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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9 (목) 15:18
분 류 사전2
ㆍ조회: 1011      
[국가] 리비아 (브리)
리비아 Libya 공식 이름은 리비아 사회주의 인민 아랍국(al-Jamāhīrīyah al-'Arabīyah al-Lībīyah ash-Sha'bīyah al-Ishtirākyah / Socialist People's Libyan Arab Jamahiriya). 옛 이름은 Libyan Arab Republic, People's Socialist Libyan Arab Republic.

지중해 연안에 있는 북아프리카의 국가.

지도

리비아 지도. 브리태니카백과사전 지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4번째로 넓은 국가이다. 사실상의 수도는 트리폴리이며 법률상 수도는 방가지이다. 국토 대부분이 사하라(사막)의 건조한 불모지이며, 남북으로 1,320km, 동서로 1,449km 가량 뻗어 있다. 튀니지와 알제리(서쪽), 니제르와 차드(남쪽), 수단(남동쪽), 이집트(동쪽), 지중해(북쪽)와 각각 접해 있다. 면적 1,757,000㎢, 인구 5,369,000(2002).

자연환경

해발 200∼600m 높이에 있는 리비아는 광대한 북아프리카 고원의 북쪽 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3개의 자연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리비아는 2개의 작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역이 사하라 고원이다. 그 2부분이란 북서쪽 모퉁이의 트리폴리타니아와 북동쪽의 키레나이카이다. 트리폴리타니아는 잘 개발된 해안 오아시스와 3각형 모양의 게파라 평원(5,016㎢), 그리고 320km 가량 펼쳐진 자발나푸사(해발 610∼915m) 석회암고원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은 지역이다.

이곳은 리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농경지이며 인구밀도가 가장 높다. 키레나이카의 알마르지 해안평야는 아크다르 산맥(식물분포 때문에 '푸른 산'이라고도 불림)으로 이어지며, 이는 남쪽으로 가면서 다시 반사막지대의 초원과 만난다. 광대한 사하라 고원은 주로 황량한 모습을 여기저기 드러낸 바위와 바람에 실려온 모래로 되어 있으며, 군데군데 오아시스가 있다. 남서부에 있는 페잔 지역의 사구(砂丘)는 높이가 수백m, 길이가 몇 백km에 이른다.

북부지방의 수르트 분지를 중심으로 리비아의 주요유전(油田)들이 있으며, 남부 티베스티 산지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2,300m 높이의 베테 봉우리가 솟아 있다.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하천은 없지만 광대한 면적의 지하수 층에서 솟아오르는 자분정(自噴井)과 샘들을 통해 전국토의 60% 정도의 물을 공급한다.

리비아의 건조한 사막기후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완화된다. 1월평균기온(겨울)은 11(북부)∼17℃(남부)이며, 7월평균기온(여름)은 28∼38℃이다. 페잔 지방의 사바는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에 속한다. 강수량은 북부 구릉지 400∼500㎜에서 남부 127㎜ 이하, 그리고 리비아 사막의 25㎜에 이르며 한 해나 두 해 연속되는 가뭄이 5, 6년마다 찾아온다.

자연식생은 거의 볼 수 없으며, 사막설치류·하이에나·여우·재칼·가젤·들고양이 등과 같은 야생동물이 있고 독수리와 매 종류가 흔하다. 주요광물자원은 석유로 1980년대 중반에 그 매장량이 30억 3,400만t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이자 세계 10위의 석유 보유국이며, 석유와 관련된 천연 가스 이외에 나트론(소다석)·칼륨·석고·철광석·갈탄 등의 광물도 매장되어 있다.

국민

리비아의 연간 인구증가율은 1980년대초 평균 3.8%였다. 출생률은 인구 1,000명당 46명으로 비교적 높지만 사망률은 의료혜택의 개선에 힘입어 1972년 인구 1,000명당 13명에서 1980∼85년 11.2명으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유아 사망률은 국가 전체로 볼 때 출생아 1,000명당 98명이지만 농촌지역은 1,000명당 300명으로 매우 높다. 인구의 거의 절반이 15세 이하이며 인구조사 결과 여성이 전인구의 4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여아의 경우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아랍국의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족, 즉 '카빌라'(qabilah)는 여전히 리비아 사회조직의 기본 단위이며, 주요인종집단이었던 베르베르족은 대체로 아랍 문화에 동화되었다. 아랍어가 공용어이며, 베르베르족 가운데 소수가 그들 고유의 함어(語)를 쓰지만 대개는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한다. 그밖에 이탈리아인·그리스인·흑인·유대인 등이 있으며 국민 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고 2.5%가 그리스도교도이다. 지중해 연안의 도시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도시 인구의 2/3 가량이 트리폴리와 방가지에 산다. 그러나 사막 지역이 매우 넓게 분포하고 있어 전체 인구밀도는 ㎢당 2명에 불과하다.

