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6 (수) 12:21
분 류 문화사
첨부#1 1630.jpg (0KB) (Down:0)
ㆍ조회: 1600      
[과학 기술] 1630. 신라의 첨성대

1630. 신라의 첨성대

신라(7세기 전반, 선덕여왕대), 높이 약 9.5m, 경주시 인왕동 839-1. 국보 제31호.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 유물로 알려진 첨성대는 안정된 병모양으로 전체의 석재는 화강석으로 되어 있는데 석재의 총수는 365개 내외이며 전체적으로 기단부, 원주부, 우물정자형 머리 부분의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높이는 9미터이며, 633년(선덕여왕 2)에 제작되었다.

첨성대가 과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천문관측대였다고도 하고, 나침반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의 자오선의 표준(머리 부분의 정자 형이 방위를 가리킨다)이 되었다고도 하고, 제단이었다고도 한다.

여기서는 《한국과학사》의 저자 박성래 교수의 서술을 싣는다. 첨성대에는 가운데에 가로, 세로 1쯤의 창문이 있어서 이를 통해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를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불편한 구조물 위에 올라가 하늘을 관측했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차라리 첨성대보다 훨씬 널찍한 대를 세우고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림에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낫다. 이러한 실제적 기능보다는 상징성이 매우 강한 것으로 생각된다.

병모양 부분이 27단으로 되어 있으니 선덕여왕이 27대 왕이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듯하고 중앙의 창문까지가 12단이니 일년의 12달을 나타내는 듯하다. 전체 석재의 수도 1년의 날 수와 비슷하다. 첨성대의 모양은 불교의 가장 성스러운 산인 수미산의 모양을 닮았다.

그 자리는 아마도 삼국사기에 기술된, 신라는 입추 다음의 진일(辰日)에 농업을 관장하는 별이라는 영성에게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그 위치에 첨성대를 나중에 지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합의를 보기는 어려우나 우리 역사에서는 천문을 보는 곳을 첨성대라 부른 경우가 고려 때에도 있었으므로 당시의 과학기술상 천문관측 본부에 해당했으리라는 점은 생각할 수 있다. 당시의 천문이란 지금으로 보면 점성술의 경향을 가진 것이었다.
   
윗글 [과학 기술] 1640. 해시계 파편
아래글 [과학 기술] 1620. 고구려 천상열차분야지도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02 문화사 [불교 문화] 1650. 사택지적비 이창호 2002-09-18 1994
201 문화사 [과학 기술] 1640. 해시계 파편 이창호 2001-06-06 1192
200 문화사 [과학 기술] 1630. 신라의 첨성대 이창호 2001-06-06 1600
199 문화사 [과학 기술] 1620. 고구려 천상열차분야지도 이창호 2001-06-06 3959
198 문화사 [불교 미술] 1610. 불곡 감실 부처 이창호 2001-06-06 2145
197 문화사 [불교 미술] 1600. 삼화령 애기 부처 이창호 2001-06-06 2685
196 문화사 [불교 미술] 1590. 배리 삼존불 이창호 2001-06-06 2482
195 문화사 [불교 미술] 1580. 일월식보관 쓴 금동반가사유상 이창호 2001-06-06 3130
194 문화사 [불교 미술] 1570. 일본 국보 광륭사 목조반가사유상 이창호 2001-06-06 3263
193 문화사 [불교 미술] 1560. 삼산관 쓴 금동반가사유상 이창호 2001-06-06 3059
1,,,101102103104105106107108109110,,,13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