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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한국 유학사 1 (고영진)
한국 유학사의 이해 한국 유학사 1 고영진 (광주대학교 교수) <목차> 1. 유학이란 무엇인가 2. 유학의 전래와 보급 3. 고려 유학의 발전 4. 성리학의 수용 5. 조선 성리학의 발전 6. 실학의 대두 7. 성리학의 경직화와 극복 노력의 좌절 1. 유학이란 무엇인가 사상은 역사적 상황에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형성된 일정한 체계를 갖춘 사고의 내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상은 그 속에 현실이 반영되어 있으며 동시에 현실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사상사는 바로 이러한 사상의 역사이며 사상사학은 이러한 사상의 역사적 변천을 다루는 역사학의 한 분야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건, 변동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상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상과 현실 사이의 반영과 영향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이다. 따라서 사상을 역사적 현실과 관련 없이 인간의 사유와 정신활동으로만 형성되는 관념적 영역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잘못이다. 이러한 영역을 굳이 상정하고 싶다면 '사상'보다는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그러한 초역사적인 보편성을 추구하는 관념의 역사를 '철학사'라고 할 수는 있지만 '사상사'라고 할 수는 없다. 유학은 공자에 의해 종합·정리된 학문체계를 의미한다. 비록 공자가 창시했다고 하지만 "옛 것을 조술했을 뿐 창작하지 않았다"는 공자 자신의 말대로 그가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공자는 은대의 종교적인 上帝관념, 주대의 天命사상, 조상숭배사상과 禮制 등 이전의 여러 사상과 전통문화를 계승하여 종합·정리해서 유학을 성립시켰다. 유교는 하·은·주 삼대의 선왕으로부터 공자에 전승되어 정립된 유가의 가르침을 말하며 유학은 유교를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이름 붙인 것으로 유교사상의 체계가 학문적으로 정립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유교와 유학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학은 시대에 따라 선진유학에서 한당유학,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등으로 변화·발전해왔다. 공자의 仁政과 德治, 맹자의 王道政治와 民本思想 등에 기반한 선진유학(원시유학)은 정밀한 이론적 체계라기보다는 생활 속의 실천 윤리적인 측면이 강하였다. 더욱이 그것이 지닌 이상적인 성격 때문에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점이 오랜 중국의 역사에서 오히려 유학이 생명력을 지닐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유학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漢代였다. 동중서는 유학을 한의 지배이념으로 삼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유학에 陰陽五行說을 받아들여 天人感應說과 災異說을 주장함으로써 황제권을 절대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한무제가 五經博士를 둔 이후 유학은 점차 한의 국교화되어 갔으며 이에 따라 經學이 확립되었다. 한 이후 위진남북조에서 수당에 걸친 시기에는 훈고학적인 유학 경전 연구나 詞章學적인 유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전반적으로 불교와 도교가 번성하고 유학은 침체되는 양상을 보였다. 송대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성리학은 당시 광범위하게 유행하였던 불교와 도교를 철학적으로 극복하고 성립한 새로운 유학이었다.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理와 현상적이고 가변적인 氣로써 우주의 생성·변화를 설명하는 理氣論은 자연과 인간·사회를 설명하는 성리학 전체의 기본 이론이었다. 이러한 이기론을 바탕에 두고 인간의 심성을 설명한 人性論과 도덕적 실천방법을 설명한 修養論이 체계화되었다. 인간의 본성이 곧 리라는 性卽理와 보편적 진리인 리는 지적인 탐구와 수양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다는 居敬窮理가 그것이다. 그리고 인욕을 제거하고 천리를 보존함으로써[存天理去人欲] 성리학의 이상을 현실사회에 구현하는 방법이 禮였다. 여기에 여러 정치·사회·경제정책들이 성리학의 기본 이념에 입각하여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성리학의 구조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이기론(우주론·존재론) | +-----------+------------+ +--------+-------+ | 성즉리(인성론) | +--------+-------+ +---------------+------+------------------+ +--------------+---------------+ +---+----+ +-----------+---------+ |거경궁리·존천리거인욕(수양론) | |예(예론) | |정치·사회·경제정책 | +------------------------------+ +--------+ +---------------------+ 이를 보면 성리학이 단순한 형이상학적인 철학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사회의 모든 분야를 일관되게 설명하려는 종합적인 사상체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를 규정하고 영향을 미치는 자본주의처럼 중세사회의 모든 분야를 규정하고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 즉 지배사상인 것이다. 