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3-28 (목) 09:40
분 류 문화사
ㆍ조회: 610      
[조선] 조선 시대의 미술 (두산)
조선시대미술 朝鮮時代美術

사진 보기

조선 시대에 이루어진 시각 예술.

I. 개관

조선의 미술 활동은 고려와는 달리, 유교 생활에 바탕을 두고 양반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건축ㆍ공예ㆍ서화의 작품은 실용성과 예술성을 매우 잘 조화시켜 자연미를 살리면서 고상하고 기품이 있었다. 또한 민족 문화가 고양되면서 예술 활동도 주체적이고 개성 있게 전개되기도 하였다.

ll. 건축

고려 시대에는 사원건축이 중심인 데 비하여 조선 초기에는 도시의 궁궐과 성곽ㆍ성문, 그리고 학교 건축이 중심을 이루었다. 건물의 특색은 건물의 규모가 법적으로 규제되어 있어서, 그 크기는 거주하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그것은 불필요한 사치를 막자는 까닭도 있었다. 그리하여 건축은 대개 규모가 작고 검소하면서도 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서울의 숭례문(崇禮門), 창경궁의 홍화문(弘化門), 개성의 남대문(南大門) 등이 현존한다.

그 후 16세기에는 서원 건축이 중심을 이루었는데, 경주의 옥산서원(玉山書院),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 등은 당시 서원건축의 대표적인 것이다. 서원 건축은 주택건축 양식과 정자 건축 양식이 배합되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17세기의 건축으로는 화엄사의 각황전(覺皇殿), 법주사의 팔상전(捌相殿)이 가장 아름다운 건축 작품으로 꼽힌다.

18세기 건축 중에서 특기할 것은 수원성곽[운영자 주 : 화성(華城)의 잘못]이다. 정약용(丁若鏞)의 설계에 의해 축조된 수원 성곽은 종래의 성곽과 달리 중화기를 배치하여 적을 공격할 수도 있는 성곽으로서 한국의 전통 양식을 살린 특색 있는 작품이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는 19세기의 건축을 대표하는 걸작으로서, 웅장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고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한말에는 서유럽 양식의 독립문과 덕수궁 석조전이 세워져 근대 건축 양식이 도입되었다.

lll. 공예

조선의 공예는 양반들의 의식주 생활에 요구되는 필수품이나 문방구 등과 관련하여 특색 있게 발달하였다. 따라서 공예품의 재료는 양반들의 검소한 성향에 따라 나무ㆍ대ㆍ흙ㆍ왕골 등과 같은 값싼 재료를 많이 이용하였다.

조선의 공예는 백자(白瓷)가 대표적이었는데, 백자는 바탕흙[胎土]이 훨씬 견고할 뿐 아니라, 청자보다 깨끗하고 담백하여 검소한 아름다움을 풍겨서, 왕족이나 사대부의 취향에 잘 맞았다. 자기의 산지로는 경기 광주의 분원(分院)이 유명하며, 장롱ㆍ궤ㆍ문갑ㆍ탁자 등 목공예 분야도 자연미를 최대로 살리면서 고상하고 기품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 밖에 철제 은입사 공예와 백통에 구리를 입사하는 백통입사 공예도 발전하였고, 별전(別錢)이나 열쇠패와 관련된 금속 공예도 발달하였다.

lV. 서화

조선의 서예는 양반 사회에 있어서 학자라면 누구나 터득해야 할 교양이었으므로 글씨에 능한 사람이 많았으며, 독특한 서체를 개발한 이도 적지 않았다. 초기에는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조맹부체(趙孟홰體)의 글씨를 개성 있게 발전시켜 이름이 높았고 중기에는 양사언(楊士彦)과 한석봉(韓石峰)이 각각 초서와 해서에 능하여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후기에는 김정희(金正喜)가 고금의 필법을 연구하여 추사체(秋史體)라는 독자적인 서체를 창안, 일세를 풍미하였다. 그의 서체는 금석학(金石學) 연구에 바탕을 두어, 고대의 금석문에서 서법의 원류를 찾아 그것을 자기의 개성에 맞게 발전시킨 것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서도가로는 오경석(吳慶錫)ㆍ신헌(申櫶) 등이 유명하였다.

한편, 회화는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전문화가인 화원(畵員)과 문인들의 그림으로 나뉘는데, 그들은 모두 뛰어난 작품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인물과 산수를 씩씩하고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었다. 화원 출신으로 안견(安堅)ㆍ최경(崔涇)ㆍ이상좌(李上佐) 등이 개성 있는 솜씨를 보였는데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문인화가로는 강희안(姜希顔)ㆍ이암(李巖) 등이 간결하면서도 호방한 작품을 남겼다.

중기에는 이정(李霆)ㆍ황집중(黃執中)ㆍ어몽룡(魚夢龍)이 각각 대ㆍ포도ㆍ매화를 잘 그려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으며,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섬세하고 정교한 여성적인 필치로써 꽃과 나비ㆍ오리 등을 잘 그려 이름이 높았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의 움직임과 더불어 회화에도 새로운 변화를 보였다. 화원 출신인 정선(鄭敾)은 한국의 자연을 그려내는 데 적합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개척하여 《금강산도》 《인왕제색도》를 남겼고, 김홍도(金弘道)는 처음에 신선도(神仙圖)를 즐겨 그리다가 뒤에는 산수화와 풍속화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특히, 밭갈이ㆍ추수ㆍ집짓기ㆍ대장간ㆍ씨름 등 순박한 농촌사회의 모습을 잘 그렸다. 김홍도와 더불어 풍속화의 대가인 신윤복(申潤福)은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로 도회지 양반의 풍류 생활과 부녀자의 모습을 잘 묘사하였다.

18세기 말 이후로는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아 강세황(姜世晃)ㆍ김수철(金秀哲) 등이 새로운 화풍을 개발하였고, 19세기에는 복고적 화풍이 다시 풍미하여 김정희ㆍ신위(申緯)ㆍ장승업(張承業) 등이 사실적이고 생동력 있는 필력을 보였다. 한편, 민화(民畵)는 서민들의 감정을 잘 묘사하였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윗글 [무덤] 고인돌 (한메)
아래글 [무덤] 돌무덤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2 문화사 [무덤] 돌무덤 (한메) 이창호 2010-06-05 634
11 문화사 [무덤] 돌널무덤 (브리) 이창호 2010-06-04 623
10 문화사 [무덤] 고인돌 (한메) 이창호 2010-06-04 610
9 문화사 [조선] 조선 시대의 미술 (두산) 이창호 2002-03-28 610
8 문화사 [무덤] 돌무덤 (두산) 이창호 2010-06-05 570
7 문화사 [무덤] 널무덤 (두산) 이창호 2010-06-05 553
6 문화사 [조선] 3623. 나주 금성관 (문화재청) 이창호 2002-07-04 465
5 문화사 [조선] 담양 소쇄원 (문화재청) 이창호 2002-10-01 448
4 문화사 [조선] 조선 도자기 참고문헌 (민족) 이창호 2002-04-21 409
3 문화사 [참고 문헌] 서문과 참고 문헌 이창호 2001-06-19 409
1,,,12112212312412512612712812913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