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사전2 세계사사전1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01 (토) 19:12
분 류 사전2
ㆍ조회: 996      
[현대] 대중가요 (한메)
대중가요 大衆歌謠

대중에게 널리 불리는 노래의 총칭.

본래는 가요의 한 종류로서 세속적 내용과 형식을 가지며 민요·가곡과 분류되나 한정된 범주에 국한되지는 않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많은 변화를 보인다. 즉 현재 쓰이는 서양음계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민요가 대중가요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성악을 위한 가곡 역시 대중성을 획득하여 대중가요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단어가 가지는 의미로는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세속적 노래 전반을 가리키나 실제로는 국가 또는 민족의 범위와 일치하며, 따라서 영국·미국의 <팝송>과 프랑스의 <샹송>이 그 단어의 일반적 의미와는 달리 특정 국가의 특정한 노래를 가리키듯 대중가요 역시 한국의 대중적 가요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민중의 노래]

봉건적 굴레와 일제(日帝)의 압제에 이중적으로 시달리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서민 대중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는 주로 민요였다. 아리랑은 그 대표적인 곡으로 세마치의 가락을 가진 일종의 유행가인데, 오랫동안 애창되는 가운데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 지방에 따라 가사와 선율에 차이가 생기고 각각 음악적·사상적·언어적 특징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서민의 애환과 피지배자의 설움을 노래한 점에 있어서는 모두 일치한다.

한편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 담겨진 민중들의 뜨거운 열의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의해 동학농민운동이 무산된 19세기 말 기독교 포교와 함께 선교사들에 의해 찬송가가 보급되었다. 이로써 최초의 서양 음계(音階), 즉 평균율의 음계가 한국에 소개되었는데, 그 특징은 대중적이며, 음역(音域)이 좁고 리듬이 단순한 외에 곡조의 길이가 짧고 가락이 반복되는 것으로 학교의 교재용 노래, 신식군대의 군가와 함께 창가(唱歌)라 총칭되었다.

창가는 일본에서 쓰는 용어 그대로이긴 하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일본의 학교창가라는 개념을 초월하여 국가의 독립을 사수하고 쟁취하려는 진취적 기상에 넘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가운데 《애국가》 《학도가》 《국채보상가(國債報償歌)》 등 1910년 한일합방 이전의 노래는 다분히 애국적 계몽운동의 성격을 띠었으며, 합방 이후의 《독립군가》 《봉기가》 《압록강행진곡》 등은 그 무대를 만주로 하여 보다 전투적이고 저항적인 내용과 가락을 담았다.

만주·노령 지역의 독립군들 사이에서 불린 노래로는 창가와는 색다른 음계와 리듬을 가진 《스텐카 라진》 《출정가》 《기러기》 등의 러시아민요가 번안되어 불리기도 했다. 이와 같이 민족정신을 고무하는 창가가 늘어나자 일제는 철저한 탄압을 가하는 한편 이른바 <불량창가(不良唱歌)>에 대응하기 위해 관제(官製) 창가집을 편찬케 했다. 이에 따라 애국적 창가는 표면상 자취를 감추었고, 그 대신 교육적이거나 민속적인 노래가 만들어져 많은 수의 창가집이 출간되었다.

또한 일제의 문화정책에 의해 일본과 서양의 문물이 다량 도입되었는데, 《내 사랑 클레멘타인》이 들어온 것도 이 시기이며 1925년에는 일본축음기상회 조선레코드에 《시들은 방초》 《압록강노래》 《장한몽》 《이 풍진 세상》 등 염세적인 내용과 짙은 애상을 느끼게 하는 가락의 일본노래를 담아 발매했다.

1926년에는 현해탄에 투신자살한 윤심덕(尹心悳)의 《사(死)의 찬미》가 가요사상 최초의 히트곡으로 기록되었다. 이 노래는 이바노비치 작곡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에 자신이 직접 가사를 붙인 것으로 사회와 생(生)에 대해 극도의 염세적 자세로 일관, 좌절된 3·1운동 이후 1920년대의 우울한 사회상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이 노래의 히트는 그 때까지 부유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레코드의 보급률을 크게 증가시켜 노래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유행가의 등장]

