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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한국 유학사 2 (고영진)
한국 유학사의 이해 한국 유학사 2 고영진 (광주대학교 교수) (앞에서 이어짐) 6. 실학의 대두 인조반정 이후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이이학파의 서인은 숙종대 이이·성혼의 문묘종사를 성사시켰다. 이는 이이의 학문이 국가적으로 공인 받았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황의 학문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서 조선사상계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의리명분론을 강화하며 주자의 학문을 절대화함으로써 자신들의 학문적 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하였으며 이는 송시열과 한원진의 작업으로 뒷받침되었다. 주자의 본뜻에 충실함으로써 당시 조선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주자의 학문을 상대화하고 육경과 제자백가 등에서 모순 해결의 사상적 기반을 찾으려는 경향도 17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되었는데 윤휴와 박세당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서경덕 사상의 영향을 받은 윤휴는 유교경전에 대해 독자적인 해석을 하였으며 박세당 역시 양명학과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주자의 학설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서인(노론)의 강한 공격을 받아 斯文亂賊으로 몰려 죽기까지 하였다. 한편 이현일이 이이의 사상에 대해 본격적으로 비판함으로써 학문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이황학파의 영남남인과 이이의 학문을 조선성리학의 정통으로 만들려는 이이학파의 노론 사이에 성리학의 이기론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조선사상계는 다시 심성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인간과 사물이 본성이 같은가[人物性同異], 발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가 선한가[未發心體有善惡],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같은가[聖凡心同不同]를 둘러싼 湖洛論爭이 벌어졌다. 17세기말 이황·이이학파 양쪽에서 간헐적으로 전개되었던 人物性同異論爭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이 논쟁은 18세기 초 이이학파 노론 안에서 권상하의 문인이었던 한원진과 이간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한원진은 인물성이론을 주장하고 이간은 인물성동론을 주장하였는데 스승인 권상하가 인물성이론을 지지함으로써 충청지역 학인들간의 이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논쟁의 소식을 들은 김창흡·박필주·이재 등 서울·경기지역 학인들이 이간의 주장에 동조함으로써 논쟁은 지역적인 대립으로 확산되었으며 이후 100여 년간 지속되었다. 인성과 물성의 문제로 시작된 호락논쟁은 뒤에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같은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이는 이 논쟁이 단순히 주자의 심성론과 이이의 이통기국론에 담겨있는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철학사상 내적인 이유 때문에 일어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오히려 국제정세의 변화,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도시의 성장, 농민층의 성장과 신분제의 동요, 새로운 정치세력과 사상경향의 대두 등 조선 후기 사회변동에 대한 노론 집권층의 사상적 대응의 성격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즉 송시열의 학문을 충실히 계승한 충청지역의 湖論이 성인과 범인의 엄격한 구별을 강조함으로써 기존의 신분제와 지주제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려고 한 반면, 송시열 뿐만 아니라 이단상·조성기 등의 절충적인 학문의 영향을 받은 서울·경기지역의 洛論은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같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당시 성장하는 일반민의 실체를 현실로서 인정하고 이들을 교화와 개혁책으로 지배질서에 포섭하여 위기를 타개해 나가려고 하였다. 이후 호론은 주자절대화를 추구하며 다른 정파나 사상에 대해 계속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재지사족층의 이해를 대변해갔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僻派로 영·정조의 탕평에 반대하다가 점차 중앙정계에서의 정치력을 상실하였다. 더욱이 순조 초 時派의 공격을 받아 정치적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향촌으로 돌아가 침잠하였다. 이들의 사상은 뒤에 위정척사사상으로 연결되었다. 이에 반하여 낙론은 주자절대화에서 벗어나 다른 정파나 사상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京華사족층의 이해를 대변해갔다. 