또한 성리학에서는 오경보다 四書를 중시하였다. 명대 왕수인이 체계화한 양명학은 명대 교조화·형식화 되어가던 성리학을 비판하며 나타난 새로운 유학사상으로 心卽理라 하여 인간의 주체적인 측면을 중시하였으며 일반민에 대한 인식이 적극적이고 실천성을 강조하였다. 양명학은 본질적으로 주자의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성리학의 영역 가운데 내적 수양 부분을 근본으로 삼고 성리학에서 내적 수양과 동시에 강조했던 지적 탐구 부분, 즉 학문의 의의는 약화시킨 것이다. 청대 초기 황종희 등 일부 유학자들이 성리학의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성격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경전의 의의를 밝히는 데 힘을 기울이고 경세치용의 실학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 후 청대 유학의 일반적 경향은 널리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하고 문자 용어의 古義나 古制 등을 구명하는 고증학이 학계에 주류를 이루었다. 근대에 들어와 유학은 철저히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절정은 문화대혁명이었으나 모택동 사후 중국의 개방과 개혁이 진행되면서 유학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뚜웨이밍과 같은 학자는 현재 유학이 제3의 발전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2. 유학의 전래와 보급 유학이 한반도에 언제 전래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기자에 의해 전래되었다는 장지연 등의 箕子東來說, 진한시대 특히 한사군 때 유학사상이 전해졌다는 이병도의 설, 삼국시대에 전래되었다는 최남선의 설, 연나라와의 빈번한 접촉을 바탕으로 기원전 4세기경에 전해졌다는 김충렬의 설 등이 있으나 모두 사료적인 근거가 미약하다. 그럼에도 진한시대 이래로 한문 등 중국의 문물제도와 학술사상이 한반도에 전해지면서 유학도 전해졌다는 보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전래 문제와는 별도로 유학이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수용된 시기는 삼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 율령을 반포하고 역사서를 편찬하고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유교윤리와 제도, 유학사상이 여러 부분에서 기능했던 시기가 이때였기 때문이다. 삼국이 수용한 유학은 원시유학과 한대의 유학이 혼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학은 삼국시대에 본격적으로 수용되었지만 학문적으로는 그렇게 수준 높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는 삼국 통일 이후 중국의 선진문물 제도의 폭넓은 수용과 渡唐유학생의 증가, 교육제도의 정비 등을 통해 점차 극복되어 갔다. 통일신라시대의 유학자는 진골이 없지 않았으나 6두품 출신이 많았다. 강수는 외교문서를 잘 지어 신라 통일에 기여하였으며 설총은 유교경전을 이두로 풀어써 후학을 가르치는 등 유학의 보급에 기여하였다. 이들은 골품제와 일정한 타협 아래 왕권과 결탁하여 정치적 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유학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신라 하대에 이르면 최치원·최승우 등 도당유학생 출신 6두품들이 주축이 되어 골품제 자체를 비판하며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등 유학이 체제개혁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유학은 윤리·도덕 중심의 원시유학과, 훈고학·경학과 사장 중심의 한·당유학이 합쳐진 유학이었으며 불교·도교와 대립적이지도 않았다. 또한 최치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시기 상당수의 학자들은 유·불·도에 모두 조예가 깊은 三敎會通的인 성격이 강하였다. 3. 고려 유학의 발전 고려 시대에는 유교와 불교, 도교·토속신앙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이 함께 발전하였다. 유교는 정치와 사회윤리 분야에서, 불교와 도교·토속신앙 등은 종교와 생활 분야에서 그 기능을 수행하였다. 고려 전기의 유학은 국가 체제 정비에 바탕이 되었다. 태조는 유·불·도와 토속신앙 등을 폭넓게 포섭하여 국가를 경영해 나갔으나 정치이념의 기반은 유학에 두었다. 이는 [訓要十條]에 잘 나타나 있는데 10개조 가운데 5개조가 유학, 특히 왕도정치사상에 입각한 것이었다. 광종에서 성종에 이르는 시기 유학은 왕권 강화와 집권 체제 확립에 기여하였다. 광종은 958년(광종 9) 과거제를 시행하고 960년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였는데 정책 시행에서{貞觀政要} 등을 많이 참고하였다고 한다. 유학이 정치·문화·학술 등 여러 방면에서 고려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임금은 성종이었으며 그에게 이념적 기반을 제공한 인물은 최승로였다. 