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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27 (월)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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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럽연합=EU (브리)
유럽 연합 -聯合 European Union(EU) (프)Union Européenne (독)Europäische Union (이)Unione Europea.

대다수 서유럽 국가들이 공동 경제·사회·안보 정책의 실행을 위해 창설한 국제기구.

2002년 현재 회원국은 그리스·네덜란드·덴마크·독일·룩셈부르크·벨기에·스웨덴·스페인·아일랜드·영국·오스트리아·이탈리아·포르투갈·프랑스·핀란드 등 15개국이다. 유럽의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유럽 단일 화폐, 공동 외교·안보 정책, 공동시민권 제도를 도입하고 이민·난민·사법 분야의 협력을 증진할 것을 규정한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 2. 7 체결, 1993. 11. 1 발효)에 따라 창설되었다.

기원

EU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계속된 일련의 유럽 통합 노력 끝에 탄생했다. 이러한 노력의 출발점은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ECSC)의 창설을 제창한 로베르 슈만 프랑스 외무장관의 ' 슈만 계획'(Schuman Plan : 1950)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 계획은 전쟁 수행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 경제·군사 자원인 석탄·코크스·강철·고철·철광석을 공동 관리하에 둠으로써 독일(옛 서독)의 재무장 및 전쟁 재발을 막을 의도에서 마련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유럽 통합을 지향한 것이었다.

한편 콘라트 아데나워 초대 총리가 이끌던 서독으로서도 공산 진영에 맞서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적국이었던 프랑스와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했다. 이에 따라 양국은 공동시장 참여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겨냥한 베넬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및 이탈리아와 함께 1951년 파리 조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ECSC를 공식 출범시켰다(영국은 ECSC의 권한이 6개국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었다는 이유로 파리 조약에 가입하지 않음).

이와 더불어 ECSC를 관장할 초국가적(supernational) 기구로 고등기관(High Authority : 집행부)·각료회의(입법)·공동의회(정책법안 심의)·사법재판소(조약문 해석 및 분쟁 해결)가 설립되었다. 이후 EU가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협약 및 조약 개정을 거치게 되지만, 모두 ECSC를 기본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유럽 경제공동체의 창설 및 발전

1957년 3월 ECSC 6개 회원국은 평화적 용도의 원자력 개발·연구·이용을 위한 협력 증진 및 유럽 원자력 공동시장 설립을 위한 유럽 원자력공동체(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Euratom)의 창설 및 유럽 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EEC:유럽 공동시장이라고도 함)의 창설에 관한 로마 조약에 서명했다. EEC의 창설로 회원국간 상품·서비스·자본·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이 대거 철폐되고 자유로운 시장 경쟁,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CAP) 및 공동무역정책에 반하는 대부분의 공적·사적 계약을 금하는 공동시장이 출범했다.

로마 조약은 회원국들에게 주요 국내 법규의 개정 또는 폐지를 요구했다. 특히 1968년 7월의 역내(域內) 관세 폐지는 관세·무역 정책의 일대 변혁이었다. 또한 자국 산업에 유리한 법규들이 폐지되고, 각개 약진했던 국제 무역에서도 공동 역외무역 정책이 도입되었으며, 경쟁에 반하는 행위나 독점 행위에 관한 공동 규정, 운송 및 단속에 관한 공동 규정 등이 도입되었다. 한편 노동자들이 지역을 옮기거나 직업을 바꿔 좀더 나은 고용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유럽 사회기금(European Social Fund)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로마 조약에 따른 개혁의 물결은 농업 분야에는 미치지 못했다. EEC의 CAP는 1962년에 처음 도입되었는데, 값싼 수입 농산물에 맞서 회원국의 농업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는 농민의 생활 보호, 식량자급률 제고, 저렴한 농산품의 안정적 공급을 국가의 개입에 의존한 것으로, 농산물 가격을 지지하기 위해 농업 보조금 등으로 쏟아 붓는 공적 비용이 천문학적 규모에 이르자 EEC는 물론 훗날 EU에서까지 터무니없는 고비용·저효율 예산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ECSC와 마찬가지로 EEC도 위원회·각료회의·공동의회·사법재판소 등의 4대 초국가적 기구를 출범시켰다(공동의회·사법재판소는 Euratom, ECSC에도 속함). 또한 집행부·각료회의의 자문기구로 경제사회위원회가 구성되어 전반적인 사회·경제 정책 자문을 맡았다. 한편 1965년 브뤼셀 협약에 따라 EEC, Euratom, ECSC의 집행부·각료회의가 통합됨으로써 이들 3개 공동체의 4대 기구가 통합되었다. 4대 기구의 골격은 유럽 공동체(European Community/EC:EEC, Euratom, ECSC의 통합체), EU로 그대로 계승되는데, 각 기구의 조직 현황 및 기능은 다음과 같다.