정치적으로 주로 時派로서 정조의 탕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의 사상은 북학사상으로 연결되기도 하였으며 노비혁파와 서얼허통 등 당시 사회경제정책에 대해서 제한적이나마 개혁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를 볼 때 호락논쟁은 성리학적 세계관의 핵심인 이기심성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당시 사회변동에 따른 인간관·자연관의 변화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후 성리학적 세계관 극복의 바탕을 마련해 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人性物性論 性이란 인간 또는 사물 안에 내재된 理 이간: {중용} 의 天命之謂性에 대한 주희의 주석을 근거로 同論 주장. 만물이 모두 리를 부여받아 기로써 형태를 이루고 이때 각기 부여된 리가 곧 성이므로 인간을 포함하는 만물의 성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 한원진: {맹자집주}와 {대학혹문}에 나오는 주희의 글을 근거로 異論 주장. 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품부받는 리가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음. 인물성이론. 理와 性의 개념을 다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희의 혼용이 문제. 만물 생성과 변화의 원리라는 의미에서 리는 우주 전체에 관통하고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 개체 내의 리인 성도 동일함. 그러나 각종의 사물이 類的 특성을 이루게 하고 또한 각각의 개체이도록 하는 원리를 성이라고 할 때 이 성은 사람과 사람에서, 나아가 각각의 개체에서 모두 다를 수밖에 없음. 한원진 : 性三層說 (3단계) 리는 본래 하나이다. 그런데 형기를 초월하여[超形氣] 말한 것이 있고 기질에 인하여[因氣質] 말한 것이 있고 기질에 섞이어[雜氣質] 말한 것이 있다. 기질을 초월하여 말할 때는 만물의 리가 동일하고(본연지성) 기질과 같이 있는 것으로서의 리인 성을 말하자면 사람과 사물의 성이 다르며(기질지성), 기질과 섞여 있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모든 개체의 성이 다 다르다는 것. 이간 : 一原과 異體 (2단계) 一原으로 말하면 天命·五常이 형기를 초월하여 사람과 사물에 偏全의 다름이 없는 데 이것이 본연지성이다. 異體로 말하면 천명·오상이 기질로 인하여 사람과 사물 이에 편전의 다름이 있으니 이것이 기질지성이다. 근원으로 말하자면 만물에 다름이 있을 수 없고(본연지성) 기질에 구애됨으로 말하자면 사람과 사물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난다는 것(기질지성). 이이의 理通氣局說 : 理通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의 리가 동일하고 氣局에 의하면 사람과 사물의 성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사이의 성도 다름. 따라서 리통에 따르면 인물성동론을 지지하게 되고 기국에 따르면 인물성이론을 지지하게 됨. 이간은 一原의 입장에서 理通을 이해. 異體를 氣局으로 봄. 한원진은 超形氣로서의 理와 因氣質로서의 性을 각각 理通과 氣局에 대비. 노론 집권층이 심성논쟁을 통해 자기 반성과 이론적 재무장을 하는 사이 1694년 갑술환국을 계기로 중앙정계에서 밀려나 경기지방에 정착한 근기남인을 중심으로 이기심성론보다는 당시 사회경제적인 모순의 해결에 더 관심을 갖는 새로운 사상경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근기남인실학이 그것이다. '실학'의 개념과 성격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본래 실학이라는 용어는 조선 후기에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에 대해 유학을 실학이라고 했고 조선 초기에는 사장학에 대하여 성리학을 실학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보통 '실학'이라고 할 때에는 조선 후기에 새로이 나타나는 사상경향, 즉 18세기 사회모순이 심화되면서 추상적인 문제에 대한 논쟁보다 구체적인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고 이를 개혁해 보려고 했던 근대지향적이고 민족적인 사상경향을 의미한다. 근기남인실학은 이미 17세기 후반 서경덕과 조식의 사상을 계승하고 육경과 제자백가를 학문적 바탕으로 삼았던 유형원·허목·윤휴 등에 의해 그 이론적 체계가 갖추어지지만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는 것은 18세기 전반 이익에 이르러서였다. 이들은 주로 농촌에 생활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농촌사회의 모순과 농민들의 고통에 대해 주목하게 되고 따라서 소농민의 이해를 대변하여 지주전호제의 모순을 완화하고 농업을 발전시키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근기남인실학이라고 해서 농촌 현실과 관련된 개혁책만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관료제와 군제의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개혁책을 제시하였다. 이는 북학이 상공업에 관한 개혁책만 주장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근기남인실학파는 이익 문하에서 안정복·윤동규 등 성리학적 요소를 많이 지닌 계열과 권철신·이벽 등 서학에 경도된 계열로 분화되었는데 전자를 성호우파, 후자를 성호좌파로 부르기도 한다. 