그는 성종이 즉위하자 [시무 28조]를 올려 국방, 불교, 사회문제, 왕실, 중국관계, 토착신앙 등에서 여러 개혁책을 제시하였다. 이는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를 확립하고 고려의 전통적인 제도를 유교적인 제도로 개혁하는 것이었다. 고려 중기의 유학은 북송성리학을 수용하면서 경전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심화되고 유학 자체의 성격도 변화하였다. 주로 제왕의 통치 이념으로 기능하였던 전기의 유학이 통일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훈고·사장 중심의 성격을 가졌던 데 반하여 관료와 귀족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이 시기의 유학은 心性 중심의 철학적 경향을 띠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유학자는 인종 때 활약한 김부식이었다. 고려 중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의 유학을 대표했던 그의 학문 역시 북송성리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삼국사기}의 論贊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이처럼 한·당유학의 영향을 받아 훈고·사장적인 성격이 강했던 고려 전기의 유학은 중기에 오면 북송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심성론 등 철학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주역}과 {중용} 등 성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서에 대한 강의와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무신 정변이 일어나 문벌 귀족 세력이 몰락함에 따라 고려 유학은 한동안 크게 위축되었으며 대신 부박한 시문을 가까이 하고 현실 도피적이고 고답적인 玄學의 경향이 생겨났다. 4. 성리학의 수용 고려 후기 홍건적과 왜구의 침략, 명의 압력 등으로 인한 대외적 모순과 농장의 확대와 불교 교단의 폐해, 민생의 피폐 등으로 인한 대내적 모순을 극복하면서 성장하였던 신흥사대부는 불교에 대항하는 개혁사상으로서 성리학을 수용하였다. 원으로부터 고려사회에 도입된 성리학은 주로 북방의 한인 유학자들이 남송의 성리학을 수용해 官學化한 것이었으나 성리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남송의 주자성리학 그 자체와 주자·육상산을 절충한 학문 등 다양한 사상들이 들어왔다. 이처럼 다양한 사상 조류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신흥사대부 사이에 입장의 차이가 나타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들의 차이는 이색·정몽주 등의 온건개혁파와 정도전·조준 등의 급진개혁파의 대립으로까지 발전하였으며 전제개혁과 조선의 건국 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결국 각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기반과 사상적 차이가 당시 사회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에 차이를 가져왔던 것이다. 같은 중소지주이지만 급진개혁파에 비해 사회경제적 기반이 나았던 온건개혁파의 사상은 {춘추}를 중시하였으며 인간의 본성과 성리학 본연의 王道에 충실하였다. 따라서 고려의 지배체제는 그대로 둔 채 제도 운영상의 문제점만 개혁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온건개혁파에 비해 사회경제적 기반이 못하고 신분상으로 하자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급진개혁파의 사상은 {주례}를 중시하였으며 제도개혁과 왕도·覇道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때문에 고려말의 사회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려의 지배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나아가 역성혁명론에 입각해 왕조도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조선의 건국은 바로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5세기 조선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고려시대부터 누적되어온 대내외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왕조교체에 따른 새로운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부국강병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성리학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당유학, 불교, 도교, 풍수지리사상, 민간신앙 등을 포용하여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으며, 특히 법가적인 성격이 강한 {주례}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중요시하였다. 