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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답변입니다.
김은혜 학생! 역사 교사로서 우선 님의 글을 읽고 제가 예전에 한국사 연구자가 되려고 꿈꾸던 것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중3 학생으로서 은혜양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답변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우선 어떤 동기에서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든지 간에, 그 꿈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잘 키워서 그 뜻을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역사 공부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것을 공부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고 의미있게 생각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주변 환경이나 부모님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중3 학생이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하면, 그 눈길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금부터 또는 고등학교에서 역사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교육을 시키는 곳도 없구요. 그것은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이 매우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학문이라서,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기초 학문과 지식, 능력을 길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역사 과목을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역사학을 공부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쯤이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국사, 세계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었는데, 그분의 말씀이 제가 사학과에 진학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그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좋은 대학도 추천해 주셨고,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 능력과 자질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인문과학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키우는 것, 영어, 한문 등의 외국어 능력의 습득 등을 알려주셨고, 그 뒤 2년간 저는 사학과에 가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목표로 했던 대학의 사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저는 문과 지망생이지만, 이과반에 편성되어 공부했고, 수학2나 과학 과목도 공부하였는데, 이것은 제가 과학사를 공부할 때 또는 교사로서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큰 힘과 능력이 되었습니다. 은혜양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역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대학교 과정이나 대학원 과정을 통해서이고, 중고등학교 과정은 그 준비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공부해야 하는 여러 과목이 역사학과 관계가 없거나,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되더라도, 여러 가지를 성실하고 차분하게 공부해 두는 것이 앞으로의 공부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제 인생 경험의 교훈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한국의 문화와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 폭넓게 인문사회과학들을 공부하면서, 제가 대학을 다니던 그 시기에는 그러한 공부가 주제넘은 것이고 사치라는 생각을 하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공부들을 많이 하였지요.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때 교생 실습을 나가서 역사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성심여고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면서 역사 교사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대학에서 폭넓게 공부한 것이 세계사를 가르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국사 과목도 가르치게 되면서, 제가 우리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도 부족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마침 지금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에 올라와 계신 유홍준 선생님의 한국미술사에 대한 강연을 듣게 되었고, 그 강의를 들으면서, 미술사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 역사를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참으로 열심히 한 학기 동안 유홍준 선생님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강의를 흥분과 감탄 속에서 수강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들을 때는 나도 저렇게 잘 가르칠 수 있겠다 싶었지만, 막상 가르치려고 하니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교에 새로 생긴 교육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신라 탑파와 그에 대한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석사과정 논문을 썼습니다. 1994년 2월에 대학원을 마친 뒤, 몇 년 동안은 고3 담임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지요. 그러나 한국미술사에 대한 계속된 관심과 최근 3~4년간의 우리 국토 답사를 통하여 조금식 안목을 넓힐 수 있었고, 이제는 미술사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의 사상사와 정치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살이는 꿈을 가지고 시작을 하지만, 중도에 그 목표가 변경되거나 수정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오랫 동안 방황하다가 다시 원래의 꿈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너무 제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제 인생 경험과 그 교훈이 역사 공부를 꿈꾸고 있는 은혜양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물어보신 독학국사라는 책은 잘 모르기는 합니다만, 중학생이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듯 싶군요. 오히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여러 선생님들이 집필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2>(휴머니스트, 2002) 두 권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앞의 책(독학국사)은 교사나 고시 수험생을 위한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 변론가라는 직업은 별로 생각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한 직업은 역사에 대한 해박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논리적 설득력을 가진 글솜씨와 말솜씨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우선 지금부터 투자해야 할 일은, 어학(한문, 영어 불어 중국어 등의 외국어)에 대한 지속적인 공부와 훈련(사실 이 능력만 제대로 키우면 목표의 2/3 정도는 달성하는 것입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훈련,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말을 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런 능력들은 어디서 키워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노력과 피땀나는 자기 극복의 과정을 통해서만 키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쉽게 이런 과정을 권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자기가 이런 것을 좋아해서 선택하고 극복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도 질의응답에 이렇게 긴 글을 쓰기는 처음입니다. 은혜양의 꿈이 잘 자라서 큰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2002년 12월 첫째날 오후에, 목동에서, 이창호 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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