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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28 (토) 13:43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323      
[조선] 영주 소수서원 (민족)
소수서원(紹修書院)

    소수서원 전경. 반승현 사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우리 나라 최초의 서원.

[설립 경위]

1541년(중종 36)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이듬해에 이곳 출신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사묘(祠廟)를 설립하였다가 1543년에 유생교육을 겸비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1544년에는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추가 배향하였다. 1546년(명종 1)에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안현(安玹)은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운영방책을 보완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사문입의(斯文立議)를 마련하여 서원의 향사(享祀:제사)에서부터 학전(學田)과 서적의 운용 및 관리, 노비와 원속(院屬)의 관리 등 서원 운영·유지에 필요한 제반 방책을 마련하였다.

1548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은 서원을 공인하고 나라에 널리 알리기 위해 백운동서원에 대한 사액(賜額)과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550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사액되고 아울러 국가의 지원도 받게 되었다. 이 밖에도 임금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에게 명하여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성리대전 性理大全≫ 등의 서적을 하사하였다.

이러한 조처는 공인된 교육기관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으로, 그 뒤 다른 서원들의 설립과 운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서원이 단순한 향사와 교육 기능 수행만이 아닌 지방 사림(士林)들의 정치·사회 활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도 포괄하고 있으므로 소수서원의 설립과 발전 내용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실제 사액을 받기 이전까지는 백운동서원이 풍기 사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서원이 풍기에 세워지긴 했으나 경상도 내 각 군현 유생들에게 교육 기회가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액을 받고 국가에서 인정한 사학(私學)의 위치를 굳힘에 따라 풍기의 사림들도 적극적으로 서원에 참여하여 이 서원을 자신들의 집결소로, 향촌의 중심기구로 만들어 갔다.

이처럼 소수서원이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면서 향촌 사림의 정치적·사회적 기구로 정착되자 전국에 서원이 설립, 운영되어 조선 시대 사학의 중심기관으로 발전하였다. 그 뒤 1633년(인조 11)에 주세붕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서원의 지나친 건립과 부패로 1868년(고종 5)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그대로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현황 및 구조]

이 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현재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 건물로는 문성공묘(文成公廟)·명륜당(明倫堂)·일신재(日新齋)·직방재(直方齋)·영정각(影幀閣)·전사청(典祀廳)·지락재(至樂齋)·학구재(學求齋)·서장각(書藏閣)·경렴정(景濂亭)과 탁연지(濯硯池)·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등이 있다. 그 밖에 국보 제111호인 회헌영정(晦軒影幀), 보물 제485호인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 보물 제717호인 주세붕 영정(周世鵬影幀)이 소장되어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서장각에는 141종 563책의 장서가 있다.

서원의 배치는 강학(講學)의 중심인 명륜당은 동향이고 배향의 중심 공간인 사당(祠堂)은 남향이다. 기타 전각들은 어떤 중심축을 설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배치된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어 곧바로 명륜당의 남쪽 측면으로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기와집으로, 중앙의 대청과 온돌방 및 마루방으로 되어 있고 대청·온돌방·마루방 주위로 툇마루를 둘렀다.

장대석(長臺石)을 바른층쌓기 하여 만든 높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圓柱〕을 세웠다. 기둥 윗몸에서 앙서〔仰舌〕 하나를 내어 기둥 위에 놓인 주두(柱頭)와 결구시킨 초익공(初翼工)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架構)는 5량(五樑)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마룻보를 받치고, 마룻보 위에 파련대공(波蓮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일신재와 직방재는 각각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다른 서원에서는 강당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서원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채로 건립하여 편액을 달아 구분하고 있다. 이 동서 양재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 및 협실 앞의 툇마루로 되어 있다. 기단은 정면에는 다듬은 장대석을 바른층쌓기 하였으나, 후면에는 거친 사고석들을 바른층쌓기 하였다.

기단 위에 놓인 막돌초석들 위에는 방주(方柱)들을 세웠는데, 전면 양측간의 두 개 기둥, 후면 양측간의 귓기둥으로 되어 있다.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첨차(檐遮)를 놓아 몰익공식으로 하였는데, 첨차의 모양은 단순하다. 특히 뒷면 귓기둥에서는 헛첨차 모양의 것이 돌출되었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앞뒤 평주 위에 걸고 간결한 동자기둥을 세워 마룻보를 걸었으며, 이 위에 판대공(板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팔작기와지붕을 이루고 있다. 문성공묘는 명륜당의 서북측 따로 쌓은 담장 속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맞배집으로 장대석의 낮은 기단 위에 원형의 주좌(柱座)가 있는 다듬은 초석이 있고 그 위에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또한 기둥 위에는 주두를 놓고 밑면에 초각한 첨차와 소로〔小累〕, 그리고 끝이 날카로운 쇠서〔牛舌〕를 내어 결구한 초익공식(初翼工式)을 이루고 있다.

가구는 5량으로 대들보를 전면 고주(高柱)와 후면 평주 위에 걸고, 첨차로 짜인 동자기둥을 놓아 마룻보를 받치고, 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맞배지붕의 양측 박공에는 풍판(風板:비바람을 막기 위한 널빤지)을 달았다. 그 밖에 서고·전사청·고직사(庫直舍) 등은 모두 사당 담 밖에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太學志, 書院謄錄, 典故大方, 朝鮮王朝實錄, 紹修書院謄錄, 文化遺蹟總覽(文化公報部 文化財管理局, 1977), 韓國建築美(朱南哲, 一志社, 1983), 우리 고장의 전통문화(영주시·영풍군, 1988), 白雲洞書院의 設立과 豊基士林(尹熙勉, 震檀學報 49, 진단학회, 1934), 朝鮮書院一考(崔完基, 歷史敎育 18, 歷史敎育硏究會, 1975), 朝鮮前期書院과 鄕約(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論 8, 1975).

<주남철>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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