개발계획을 수행하는 특수임무의 관구가 설치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공병단은 뉴욕 시에 새 사무실을 개설하고 그것을 맨해튼 관구(管區)라고 불렀다. 관구의 책임자로는 육군 준장 레슬리 그로브스가 임명되었다 (→ 색인 : 맨해튼 계획).

한편 1942년 12월 2일 페르미는 시카고대학교에서 행한 실험에서 연쇄반응을 성공시켰다. 당시 핵무기에 사용할 핵분열 물질로는 235U와 플루토늄-239(239Pu)가 고려되었다. 235U에 대해서는 천연 우라늄으로부터 분리하여 얻는 방법을 취했는데 1943년 E.O. 로렌스가 창안한 전자분리법이 테네시 주 오크리지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J.R. 다닝과 H.C.유리에 의해 실험에 성공한 기체확산법을 사용하는 거대한 분리공장이 오크리지에서 가동되기 시작했다.

한편 1942년 6월 조직개편의 일환으로 J.R. 오펜하이머가 실제로 핵무기 제조를 담당하는 기구인 프로젝트 와이(Y)의 소장이 되었다. 1942년 11월 16일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 주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구(舊)로스앨러모스 학교 부지를 방문하여 그곳을 로스앨러모스 과학연구소 부지로 결정했다. 1942년 7월 실험에 의해 2가지 희망적인 사항이 발견되었다. 하나는 플루토늄이 235U에 비해 핵분열 때 더 많은 중성자를 방출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성자의 방출시간은 핵분열 물질이 임계량(臨界量 critical mass : 중성자가 원자핵에 충돌하는 비율이 핵 표면으로부터 달아나는 비율보다 높아지는 양)을 초과하는 시간보다 짧다는 것이었다.

1943년 여름과 가을에 집중적으로 연구된 것은 포신 방법의 기폭(起爆) 기술이었다. 임계량 미만의 235U나 239Pu를 총신에 넣고 또다른 임계량 미만의 235U를 향해 발사시켜, 이 두 물질이 합쳐져 임계량을 초과한 뒤 중성자를 사용해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포신방법을 플루토늄에 적용할 때는 문제가 발생했다. 원자로에서 238U로부터 239Pu를 만들어낼 때 239Pu의 일부는 중성자를 흡수해 240Pu이 되었다. 이 물질은 자동적으로 분열하여 중성자를 생산했다. 일부 중성자는 플루토늄 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가 임계량을 초과하기 전에 이미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플루토늄이 너무 일찍 폭발해 에너지 방출이 적었던 것이다. 포신방법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우라늄이 총신에서 빠져나오는 속도를 가속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내파(implosion)방법이 고안되었다. 이것은 폭탄의 중심부에 있는 239Pu(235U)가 밀도가 작은 해면상태로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싼 폭약이 일제히 폭발하면 압축되었던 밀도가 급격히 커져 임계량을 초과하는 상태가 되어 폭발하는 방법이다.

1944년에 들어와 플루토늄을 핵무기에 사용하려면 내파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1944년에 맨해튼 계획은 1년에 10억 달러를 소비했다. 그러나 기체확산공장도 완공되지 않았고 워싱턴 핸퍼드에 준공된 플루토늄 원자로 공장도 1944년에 1번 가동되었을 뿐 즉시 가동이 중단되었다. 플루토늄이 너무 일찍 중성자를 흡수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핵무기의 개발이 지연되자 유럽 전선에 투입될 예정이었던 핵무기가 일본으로 그 목표를 이동하게 되었다.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 대통령 사후 그 뒤를 이은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장관 헨리 스팀슨으로부터 원자폭탄 개발상황에 대해 간단한 브리핑을 받았다. 그후 4월 25일 스팀슨은 그로브스의 도움을 받아가며 트루먼 대통령에게 더욱 자세하게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235U 포신폭발방법은 동결되어 있는 상태이며, 235U의 충분한 물량은 1945년 8월 1일쯤에나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보고였다. 내파방식에 필요한 239Pu의 물량은 1945년 7월초 실험을 해볼 수 있을 정도로 축적되어 있다는 점도 설명했고, 8월에는 2차실험이 예정되어 있음도 보고되었다.

