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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09 (목)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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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928      
[국가] 모로코 (브리)
모로코 Morocco (아)al-Mamlakah/al-Maghribiyah. 공식 이름은 모로코 왕국(Kingdom of Morocco).

아프리카 대륙 북서단에 있는 국가.

지도

모로코 지도. 브리태니카백과사전 지도

수도는 라바트이다. 북동에서 남서의 최대길이는 1,328km이고 동서 최대너비는 764km이다. 동쪽과 남동쪽은 알제리, 남쪽은 서사하라와 접해 있으며, 북쪽은 지중해, 서쪽은 대서양에 면해 있다. 면적 458,730㎢, 인구 29,632,000(2002).

자연환경

모로코는 산악국(평균해발고도 800m)으로, 북서 아프리카의 아틀라스 산계(山系)가 저지대와 암석투성이의 고원들 위로 우뚝 솟아 있다. 전국토의 약 1/5을 차지하는 비옥한 충적 저지대에서만 집약적 농경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저지대로 물루야(북동쪽), 라르브(북서쪽), 하이아틀라스 산맥의 산록 평원(중부), 수스 평원(남서쪽) 등이 있다. 암석 고원(평균 549~915m)이 국토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데, 동부지방의 고원들이 가장 높고 그밖에 라바트 해안과 남부 사하라 사막지대에도 고원이 있다.

모로코의 산들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으며, 모로코 전체 면적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초승달 모양의 리프 산맥이 지중해 연안을 따라 2,458m 높이로 솟아 있으며, 중부에는 평균고도 3,355m인 아틀라스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은 북으로부터 미들아틀라스·하이아틀라스·안티아틀라스로 나뉘며, 하이아틀라스에는 모로코 최고봉인 투브칼 산(4,165m)이 솟아 있다. 모로코의 강들은 급류로 대개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거나 사하라 사막에서 증발하여 없어지지만, 북쪽에 있는 물루야 강은 예외적으로 지중해로 흘러들어간다.

모로코는 지진활동이 심한 지대에 있어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크다. 모로코 북부와 중부 대부분 지방은 지중해성기후로 겨울은 따뜻하고 습기가 많으며, 여름은 무덥고 건조한 반면 남부로 갈수록 반건조기후와 사막기후가 나타난다. 평균기온은 해안지대가 17~23℃, 내륙이 10~27℃이다. 연강우량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여 북부 1,000㎜에서 남부 203㎜에 이르며, 남동부 사하라 사막지대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국토의 약 1/10이 삼림지대로 시더(cedar)·전나무·향나무 등은 산악지대에서, 야생올리브나 사발야자는 낮은 지대에서 자란다. 야생동물로 무플론(야생양의 일종)·가젤·페넥(여우의 일종)·마카오(원숭이의 일종) 등이 있다. 주요광물자원은 세계 최대 매장량(590억t)을 자랑하는 인산염으로 중서부의 쿠리브가와 유수피아 근처에서 생산된다. 그밖에 철광석·아연·납·암염(巖鹽)·석탄·구리·우라늄 등이 매장되어 있다.

국민

모로코의 연간 인구증가율은 1950년 이래 2.8% 선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출생률과 사망률이 인구 1,000명당 44명 출생, 13명 사망으로 모두 높다. 정부는 1960년대에 가족계획정책을 실시하려고 했으나 이슬람 문화의 반발로 실패했다. 인구의 거의 절반(46.2%)이 15세 이하여서 노동연령층의 부담이 늘고 있다. 전체적 인구밀도는 49명/km이며, 가장 조밀한 지역은 서부의 도회지인데 인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계속 이동하여 도시과밀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1980년대초 유럽에서 이민 규제가 시작되자 모로코를 빠져나가는 사람이 줄고 있다. 아랍화된 베르베르인이 최대의 민족언어학적 집단이며, 그들의 대부분이 아랍어와 베르베르어를 쓴다. 덜 아랍화된 베르베르인은 인구의 약 1/3을 차지하며 산지에 거주하는데, 그들의 거주지에서는 베르베르어가 통용된다. 그들은 리프·타마지트·슐루의 세 방언 집단으로 나뉜다. 소수민족 집단인 프랑스인과 스페인 사람들은 1956년 모로코가 독립한 이래 현저히 줄었다.

그밖의 소수민족으로는 베두인아랍족·흑인·유대인 등이 있으며,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모로코인 대부분이 말리키 율법을 따르는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다. 모로코는 인구의 1/3가량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1982년 수도 라바트 인구는 51만 8,616명, 카사블랑카는 213만 9,204명, 페스는 44만 8,823명, 마라케시는 43만 9,728명으로 집계되었다.

경제

모로코는 주로 서비스업·농업·광업에 기반을 둔 혼합경제로 경제성장률이 인구증가율을 따르지 못하고 있으며, 비숙련 노동자가 넘치는 실정이다. 1980년 국민총생산(GNP)은 174억 4,000만 달러이고 1인당 GNP는 860달러였다. 농업은 GNP의 1/5에도 못 미치며, 노동인구의 절반가량이 이에 종사한다. 1963년에 실시된 토지개혁의 혜택은 소수의 농민에게만 돌아갔고, 토지 소유권을 빼앗긴 유럽인들은 부분적으로 보상받았다.

