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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2 (토) 23:06
분 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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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8493      
[청동기] 0540.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

0540.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

고인돌을 세우는 과정을 고고학자들이 상상한 그림이다. 먼저 큰돌을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미리 판 구덩이 속에 넣는다. 그리고 이 받침돌이 흔들리지 않게 작은 돌로 옆을 가득 채워 튼튼히 다진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받침돌 2개 또는 4개를 똑같은 높이로 세우고 나서 받침돌이 파묻힐 만큼 흙으로 덮어서 작은 언덕을 만든다. 이 언덕의 경사를 따라 둥근 나무를 밑에 깔고 뚜껑돌을 끌어올린다.

옛날에는 기중기 같은 중장비가 없었으므로 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했다. 밀고 끌어서 올린 뚜껑돌이 받침돌 위에 놓인 다음 받침돌까지 파묻었던 흙을 치우면 고인돌이 완성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채석 기술, 건축 기술의 전문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종래의 족장은 경험이 많고 연로한 사람으로서 씨족을 대표하는 씨족원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 군장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씨족 공유물을 사유화하고 씨족의 잉여물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러한 자신의 지위를 부족과 신의 중재자이며 신의 사자라는 것으로 정당화하여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러한 군장의 세력과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 고인돌이다.

강화도 부근리의 고인돌은 그 뚜껑돌 하나만 계산해도 무게가 40t이나 되므로 요즈음 대형 화물트럭이 10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무게이다. 이런 큰돌을 움직여 거대한 고인돌을 만들려면 힘센 장사 500명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군장은 한 가구를 5인 기준으로 생각할 때 장정 500명이 나올 수 있는 인구인 2천 500명 정도의 집단을 지배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는 고인돌이 한반도 전체에서 보이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 전 지역에서 골고루 성장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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