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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6 (토) 19:09
분 류 사전1
ㆍ조회: 983      
[조선] 한준겸의 졸기 (인조실록)
《 인조 016 05/07/17(신사) / 영돈녕부사 서평 부원군 한준겸의 졸기 》

영돈녕부사 서평 부원군(西平府院君) 한준겸(韓浚謙)이 졸하였다.

한준겸의 자는 익지(益之)이고 호는 유천(柳川)인데 청주인(淸州人)이다. 풍채가 뛰어나고 기량이 넓으므로 일찍부터 공보(公輔)의 촉망을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북방의 관찰사가 되어서는 먼저 《가례》와 《소학》을 간행하여 언서(諺書)로 번역하였고, 또 《의례》를 모방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와 향사례(鄕射禮)를 제정하였으며, 외직으로 나가거나 내직으로 들어오거나 근면하였고 사방에 힘을 다했으므로 크게 사민(士民)들의 마음을 얻었다.

영남 안찰사(嶺南按察使)가 되어서는 정인홍(鄭仁弘)의 사람됨을 미워하여 순행(巡行) 중에 그의 문앞을 지나면서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는데, 마침내 그의 무리인 문홍도(文弘道)의 날조된 무함을 입어 파직되어 돌아왔다.

계축년 변란 때 역신 이이첨이, 선왕이 일곱 신하에게 유교(遺敎)를 내려 영창(永昌)을 보호하게 하였는데 한준겸도 그 속에 끼었다는 이유로 사형수 박응서(朴應犀)를 사주하여 상변하게 하여서 한준겸이 드디어 체포되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연흥군(延興君)과 서로 친하지 않다고 변명하라고 권하였으나, 한준겸은 죽고 사는 것은 명이니 남을 팔아서 스스로 벗어나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국구(國舅)가 되어서는 더욱 근신하였는데, 그가 죽자 사람들은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원전】 34 집 216 면
【분류】 *인물(人物)

출전 : 인조실록 016권 인조 5년 7월 17일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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