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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27 (금)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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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107      
[건축] 성리학과 서원건축 (김봉렬)
성리학 담론이 서원건축에 끼친 영향

관련 항목

■ 서원의 성립과 변천
■ 서원,조선 최대의 사학 기관
■ 성리학 담론이 서원건축에 끼치는 영향
■ 서원의 제향의례



서원건축에는 성리학적 세계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인간 중심의 자연관에 의해 입지와 구성이 정해졌으며,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규모에서는 그릇으로서의 건축을 중요시한 절검정신이 돋보인다. 또한 오로지 학문과 수양만을 위한 그곳엔 성리학적 질서가 충만하고 외부적 근엄함과 내부적 개방성이 공존한다.

글 /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
사진 / 김대벽ㆍ배병우ㆍ안장헌

서원은 조선시대 특유의 고등교육기관으로, 굳이 따지자면 사립대학의 성격을 갖는다. 관학인 향교와는 설립 주체뿐만 아니라 교육내용에 있어서도 달랐다. 서원은 유학 가운데서도 고려 말부터 신유학으로 수입, 정착된 성리학을 교육하여 성리학적 전사들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서원에서 양성된 전사들은 중앙정치계와 향촌사회를 장악하여 그들의 이상, 즉 성리학적 세계를 구현하려 노력했다.

사립 교육기관이라는 특성 때문에 선생의 학풍에 따라 서로 다른 경전해석에 기반한 학파들이 형성되었고, 이런 지역적 학파들은 중앙정계의 정권투쟁과 연계되면서 당쟁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물론 당쟁의 부정적 측면들이 서원의 폐해로 지적되지만, 적어도 초기의 서원들은 성리학을 조선사회의 주도적 이념으로 정착시키고, 사회의 질서를 구축하며, 정치의 명분과 도의를 실천하는 건강한 역할을 수행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건축이 곧 인격이라 할 수 있을까? 몇 안 되는 현존 서원들만 살펴봐도 초기에 건립된 소수서원ㆍ도산서원ㆍ필암서원ㆍ병산서원ㆍ도동서원 등에는 엄격한 규범적 틀 속에서도 나름의 개성들이 강하게 구현되어 있다. 그러나 서원의 전성기였던 17세기 이후 초기의 건강한 성리학이 형식적 예학에 치중되고, 서원이 학문보다는 정치적 거점으로 인식된 중,후기에 건립된 서원에서는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이, 개성적 해석보다는 규범적 맹종이 두드러진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서원건축만큼 사상적 영향력이 강하게 표현된 건축도 드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운서원의 사당. 남한에 있는 율곡의 서원 중 대표적인 곳인간중심의 자연관을 담은 입지와 구조

관념과 명목을 중시한 성리학자들은 우주의 생성에서부터 인간의 심성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대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을 시도했다. 성리학의 기초적 우주론은 많은 중세적 논쟁들을 야기한다. 절대자로서 신을 인정하지 않는 동아시아적 전통에서 이러한 논리적 진화과정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理)인가, 기(氣)인가? 우주론적 전개와 부합하는 인간의 도리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효(孝)를 행하는 길인가? 등등의 모든 논쟁과 질문들은 주체로서의 인간을 중심으로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고자 노력한 흔적들이다.

우주와 인간, 자연과 인간의 메커니즘을 동일한 체계로 파악하려 했고, 자연이란 인간의 이성과 관념으로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천인합일(天人合一) 정신은 이론과 행동, 관념과 현실, 마음과 몸을 일치시키려는 특유의 형이상학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자연관은 서원의 입지나 구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서원건축의 지리적 입지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원 안에서 바라다볼 수 있는 시각적 대상, 즉 안대(案對)였다. 도동서원은 낙동강 건너 멀리 고령 땅의 산봉우리를 보기 위해 북향하고 있다. 북향을 하면 햇빛을 받아들이기도 바람을 피하기도 매우 불리해진다. 그럼에도 정해진 안대를 향해서 건축의 구성축을 정하고 건물들을 배열한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중심은 원장이 앉아 있는 강당건물이 된다. 원장이 바라보는 곳이 무조건 남쪽이며, 자연방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장으로 대표되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중심으로 방위체계를 재조직하기 때문이다.

서원의 외향적 경관구조 역시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여실히 보여 준다. 외부에서 서원건축의 형태를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원 안에서 보이는 외부의 경관이 중요하다. 건축적으로 말한다면 내향적 경관보다는 중심에서 바라다보는 외향적 경관이 중요하다. 자연은 인간의 관념으로 재조직할 때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원건축은 바깥에서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에서 무엇이 보이는지가 중요한 건축이다.