저항과 좌절로 점철되는 1930년을 전후하여 광복에까지 이르는 시기는, 일제의 교묘한 문화정책 속에 한국인의 한(恨)이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며 흥행을 위주로 한 유행가가 등장하여 가요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1929년 한국 최초의 창작가요 《낙화유수 (落花流水;뒤에 강남달로 개명)》가 발표되어 크게 히트했는데, 김서정(金曙汀)이 작곡하고 이정숙(李貞淑)이 부른 <임>을 주제로 한 노래로서, <봄>을 주제로 한 《봄노래를 부르자》 《세동무》 《강남제비》와 함께 식민지배하의 상황과 서민대중들의 희망을 표현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창가 대신 등장한 유행가는 연극무대의 막간(幕間)에 불리거나 활동사진의 반주음악·주제가로 불렸다. 이를 <막간가요>라 하는데 레코드가 일반적으로 보급되기 이전 대부분의 노래가 이 형태였다. 《황성옛터》 역시 막간가요로 전수린(全壽麟)이 작곡하고 이애리수(李愛利秀)가 단성사(團成社)에서 불렀다. 1932년에는 레코드로 발매되어 순식간에 5만 장이 팔렸다 하며, 일제는 한민족으로서의 자각을 선동하는 노래라 하여 발매금지를 시켰다. 이 노래는 본격적인 대중가요의 효시이자 불후의 명곡으로 손꼽힌다.

1935년을 전후하여 컬럼비아·빅터·OK레코드·태평레코드 등 레코드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레코드의 보급과 함께 일본의 엔카[演歌]를 비롯 미국의 재즈·팝송이 대중사회 속에 파고 들었다. 이들 레코드업계는 대개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의해 운영되어 출반레코드 역시 엔카조(서양음계의 제4음과 제7음이 없는 음계;陰旋律)의 노래나 일본가요의 번안곡이 대종을 이루었다.

레코드사 전속가수도 등장했으며, 《술이란 눈물인가 한숨인가(1932)》를 비롯한 번안가요로 인기를 얻은 채규엽(蔡奎燁)은 최초의 직업가수로 불린다. 이 시기는 일제의 문화정책이 극성을 부리던 시대였으므로 일본노래의 번안이 오히려 장려되었으며, 이에 따라 자연히 한국가요에 엔카조의 요소가 스며들었다.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조한 신민요(新民謠)에 조차 일본풍의 2/4박자가 상당수 존재했고 일본의 신민요를 가사만 바꾸어 부른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의 부정적 영향을 극복하여, 한국인의 정서를 한국적 선율에 담고자 노력하고 또한 결실을 맺은 시기도 바로 이 1930∼40년대이다. 김교성(金敎聲)·김용환(金龍煥)·손목인(孫牧人)·김해송(金海松)·박시춘(朴是春)·이재호(李在鎬) 등의 작곡가가 활약했는데, 특히 김교성은 3박자의 리듬을 이용하여 민요를 현대풍으로 편곡, 한국적인 정취를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이난영(李蘭影)·고복수(高福壽)·남인수(南仁樹)·김정구(金貞九)·백년설(白年雪)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각 《목포의 눈물(1935)》 《타향살이(1934)》 《애수의 소야곡(1937)》 《눈물젖은 두만강(1938)》 《나그네 설움(1940)》 등 애수에 젖은 한탄조의 노래를 불러 삶의 기반을 빼앗긴 민족의 슬픔을 대변해 주었다. 이들 작곡가·가수가 활약한 1930년대는 가요의 황금기라 불린다.

[대중의 노래]

광복과 함께 찾아온 문화활동의 자유는 좌우익의 극단적 대립과 38선 분단으로 인해 실험적인 창작을 제대로 시도해 보지 못한채 제도권내의 틀 속으로 한정되어 버렸다. 왜색가요를 추방하고 주체성있는 건전가요를 보급한다는 기치 아래 《고향초》 《아내의 노래(1949)》와 같은 노래들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대중가요가 정치노선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도됨으로써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는데, 형식상의 왜색가요 추방운동과 무분별한 미국의 대중음악 수용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한편 광복의 기쁨으로 잠시 동안 명랑한 내용과 경쾌한 리듬을 담은 노래들이 6·25라는 민족적 비극을 맞이하여 또다시 비탄적 감상주의로 빠져들었다. 현인(玄仁)이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1952)》와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1954)》, 이해연(李海燕)이 부른 《단장의 미아리고개(1954)》가 6·25 당시와 그 이후 애창되었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의 물질적 지원과 문화적 침투가 두드러져 가요에 새로운 리듬, 즉 트위스트·맘보 등이 도입되는 한편, 전쟁으로 파괴된 레코드산업의 재건과 대중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대중에 대한 가요의 영향력이 한층 더 증가해 갔다. 특기할 만한 것으로 이른바 미8군 쇼단의 역할을 들 수 있는데, 최신의 서양음악을 한국에 소개함은 물론 방송국과 더불어 가수들의 양성과 출세 장소로서의 기능을 했다. 영화 역시 이 시기의 대중가요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끼쳤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1961)》 《빨간 마후라(1963)》 《맨발의 청춘(1963)》 등은 각각 동명(同名)의 영화주제가로 불려 주제가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특히 《맨발의 청춘》을 부른 최희준(崔喜準)은 학사(學士)가수로서 대중의 가수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비틀즈와 롤링스톤스의 노래가 인기를 끌며 로큰롤과 중창단을 유행시킨 1960년대는 서구적 음악과 복고풍의 유행가가 공존·경합하는 시기였다.

