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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2 (화) 15:10
분 류 사전1
ㆍ조회: 975      
[고려/조선] 서경 (두산)
서경 署經

고려·조선 시대에 인사 이동이나 법률 제정 등에서 대간(臺諫)의 서명을 받는 제도.

대간은 대관(臺官)과 간관(諫官)을 말하는데 고려는 어사대와 중서문하성의 낭사(郎舍), 조선은 사헌부와 사간원을 합쳐 부른 것이다. 이들은 국왕에 대한 간쟁·논박(論駁)과 당시의 정사(政事)에 대한 비판 및 풍속의 교정, 백관에 대한 탄핵과 규찰 등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서경권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에서는 인사 이동의 경우에 국왕의 재가를 받은 뒤에도 대간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이때는 당사자의 재행(才行)·현부(賢否) 등을 살필 뿐만 아니라 3대의 가세(家勢)를 함께 심사하였고, 해당자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서명을 하여 관직을 제수하였다.

반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는 크게 세 종류로 반영하는데, 먼저 관직을 제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서명하지 않고 '작불납(作不納)'이라고 쓰면 관직을 받을 수 없었고, 둘째 당사자의 관직 진출은 인정하지만 인사권을 장악하는 청요직에는 등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정조외(政曹外)'라고 썼으며, 셋째 일정 품관 이상 승진할 수 없다는 한품서용(限品敍用)을 전제로 할 때는 '한품자(限品者)'라고 기록하였다.

고려의 대간들은 1품에서 9품까지 모든 관료에 대한 서경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경권은 인사 문제에 대한 국왕의 전제를 막을 수 있는 방편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이러한 서경의 범위 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태조는 공신과 시위군관(侍衛軍官)에 대한 관직 제수에서 대간과 부딪치자 1품에서 4품까지는 대간을 거치지 않고 국왕이 직접 제수할 수 있게 하였고, 5품에서 9품까지만 대간의 서경을 받게 하였다.

그러나 이는 대간의 반발을 받아 1400년(정종 1)에 고려의 제도를 복구하였으나 1413년(태종 13)에 다시 태조 때의 관례로 환원했으며 나아가 1415년에는 서경 기간도 50일로 제한하여 서경권을 축소시켰다. 그뒤 세종 초에 고려의 제도를 일시 사용했다가 1423년(세종 5)에 다시 5품 이하만 서경하게 하였고, 이것이 《경국대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제도는 결국 국왕이 결정한 인사 문제나 법률 제정과 같은 문제에 대해 대간이 다시 심사하여 부당한 경우를 막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고, 이렇게 하여 국왕의 전제를 규제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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