성호좌파는 18세기말 정약용·이가환 등이 정조에 의해 규장각에 기용되어 자신들의 경륜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기론 등 철학적 기반을 볼 때 근기남인실학은 대체로 기를 강조하기보다는 리를 강조하고 나아가 리를 재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허목과 유형원에서 나타나는 實理의 강조가 그것이다. 기라는 현상적 측면이 아니라 리라는 본질적 측면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토지개혁론 등 근본적인 개혁론으로 표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전반에는 근기남인 뿐만 아니라 소론에서도 기존의 성리학을 극복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유수원이었다. 절충적인 성격을 지닌 성혼의 사상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소론은 이미 박세당에서 보이듯이 양명학과 노장사상 등을 수용하여 성리학을 절대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소론의 이러한 새로운 사상경향은 18세기 말에 이르러 고증학을 수용하면서 더욱 풍부해졌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1728년 이인좌의 난과 1755년 羅州掛書事件 등으로 노론의 공격을 받아 중앙정계에서 밀려나면서 주로 이긍익·이충익 등 강화학파를 중심으로 家學으로 계승되었으며 홍양호·서유구 등 일부가 중앙에서 활동하였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노론 안에서도 낙론의 人物性同論과 聖凡心同論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현실 사회를 개혁해 보려는 새로운 학문경향이 나타났다. 北學이 그것인데 대표적인 인물은 홍대용과 박지원, 그리고 서얼 출신인 박제가·이덕무·유득공 등이었다.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하나의 학파를 이루며 활동하였던 이들은 청에 사절로 가 청의 선진 문물을 접하고 조선의 낙후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기존의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한 화이론을 극복하고 華와 夷가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 도시의 성장과 상공업의 발달이라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변화에 맞닥뜨리면서 상공업 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근기남인실학이 철학적 기반으로 리를 강조한 데 비하여 북학은 상대적으로 기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근기남인실학이 리를 재해석하려고 했던 것처럼 북학도 기를 재해석하여 새로운 氣論을 확립하려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자연계에까지 확대하고 經濟之學과 象數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개혁론을 개진한 것도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18세기에 들어와 본격화된 이러한 새로운 사상경향은 탕평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右文政治와 개혁을 추구하였던 정조에 의해 부분적으로 수용되었다. 정조는 자신의 정치기반인 규장각에 새로운 사상경향을 지닌 이들을 학파와 신분을 뛰어넘어 기용하였으니 근기남인의 이가환·정약용, 소론의 서영보·서유구, 노론의 이서구·남공철, 서얼 출신의 박제가·이덕무·유득공·성대중 등이 그들이다. 정조의 학문은 성리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동시에 고증학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즉 성리학에 학문적 기반을 두었지만 주자의 학설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잃지 않았으며 고증학 자체에는 부정적이었지만 訓 ·名物의 방법론의 수용에는 적극적이었다. 말하자면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성리학(宋學)과 고증학(漢學)의 장점을 절충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조선 사상계에서 대두하고 있던 근기남인·소론·노론의 새로운 사상경향을 수용하였으며 역으로 抄啓文臣제도 등을 통해 규장각을 중심으로 한 당대의 젊은 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러나 文體反正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조의 새로운 사상경향의 수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7. 성리학의 경직화와 극복 노력의 좌절 서울의 급속한 발전과 서울지역에 기반을 둔 노론 탕평파의 정국 주도권 장악으로 이미 18세기부터 보이기 시작했던 사상계에서의 京·鄕 즉 서울과 지방의 분화는 19세기에 들어오면 더욱 가속화되었다. 또한 중앙학계가 서울지역의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현상도 심화되었다. 