원자폭탄을 싣고 가기 위한 수송기로는 여러 대의 B-29기가 개조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남쪽으로 2,400km 떨어진 지점 마리아나 제도의 티니안에 보조시설이 만들어졌다. 플루토늄 무기의 실험은 ' 트리니티'라고 명명되었다. 이 실험은 뉴멕시코 주의 중남부지역에 있는 앨러머고도 폭파실험장에서 실시되었다. 에너지 방출량은 TNT 1,000t 또는 4만 5,000t으로 추정되었으나 실제 방출량은 2만 1,000t이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현지시각) 에놀라 게이라고 명명된 B-29 폭격기가 일본 히로시마[廣島] 상공으로 날아가 실험되지 않은 포신형 235U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투하했다.

이 폭탄은 살상효과를 높이기 위해 지상 680m의 공중에서 폭발되었다. 히로시마의 2/3가량이 파괴되었고 주민 35만 명 중 14만 명이 죽었다. 239Pu의 내파방식에 의한 원자폭탄(별명은 패트 맨)은 1945년 8월 11일 고쿠라[小倉]에 투하될 예정이었고, 8월말이나 9월초에 사용될 3번째의 원자폭탄이 미국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악천후를 피하기 위해 2번째 폭탄은 투하일이 2일 앞당겨졌다.

1945년 8월 9일 복스 카라고 명명된 B-29기가 목표지역인 고쿠라 상공을 10여 분 맴돌았으나 정확한 투하지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비행기는 예비 공격목표인 나가사키[長崎]로 날아가 오전 11시 2분(현지시각)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그 폭탄은 500m 상공에서 폭발했으며 파괴력은 21kt으로 추정되었다. 나가사키 시의 절반가량이 파괴되었고 주민 27만 명 중 7만 명이 죽었다.

원자폭탄의 구조

235U나 239Pu의 원자핵에 중성자가 충돌하면 핵은 분열하여 중성자를 방출한다. 1개의 핵분열로부터 방출된 중성자가 1개 이상의 별도의 핵을 공격해 분열반응을 일으키면 이 반응은 계속된다. 우라늄을 농축시켜 235U의 비율을 높이면 중성자가 235U의 원자핵에 충돌하는 확률이 높아진다. 또 전체의 양이 증가하면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에 중성자가 핵에 충돌하는 비율이 표면으로부터 달아나는 비율보다 높아지고, 이 비율이 일정수치 이상이 되면 분열반응은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이 일정수치를 임계량이라고 하는데 이 임계량은 235U의 순도와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작아진다.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임계량을 초과해야 하는데 포신식과 내파식의 2가지 방법이 있다. 미국에서는 대형 및 소형 원자폭탄이 1940년대말부터 1950년대초에 개발되어 1950년대 중반에는 실용화되었다. 소련에서도 거의 같은 형태의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대형 원자폭탄의 생산에 더 역점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색인 : 우라늄 235, 플루토늄 239).

수소폭탄의 개발

1949년 8월 소련이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원자폭탄 독점시대는 끝났다. 그결과 미국은 소련이 수소폭탄의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핵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소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원자폭탄이 235U나 239Pu 등 무거운 원소의 원자핵이 분열할 때 방출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인 데 비해 수소폭탄은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의 동위원소(중수소나 삼중수소)의 원자핵이 융합해 헬륨의 원자핵이 되는 순간 발생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반응은 수천 만℃에 달하는 고온에서 일어나는데 이같은 고온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자폭탄의 폭발력을 이용한다. 이때문에 수소폭탄은 핵융합폭탄 또는 열핵폭탄이라고도 한다 (→ 색인 : 핵융합).

