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백제 문화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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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지역의 문화　　　　　　　이전　목차　다음

(편집자 주 : 우리가 이번 백제 문화 탐방에서 답사하는 지역은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익산 지역이며, 가고 오는 길에 경기도 서해안 지역을 통과하게 된다. 다음 내용은 이 안내 책자 내용의 대부분을 이루는 한국문화유산답사회가 엮은 [답사여행의 길잡이 4 충남] (돌베개, 1995) 편에 나오는 유홍준 교수가 쓴 [충남 지역 답사여행의 길잡이]이다.)

충남의 새로운 관문 - 서해대교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충청남도로 답사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먼저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한 백제 문화를 머릿속에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답사를 다녀보면 정작 백제의 문화유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아주 드물다. 부여의 부소산성과 정림사터 오층석탑, 능산리 고분군, 공주의 무령왕릉을 비롯한 송산리 고분군, 서산의 마애삼존불, 예산 화전리의 얼굴 없는 사면석불 등이 전부이다. 이는 백제 멸망 후 백제 문화가 파괴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경주의 유적들이 대부분 폐허로 남은 채 고분과 석조 유적만이 전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 시대 폐불 정책과 전란의 상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남 지역의 답사가 백제 문화의 향기를 맛보는 것이라는 사실에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백제 시대의 유적을 대하는 것은 드물지라도 백제 멸망 후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 이 지역에서 일어난 불교 문화 유적들이 지역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어 백제의 옛 정취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이 지역의 석탑들을 보면 한결같이 백제의 정림사터 오층석탑을 기본틀로 하여 성주사터 오층석탑, 무량사 오층석탑, 보원사터 오층석탑, 서천 비인의 삼층석탑, 부여 장하리의 삼층석탑, 청양 정산의 구층석탑 등이 모두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 충남 지역의 답사가 백제 문화의 답사라고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 지역의 산과 강과 들판이 한반도 어느 지역과도 달리 유순하고 부드럽고 느릿한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마강ㆍ구드래의 모래사장, 공주 곰나루와 여미산, 예산ㆍ당진ㆍ홍성의 내포평야, 논산의 황산벌 등 어디를 가든 비산비야의 낮은 능선이 하늘과 맞닿으며 여린 곡선을 그린다. 이것이 충청도 말씨와 행동이 느리게 된 요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친숙감이야말로 가장 백제적인 것이고 충남 지역의 중요한 향토적 특색으로 된 것이다. 아마도 답사객들은 계룡산ㆍ성주산ㆍ가야산ㆍ칠갑산 어디를 가든 백제 시대의 저 유명한 산수문전의 그림 같은 풍광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충남에 온 기분, 백제를 만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공주와 부여의 답사는 대개 한 코스로 묶여지며 또 그래야 제 맛이 난다. 공주 무령왕릉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집중적으로 진열하고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의 답사는 백제문화의 입문코스라 할 수 있다. 송산리 고분군들의 부드러운 능선, 무령왕릉 벽돌의 우아한 연꽃무늬, 금관ㆍ금귀고리를 비롯한 출토 유물들의 섬세하고 고아한 조형감각 등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공산성을 산책하거나 곰나루 강변에서 여미산을 바라보며 금강가를 산책하는 것(한국문화유산답사회는 항시 둘 중 하나를 택한다)으로 공주를 즐기고 백제의 향기를 더듬는다.

공주에서 부여로 가자면 반드시 우금치 고개를 지나게 되는데 우리는 여기에 세워진 1894년 갑오농민군 위령탑에서 백년 전 아프고 슬픈 역사의 현장을 만나게 되며 탄천 송학리에서는 솟대와 나무장승의 전통을 확인하고 부여로 들어가게 된다.

