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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2-14 (화) 09:30
분 류 사전2
ㆍ조회: 622      
[근대] 에스파냐내전=스페인내란 (두산)
에스파냐내란 España Civil War

1936년 2월 19일 에스파냐 제2공화국의 인민전선(人民戰線) 정부가 성립된 데 대하여 7월 17일 군부를 주축으로 하는 파시즘 진영이 일으킨 내란.

좌익의 인민전선 정부는 정교(政敎) 분리·농지개혁 등의 정책을 내걸고 중산계급·노동자·농민의 지지를 얻었다. 이에 반대하는 교회·대지주·대자본의 지지를 얻은 군부·왕당파·우익 정당 진영은 프랑코 장군의 지휘하에 모로코 주둔군을 선두로 하여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에는 독일·이탈리아가 군사 원조를 하였고 프랑코군측 지역에서는 공화국에 반대하는 세력이 크게 확산되었으며, 교회는 프랑코군을 ‘신(新)십자군’으로서 지지하였다.

공화국측에서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시민군이 결성되어 방위의 주력이 되었으며, 파시스트 재산의 몰수·공공사업의 정부통할 등 사회 개혁이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9월 4일 사회당 좌파의 라르고카바예로가 수상이 되었다. 독일·이탈리아·포르투갈은 프랑코군 원조를 계속하였고, 영국·프랑스는 불간섭이란 이름 아래 공화국으로의 병기(兵器) 수출을 거부하였다.

독일·이탈리아에 대항하여 소련은 병기를, 그리고 코민테른은 국제의용군을 보내어 공화국을 도왔다. 공화국 내에서는 사회당 좌파와 무정부주의자들이 항전을 사회혁명의 실현으로써 추진하였으며, 소련의 원조를 배경으로 하여 세력을 확대하였던 공산당은 민주주의 옹호를 주장하는 등 인민전선 내의 대립은 격화하였고 무력 충돌이 빈발하였다.

한편 프랑코 장군은 1937년 4월 19일 교권정치 부활을 주장하는 카를로스당(黨)과 협동국가를 내세우는 팔랑헤당을 통합하여 전선 배후의 지배를 확립하였다. 1939년 1월 26일 바르셀로나는 프랑코군에게 점령되었고, 영국·프랑스는 2월 27일 프랑코 정권을 승인하였다. 3월 23일 마드리드에서 프랑코군과의 화평을 요구하는 반공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28일 프랑코군이 마드리드에 입성함으로써 내란은 끝나고, 프랑코 체제가 성립하게 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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