경제

리비아는 주로 석유의 생산과 수출에 바탕을 둔 중앙계획경제로, 정부가 거의 모든 경제부문을 통제한다. 숙련공이 부족하여 유전작업과 국가 기간산업 개발을 위해 외국에서 기술자를 데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1983년 국민총생산(GNP)은 251억 달러이며, 1인당 GNP는 7,500달러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 농업은 GNP의 3%에도 못미치며, 전체 노동인구의 17% 정도가 이에 종사한다.

주산물인 보리의 수확량이 해마다 차이를 보여 농업부문에서 자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보리 외에 밀·담배·올리브(북부)·대추야자·무화과(오아시스)·포도(구릉지) 등도 재배하고 있다. 정부는 토지개간과 수경(水耕) 농법을 장려하여 수용(收用) 토지를 농민에게 권장가격으로 팔고 있다. 또한 종자·비료·농기구 등을 외상으로 제공하고 관개사업으로 농지를 크게 넓혔다.

국토의 약 8%가 목초지로 북부에서는 양과 염소사육이 중시되며, 소는 영국에서 수입해오고 있다. 근해어업과 해면어업은 그리스·이탈리아·몰타 선박들이 도맡고 있다. 석유 및 천연 가스의 생산과 수출은 GN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노동인구의 2%만이 이에 종사하는데, 이 생산과 수출로 중앙은행은 외국환과 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1973년 국내에 있는 대부분의 석유회사 자산(資産)을 국유화한 뒤 석유생산에 따른 이윤을 통제하면서 외국 회사의 석유 탐사 및 개발을 권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자본으로 정유소를 건설했으며 자국의 석유수송을 위해 일본·유고슬라비아·스웨덴에서 유조선들을 사들였다. 철광석 채광 및 시멘트 생산도 역시 정부가 통제한다.

정부는 제조업 분야에 외국회사의 투자를 장려하고 있는데, 제조업은 GNP의 4%에도 못미치며 노동인구의 약 10%만이 이에 종사한다. 고르지 못한 인구분포, 석유 이외의 천연자원 부족 등은 산업발전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전통적 제조품으로 직물·양탄자·신발류 등이 있으며 석유화학제품과 건축자재의 생산도 점점 늘고 있다. 전력 생산은 국내연료로 충당하며,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사들여 원자력 개발에 힘쓰고 있다. 1인당 전력 소모량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많은 편이다.

노동조합총연맹이 1972년에 연합하여, 사실상의 통치기구이자 유일한 정당 노릇을 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총노동력의 1/3∼1/2을 차지하는데 이들은 주로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왔다. 국내 도로망의 거의 2/3가 포장되어 있다. 국립전기통신사는 큰 규모의 계약들을 일본이나 영국 회사들과 맺어왔다. 상당한 무역흑자가 개발 및 대외원조에 따른 지출로 상쇄되고 있다. 식료품·원자재·자본재·소비재·무기 등이 주요수입품이다. 주요무역상대국은 이탈리아·독일·스페인·일본·영국 등이며 미국은 1982년 리비아산 석유의 수입을 금지했다.

정치·사회

리비아는 단일 정당인 아랍 사회주의자동맹(Arab Socialist Union)이 지배하는 사회주의공화국이다. 1969년 헌법의 급진적 개정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여 전인민의회(General People's Congress/GPC)를 통해 국민에게 최고결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GPC는 지방에서 선출·임명된 1,0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여기서 선출된 5명이 상설기구인 총서기국을 구성하여 정책을 결정한다.

또한 GPC는 내각인 전인민위원회(General People's Committee)와 혁명적 지도자, 즉 국가원수를 선출한다. 이렇게 복잡한 체제 때문에 무암마르 알 카다피 대령은 왕을 물러나게 한 후 통치를 지속시켜올 수 있었다. 대법원이 최고 사법 결정권을 가진다. 육군이 전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공군, 해군 순이다.

사회복지 사업이 크게 확대·개선되어 보건상태가 매우 좋아졌으나 평균 기대수명은 58세로 여전히 낮다. 사회보장제도의 시행으로 노인·장애자·유가족에게 연금이 제공될 뿐 아니라 질병, 임신과 출산, 산업재해를 위한 보상금도 있다. 규모가 크고 고루 분포된 병원·진료소·보건소 등에서 무료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더 많은 의료진을 다른 아랍국 및 유럽 국가에서 데려오고 있다. 말라리아·트라코마와 같은 질병은 이제 심하지 않지만 장티푸스·간염·주혈흡충병(기생충으로 인한 간질환)·뇌막염·성병 등은 아직도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1950년대초에는 국민의 20% 정도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으나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74%로 크게 늘었으며, 여자는 남자에 비해 3/4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모든 교육은 무료이며 6∼15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및 직업학교 3년, 고등학교 및 상급직업학교 3년으로 되어 있고, 트리폴리와 방가지에 대학교가 있다. 언론은 엄격히 통제되며 방송매체는 국가가 운영한다.