1954년 3월 1일 미국은 비키니 환초에서 수소폭탄실험을 실시했는데, 핵융합 물질로 중수소화리튬을 사용했고 그 주위를 천연 우라늄의 댐퍼로 둘러쌌다. 이 실험에 의해 핵융합 반응으로부터 발생하는 높은 에너지의 중성자가 비분열성의 238U에 분열반응을 일으켜 큰 폭발력이 비교적 안정되게 얻어질 수 있음이 판명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수소폭탄에는 기폭용 원자폭탄의 핵분열반응 외에 다량의 댐퍼용 우라늄의 핵분열반응도 포함되는데 분열반응에 의해 방출되는 에너지는 전체의 50% 이상이다. 이러한 수소폭탄은 기폭용 원자폭탄의 분열반응(fission), 중수소의 융합반응(fusion), 댐퍼 부분의 분열반응 등 모두 3단계에 걸쳐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3F폭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소폭탄의 또다른 변형으로는 중성자탄을 들 수 있다. 이 폭탄은 방사선 강화탄두(强化彈頭)라고도 한다. 보통의 수소폭탄이 갖고 있는 폭풍과 열선(熱線)의 효과를 억제하여 즉발(卽發) 방사선, 특히 중성자선의 효과를 높여 잔류방사능을 감소시킨 핵무기이다. 중성자탄은 냉전시대 바르샤바 조약군의 기갑부대가 유럽을 침공할 경우를 예상해 미국이 개발한 무기이다. 미국은 현재 랜스 미사일(전술 미사일)과 8인치 포용 탄두를 실전배치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1kt 정도의 위력을 갖추고 있다. 소련과 프랑스도 제조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전배치는 불분명하다. 중성자탄은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소형 수소폭탄으로서 특히 중성자의 방출을 증대시킨 구조가 그 특징이다 (→ 색인 : 전술무기체제).

지금까지 실험된 수소폭탄으로서 위력이 가장 큰 것은 1961년 10월 30일에 실험된 소련의 58Mt급이다. 이것은 댐퍼 부분에 우라늄을 사용하지 않고 납을 쓴 고급 폭탄이다. 1963년 부분적인 핵실험금지조약이 맺어지기까지 미국과 소련 두 나라는 고공·공중·지표·지하·수중에서 각종 실험을 하여 수소폭탄의 개발과 성능 향상에 커다란 노력을 경주했다. 그러나 핵실험금지조약이 발효되고 난 이후 양국은 지하실험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1971년 11월 6일 알류샨 열도에서 최대의 지하폭발(5Mt)을 실험했다. 현재 실용화되어 있는 무기의 폭발력을 살펴보면 소형의 경우 TNT 화약 수십t에 상당하는 규모부터 대형은 25Mt에 이른다. 당초에는 대형이 수십kt 규모였으나 지금은 Mt급이 되어야 대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전배치를 위한 수십kt 규모의 수소폭탄도 제조된다. 이 무기는 운반형태에 따라 폭탄, 미사일, 로켓 탄두, 포탄, 지뢰, 기뢰, 어뢰두부 등 육·해·공의 모든 무기에 장착되어 사용될 수 있다 (→ 색인 : 다핵탄두).

핵폭발의 효과

핵이 폭발하면 충격파(폭풍), 열선, 방사선, 전자 펄스(electromagnetic pulse/EMP) 등이 발생하는데 그 효과는 지표면과 폭발점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통상 핵폭발 형식은 고공폭발·공중폭발·지표폭발·지하폭발·수중폭발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고공폭발은 3만m 이상의 고공에서 폭발하는 것으로 이 높이에서는 공기의 밀도가 낮아 폭풍효과가 약하다. 그러나 광범위한 전자 펄스와 오로라 효과를 일으킨다. 공중폭발은 3만m 이하에서의 폭발로 불덩어리가 지표에 직접 닿지 않는 경우이다.

지표폭발은 실제의 폭발점이 지상이거나 또는 지상에 가까운 상공으로 불덩어리가 지표에 닿는 거리에서의 폭발이다. 이 경우 대량의 지표물질이 방사능 구름에 휩싸이면서 상승하기 때문에 방사능 낙하물에 오염되는 문제외에 폭풍효과도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 지하폭발과 수중폭발은 땅이나 바다 밑에서 폭발하는 것으로 그 심도가 깊을 경우 폭발의 충격 에너지가 대부분 물 밑이나 지표면 밑에서 흡수된다. 그러나 폭발심도가 얕을 경우 에너지의 일부가 지표면이나 수면 위로 흘러나와 폭풍을 만들며, 열선·방사선의 일부가 지상에 나타나 비교적 단거리의 대기 중에 흡수된다. 이렇게 되면 국지적으로 강한 잔류 방사능이 남게 된다.

불덩어리(fireball)

핵폭발은 폭약과 비교해볼 때 소량의 핵분열물질 또는 핵융합물질이 매우 짧은 시간에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높은 온도에서 이 에너지가 방출된다. 통상 폭약의 경우는 최고온도가 5,000K(켈빈)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핵폭발시에는 수천 만K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이것이 방출 에너지의 배분을 보통 폭약과는 다르게 하는 점이다.