이는 조선의 국가체제 자체가 {주례}에 나오는 주대의 체제의 모범으로 하고 정치·경제·법률·예제 등 많은 분야에서 준거로 삼았던 데서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六典과 五禮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 학자들이 이기심성론 등 성리학의 철학적 이론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무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도전·권근·변계량 등 관학파로 불리는 이 시기 주요 인물들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이들이 이기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주자의 견해와 다른 점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말하자면 이들은 성리학을 그대로 받아들여 수용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받아들이고 다른 사상으로 보완하는 방법을 통해 주체적으로 수용하였던 것이며, 그것이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였다. 세종대에 실용적인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농업과 의학에 관한 서적들이 널리 간행된 것도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5. 조선 성리학의 발전 성종대에 들어서면서 고려말 온건개혁파로 조선의 건국에 참여하지 않고 재야로 남은 세력들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사림이 중앙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다. 김종직을 비롯한 영남사림과 이어 등장하는 조광조의 기묘사림은 刑政보다는 敎化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였으며 훈척의 비리와 전횡을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하여 비판하여 당시의 사회 모순을 성리학적 이념과 제도의 실천으로 극복해 보려고 하였다. 이제 성리학이 훈척 중심의 기존 체제를 공격하는 사상적 무기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의 성리학 이론 수준은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들의 등장은 주자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인 조선사회에 확립되고 의리 명분과 실천을 중시하는 경향이 그 뒤 조선 성리학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잡게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실천적 행동은 훈척까지도 성리학의 실체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고 성리학을 자기 시대의 이념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16세기 초반 사림의 사상적 경향은 성리학 이념의 사회적 실천과 도덕성·수신의 강조였다. 그런데 도덕성과 수신의 강조가 그 사회적 실천을 수반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인간의 심성에 대한 관심이 증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성리학적 세계관과 이기심성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글들이 서경덕과 이언적 등을 통해 나오고 이어 이황과 기대승의 四端七情論爭 등을 통해 사림은 성리학 이론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갔다. 서경덕과 이언적은 각각 조선 성리학에서 氣一元論과 理氣二元論의 선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리보다는 기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역학을 중시하고 불교와 노장사상 등에 대해 개방적인 성격을 지녔던 서경덕의 사상은 북송성리학을 독창적으로 집대성한 성격이 컸다. 조식 역시 불교와 노장사상에 대해 포용적이고 병법·의약·지리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며 敬義를 중시하고 학문의 실천성을 강조하였다. 서경덕·조식을 중심으로 한 이러한 학문 경향은 16세기 중반 이후 중요한 사상적 조류를 형성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사상계의 주된 흐름은 주자의 학문, 주자 중심의 세계관에 충실하려는 것이었다. 이언적은 조한보와 벌인 논쟁에서 주자 이론의 핵심인 이기이원론과 理先氣後說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에 기반하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여 후대 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주자 중심의 성리학이 조선사회에 확고하게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 이황과 이이였다. 이황은 주자의 이론에 조선의 현실을 반영시켜 나름대로의 체계를 세우려고 하였다. 따라서 성리학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주력하면서도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내는 데 더 중점을 두었다. 주자의 학설에 입각해 있으면서 현실의 필요성에 의해 이기의 분리와 理의 운동성을 강조했던 이황과는 달리 이이는 주자성리학 자체에 충실하려고 함으로써 당시의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하였다. 그는 16세기 조선사회를 中衰期로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다양한 개혁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렇듯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이기심성론의 차이는 당시 그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그에 대한 대응양식에서 형성된 것이기도 하였다. 