위원회(일명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집행위원을 책임자로 하는 상임 위원회들로 구성되며 주임무는 공동체의 정책 제시, 공동체의 결정 및 법규 준수 여부의 감독이다. 집행위원들은 회원국의 지명으로 선임되며, 임기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당초의 4년(연임 가능)에서 5년(연임 가능)으로 늘어났다. 유럽 위원회의 위원장은 회원국 정부 수반들에 의해 선출되며, 회원국과의 협의를 거쳐 외교안보·농업·경쟁·환경·지역정책 등의 전문 분야 담당 고위대표를 임명한다. 위원장은 회원국 국가원수 또는 정부 수반들과 함께 유럽 회의(European Council)에 참여해 정책 의제를 수립하는데, 유럽 회의는 유럽의 정치적·경제적 통합을 위한 장기 의제를 협의하기 위해 출범(1974) 이래 최소한 2년마다 한 번씩 정상회담을 열고 있다.

각료회의는 EEC, EC, EU의 주요 의사결정 기구로서 회원국의 장관급 대표들로 구성된다. 각료회의의 구성원은 정책 현안에 따라 회원국의 파견 대표가 바뀌는 만큼 유동적이다. 공동체의 법률을 제정하려면 각료회의의 승인이 필요하다. 각료회의 의장은 공동체의 입법 관련 의제를 관장하며, 의장직은 6개월마다 돌아가며 맡는다. 각료회의는 EU의 출범과 더불어 유럽 연합 회의(Council of European Union)로 공식 개칭되었다.

공동의회(1962년 유럽 의회로 개칭됨)는 회원국 의회 대표들로 구성되었으나 1979년부터는 직접선거로 선출된 5년 임기의 의원들로 대체되었다. 각 회원국에 배정되는 의원수는 인구수에 따라 다른데, 1999년 선거의 경우 독일 99명, 룩셈부르크 6명이었다. 2002년 현재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 인민당(1999년 선거에서 제1당이 됨), 좌파 노선의 유럽 사회당(PES)·유럽 녹색당연합, 유럽 자유민주개혁당 등의 다국적 정당들이 유럽 의회에 진출해 있다.

유럽 의회는 1970년 공동체의 지출이 필요한 사안에 한해 각료회의와 더불어 공동 의사결정권을 갖게 되었으나 실질적인 입법 기능을 갖지 못한 한낱 자문기구에 불과했다. 이후 1987년 '단일 유럽 협정'(Single European Act/SEA)에 따라 협력 절차가 도입되고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공동 결정 절차가 도입되면서 입법 기능이 점점 강화되었다.

유럽 사법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는 공동체의 법률을 해석하고, 공동체 기구들 간의 법적 분쟁을 해결하며, 회원국의 조약 의무 이행 여부를 판정한다. 법관은 각 회원국이 1명씩 임명하며, 법관의 임기는 6년(연임 가능)이다. 소송(訴訟)이 늘어나면서 법관들의 담당 건수가 과다해지는 현실을 반영해 '하나의 유럽 법'에 따라 제1심 재판소가 설립되었다.

유럽 사법재판소는 2가지 주요 원칙을 확립했는데, 조약 규정 및 공동체 법률은 그와 상치하는 국내법의 개정 여부와 상관없이 공동체 시민에게 직접적으로 구속력을 미친다는 '직접적 효력'의 원칙과, 공동체 법률과 국내법이 충돌할 경우 국내법은 무효라는 '공동체 법률의 우위' 원칙이 그것이다. 이 2가지 원칙이 각 회원국의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짐으로써 유럽 사법재판소는 명실공히 초국가적인 공동체의 사법기관으로서 확고한 권위를 확보했다.