핵폭발 후 1ns(나노초, 1/109초) 이내에 초고온화된 핵무기 잔재는 주로 X선의 형태로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공중폭발시 이 X선은 1m 이내의 공기에 흡수되어 극도로 뜨거운 공기와 기화된 잔재가 밝게 빛나는 공 모양의 불덩어리를 형성한다. 불덩어리는 방사선과 열선을 계속 방출하고 급속히 팽창한 뒤 서서히 냉각되면서 상승하는데 이때 공기의 저항을 받아 도넛형으로 변형되어 버섯 형태의 방사성 구름(mushroom cloud)을 형성한다.

불덩어리의 내부에서는 고온에 의해 생긴 기체의 급팽창으로부터 충격파가 발생하여 바깥쪽으로 진행한다. 이어 불덩어리는 충격파면의 진행과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팽창하지만 불덩어리의 온도가 3,000℃까지 떨어지면 충격파면은 불덩어리로부터 이탈하여 강력한 폭풍이 되면서 바깥쪽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20kt의 핵폭발시 이같은 이탈은 핵폭발 후 약 0.011초 뒤에 일어난다. 충격파는 이탈 직전 주위의 공기에 충격가열을 주면서 8,000℃ 이상의 고온이 된다. 이같은 고온의 공기층은 가시광선을 투과하지 않기 때문에 불덩어리는 일시적으로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열선

불덩어리는 자외선·가시광선·적외선의 파장영역을 갖는 전자파를 방출한다. 이것을 열선이라고 하는데 광범위한 지역에 소이(燒夷)효과를 일으킨다. 특히 위력이 큰 핵폭발의 경우 이 열선에 의한 피해범위는 그 어떤 것보다 크다. 열선으로 방출되는 핵 에너지는 핵폭발 전 에너지의 약 35%에 해당한다. 지상에 도달하는 열선 에너지의 비율은 폭발점부터 지상까지의 거리 및 대기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공중폭발의 경우 불덩어리가 일시적으로 외부에서 관찰되지 않을 때 열선에는 2개의 펄스가 생긴다.

제1열선 펄스는 1Mt의 폭발시 1/10초 동안 짧게 파동치는데 이때 열선의 대부분은 자외선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이 펄스는 전(全)열선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화상(火傷)의 측면에서 본다면 방출 에너지는 공기층에 흡수되기 쉬운 자외선 성분이기 때문에 안구(眼球)에 피해를 입히는 정도이며, 피부에 화상을 일으키는 경우는 적다.

제2열선 펄스는 수초 간 계속되는데 1Mt일 경우는 10초, 10Mt일 때는 20초 이상이다. 이때 전열선 에너지의 99%가 방출된다. 지표에 도달하는 열선의 파장은 적외영역에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인다. 이 제2열선 펄스는 생체의 피부에 화상을 일으키고 목재·섬유제품·종이 등의 가연성 유기물을 태워 탄화시키며 때로는 발화시키기도 한다. 1Mt의 폭발시 19km 떨어진 지점에서 열선에 노출되어도 피부는 섬광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폭풍

공중과 지표에서 폭발이 일어날 때 입는 물적 피해는 대부분 폭풍에 기인하는 것이다. 불덩어리의 표면으로부터 이탈한 충격파는 급속히 바깥쪽으로 넓어지면서 고도로 압축된 공기의 벽과 같이 작용한다. 350㎏f/㎥ 과압(過壓) 이상의 폭풍에는 지상의 구조물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폭풍파가 지표면에 부딪치는 순간 반사파가 발생하여 직접파와 반사파가 중합해 마하 효과가 발생하며, 일반적으로 직접파의 2배에 해당하는 과압을 나타내는 마하 축을 형성한다.

마하 축의 통과와 더불어 지상의 건물은 지면과 평행한 폭풍의 충격을 받게 된다. 그후 불덩어리의 급속한 상승에 따라 강한 상승기류가 생기기 때문에 폭풍과 역방향으로 부는 지상풍(地上風)이 일어나게 된다. 이 지상풍의 속도는 폭심(爆心) 지점이 100㎧ 정도 되기 때문에 대단히 큰 피해를 가져온다. 수중폭발의 경우는 바다의 깊이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물 속에서의 폭압(爆壓) 전파는 양호하여 잠수함 등에 대한 파괴효과가 높다.