理貴氣賤, 리의 자발성, 이원적 사고에 의한 도덕성과 수신의 강조를 기본적 특징으로 하는 이황의 사상은 훈척정치와의 투쟁과정에서 구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을 강조하고 근본적·이상주의적 성격을 지니는 그의 사상은 사림이 정권을 잡고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시기에는 적절하지 못하였다. 지주의 토지 침탈, 방납과 대립제의 폐단 등 15세기말부터 노정되어 온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대신 수행한 것이 이이의 사상이었다. 그의 사상은 정권을 담당하고 현실을 주도해 가는 사림의 입장에서 형성되었다. 리는 두루 통하지만 기는 국한된다는 理通氣局論과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이와 능동적·자율적인 기의 조화를 강조하는 理氣之妙는 만물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모두 강조함으로써 그의 개혁정책의 논리적 바탕이 되었다. 서경덕과 조식의 사상 역시 이황처럼 훈척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리와 도덕성을 중시한 이황과는 달리 이들은 기 또는 실천성을 강조하였다. 서경덕에게서 기의 강조는 곧 변화의 강조였으며 그것은 구체적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현실의 개혁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조식에게서 敬과 義, 下學의 강조는 당시 훈척의 비리와 사회모순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들의 사상은 성리학의 이론적 심화라는 측면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으나 사회개혁에 대한 이론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17세기 북인과 근기남인학자들의 사상은 서경덕과 조식의 사상에 뿌리를 대고 있다. *우주론 +-이언적: 無極이 太極 즉 理 +-조한보: 無極太虛의 본체는 본래 寂滅 +-서경덕: 우주의 본체는 太虛 즉 氣 * 이기론 +-서경덕: 氣一元論 +-이황: 理氣二元論 | a. 리와 기는 物 가운데 불가분의 관계로 共在. | b. 리와 기는 속성상 엄연히 구별되는 존재. | c. 리는 기 가운데 있으나 기에 선행하는 것. +-이이: 理氣一元論 a. 물질현상과 動的 현상의 총화를 기, 동시에 기 자체에 내재한 주재적인 기본 원리와 원인을 리. b. 리와 기를 일체 양면적인 것으로 봄. 분석하면 둘이로되 양자의 渾淪한 관계에서 보면 一物에 불과. c. 理通氣局. * 심성론 心--+--心의 體, 사물에 감촉되지 않은 상태인 未發 → 性--+ | +--心通性情 +--心의 用, 사물에 이미 감촉된 뒤인 已發 → 情------+ 性--+--本然之性: 본체로서의 인간의 性----+ | +--性卽理 +--氣質之性: 현실의 구체적인 人間性--+ 情--+--四端(惻隱, 羞惡, 辭讓, 是非의 情) +--七情(喜, 怒, 愛, 樂, 懼, 惡, 欲) ┌이황: 理氣互發說 │ 理發而氣隨之, 氣發而理乘之 └이이: 氣發理乘一途說 * 수양론 ┌窮理──致知──格物致知 └修身──力行──存天理去人欲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고 정치적 상황에 대한 대응양식에 따라 이론적 차이를 보이면서, 또한 성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지역적으로 크게 확산되면서 16세기 중반부터 학설과 지역적 차이에 따라 서원을 중심으로 학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서경덕학파와 이황학파·조식학파가 형성되고 그 뒤에 이이학파와 성혼학파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선조대 사림들이 중앙정계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함에 따라 각 학파를 기반으로 하여 정파가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서경덕학파와 이황학파·조식학파가 동인을 형성하였으며 이이학파와 성혼학파가 서인을 형성하였다. 동인은 기축옥사를 계기로 이황학파의 남인과 서경덕·조식학파의 북인으로 분화되었다. 이후 학파와 정파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것이 조선사회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7세기는 16세기중반부터 뿌리내린 사림의 지배체제가 내외적인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 지배구조를 공고히 한 시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사림 지배체제 확립 이후 조선사상계의 주류로 잡아가던 성리학의 역사적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17세기 사상계는 초반부터 주자 중심의 성리학 뿐만 아니라 서경덕과 조식의 사상, 양명학, 노장사상, 삼교회통사상 등이 부각되면서 다양한 사상조류들이 전개되었다. 나아가 이 시기는 양란의 피해를 극복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성리학의 철학적 측면보다는 의리명분적 측면과 사회경제적 측면에 관심이 두어져 왕실의 전례 문제와 북벌론, 그리고 대동법·호포법·오가작통제·양역변통론 등의 사회경제정책을 둘러싸고 각 정치세력 사이에 격렬한 논쟁과 대립을 하였다. 