EEC는 1970~80년대에 역외 국가들의 회원국 가입을 허용하는 한편 활동 범위를 점점 넓혀 갔다. 이 시기에 영국·덴마크·아일랜드(1973), 그리스(1981), 포르투갈·스페인(1986)을 속속 회원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EEC는 이미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을 포괄하게 되었다. 한편 공동 역외 무역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공동 외교·개발 정책이 필요했으므로, 1970년대초 유럽 정치협력기구(European Political Cooperation/EPC :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공동외교안보정책'으로 개칭됨)를 설치해 외무장관 회담을 정례화하고 이를 통해 외교 정책을 조정해 나갔다.

이어 1975년에는 지역 경제의 불균형을 완화하고 유럽의 극빈 지역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 지역개발기금(European Regional Development Fund/ERDF)을 설치했다. 또한 EEC 회원국들은 같은 해 아프리카·카리브 해·태평양 지역의 옛 유럽 식민지 국가들에게 포괄적인 개발 원조와 무역 특혜를 제공하는 내용의 로메 협정에 서명했으며, 공동 환율 관리를 위한 여러 시도 끝에 1979년 유럽 통화제도(EMS)를 발족시켰다.

1987년 7월 1일에 발효된 '단일 유럽 협정'(SEA:로마 조약을 개정한 것으로 단일 유럽 의정서라고도 함)으로 EEC의 전망과 활동 범위는 크게 확장되었다. SEA는 EPC를 제도화하는 한편, 아직 공동체 기구가 아닌 각 회원국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외교 정책을 공동체 차원에서 좀더 강력히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빈곤 지역의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경제적·사회적 결속'에 관한 조약 규정을 신설함으로써 ERDF를 공동체 차원에서 공식화했다. 나아가 SEA는 1992년말까지 상품·노동·자본·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국경 없는' 완전한 공동시장을 건설한다는 일정표를 내놓았다.

지금까지 상품·노동·자본·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는 갖가지 법적·기술적·재정적·물리적 장벽이 공동체 내에 엄존했다. 이를테면 소비재의 건강·안전 기준만 하더라도 회원국마다 제각각이어서 소비재의 자유로운 이동이 원활하지 못했다. 공동시장의 완성을 촉진하기 위해 입법 절차도 개선되었다. 유럽 위원회가 법안을 제출하면 유럽 의회가 심의하고 각료회의가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어 있는데, 유럽 위원회는 모든 사안을 대개 만장일치로 결정하므로 각 회원국은 모든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SEA는 공동시장 관련 입법은 만장일치가 아닌, 각 회원국의 인구 비례 가중 투표치에 기초한 특별다수결(qualified majority)로 결정한다. 특별다수결에 따른 결정은 대체로 총투표수의 2/3를 넘도록 했다. 또한 SEA는 유럽 의회의 역할을 강화해, 유럽 의회가 부결한 법안을 각료회의가 법률로 채택하고자 할 경우 만장일치의 찬성을 얻게 했다. 유럽 연합 조약1992년 2월 7일 EEC 회원국들은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하나의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역사적인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유럽 통합 헌장'이라고 할 만한 마스트리히트 조약(공식 명칭은 유럽 연합 조약[Treaty on European Union]임)은 일부 회원국에서 유권자·의회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비준 과정에서 난항을 겪었다. 1992년 6월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덴마크 유권자들은 자국의 주권이 침해당할 것을 우려해 조약 원안을 부결시켰고(이후 1993. 5 국민투표에서 수정 조약이 통과됨), 프랑스에서는 1992년 9월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박빙의 차이로 조약이 통과되었다. 1993년 7월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의회에 비밀투표를 요구해서라도 조약 비준을 관철시키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3년 11월 1일 수정 조약이 발효되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3개 공동체(EEC, Euratom, ECSC), 공동 외교·안보 정책, 내무·사법 분야의 협력 강화를 3대 기둥으로 삼았다. 이 조약은 EEC를 EC로 개칭해 새로 출범할 EU의 주축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EC는 공동체의 개발·교육·보건·소비자보호 정책 분야에서부터 환경보호, 사회적·경제적 결속, 기술연구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 또한 이 조약은 '유럽 연합 시민권', 즉 회원국 시민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거주국 의회 및 유럽 의회 선거에서 선거권·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 시민권 제도를 도입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EC에 통화 정책을 통합하는 책임을 맡기고, SEA 체결 당시 자국 통화를 포기할 수 없는 처지에 있던 일부 회원국의 강력한 반대로 채택되지 못한 공동 통화 기구에 의한 통화 통합, 즉 유럽 단일 화폐의 창출을 추진하기로 했다. 단일 화폐 가입을 위한 '접합 기준'(convergence criteria : 사전 충족 조건)으로는 회원국의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초과하지 않고, 공공 부채 비율이 GDP의 60% 미만이며, 인플레이션율은 최저 3개국 평균의 1.5%를 초과하지 않고, 장기 이자율은 최저 3개국 평균의 2%를 초과하지 않으며, 환율은 안정적(회원국 평균 변동폭의 ±2.25%)이어야 한다는 등의 5개항이 제시되었다.

