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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15 (화) 09:25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126      
[조선] 담양 명옥헌 (민족)
담양후산리명옥헌정원(潭陽後山里鳴玉軒庭苑)

     명옥헌 정원. 전남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원. 명옥헌 정원의 중심을 이루는 연못 모습이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44호.정철의 넷째아들 정홍명이 지은 <명옥헌기>가 전하고 있으며, 계류가 바위에는 송시열이 썼다고 하는 '명옥헌계유'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44호.

고서(古西) 네거리를 지나 창평 쪽으로 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명옥헌정원입구(鳴玉軒庭苑入口)’라고 쓰인 비석이 서 있고, 그 옆의 샛길로 접어들어 언덕을 하나 넘으면 네모진 연못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명옥헌정원의 중심을 이루는 연못이다.

못의 크기는 남북 40m 안팎, 동서가 20m 가량되는 방지(方池)로서, 한가운데에 둥근 섬 하나를 쌓았고 주위에는 배롱나무를 심었다.

명옥헌은 못 남쪽에 위치한 언덕 아래 못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북향으로 서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한가운데에 한칸 넓이의 방을 꾸며 놓았다.

건물 동편에는 작은 내가 흐르고 있으며 이 물을 끌어들여 건물 위에 또 하나의 방지를 꾸며 놓았다. 못 가운데에는 자연석으로 된 섬이 있고, 못 밑에는 ㄱ자형으로 열을 지어 배롱나무를 심어 놓았다.

이 정원은 오희도(吳希道)가 외가가 있는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광해군 치하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피하여 조용히 지내기 위하여 집 옆에 ‘망재(忘齋)’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틈틈이 장계골에서 자연을 즐겼다고 한다.

그가 별세한 뒤 그의 아들 오이정(吳以井)이 아버지가 평소 자연을 즐기던 호봉산(瓠峯山) 기슭의 계류가에 터를 잡아 명옥헌을 짓고, 아래위에 못을 파 꽃나무를 심어 가꾼 것이 오늘날 전하는 명옥헌정원의 시작이라고 한다.

정철(鄭澈)의 넷째아들 정홍명(鄭弘溟)이 지은 〈명옥헌기 鳴玉軒記〉가 전하고 있으며, 계류가 바위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썼다고 하는 ‘鳴玉軒癸酉(명옥헌계유)’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명옥헌 뒤 언덕에는 1825년(순조 25)에 창건되고 1868년(고종 5)에 철폐된 도장사(道藏祠)터가 있는데, 현재 명옥헌에는 명옥헌이라 새겨진 현판은 없어졌고 ‘道藏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참고문헌≫

文化財案內文案集-光州直轄市·全羅南道篇-(文化財管理局, 1989).

<윤국병>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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