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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6 (토) 20:41
분 류 사전1
ㆍ조회: 893      
[조선] 이광정1 (민족)
이광정(李光庭(1552∼1627))

1552(명종 7)∼1627(인조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자는 덕휘(德輝)이다. 호는 해고(海皐)이다. 부사(府使) 말(煞)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군수 경종(慶宗)이다. 아버지는 정언(正言) 주(澍)이며, 어머니는 유사필(柳師弼)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진사시에 합격했다. 1590년 교관(敎官)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1년 승문원정자·사관(史官)·시강원설서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에 선조를 모시고 가서 정언과 지제교(知製敎), 예조·병조의 좌랑을 지냈다. 이듬해 환도 후 접반사(接伴使) 이덕형(李德馨)을 도와 실무를 담당하였다.

지평·병조정랑·동부승지 등을 지내고 이조·예조·병조의 정랑, 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그 뒤 이조·예조·병조의 참의, 좌승지를 거쳐 대사성이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접반사로서 명나라의 부사였던 심유경(沈惟敬)을 만나러 갔다. 명나라에서 돌아와 호조참판이 되어 군향(軍餉 : 군수용 물품)을 정리하여 바로잡는 데 힘썼다.

공조참판을 거쳐 1598년 접반사로서 명나라의 제독 마귀(麻貴)를 따라 울산을 다녀왔다.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헌했다. 1599년 호조·공조의 판서를 거쳐 한성부윤이 되었다. 1601년에는 지중추부사로서 청백리에 뽑혔다.

1602년 예조판서를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 이 때 주청사(奏請使)로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책봉에 대한 고명(誥命)을 받으러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공로로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계되었다. 판돈녕·판의금을 거쳐 예조·이조의 판서가 되었다.

1604년에는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어 연원군(延原君)에 봉해졌다. 뒤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부원군(府院君)이 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호조판서로 제수되었으나, 당시의 정치상황이 어지러운 것을 보고 병을 핑계로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는 공조·형조의 판서를 거쳐 1626년(인조 4)에는 개성유수가 되었다. 이 때 그곳의 인심이 매우 이익을 탐하여 이를 개혁하는 일을 단행하다가 마찰이 생겨 해직당하고, 기로소(耆老所)로 들어갔다. 정묘호란을 당해 왕을 강화도에 모시고 갔으나 병사했다. 인품이 근검하고 신중하여 주요 직책을 두루 맡았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東州集, 蒼石集, 國朝人物考.

<박정자>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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