접합 조건을 달성한 회원국이 단일 화폐에 참여하고자 할 경우에는 우선 자국 화폐의 대(對) 유로(euro) 환율을 고정시키고 3년간의 과도기를 거친 뒤에는 자국 통화를 단일 화폐인 유로로 완전 대체하도록 했다. 이탈리아·벨기에의 경우 공공 부채 비율이 GDP의 120%를 넘는 등 일부 회원국이 접합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기는 했으나, 유럽 위원회는 거의 모든 회원국에게 유럽 경제통화통합(Economic and Monetary Union/EMU)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독일·룩셈부르크·벨기에·스페인·아일랜드·오스트리아·이탈리아·포르투갈·프랑스·핀란드 등 EMU 참여 11개국은 1999년 1월 1일 일제히 유로화를 채택하고 자국 통화의 대 유로 환율을 고정시켰다. 반면 그리스는 접합 조건 미달로 EMU에 가입하지 못했고, 덴마크·스웨덴·영국은 EMU 가입을 유보했다. 유로화는 도입 첫해에는 금융시장·기업의 지불용 명목 화폐로만 사용되다가 2002년 1월 1일부터는 일반 대중에게 실질적인 현금 화폐로서 유통되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EEC의 기구 및 의사 결정 절차를 크게 개혁했다. 1995년부터 4년 임기제였던 유럽 위원회 집행위원의 임기가 5년으로 연장된 반면 집행위원 임명 때 유럽 의회의 승인을 받게 하는 등으로 유럽 위원회의 유럽 의회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고, 회원국의 명령 불복종에 대해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유럽 사법재판소의 권한이 강화되었다.

또한 유럽 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유럽 중앙은행 시스템(European System of Central Banks), 유럽 통화기구(European Monetary Institute) 등의 재정통합 관련 기구가 설립되고, 집행위원 및 각료회의의 회원국 내 각 지역 문제 담당 자문기구로 지역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입법 절차의 개혁은 두드러진 변화였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각료회의가 특별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분야를 확대하되 특별다수결에 따른 결정의 대부분에 대해 유럽 의회가 한정 부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특히 EU 시민권과 같은 분야의 결정에 대해서는 유럽 의회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공동체의 세입·세출을 감독하기 위해 1970년대에 설립된 청문법원(Court of Auditiors :공동체의 세입·세출을 감독하기 위해 1970년대에 설립되었음)은 EC에 편입되었다.

이 조약의 2번째 기둥에서 회원국들은 공동 외교·안보 정책을 추구할 뜻을 명확히 했다. 이들은 가능한 지역부터 공동 방위 정책을 채택하고 대다수 회원국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안보 기구인 서구 연합(Western European Union/WEU)을 통해 이를 실행하기로 합의했다. 위원회나 유럽 사법재판소의 통제를 받지 않는 공동 군사작전의 경우 만장일치로만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내무·사법 분야의 협력 강화에 관한 이 조약의 3번째 기둥은, EU 시민의 자유로운 국경 이동에 따른 제반 문제에 대한 공동의 우려를 담은 것이었다.