부여의 답사에서는 무엇보다도 규암나루에서 낙화암까지 약 30분 여정으로 짜여진 백마강의 유람선을 타는 것이 이곳 답사의 별미이자 핵심이 된다. 뱃사공이 틀어주는 카세트 테이프의 순박한 해설과 천진스런 뽕짝가요가 '촌티'의 건강성을 느끼게도 해준다. 낙화암 선착장에 도착하면 고란사, 낙화암, 부소산성의 답사로 이어지고, 저녁나절엔 구드래 둑길에서 백마강가를 호젓이 산책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부여 읍내의 답사는 정림사터 오층석탑과 국립부여박물관이 필수코스이고 여타의 유적은 선택사항으로 남는다. 막상 부여에 와서 볼 수 있는 유적이란 이처럼 빈약한 것이다. 그래서 백마강가의 낭만과 회상이 이 답사코스의 필수사항이라고 한 것이며, 우리는 곧잘 백제대교 한쪽에 있는 신동엽 선생의 시비에서 그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부여에서 못 다한 답사의 여정은 코스를 보령 쪽으로 잡아 무량사와 성주사터로 이어감으로써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는다. 무량사는 온화하면서도 위엄 있는 멋진 산사이고, 성주사터는 그 풍광의 처연함과 깊은 역사성으로 폐사지의 미학을 남김없이 전해준다. 이렇게 이어진 답사는 성주터널을 넘어서 보령 앞바다를 내다보는 것으로 일단 마감하게 된다.

충남 답사의 진수는 부여ㆍ공주보다도 내포땅 가야산 주변의 유적들이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외지 사람들이 1박2일 일정으로 이곳을 답사하면 푸짐한 볼거리와 안온한 분위기를 한껏 즐길 수 있다.

내포땅 답사의 숙박지는 수덕사 입구 여관촌에 잡는 것이 보통인데 들어오는 길에 예산의 추사 고택과 화암사, 또는 화전리 사면석불과 남연군 묘를 들러 오는 것이 슬기로운 선택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덕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곧장 정혜사까지 올라갔다 오는 가벼운 등반은 이곳 답사에서만 가질 수 있는 상큼한 아침 산책이 된다. 수덕사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은 대웅전 건물뿐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소홀히 지나칠 일이 아니므로 신새벽에 정혜사로 먼저 오르고 동이 훤하게 틀 때 내려오면서 수덕사 대웅전을 답사하는 것이 좋다.

가야산을 한 바퀴 휘돌아 가는 내포땅 답사에서 서산 마애삼존불, 보원사터, 개심사로 이어지는 코스는 이곳 답사의 하이라이트가 된다. 백제의 미소를 온전히 전해주는 마애삼존불은 백제 불교미술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면서 동시에 답사여행에서 아름다운 예술품 하나가 있고 없고에 따라 그 곳의 지리적ㆍ인문적 가치가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실감케 해 준다. 보원사터는 다른 폐사지와 달리 황량감이 아니라 아늑함이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폐사지에 농가가 들어앉아 사람 사는 온정이 살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작지만 징검다리를 건너야 오층석탑과 부도가 있는 빈터에 다다를 수 있는데 거기서 앞마을을 바라보면서 도시락을 먹을 때면 절로 학창시절 소풍이 떠오른다.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개심사로 가는 길에는 큰 저수지 두 개를 만나고, 삼화목장으로 더 잘 알려진 축협 한우개량사업소를 지나는 이채로운 정취를 맛보게 된다. 개심사는 우리 나라 산사의 절묘한 공간배치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 주는 명찰이다. 경쾌한 돌계단 길과 푹신한 흙길이 어우러지고 제법 큰 인공못에 수련이 항시 탐스러운데 봄이면 매화와 산벚나무가 아름답고 여름에는 배롱나무와 무궁화, 가을에는 적단풍과 떡갈나무의 낙엽, 그리고 겨울에는 소나무에 얹힌 눈꽃으로 아름답게 채색된다. 가파른 비탈을 여러 단으로 깎아서 연못, 범종루, 대웅전 마당으로 분할하고 요사채 거쳐서 산신각 가는 길이나 심검당 건너 해우소 가는 길 모두에 자연을 거스르는 일 없이 자연을 경영한 우리 나라 원림의 미학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래서 서산 마애삼존불, 보원사터, 개심사를 잇는 답사코스는 서울 사람들의 당일답사로 황금코스라 할 수 있다. 개심사에서 나오는 길은 해미읍성을 지나게 되는데 이후의 일정은 목적지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계룡산은 답사코스보다 등산코스로 적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계룡산 등반은 보통 동학사에서 갑사 또는 갑사에서 동학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답사의 흥취를 곁들일 수 있게 된다. 동학사는 오늘날 비구니 강원으로 현대화된 절이므로 문화유산 답사에 걸맞은 유적은 만날 수 없다. 그러나 갑사는 철당간이 건재하고 잘생긴 고려 시대 팔각원당형 부도가 남아 있으며 절집의 분위기가 고찰다운 맛이 있어 여기에 오래 머물게 된다. 계룡산 등반에서는 산마루 다 가서 만나는 오뉘탑이 아주 정감있게 배치되어 있어서 등산객들의 눈길이 여기에 닿으면 의미있는 휴식을 취하게 된다. 이 또한 유적의 힘이라 할 것이다.