방사선

핵폭발은 방사선을 수반하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다. 통상의 핵폭탄에서는 폭발 에너지의 약 15%가 방사선의 형태로 방출된다. 이중 5%가 폭발 후 1분 이내에 발생하는 초기방사선이고 나머지 10%는 잔류방사선이다. 중성자폭탄의 경우에는 폭발 에너지의 약 35%가 방사선으로 방출되며, 이중 30%가 초기방사선이다. 초기방사선은 중성자와 알파선·베타선·감마선으로 되어 있는데 알파선과 베타선은 투과력이 약하기 때문에 공중폭발의 경우 지상에 도달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성자와 감마선만이 고려의 대상이 된다. 이들 방사선이 생체에 흡수되면 방사선 장애를 일으킨다. 잔류방사선은 불덩어리의 급속한 상승에 의해 형성된 방사능 구름이 지표에 내리뿌리는 방사능낙진(fallout), 또는 죽음의 재에 의해 방사된다. 방사능낙진을 형성하는 것은 핵분열 생성물, 미반응의 핵분열물질 및 핵폭발시의 중성자 등이 일으키는 유도방사능을 포함하는 물질이다. 미반응의 핵분열물질로부터 나오는 알파선을 빼면 베타선과 감마선이 잔류방사선이 된다.

방사능낙진은 폭발 후 1일 이내에 강하하는 초기 방사능낙진과 그 이후에 강하하는 후기 강하물로 나누어진다. 지상폭발의 경우는 초기 방사능낙진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고공폭발의 경우에는 후기 방사성 강하물이 더 큰 파급효과를 미친다. 핵분열 생성물은 36종의 원소에 300종 이상의 동위원소를 포함하는 1kt의 폭발당 약 3×1010Ci(퀴리)의 방사능이 된다. 이 방사능 중 수명이 긴 세슘-137(137Ce : 반감기 약 30년)이나 스트론튬-90(90Sr : 반감기 약 28년) 등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표에 남아 있다. 방사성 잔류물이 갖고 있는 외부조사(外部照射)의 효과보다는 오히려 방사성 물질이 소화기, 호흡기, 피부의 상처 등을 통해 체내에 들어가 체내의 기관에 침착하여 방사하는 내부조사(內部照射)의 영향이 중대한 위험이 되고 있다.

전자 펄스

핵폭발에 의해 생기는 방사선은 대기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수kHz나 수백MHz에 이르는 광역대의 주파수 성분을 가진 순간적인 전자파의 펄스를 발생시킨다. 이 전자 펄스는 핵폭발과 거의 동시에 최대값에 달하여 그후 천천히 감소한다. 일반적으로 전자장의 변화는 도체 내에 유도기전압(誘導起電壓)을 일으켜 도체 내에는 과도전류가 흐르게 된다. 특히 전자회로에 순간적으로 과대한 전류가 흐르게 되어 전자장치가 손상된다.

그리고 이 효과는 폭풍과 열선이 미치지 않는 원격지에까지 순간적으로 미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1962년 존스턴 섬에서 미국의 고도 핵폭발실험이 실행되는 순간 1,300km 떨어져 있는 하와이 오하우 섬의 가로등 30개가 일제히 꺼져 호놀룰루 시내에 준비된 수백 개의 도난경보가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고, 전선의 전류차단기가 가동되는 사고가 발생했던 일이 있다.

전자 펄스의 발생은 핵반응에 의한 초기 방사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초기 방사선과 그 전리(電離)작용이 폭발 주변의 공기를 이온화시켜 전리영역을 형성한다. 이것이 완전한 공 모양의 대칭형으로 형성된다면 전자 펄스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지표폭발 때 전리영역은 거의 반구형으로 형성되어 전체적으로 전자류가 위를 향하게 되는데 이 전자류에 대항하여 강한 좌회전의 자장이 발생한다. 이때문에 폭발지점 가까운 곳에는 강한 전자 펄스(수백 내지 수천kV/m)가 발생한다. 중간고도의 폭발 때는 고도에 의한 공기밀도의 차이와, 핵폭발의 방향 등에 따라 일정하지 않지만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수분의 분포 차이 때문에 전리영역은 구형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자 펄스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지상에는 아주 약한 전자 펄스밖에 도달하지 않는다.

