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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17 (목) 00:0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227      
[조선] 나주향교 (문화재청)
나주향교(羅州鄕校)

나주향교 전경. 문화재청 사진

나주향교 대성전 전경. 전묘후학(前墓後學)의 건물 배치를 보이고 있다. 대성전 건물 뒤쪽으로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일부 보인다. 문화재청 사진

전남 나주시 교동 32-1.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28호.

<기본 설명>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나주향교는 태조 7년(1398)에 지었으며, 내부에 계성사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로 인해 향교의 배치방법이 다른 향교와 다르다. 대부분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배움의 공간을 앞에 두고, 뒤에 제사공간이 있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계성사가 있기 때문에 대성전과 명륜당의 위치가 바뀐 전묘후학을 따르고 있다.

호남지방의 향교 중 계성사가 있던 다른 향교는 전주향교와 함평향교 등이 있다. 나주향교의 대성전은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갖춘 건물로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노비, 책 등을 지급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책은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전문 설명>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각 지방에 향교를 세워 유학을 가르치고 성현을 제향토록 하였는데, 나주목은 전주부에 이은 호남의 두번째 순위의 고을이었으므로 향교의 규모도 컸다.

나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 7월에 창건되었고 건물의 배치방법이 서울의 문묘와 같은 형식인 전묘후학(前墓後學)으로, 이는 지방의 많은 향교들이 취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와 다른 앞에 제향을 두는 대성전을 두고 강학을 하는 명륜당을 뒤에 두는 방법이다.

대성전은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갖춘 건물로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명륜당 외에 동재, 서재 및 부속사가 있다.

출전 :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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