문화

리비아 문화는 민속예술과 전통예술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생명체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하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역사

그리스인들은 BC 2000년대에 동부 키레나이카에 살던 부족의 이름을 따서 북아프리카의 나일 강 서쪽지역 대부분을 리비아라고 불렀다. BC 7세기에 페니키아인들이 트리폴리타니아에 정착했고 이들은 나중에 고대 도시국가인 카르타고(현대 튀니스를 중심으로 함)의 동부지방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그리스인들은 키레나이카에 몇몇 도시를 세우고 정착했다.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정복하여(BC 1세기) 트리폴리타니아는 아프리카 노바 주의 일부가 되었고 키레나이카는 크레타와 합쳐 하나의 주가 되었다. 고대 파자니아(페잔) 지역은 BC 19년 로마에 정복되기 전까지 가르만테스족이 살았으며, 로마가 멸망하자 비잔틴 제국이 이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고 7세기에는 이슬람교도 아랍인들이 들어와 오랫동안 지배했다.

그후 약 350년 동안 모로코에서 온 베르베르인(人) 알모아데가 트리폴리타니아를 통치했으며 키레나이카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초 오스만 제국은 리비아의 세 지역, 즉 페잔·키레나이카·트리폴리타니아를 정복하여 트리폴리 주재 섭정의 관할구로 삼았다. 18세기초 트리폴리에 카라만리 왕조가 들어서 약 120년간 통치했으며, 이때 세 지역은 서서히 하나로 통합되었다. 1835년에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되찾았다.

1837년에 이슬람교의 일파인 사누시파(派) 교단이 설립되어 1800년대말과 1900년대초의 리비아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11년 이탈리아가 당시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리비아를 침략하여 통치권을 주장했으나 투르크는 좀처럼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리비아도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15만 명이나 되는 이탈리아인이 리비아에 정착했는데, 그들의 세력은 전쟁중에 대부분 분쇄되었다.

1951년 리비아는 사누시교도 군주가 지배하는 독립국이 되었으며 1953년에는 아랍 연맹에 가입했다. 1959년 석유 발견으로 리비아는 부유한 석유왕국이 되었으며 10년 뒤 무암마르 알 카다피 대령이 이끄는 육군 장교들이 왕을 폐위시키고 리비아를 범아랍, 그리고 엄격한 이슬람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카다피 대령은 영국 및 미국과 교류를 끊고 팔레스타인의 아랍인과 게릴라 단체, 아프리카를 비롯한 기타 지역의 혁명운동을 강력히 지지했다. 이로 인해 이집트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1977년에는 단교하는 사태를 빚었고 리비아는 '리비아 사회주의 인민 아랍국'으로 국명을 고쳤다. 리비아가 테러 행위와 여러 군사도발 행위를 도와주자 여러 국가, 특히 수단이 크게 반발했으며 리비아의 끊이지 않는 테러 행위에 대응하여 미국 정부는 1986년 4월 야간을 틈타 트리폴리와 방가지에 폭탄을 투하했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 리비아는 1970년대 이전부터 수교를 추진했으나, 양국간 정식수교가 이루어진것은 1978년 3월 영사관계가 수립되면서부터이며 이어 1980년 12월에는 대사급 수교가 이루어졌다. 한편 리비아는 1969년 카다피가 군사혁명을 일으킨 후 북한의 정치노선을 지지하고 나섰으며, 지금까지 상호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리비아와 북한은 1974년 1월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을 비롯하여 무역협정, 항공운수협정, 경제·과학·기술·문화협정을 체결했고 1982년 10월에는 카다피가 직접 북한을 방문,우호협력동맹조약을 맺기도 했다. 현재 북한은 리비아에 약간의 소비재를 수출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화물선과 항공기가 있다. 그밖에 예술단과 의료진을 파견하고 소규모의 건설시공을 맡아왔으나, 건설공사의 경우 시공능력부족으로 그 진출이 계속 둔화되는 추세이다.

리비아와 정치적으로 깊은 유대를 가진 북한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실질적인 경제협력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특히 건설업계의 진출은 괄목할 만하다. 리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버금가는 건설시장으로서 1977년 이래로 꾸준히 성장, 1980년대들어 더욱 활발해졌으며 1983년 11월에는 세계최대규모의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우리나라 동아건설이 수주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의료진을 파견하고 기술연수생을 받아들이는 등 최근의 동향으로 보아 경제협력에 한정되었던 양국관계가 점차 정치·사회·문화 전반으로 확대·개선될 전망이다.

양국의 통상현황은 대리비아 수출액 1억 4,650만 달러, 수입액 1,370만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건설자재·섬유·철강 등을 수출하고 원유를 수입한다. 1991년 6월 통계로 5,727명의 근로자가 리비아에 체류하고 있다.

참고문헌

중동사 : 김정위,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87
제3세계론-자유주의 대 급진주의 : 신정현, 일신사, 1986
아프리카 아프리카 : 최평규, 국풍, 1983
Libya Since the Revolution : M. K. Deeb·M. J. Deeb, 1982
Libya:A Country Study : H. D. Nelson (ed.), 1979
Libya:The Elusive Revolution : R. First, 1974
Geology of Libya : University of Libya Faculty of Science, 1972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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