전자 펄스의 영향이 아주 큰 것은 높은 고도 폭발의 경우이다. 이 경우 하강하는 최초방사선은 지구를 감싸고 있는 공기층의 밀도가 두터워지는 고도에 이르면, 볼록 렌즈형의 넓은 전리영역을 형성한다. 따라서 Mt급의 폭발시 지(수)평선의 범위까지 전자 펄스의 효과가 미치게 된다. 전자 펄스 중 주파수대가 낮은 것에는 지(수)평선을 넘어서 번져나가는 것도 있다. 만약 미국 상공 320km 지점에서 Mt 급의 핵폭발이 일어난다면 미국 전역과 캐나다 및 멕시코의 일부에까지 강한 전자 펄스의 충격이 미치게 될 것이다. 탄도 미사일 시스템, 위성 시스템, 항공기 시스템 등 많은 종류의 무기가 전자기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전자 펄스는 큰 위협이 된다. 전자 펄스에 대한 대비책으로는 각종 무기 시스템에 전자 펄스의 전장이 미치기 않도록 전기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제일이다. 또 광섬유는 전자 펄스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밖의 효과

핵폭발에 의해 발생한 방사선이 대기를 전리시켜 전자밀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고공폭발의 경우 지자기(地磁氣)의 영향으로 인공 오로라가 발생한다. 또 공기 중의 분자·원자 등에 자극을 가해 대기의 형광(螢光)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통신이나 레이더에 사용되는 파장 1㎜ 이상의 전자파는 대기의 전리상태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기 중의 핵폭발은 전자파의 전파(傳播)에 여러 가지 교란현상을 일으킨다. 단파통신의 경우 65km의 고도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면 여러 시간에 걸쳐 통신이 완전히 단절되는 블랙아웃(blackout)이 일어난다.

각국의 핵개발

소련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소련은 원자폭탄연구를 진행시켜왔다. 1940년 6월 소련 과학원은 우라늄 위원회를 설치하여 원자폭탄문제를 연구했다. 그러나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연구는 중단되었다. 1943년 스탈린은 연구의 재개를 지시했고 1944년말에는 상당수준까지 진행되었다. 1945년 8월에는 비밀경찰의 총수 베리아를 수반으로 하는 연구 팀이 발족되었다. 소련의 제1회 실험은 1949년 8월 29일에 실시되었으며 위력은 10~20kt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53년 8월 12일에는 200~400kt의 수소폭탄실험에 성공했다. 1961년에는 58Mt 급의 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제2차 세계대전중 영국은 원자폭탄의 연구에 착수했으나 전쟁상황의 형편상 자국에서의 개발을 단념하고 미국과 협력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연구를 재개하여 1945년 10월 하웰에 원자력연구소가 설치되었고, 1946년 1월에는 핵분열성물질 생산이 결정되어 그 다음해인 1947년 9월 공장의 건설에 착수했다. 이렇게 하여 플루토늄 생산설비, 농축 우라늄 설비, 무기조립공장이 건설되었다. 윈즈켈의 플루토늄 생산원자로는 1950년 7월 가동되었다.

여기에서 생산된 플루토늄을 가지고 1952년 10월 오스트레일리아의 몬테페로 섬에서 제1회 실험에 성공했고, 1957년 5월에는 남태평양의 크리스마스 섬에서 Mt급의 수소폭탄 공중투하 폭발실험에 성공했다. 그후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이 개정되어 수소폭탄의 소형 경량화 기술을 도입하여 폴라리스(잠수함 발사의 전략 탄도 미사일)용 탄두를 자체 개발했다. 이렇게 하여 영국의 핵전략 억지력의 최종적 관리권은 영국정부가 갖게 되었다.

프랑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 직후 원자력위원회를 설치했고, 1947년 연구용 원자로의 건조에 착수하여 1948년 12월에 가동시켰다. 그러나 원자력 이용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은 1953~57년의 5개년계획 이후의 일이다. 이 계획 중에 마르쿠르 지역에 플루토늄 생산로 건설이 들어 있어 1호로(爐)는 1955년, 2, 3호로는 1958년에 완성되었고, 그결과 1960년 2월 사하라 사막의 실험장에서 제1회 원자폭탄실험이 행해졌다.