성리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우면서 양명학·노장사상·불교 등에서 필요한 부분을 수용하여 상공업 강조, 삼교회통, 박학적 성격을 특징으로 하였던 북인의 사상은 이론적으로는 세련되지 못했지만 국가 운영의 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었으며 그 뒤 주자 상대화를 추구하던 사상적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성리학의 명분론에 벗어난 廢母殺弟와 중립외교, 대규모 궁궐 토목공사로 인한 민생의 피폐는 서인과 남인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국을 주도하자 서경덕·조식의 사상과 양명학, 노장사상 등은 배척을 당하고 이황과 이이의 학문, 즉 주자 중심의 성리학이 조선사상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후 이이학파의 서인과 이황학파의 남인은 대명의리론을 견지하고 의리명분론을 강화하는 방향을 나갔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사회경제정책을 제시하고 논의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리학적 의리명분론에 입각한 대명의리론의 강화는 병자호란을 불러 일으키고 조선은 오랑캐인 청에게 무릎을 꿇지만 격렬한 주화·척화 논의를 거쳐 인조 말엽부터 송시열 등 서인산림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조선사회는 척화론과 대명의리론이 대세를 잡아갔다. 17세기 후반 제2차 예송으로 근기남인이 권력을 잡고 그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개혁론자였던 윤휴가 五家作統制와 戶布論 등을 주장하면서 각 학파와 정파들 사이에 사회경제정책을 둘러싼 논의는 더욱 격렬해졌다. 17세기는 '예학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예학이 발달하였으며 두 차례의 예송을 비롯해 많은 典禮論爭이 벌어졌다. 그러나 예학이 17세기 들어와 갑자기 부각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15세기말부터 사림에 의해 三代의 예에 의한 교화가 강조되기 시작하고 중종대에 들어오면 기묘사림에 의해 {주자가례}와 {의례}가 {국조오례의}나 한·당례보다 더 강조되면서 왕실의 전례를 둘러싸고 훈척들과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17세기에 들어와서도 예는 양란으로 인해 해이해진 예적 질서의 회복이 강조되면서 더욱 중시되었다. 나아가 예로 나라를 다스리면 다스려지고 가르침도 禮敎보다 앞서는 것이 없으며 학문도 禮學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갔다. 예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방도로서 부각되었던 것이니 禮治가 바로 그것이다. 예치는 예교(예의 가르침)와 예학(예의 배움)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학은 17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16세기 중반부터 그 자체 내의 독자적인 과정을 통해 발달해오다 17세기 성리학 이해의 심화와 양란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한 단계 더욱 발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가 치국의 방도로 대두하면서 예학 연구는 심화되고 각 학파의 예학의 차이는 전례논쟁을 통해 표출되었다. 중종대 시작된 왕실의 전례논쟁은 광해군대 恭嬪追崇, 인조대 元宗追崇 등을 거치면서 그 논쟁의 수준이 점점 높아져 갔으며 예송은 그 대립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송에서 이이학파의 서인은 {주자가례}와 {의례} 등을 강조하며 신권의 입장에서 王士同禮를 주장하였다. 왕실에 적용되는 예와 일반 사대부에게 적용되는 예가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서경덕·조식학파의 학문을 계승한 근기남인은 {주례}와 {예기} 등을 강조하며 왕권의 입장에서 王士不同禮를 주장하였다. 왕실의 예는 일반 사대부에게 적용되는 예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예송은 표면적으로는 효종의 상에 삼년복을 입을 것인가 기년복을 입을 것인가(제1차 예송) 그리고 효종비의 상에 期年服을 입을 것인가 大功服을 입을 것인가(제2차 예송) 하는 服制의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는 17세기 사회에서 각 학파 내지 붕당들이 나름대로의 학문적 기반 위에서 자신들의 노선의 정당성을 주장한 전형적인 '정치형태로서의 전례논쟁'이었다. 즉 성리학과 예학의 심화, 친가·장자 중심의 가족제도로의 변화, 학파·붕당 간의 긴밀성, 신권의 성장, 양란 이후 국가 재건의 방법 등 당시 정치·사상적인 면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의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결합되어 왕실의 전례문제를 매개로 표출된 것이다. 나아가 예송에서의 사상적 차이는 근세 사회체제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연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송은 조선 후기 사회체제가 변화해 가는 상황에서 반드시 겪어야만 했던 하나의 과정이었다. (뒤에 계속)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 [고등학교 국사전공 교원 연수 교재], 2002년 7월. pp.8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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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 신분-고대의 신분제도 (민족) |
 [조선] 김육 (한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