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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15 (화) 02:38
분 류 문화사
ㆍ조회: 997      
[조선] 담양 송강정 (문화재청)
송강정(松江亭)

송강정. 문화재청 사진

전남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274. 전라남도기념물 제1-2호.

<기본 설명>

송강정은 송강 정철(1536∼1593)이 조정에서 물러나 4년동안 조용히 지내던 정자로, 송강정이라는 이름은 정철의 호인 송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죽록정이라고도 부르며, 1955년에 고쳐 지었다.

정철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로 명종 16년(1561)에 27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다. 그 뒤로 많은 벼슬을 지내다가 정권다툼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글을 지으며 조용히 지냈다. 그가 송강정에 머물면서 지었다고 하는 『사미인곡』은 조정에서 물러나 왕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여인이 남편과 이별하여 사모하는 마음에 빗대어 표현한 노래이다.

송강정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앞면에는 ‘송강정’이라는 현판이, 옆면에는 ‘죽록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문 설명>

송강 정철은 선조 17년(1584)에 대사헌이 되었으나 동인들이 합세하여 서인울 공박함이 치열해지자 마침내 양사로부터 논척을 받아 부득이 다음해 조정을 물러나자 이곳 창평으로 돌아와 4년 동안을 평범한 인간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조용한 은거생활을 했다.

여기서 그는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썼던 것이다. 송강별집 권칠 기옹소록에 「전후사미인곡 재차향(창평) 시소작불기모년 사시정해무자년간이(前後思美人曲 在此鄕(昌平) 時所作不記某年 似是丁亥戊子年間耳)」이라는 기록을 보면 양사미인곡(兩思美人曲) 제작은 창평(昌平)으로 돌아온 해(1585년)로 부터 2∼3년 뒤가 된다.

「사미인곡(思美人曲)」은 제명 그대로 연군지정을 읊은 노래다. 그 수법은 한 여인이 남편을 이별하고 사모하는 정을 기탁해서 읊은 것인데 송강 자신의 충정을 표현한 노래라 하겠다. 심각한 실의에 빠져 있었던 때이라 송강은 이때 세상을 비관했고 음주와 영탄으로 이곳에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이러한 송강의 은거와 인연이 있는 송강정의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전면과 양쪽이 마루로 되었고 중앙칸에 방을 배치하였다. 정각 바로곁에 1955년에 건립된「사미인곡(思美人曲)」 시비가 있으며 현재의 건물 역시 그때 중수된 것이다.

출전 :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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