계룡산 주변의 유적으로는 신원사의 중악단이 건축사적으로 눈여겨 볼 만한 건물배치를 하고 있다. 더욱이 신원사는 잘 알려지지 않아 호젓한 산사의 맛이 남아 있기에 더욱 정감이 있다. 그리고 계룡산의 빼놓을 수 없는 잃어버린 명소는 동학사 근처의 철화분청 원산지였던 분청사기 가마터이다. 지금은 어설픈 표지석과 깨진 사금파리만 햇살에 빛나고 있다.

이밖의 충남의 명찰로는 은진미륵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관촉사, 고려 시대 불상과 멋진 석조대좌로 유명한 칠갑산 장곡사, 목어가 아주 장관인 공주 마곡사, 거대한 무쇠솥으로 유명한 연산의 개태사 등을 꼽을 만하고 저마다 명품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그중 부여의 대조사는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아서 향토의 서정이 살아 있는 명찰로 은진미륵과 거의 같은 석조보살상이 늠름한 소나무를 광배인 양 두르고서 장쾌한 모습으로 답사객을 즐겁게 해 준다.

충남 지역에는 생활문화의 답사처도 적지 않다. 특히 장승과 솟대는 마을마다 다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이 있어 어느 답사에도 하나 둘은 곁들일 수 있다. 이를테면 장곡사 가는 길에는 대치고개의 장승이나 용두ㆍ송학ㆍ천정 마을의 솟대와 장승을 하나쯤 보아야 이곳을 답사한 제 맛을 지니게 되며, 가능하다면 정월 대보름에 마을굿이 치러질 때 답사하여 장승제나 동화제(洞火祭)를 한번 보아둘 것을 권하고 싶다. 그래야 우리는 향촌사회의 놀이와 축제와 제의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충남에는 양반가옥 또한 많이 남아 있다. 논산의 윤증고택, 아산의 맹씨행단, 예산의 추사고택 등은 충남의 양반 살림집 공간의 전형을 보여 주는 한국건축사의 명소일 뿐만 아니라 소론의 영수인 윤증, 세종 때 명신인 맹사성, 불세출의 서예가 김정희 등의 정신이 깃든 곳이기에 그 인문적 답사가치를 더해 준다. 이밖에 예산의 윤봉길 사적지, 홍성의 한용운 생가 등이 답사의 길목에서 취향에 따라 전공에 따라 들러가는 곳이 되고 있다.

그런 중 충남 지역 답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서해안의 낙조이다. 그래서 답사객들은 여름이 아닌 때면, 특히 겨울이면 대천이나 연포, 만리포, 안면도에 숙박지를 잡고 호젓한 해변가의 정취까지 즐긴다. 이곳 답사의 가장 큰 매력이다.

충남 지역 답사 안내를 3부로 나누어서 각각 3개의 코스를 제시한 것은 이러한 지역적ㆍ문화적 특성을 감안한 것이며 행정구역상으로 대전광역시와 금산군을 제외시킨 것은 충북편에서 함께 다루어질 예정이다.

　　　　출전 : [답사여행의 길잡이 4 충남] (돌베개, 1995)　　　　　　　　　　　　이전　위로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