대부분의 농지가 소규모이며 가족단위로 경작된다. 정부 보조를 받아 관개되는 농지에서는 수출용의 감귤류, 포도주, 채소를 생산한다. 주곡인 보리와 밀의 수확량은 해마다 변동이 심하고 국내 수요에도 미치지 못한다. 양과 소의 생산성이 낮은 편이어서 우유를 대량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모로코는 세계최대의 인산염 수출국으로, 정부는 모로코 인산청(Office Chérifien des Phosphates)을 두어 그 생산을 통제한다. 과거에는 광업개발을 도와준 소련을 중심으로 공산권 경제상호원조회의가 인회석 생산에 참여했다.

그밖에 철광석·납·코발트·아연·망간·은 등도 대량생산하며, 석유생산은 국내수요의 극히 일부만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슬람개발은행은 모로코 국제수지를 심하게 악화시키는 연료수입 자금을 보조해왔으며, 쿠웨이트석유회사는 천연 가스 개발을 돕고 있다. 제조업은 GNP의 약 1/5을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1/10이 이에 종사한다. 인산 생산이 주종을 이루며 카사블랑카에 산업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정부는 카사블랑카 이외 지역의 산업개발을 장려하는 한편 모로코인이 대부분 기업의 운영권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규모 기업들이 산업인력의 대부분을 고용하여 소비재를 생산하고, 중공업은 주로 수입연료와 원자재에 의존한다. 주요생산품은 직물·신발·타이어·자동차이다. 전력생산은 1980년 기준 47억 6,100만kWh이며, 주로 수입연료에 의존하고 약 1/3을 수력발전으로 충당한다. 1인당 전력소모량은 북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에 뒤진다.

교통망은 특히 북부와 서부 도시들 간에 잘 발달되어 있으며, 정부가 철도를 운영한다. 자본재·반제품(半製品)·연료·소비재가 수입을 주도하여 인산염과 농산물을 근간으로 하는 수출을 초과한다. 정부는 늘어나는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수입에 제한을 가하고 있으며, 1978년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일부 모로코산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내리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프랑스·스페인·독일·이탈리아·미국 등이다.

정치·사회

모로코는 입헌군주국이다. 1972년에 제정된 헌법은 세습 왕에게 최고 행정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왕이 총리를 임명한다. 보통선거를 실시하며, 입법권은 6년 임기로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단원제 의회에 있다. 사법부는 독립되어 있고, 대법원이 최고 사법권을 가지며 왕이 대법원장을 임명한다. 전군에서 육군의 규모가 가장 크고, 그 다음으로 공군·해군 순이다. 1년 예산 가운데 적어도 1/4을 사하라 전쟁에 참가하는 군부대의 유지 및 장비공급에 쓴다.

노동인력의 극히 일부만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으며, 그밖에 실업인구를 위한 임시직이나 식량공급을 비롯하여 폭넓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로코의 보건위생 상태는 55세라는 평균 기대수명이 말해주듯이 열악하다. 보건시설 및 의료진이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생활조건의 극심한 지역간 격차를 부채질한다. 1인당 식량 공급이 1일 약 2,600cal로 농촌인구와 도시 빈민층 사이에 영양실조에 걸리는 사람이 많으며, 유아사망률은 출생아 1,000명당 150명에 이른다.

대도시 빈민가, 즉 '메디나'(medina)와 '비동빌'(bidonville)의 주택난이 심해지고 있으며, 정부는 민간차원의 주택건설을 장려하고 있다. 국가예산의 약 1/4이 교육에 투자된다. 인구의 평균연령이 아주 낮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에야 교육에 큰 비중을 두게 되었는데 문자 해득률은 아직 40% 미만에 머물고 있다. 교육은 7~13세의 어린이에게는 의무적이며, 학제는 5년제의 초등학교, 3~4년제의 중등학교와 기술학교, 그리고 그밖의 고등교육기관으로 되어 있다. 모로코 언론은 보통 정부나 정당들의 관점을 대변하며 일부 제한된 사람들만이 이를 접할 수 있다. 문맹률이 높아 인쇄매체보다 국유 전파매체가 훨씬 중요하며 교육 및 종교 프로그램에 중점을 둔다.

문화

모로코에서는 아랍 문학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다양해지고 있다. 전통 문학양식(시·수필·사료편찬) 이외에 중동지역이나 서유럽의 문학양식을 본뜬 형식들이 생겨나고 있다. 1956년 독립 이후 회화, 조각, 아마추어 연극들이 활기를 띠고 있으며, 회화는 카사블랑카와 테투안 예술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모로코에는 아랍·베르베르·대중·고전 음악 등 여러 양식의 음악이 공존한다.

역사

BC 2000년대말 베르베르족이 모로코에 들어왔으며, BC 12세기에는 페니키아 상인들이 지중해 연안에 교역소를 세웠고, BC 5세기에 카르타고인들이 대서양 연안에 거점을 만들었다. 카르타고가 멸망한 뒤, 베르베르족 왕 주바 2세(BC 25~AD 24 재위)가 통치하던 모로코는 로마의 충실한 동맹국이 되었다. 46년 로마는 모로코를 모리타니 속주(屬州)의 일부로 합병시켰으며, 이 속주는 로마 통치 후반기에 거의 전부 그리스도교화되었다고 한다.