국경을 철폐할 경우 일부 회원국의 이민·난민·주거 정책과 마찰을 빚을 뿐더러 범죄를 다스리기도 민법을 똑같이 적용하기도 어렵게 되므로, 회원국 전역을 포괄하는 새로운 정책을 마련해야 했다. 예컨대 난민 정책이 회원국마다 각각이어서 제3국인 관련 법규도 각각인데, 국경을 완전 개방하고 나서 이와 같은 난민 정책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유럽 연합 확대 및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후의 개혁1995년 1월 1일 스웨덴·오스트리아·핀란드가 EU에 가입함으로써 주요 서유럽 국가들 가운데 노르웨이·아이슬란드·스위스만 EU 미가입국으로 남게 되었다.

노르웨이는 2차례(1972, 1994) 공동체 가입을 시도했으나 매번 유권자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스위스는 1990년대초에 EU에 가입한다는 일정을 잡아 놓았다(이후 스위스는 1998년 12월 정회원국으로 가는 중간 단계인 유럽 경제지역[European Economic Area/EEA]에 가입함). 노르웨이·아이슬란드는 EU 가입국 및 리히텐슈타인과 더불어 상품·서비스·자본·인구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자유무역지대인 EEA 회원국이다.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후 EU의 정책 및 기구를 손질하기 위한 2개 조약이 체결되었다. 1997년에 체결된 암스테르담 조약(1999. 5. 1 발효)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사회적 규약(social protocol)에 의거해 고용 증진, 생활 및 노동 조건 개선, 적절한 사회보장이 EU의 목표임을 확인하는 한편, 성차별 방지를 공동체 사법부의 관장 사항으로 추가하고 이민·난민·민사 정책을 공동체 사법부의 관할로 이관시켰다. 또한 회원국이 기본적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경우 각료회의가 해당 회원국을 징계할 수 있도록 하고, 각료회의의 유럽 위원회 위원장 지명자에 대한 불신임 투표는 물론 EC 정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암스테르담 조약에 이어 2001년 2월 26일 니스 조약이 체결되었다(2005. 1. 1 발효 예정). 니스 조약은 바로 그 해에 아일랜드 유권자들에게서 거부당하는 불운을 겪기는 했으나, EU의 확대를 전제로 한 획기적인 제도적 개혁 조치를 담은 것이었다. EU가 27개 회원국으로 확대될 것을 염두에 두고 유럽 위원회 위원수를 20명에서 27명으로 늘리는 한편 회원국 지명 위원수를 1명씩으로 줄이고(2002년 현재 5개 회원국이 자국 출신 위원을 2명씩 보유하고 있음), 회원국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위원장의 권한을 크게 강화했다. 또한 각료회의가 회원국별 가중 투표치에 기초해 특별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분야를 확대했는데, 특별다수결에 따른 결정은 EU 총인구의 62% 찬성이라는 기준선(threshold)을 넘음과 동시에 회원국 과반수의 지지 또는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도록 했다.

유럽 연합의 장래

서유럽 국가들은 경제적·정치적 목표에 머물렀던 ECSC를 출발점으로 삼아 마침내 전례 없는 통합과 협력을 일궈냈다. 법률적 통합, 초국가적 정치 기구, 경제적 통합의 수준에서 EU는 여타의 국제기구를 압도한다. 아직 국민국가를 대체하지는 못했으나 EU는 초국가적 차원의 의회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EU의 미래는 회원국 확대 및 기구 발전이라는 난제와 맞물려 있다. 냉전이 끝난 뒤 12~13개국에 이르는 동유럽 및 중유럽의 옛 공산주의 국가들이 EU 가입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들을 EU의 각 기구에 완전 통합시키기에는 이들의 경제가 너무 낙후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EU는 이들을 회원국으로 섣불리 받아들여 단일 화폐에 가입하게 하기보다는 자유무역지대인 EEA와 같은 중간 단계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궁리해냈다.EU의 확대에 대해서도 찬반 논란이 일었다. 반대론자들은 EU를 확대할 경우 여론이 질식되고 전(全)유럽 차원의 외교·안보 정책의 발전을 기대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EU의 확대가 EU 기구들을 개혁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고 회원국들로 하여금 투명성 및 민주적 통제에 대한 기존의 우려를 해소하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찬성론자들도 정치적 통합 및 기구 개혁 가속화의 성패 여부가 EU의 확대 시점에 달려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기존 회원국들이 니스 조약을 통해 EU의 기구 개혁에 나선 주요인도, 2010년경 회원국이 27개국으로 늘어날 경우 정책 결정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Matthew J. Gabel 글 | 안병국 옮김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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