즉 서울 근교에 살면서 육경과 제자백가, 또는 서학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였던 근기남인, 산림에서 전환하여 역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양명학과 고증학을 수용하여 개방적인 학문경향을 보였던 소론, 이이학파의 학통을 계승하면서도 주자 중심의 성리학에서 벗어나 북학을 수용하였던 노론 낙론계 학자들이 중앙학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은 여러 대에 걸쳐 서울에서 관료생활을 하는 가운데 京華士族으로 성장해갔으며 자제 교육과 학문 교류, 혼인에 있어서도 이전의 성리학자들이나 같은 시기의 재지 성리학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즉 자제 교육은 가학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지고 학문 교류도 학파와 정파, 신분을 뛰어넘어 행해졌으며 그러한 개방성으로 인해 학문적 공감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혼인도 같은 학파 내의 경화사족들 사이에 주로 이루어져 閥閱을 형성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순조대 이후 세도정권에 참여하는 세도가문과 京華巨族이 되기도 하였다. 19세기를 전후하여 서울지역 학자들이 가졌던 학문적 공감대는 북학이었다. 18세기 후반 대두하였던 북학은 홍대용과 박지원 단계에서는 조선 사상계의 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었으나 19세기 전반에 이르면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가 서울지역 학자들 사이에 각 학파의 학문적 기반에 상관없이 크게 유행하였다. 당시 급격한 사회변동에 직면하여 士, 즉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재인식하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청의 과학기술과 문물제도를 도입하여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도정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노론 집권층이 분화되면서 이러한 노력은 굴절과 좌절을 겪어야 했다. 정조대에 규장각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문체반정 당시 정조의 견책을 받기도 했던 노론 시파의 김조순·심상규·이상황과 박지원의 문인이었던 남공철 등이 안동김씨 세도정권의 핵심인물이 되어 당시 정계와 사상계를 주도하였지만 이미 이들의 사상은 현실과 유리되고 보수로 회귀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남공철이 고증학에 경도되어 개혁에 무관심해지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더욱이 세도가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측근 학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개혁 성향을 지닌 학자들은 학파에 상관없이 중앙정계에서 밀려났다. 한편 세도정권에 참여하여 고위관료에까지 올랐지만 세도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가재정의 안정적 확보와 농업생산력 확대, 능력 위주의 인재 선발 등에 관한 현실적 개혁방안을 주장하였던 일단의 관료학자군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북학의 세례를 받았으나 사상적 성향이 다 같은 것은 아니었다. 즉 이서구·서유구처럼 박지원의 문인으로 고증학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經濟之學을 중시하였던 계열과 홍석주·김매순처럼 박지원으로부터 학문적 영향을 받았지만 성리학에 대한 신뢰를 견지하며 고증학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지녔던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후자는 홍직필·오희상 등 노론 낙론계 산림들과도 교류하며 성리학계 내에서도 일정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한 세대 아래로서, 북학에 경도되었던 박제가·성해응 등의 학문적 영향을 받아 청의 문물과 고증학의 수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김정희와 조인영·권돈인 등이 중앙학계의 일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곧 풍양조씨 세도정권의 핵심인물이었다. 이처럼 세도정치의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선사상계는 청의 문물을 수용하는 데서 나아가 청의 학문인 고증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경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으며 그를 바탕으로 당시 학자들 사이에 漢宋論爭, 즉 한학과 송학의 학문적 우위를 다투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논쟁에서 홍직필·오희상 등은 기존의 성리학을 고수하고 고증학을 부정하는 입장을 보였으며 홍석주·김매순 등은 성리학을 옹호하면서도 고증학의 장점은 선별적으로 수용하자는 송학 중심의 漢宋折衷論을 주장하였다. 반면 성해응·남공철 등은 성리학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고증학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한학 중심의 한송절충론을 주장하였으며, 고증학에 더욱 경도되었던 김정희·조인영 등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한학과 송학을 구분할 수 없다는 漢宋不分論까지 주장하였다. 