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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2 (화) 15:04
분 류 사전1
ㆍ조회: 1094      
[고려] 중서문하성 (한메)
중서문하성 中書門下省

고려시대 최고정무기관. 재부(宰府)라고도 하였다.

《고려사》 <백관지(百官志)>에 따르면, 고려 초에 내의성(內議省)이라 하던 것을 982년(성종 1) 내사문하성이라 고치고, 1061년(문종 15) 중서문하성이라 개칭하였다. 고려는 당(唐)나라의 삼성육부제(三省六部制)를 채택하였지만 중서성과 문하성이 단일기구를 이루었고, 그 장관인 문하시중이 수상이 되었다.

중서성이라 약칭하기도 하였으며, 관원은 2품 이상의 재신(宰臣;省宰·宰相)과 3품 이하의 성랑(省郎;郎舍·諫官)으로 구성되어, 재신은 백관을 통솔하고 국정을 의논하였고 성랑은 간쟁(諫諍)·봉박(封駁)·서경(署經)의 기능을 가졌다.

재신은 종1품인 중서령·문하시중과 정2품인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중서시랑평장사·문하평장사·중서평장사, 종2품인 참지정사(參知政事)·정당문학(政堂文學)·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로 구성되었는데, 중서령은 실직이 아니었으므로 그 장관은 문하시중이 되있다.

성랑은 정3품인 산기상시(散騎常侍) 이하 종6품인 습유(拾遺)까지 14명이 있었다. 재신과 성랑은 같은 관청의 관원이었으나 구성이나 기능이 전혀 달랐다. 재신은 국정에 참여하였으나 의정의 권한이 없었고 성랑에게는 재신까지도 탄핵하는 권한이 주어졌는데, 이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간원이 분화, 독립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

한편 중서문하성에서 결정한 사항을 상서성에서 시행,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같은 권력을 가진 기관이 아니라 상하종속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상서성의 장관인 복야(僕射)의 지위도 문하시중보다 낮았다.

1275년(충렬왕 1) 상서성을 합하여 첨의부(僉議府)라 하였고, 93년 도첨의사사(都僉議使司)로, 1356년(공민왕 5) 다시 중서문하성으로, 62년 도첨의부(都僉議府)로, 69년 문하부(門下府)로 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후기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가 최고권력기관으로 대두하자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었다.

<이기동>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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