복고풍 가요의 선두주자는 이미자(李美子)로, 왜색가요라는 물의를 빚어 최근에 해금된 백영호(白英浩) 작곡의 《동백아가씨(1965)》를 불러 선풍적 인기를 끌었으며, 그 반면 미8군 쇼단에서 활약한 패티김은 서구적으로 세련된 멜로디에 한국적 정서를 담은 《사랑하는 마리아(1969)》 등의 노래로 인기를 끌었다. 이 두 여가수는 1989년 각각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동(同) 강당으로서는 최초의 대중음악 공연이었고, 이미자의 공연시에는 각 정당의 대표들이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노래운동]

1970년대의 청년문화라고 명명된 통기타·청바지문화가 대중문화로 확산되고 또한 그 역방향의 작용이 중첩되면서, 노래를 단순한 가락에 의한 개인정서의 전달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 체험의 전달이라는 운동의 방향으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 경향은 주로 종교계와 몇몇 작곡가·가수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김민기(金敏基)·김지하(金芝河)·양희은(楊姬銀)·송창식(宋昌植) 등이 대표적이었다.

김민기 작곡 양희은 노래의 《아침이슬(1970)》, 송창식 작곡 김민기 노래의 《내나라 내겨레》는 서정성과 이념성을 동시에 획득하여 한국가요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곡으로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래의 이념성 측면만을 강조하여 점차 투쟁 일변도로 치우치는 경향이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나타났으며,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서정성만을 노래의 생명으로 간주하는 경향 또한 생겨 대중가요의 양극화현상을 초래했다.

즉 대중성을 획득하여 제도권 내의 방송매체를 통해 애창되는 노래와 지나친 의식 위주의 내용과 가락을 담아 대중성 획득에 실패하고 이른바 운동권가요로 국한된 노래가 그것이다. 이 양극화는 현재 대중가요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자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대중가요는 현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화 중 하나이다. 그와 동시에 어떤 문화형식보다도 왕성하다고 할 수 있는 대중성을 통하여 현실이 나아갈 길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또한 봉건시대와 일제강점기, 광복과 6·25를 거치면서 불려진 대중가요를 분석해 볼 때 이 2가지 요소, 즉 대중성과 현실성을 갖춘 노래만이 서민대중의 가슴 속에 자리를 잡았으며, 그렇지 못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경우 일시적인 유행이나 한정된 계층만의 노래로 그쳤다는 사실은 이후의 대중가요가 발전해가는 데 필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

[군중가요]

북한의 대중가요에 해당하는 것으로 군중가요가 있다. 주민들이 합창이나 독창의 형태로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지며, 당(黨)의 정책가요와 서정가요를 통틀어 일컫는다. 내용은 이른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대중을 공산주의적 혁명정신으로 교양개조하는 이론상 원칙하에 체제의 찬양과 노역 선동, 호전의식 고취 등을 주로 담는다. 대표적인 곡으로 《전사(戰士)의 염원》 《2백일전투의 노래》 《김정일화(金正日花)》 등이 있다. 또한 집단적 학습 형식을 취하는 가요보급으로 인해 가요의 선호도 및 향유도가 거의 평준화되어 있는 특징을 갖는다.

<석광인>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윗글 [현대] 대중가요 (브리)
아래글 [현대] 대중가요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829 사전2 [현대] 흐루시초프 (한메) 이창호 2005-01-01 604
828 사전2 [현대] 흐루시초프 (두산) 이창호 2005-01-01 587
827 사전2 [현대] 콜 (브리) 이창호 2005-01-01 491
826 사전2 [현대] 콜 (한메) 이창호 2005-01-01 456
825 사전2 [현대] 콜 (두산) 이창호 2005-01-01 465
824 사전2 [현대] 독일통일 (두산) 이창호 2005-01-01 527
823 사전2 [현대] 대중가요 (브리) 이창호 2005-01-01 805
822 사전2 [현대] 대중가요 (한메) 이창호 2005-01-01 996
821 사전2 [현대] 대중가요 (두산) 이창호 2005-01-01 1159
820 사전2 [현대] 문화식민주의 (두산) 이창호 2005-01-01 711
1,,,21222324252627282930,,,11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