이는 고증학의 우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사상계에서의 고증학의 수용은 일단 성리학의 자체적 반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따라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고증학의 엄격하고 세련된 경전주석방법은 기존 성리학적 경학 연구에 큰 변화를 가져와 주자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동요시켰으며 금석학·음운학 등의 발달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또한 고증학의 폭넓은 학문범위와 박학적 경향은 기존의 백과사전적 저술의 편찬 경험, 박학적 학풍과 결합되어 조선과 중국학계에 축적된 지적 성과들을 정리하고 집대성한 방대한 백과사전적 저술이 나오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 이규경의 {五洲衍文長箋散稿}와 최한기의 {명남루총서}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상경향을 주로 중앙의 세도가문과 경화사족 출신의 관료학자들이 주도하게 되면서 고증학은 이들의 문화적 세련에 봉사하게 되고 또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순수학문적 성격으로 인해 당시 현실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였다. 이는 풍양조씨 세도가였던 조인형이 공공연히 개혁을 거부하고 구체제를 고수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데서 잘 드러난다. 한편 서울지역 학자들 가운데 성리학적 세계관을 전면적으로 극복해 보려는 노력도 나타났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정약용과 최한기였다. 근기남인이면서 근기남인실학과 북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받는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생활 과정에서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 작업을 통해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체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사상은 시기적으로 조금씩 변해갔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주소작제와 양반신분제의 철폐, 인민주권의 주장 등 중세체제의 전면적 개혁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최한기는 북학과 고증학뿐만 아니라 서양의 자연과학까지 수용하였다. 그는 기존의 학문들이 객관성과 보편성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학문이 아니라고 보고 이러한 것들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기개념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氣學이라는 독특한 사상체계를 확립하였다. 말하자면 과학적 진리의 인식론적 근거로서 기개념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기학은 가치론 중심이며 직관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성리학적 사고에서 탈피하여 근대적 사유방식에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진적인 이들의 사상이 세도정권에 의해 받아들여질 리는 만무하였다. 18세기 들어와 서울의 도시적 성장이 가속화되고 탕평정국으로 인해 지방 학자들의 중앙관직 진출이 막히고 정치권력이 노론에서 다시 몇몇 세도가문으로 집중되면서 17세기 이래 조선사상계를 주도해왔던 산림과 재지학자들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더욱이 이전에 학파를 기준으로 형성되었던 조선 사상계가 서울과 지방이라는 지역을 기준으로 새로 재편되면서 정치력·경제력 그리고 정보력에서 현저히 열세였던 지방학계는 서울학계가 주자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극복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간 데 반하여 호락논쟁에서 제기되었던 이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지방의 재지학자들이 주로 관심을 쏟았던 것은 호락논쟁에 잇닿아 있는 심성론이었으며 이는 明德主理主氣論爭으로 전개되기도 하였다. 이 논쟁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밝은 덕인 명덕이 리를 주로 한 것인가 아니면 기를 주로 한 것인가 하는 문제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지만 결국은 호락논쟁처럼 성인과 범인의 마음을 같이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명덕주리주기논쟁은 같은 이항로 문인인 김평묵과 유중교 사이에서도 스승의 心說을 둘러싸고 벌어져 양자의 입장에 동조하는 문인들 사이에 6년 동안 지속되기도 하였다. 논쟁 과정에서 낙론계 산림은 홍직필·임헌회·오희상·유신환 등 명덕주기론을 주장하는 계열과 이항로·김평묵·유중교 등 명덕주리론을 주장하는 계열로 분화되었다. 한편 호론계 산림은 순조 초 노론 벽파의 몰락과 함께 송치규 등 송시열의 후손들에 의해 겨우 명맥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명덕주기론 계통은 다시 세도정권과 타협하여 그 정치적 대변자가 되거나 현실의 사회모순을 외면하고 심성 연구에 빠져들었던 홍직필·임헌회 계열과 산림의 자존심은 지키면서 성리학의 정치적 실천 기능을 강조하여 김윤식·한장석 등 한말의 관료지식층을 배출해내는 오희상·유신환 계열로 나누어졌다. 