7세기말 모로코는 동쪽에서 온 이슬람교도의 침략을 받았으나 740년에 베르베르족이 다마스커스 우마이야조(朝)의 통치에 대항하여 우마이야 왕조나 아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 약 3세기 동안 정복 또는 통치권 이동과 같은 지역간의 전쟁을 거친 뒤, 11세기 중엽 알모라비데라고 알려진 베르베르족 동맹이 모로코 전역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이슬람교도 지역까지 통치하게 되었다.

12세기초에는 또다른 베르베르족의 알모아데 왕조가 알모라비데조(朝)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모로코와 이슬람권 스페인 전역을 통치했다. 그들은 13세기에 점차 스페인에서 쫓겨났고, 모로코에서는 1269년 마린 왕조에 패배했다. 15세기 중엽까지 계속된 마린 왕조의 통치 기간 동안 모로코에는 이슬람교 신비주의, 즉 수피즘(Sufism)이 발달했다.

마린 왕조 몰락 후 모로코는 작은 독립국가들로 나누어졌다가 1550년경부터 1세기 동안 사디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1830년에는 북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의 간섭이 증대되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침략하고 모로코의 지원을 강제하여 알제리의 지도자 아브델카데르를 사로잡았다(1846). 영국은 1856년 모로코로부터 유리한 교역권을 받아냈으며, 스페인은 1859년 모로코를 잘 조종하여 북아프리카 영토를 확장했다.

1912년 모로코 술탄 모울라이 아브드 알 하피드는 프랑스 보호령의 위치를 받아들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모로코 민족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했고, 1956년 프랑스와의 협상 결과 모로코는 독립을 획득하여 시디 무하마드 술탄이 입헌정부를 수립했다. 1961년 물라이 하산이 아버지를 이어 하산 2세로 즉위했으며, 몇 차례의 군사혁명으로 의회정부 수립이 늦추어졌으나 1977년 선거를 통해 왕의 지지자들이 권력을 잡았다.

1970년대말 모로코는 스페인령 사하라 지역에 약 35만 명의 모로코인들을 보내 그 지역이 모로코 영토임을 거듭 주장했다. 1976년 스페인은 알제리의 지원을 받는 ' 폴리사리오 전선'이라는 사하라 게릴라 조직과 모로코가 서로 싸우도록 남겨둔 채 그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1980년대에도 모로코는 스페인령 사하라 지역(지금의 서사하라) 개발정책을 계속 추진하여 알제리·모리타니 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한국과의 관계

한국은 1962년 모로코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직후 주모로코 대사관을 개설했고, 모로코는 1966년 이후 동경상주대사가 주한대사를 겸임해오다가 1988년 12월 상주공관을 설치했다. 모로코는 한국의 전통적인 우방으로서 북아프리카 국가들 중 북한을 승인하지 않고 남한과 단독수교한 유일한 나라이다. 북한은 수교하기 위해 몇 차례 사절단을 파견하고 카사블랑카 국제박람회에 참가하는 등 노력을 계속해왔지만 아직까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못한 상태이며, 모로코는 아프리카 게릴라 단체(폴리사리오)에 군사원조를 하고 있는 북한과는 수교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과 모로코는 경제·정치·사회·문화 전반에서 빈번한 교류를 갖고 있는데, 경제기술협력에 있어서는 특히 어업분야가 활발하다. 합작투자형태로 진출한 한국의 원양어업은 그 협조를 더욱 긴밀히 하기 위해 조만간 어업협정을 체결할 예정이며, 모로코의 어업 연수생을 초청하고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어업기술협력에 성의를 다하고 있다. 문화교류면에서도 두 나라는 그동안 예술단 상호교환과 국제태권도선수권대회 참가를 통해 빈번히 접촉해왔는데, 앞으로 더욱더 다양한 교류의 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양국 간에는 무역협정과 경제기술협력협정(1976. 5), 군사협력합의각서(1977. 8), 문화·과학협력협정(1977. 9) 등이 체결되어 있다. 통상현황을 살펴보면 1991년 모로코는 한국으로부터 3,690만 달러 상당의 섬유·기계·어망·전자제품을 수입했고, 32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1991년 6월 현재 모로코에는 교민 3명과 1,136명의 체류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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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아프리카 : 최평규, 국풍,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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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Haouz de Marrakech, 2 vol. : P. Pascon, 1977
People of Salé:Tradition and Change in a Moroccan City, 1830-1930 : K. L. Brown, 1976
Écrivains marocains du Protectorat à 1965 : Mohammed Kably (ed.), 1974
Le Financement du développement économique au Maroc (1960-1977) : H. El-Malki, 1973
Morocco's Saharan Frontiers : F. E. Trout, 1969
Histoire du Maroc : J. Brignon (et al.), 1967
Le Rharb, Fellahs et colons : J. le Coz, 1964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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