서원의 명칭들도 내다보이는 앞산의 이름을 따라 정해진다. 옥산서원은 앞산인 자옥산에서, 병산서원 역시 앞의 병산의 이름을 따랐다. 반면 불상과 건물이 신앙의 대상이 된 불교건축은 뒷산이 더 중요하다. 신도들에게 건물의 배경이 되는 뒷산 역시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엘리트층을 위한 형이상학의 공간
 
유학 또는 유교는 근본적으로 학문을 연마함으로써만 접근할 수 있는 철학이자 종교체계이며, 문자를 매개로 전달된다. 또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일대일 지도를 통해서 학맥이 유지되는 교육방법을 고수해 왔다. 소수의 엘리트들을 위한 소수의 종교요 학문이었던 것이다. 일반 민중들은 통치와 교화의 대상일 뿐, 유교적 질서의 과실을 향유하거나 학문의 즐거움을 나누는 동반자가 아니었다. 유교의 건축은 당연히 소수 엘리트를 위한 장소요, 그들의 요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서원건축이 이른바 인간적 스케일로 구성된 까닭은 일차적으로 이용자들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고, 이차적으로는 그들의 선민의식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선택된 소수만이 사용하는 유교적 공간은 대중들에게는 폐쇄적인 동시에 내부의 거주자들에게는 모든 곳이 개방되는 양면성을 갖는다. 서원건축에 공존하는 외부적 근엄함과 내부적 개방성은 선택된 공간만이 취할 수 있는 성질이다.

서원의 마당과 불교 사찰의 마당을 비교해 보면, 서원 공간의 인위성을 금방 느낄 수 있다. 불교 사찰의 대웅전 앞에 서면 주건물 뒤로 뒷산이 배경을 이루어 건물과 자연이 일체화된 형태를 구성한다. 반면 서원의 강당 앞에서는 뒷산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조건의 경사지에 입지하더라도, 불교 사찰과 달리 주변 자연을 인지할 수 없도록 건물들의 위치를 정하고 거리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원 마당은 철저하게 인위적인 건물들로 둘러싸인 인공적 장소가 된다. 자연 속에 있되 자연을 격리시키고 오로지 학문과 수련만을 목적으로 하는 추상적 공간이 된다.

절검정신이 담긴 그릇으로서의 건축

성리학 정신이 300여 년 간 세상을 지배할 때 설립된 서원건축은 최고의 엘리트이며 지배층인 사림들이 세우고 경영한 곳이다. 당연히 고도의 재력과 정보와 기술이 동원된 최고의 건축이어야 했다. 그러나 서원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고, 건물은 화려하지도 장식적이지도 않다. 그저 무표정한 채로 담담하고 소박한 건물들뿐이다.

당시 사회적 위상이 최저였던 불가의 사찰들은 오히려 화려하고 장엄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물론 서원의 난립과 비종교성으로 인해 충분한 모금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라고 쉬웠겠는가? 이러한 차이는 궁극적으로 성리학과 불교의 건축관의 차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성리학자들은 건물을 의복과 같이 생각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큰 옷을 입을 수는 없다. 옷이란 몸에 맞아야 옷다운 역할을 하듯이, 건축물 역시 최소의 기능과 필요를 충족시키면 되는 수단일 뿐이었다. 옷은 자신의 신체를 감싸 주는 그릇일 뿐 남들에게 자랑하고 감상시키는 대상물이 아니며, 건축 역시 미천한 타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대상물이 아니었다. 건축물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불교와는 상반되는 건축관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건축으로 담을 수 있는 그 무엇이지, 건축물 자체가 아니었다. 그 무엇이란 자연일 수도 있고 도(道)일 수도 있다. 따라서 건축은 반(半)외부화, 개방화된 일종의 액자이며 그릇이다. 그릇은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기 때문에 내부공간은 무성격화, 투명화한다. 액자가 아름답다고 명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액자에 끼워진 그림이 명작이어야 하는 것처럼,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그곳에 담기는 인간의 정신이 중요한 것이었다.

병산서원의 강당인 입교당 내부. 사진은 유생들이 기거하던 경의재이다.원형에 대한 향수로 획일화된 건축

조선의 주세붕은 중국 송나라 주자의 백록동서원을 원형으로 삼아 백운동서원을 창설했고 이후 서원의 이상적 모델도 백록동서원이었다. 주세붕과 서원운동의 후예들은 주자의 백록동서원을 본 적도 없고, 서원의 건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건축규범의 단편들과 서원의 교육방향 및 규칙들을 수록한 주자의 「백록동서원게시(揭示)」는 주세붕의 원전이 되어 「백운동서원규(規)」로 탈바꿈되었다.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은 수백 년 전 중국인 주자가 마련한 규범을 좇아 이름까지 돌림자로 정한 채 창건되었다.

주자를 위시한 중국의 성현들이 행한 행동양식이 성리학 정착 단계에서 조선조 지식인들의 원형이 되었듯이, 중국의 유교적 건축들이 구체적으로 모방, 재해석되어 하나의 건축유형으로 자리잡았다. 그것이 중국에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일단 정착된 건축형식은 곧바로 절대적 규범으로 여겨졌고, 거부할 수 없는 원칙으로 작용했다. 원형의 재현을 방법론으로 채택한 유교건축에서 유형이 건축생산의 강력한 도구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서원과 유사한 기능의 향교건축은 이미 건축적 유형이 정착되어 있었다. 후발 건축형식인 서원건축이 향교건축의 유형을 좇아 전학후묘(前學後廟)와 좌우대칭의 유형을 채택한 것 역시 원형에 대한 존중이라 볼 수 있다. 서원건축의 유형은 선택 가능한 범례가 아니라 꼭 준수해야 할 규범으로 작용한다.