원료는 마르쿠르 공장에서 생산된 플루토늄으로서 폭발위력은 TNT 화약 60~70kt에 상당하는 것이었다. 또 1960년까지의 소요경비는 2억 4,000만~3억 6,000만 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1960년부터 피에르라트에 농축 우라늄 공장을 건설하여 1964년부터 저농축 우라늄의 생산을 개시했고 1967년부터 수준급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다. 핵 실험은 당초 사하라 사막에서 행해졌으나 그뒤 300kt 급의 열핵물질을 포함하는 강화원자폭탄에 집중하여 1966년 8월에는 2Mt급의 열핵장치의 실험에 성공했다.

중국

중국은 1955년 소련과 원자력 평화이용에 관한 협정을 맺어 원자력 개발 이용에 나섰다. 중국은 1957~59년에는 국방신기술에 관한 중소협정이 체결되어(1959 파기)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핵무기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소련으로부터 흡수할 수 있었다. 중소대립의 격화와 함께 독자적 개발에 나선 중국은 1964년에 란저우[蘭州]에 우라늄 농축공장을 완성했다. 1964년 10월에는 제1회 원자폭탄실험에 성공했고 1967년 6월에는 3Mt급의 수소폭탄실험에 성공했다. 또 1966년 10월에는 미사일을 사용한 수소폭탄(실험위력 20kt으로 추정)에도 성공했다.

기타 국가

1974년 5월 18일 인도가 포코란 근처의 라자스탄 사막에서 원자폭탄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폭발력은 15kt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는 실험만으로 만족했고 그이후 실전배치의 핵무기는 제조하지 않았다. 파키스탄도 평화용의 핵시설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여러 나라들도 핵무기를 제조했거나 단시일 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수소폭탄을 비롯해 200여 기의 핵무기를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외무장관은 자국이 원하기만 한다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아르헨티나·브라질·한국·타이완 등이 핵무기를 개발·생산할 수 있는 과학적·산업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적인 개발계획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한편 북한은 부분적인 핵시설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핵전략).

핵무기의 규제

이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국제연합(UN)에서 계속적으로 심의되어왔다. 그러나 1950년대에는 아무런 성과가 없다가 구체적 성과가 드러난 것은 1963년 이후 미·소 공존체제가 성립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이 체제에 의해 얻게 된 것은 핵무기의 실험제한, 핵확산방지 등 부분적인 조치로서 핵군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소 간에 결정된 사항은 3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미·소 양국간의 결정사항으로서 핵전쟁의 회피 및 핵군비경쟁의 상호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솔트(SALT)-1(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상)의 2가지 결정사항(1972)과 솔트-2(1979, 미발효)가 그것이다. 미·소는 또 1981년에는 유럽 중거리핵전력제한협상을, 또 1982년에는 전략무기삭감교섭(START)을 개시했다. 2번째 결정사항은 핵무기 보유국 증가방지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핵확산금지조약(1968)이 대표적이며 그외에 부분적 핵실험금지조약(1963), 라틴아메리카 핵무기금지조약(통칭 토라테로르코 조약, 1967) 등도 조인되었다.

3번째는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기가 어려운 특정 공간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이다. 남극조약(1959), 천체에 핵무기를 설치하고 지구 주위의 궤도에 핵무기를 탑재한 물체를 쏘아올리는 것을 금지하는 우주천체조약(1967), 해저군사이용 금지조약(1971)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색인 : 국제관계).

한편 민간 베이스에서도 핵무기규제운동이 전개되어왔다. 1948년 8월 폴란드의 브로추아프에서 열린 '평화를 지키는 세계지식인 회의'는 민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원자폭탄의 사용금지를 의결한 것이었다. 1950년 3월 평화옹호 세계대회 위원회는 원자무기의 무조건금지를 요구하는 스톡홀름 호소를 발표해 전세계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1976년 미국이 중성자탄을 유럽에 배치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것을 계기로 하여 네덜란드에서는 새로운 핵무기반대 대중운동이 시작되었고 이것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다. 1981년 가을 핵전쟁을 실감하고 있던 유럽 시민들은 핵무기 반대, 핵전쟁억지의 대규모 대중운동을 벌였다. 또한 1982년의 가을에는 뉴욕 시에서 100만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대규모 반핵 대중운동이 벌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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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pendence and Deterrence:Britain and Atomic Energy, 1945-1952, 2 vol. : Margaret Gowing, 1974
The German Atomic Bomb : David Irving, 1968(reprinted 1983)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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