명덕주리론 계통은 리를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위정척사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기정진이 理一分殊에 입각하여 唯理論을 주장하고 이황학파의 이진상 역시 리를 강조하며 心卽理說을 주장하는 등 한말의 위정척사론자들은 이황학파나 이이학파나 거의 대부분 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는 봉건적 질서의 해체라는 위기의식이 이들로 하여금 다시 리를 절대시하고 실체화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척사론은 이전 시기의 화이론에 입각한 척화론과 북벌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사회변동이 급격히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모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일반민들의 의식도 점차 성장해 나갔다. 이들의 의식이 성장하는 데는 지식을 습득하기가 쉬워지고 생활의 폭이 넓어진 것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즉 향교에 들어가기가 쉬워지고 서당이 늘어나면서 일반민들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점차 확대되었으며, 서울 등 도시지역에 소설책 등을 빌려주는 貰冊店이 등장하여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또한 장시의 발달로 정보의 유통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두레나 樵軍같은 노동조직을 통하여 공동체의식이 성장하였다. 성장된 이들의 의식은 판소리와 가면극, 소설이나 민화 등 서민문화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18세기 후반에는 성리학적 세계관과 배치되는 천주교가 일부 양반과 일반민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보편적인 구원자로서의 天主관념은 제한적이나마 일반민들의 의식 속에 현실체제를 부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욕구를 확산시켰다. 17세기 후반 미륵신앙으로 표출되었던 이상사회론은 19세기에 이르면 더욱 본격화되었는데 {정감록} 등 秘記類를 이용한 왕조교체설, 먼 바다 어느 섬에 진인이 있어 그가 와서 새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海島眞人說, 홍경래가 죽지 않았다는 洪景來不死說 등 그 내용도 다양하였다. 이상사회론은 일반민들로 하여금 변혁을 꿈꾸게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일반민의 의식 성장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는 동학은 한말 변혁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세도정치기는 사상사적으로 암흑의 시기는 아니었다. 사회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그 모순을 성리학의 재정립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 고증학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 성리학적 세계관의 극복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 등 다양한 노력들이 사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결실을 맺기 전에 세도정치라는 현실에 억눌려 좌절되었다. 북학에서 배태되어 나오고 고증학을 수용하기도 했던 세도정권의 핵심사상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주자 중심의 성리학으로 돌아갔다. 지배기술만 고도로 발달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송시열이 세운 일당전제의 老論世道論 뿐이었다. 이들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개혁적인 요소를 가진 사상은 가혹하게 탄압하거나 체제 유지에 장애가 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허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일반민들의 전면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참고 도서> 이병도, 1989 『한국유학사』 아세아문화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995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 예문서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995 『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한국사상사연구회, 1996 『조선 유학의 학파들』 예문서원 최영성, 1994·1997 『한국유학사상사』(1-5) 아세아문화사 한국역사연구회, 1997 『한국사상사의 과학적 이해를 위해』 청년사 고영진, 1999 『조선시대 사상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풀빛 출전 : 국사편찬위원회, [고등학교 국사전공 교원 연수 교재], 2002년 7월. pp.99~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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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방납 (민족) |
 [유학] 한국 유학사 1 (고영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