유형에 대한 집착과 원형에 대한 향수는 유교건축물들을 획일적이고 보수적으로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사유재산이어서 비교적 변화가 자유로웠던 서원건축마저도 몇몇 예들을 제외하고 백편일률이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특히 서원의 전성기였던 17세기에 유형을 보수적 질서를 유지하는 거대한 건축적 예(禮)로 인식한 시대적 한계도 있었다.

경(敬)과 성(誠)의 공간

조선 성리학의 양대 주류라 할 수 있는 퇴계의 영남학파와 율곡의 기호학파는 지역적ㆍ인맥적 차이보다는 학문적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형성된 학파다. 퇴계파가 사물의 본성을 인식하며 진리를 깨닫고자 한 관념론적 근본주의에 가깝다면, 율곡파는 인간의 심성을 수련하고 일상 속에서 진리를 구현하려고 한 현실론적 실천주의에 가깝다. 심성교육 방법론도 약간 달랐다. 퇴계파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경(敬)’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고, 율곡파는 수양의 방법론인 ‘성(誠)’을 지고의 가치로 삼았다.

‘경’이란 항상 깨어 있으며 사물의 본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서원의 공간은 정숙하고 경건하게 유지돼야 한다. 어떠한 소란이나 일상적 행위는 가급적 금지된다. 반면 ‘성’이란 그릇됨을 생각하지도 그릇되게 행하지도 않는 구체적인 인격ㆍ학문 수양의 방법론이다. 성에 대한 가치는 곧바로 구체적인 행위강령인 예론으로 연결되지만, 현실론적 성향을 가진 율곡파의 공간개념은 오히려 융통성이 있다. 지형과 형편에 맞춰 다양한 변형이 허용된다.

경과 성은 어찌 보면 교육의 양면이다. 하나가 본질에 대한 목표라면 하나는 구체적인 교육방법이다. 서원의 공간은 항상 긴장과 각성을 유도한다. 동재와 서재는 마주 보면서 유생들 서로 간의 격려와 감독을 통한 긴장을 유지시킨다. 원장실 또는 강당에서는 동ㆍ서재에서 행해지는 거의 모든 행위를 바라볼 수 있고 지휘 감독한다. 자발적이면서도 타율적인 감독이 가능하도록 강학부분의 공간은 마당을 향해 모두 개방되어 있다. 강당의 넓은 대청마루와 동ㆍ서재의 툇마루들은 마당을 향해 열려 있고, 마치 건물들에 압축력을 가해 긴장감을 짜내는 듯하다.

그러나 유생들이라 해서 항상 긴장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일정한 휴식과 해소도 필요하다. 긴장감으로 팽팽한 공간은 이를 보완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 역할은 전면의 누각이 맡는다. 강당 앞의 마당을 기준으로 본다면, 3면에서 압축되어 오는 긴장감을 앞의 누각에서 해소하고 이완시킨다. 강과 약, 양과 음, 긴장과 이완이 공존하는 공간적 개념이 유지된다.

서원건축의 감상법은 궁궐이나 사찰과는 다르다. 여기서는 건물의 형상이나 장식은 중요하지 않다. 또한 밖에서 건물을 쳐다보는 시각도 중요하지 않다. 성리학적 질서를 어떻게 반영했는가 하는 정신적 측면이 중요하며, 최고의 군자라 할 수 있는 원장과 교수진이 앉아서 앞의 자연을 쳐다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건물은 그 시각을 유도한 틀이기 때문이다.

병산서원의 누각 만대루. 김대벽 사진병산서원 : 자연풍광을 끌어들인 한국 최고의 건축

병산서원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그 유명한 하회마을에서 산 하나 넘어 낙동강변에 건립된 서원이다. 1613년 설립되어 1863년에 사액된 이 서원은 건축계에서 한국 최고의 건축으로 꼽는 명작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서원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건물 자체는 별로 볼 게 없다. 단지 서원 앞 강변의 모래사장과 노송들, 그리고 병산의 절벽이 이루는 풍광이 대단할 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경치를 가진 곳은 한반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최고의 건축으로 평가받게 하는 걸까? 병산서원의 진정한 가치는 그 풍광들을 서원 안으로 끌어들이는 건축적 장치들과, 건물과 건물, 건물과 마당의 자연스러운 조직과 집합적 효과에 있다.

특히 누각 만대루에 주목하자. 만대루는 투명한 공간, 구조물의 프레임화를 잘 보여 주는 예다. 7칸의 기다란 만대루는 기둥과 지붕만 있을 뿐 텅 비어 있다. 어찌 보면 만대루는 전혀 쓸모가 없는 건물이다. 일반적인 누각이나 정자와는 달리 만대루에 앉아서 보는 바깥 경치도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중심건물인 강당의 대청에 앉아서 만대루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만대루의 뼈대 사이로 앞의 낙동강이 흐르고, 건너편의 병산이 마치 7폭 병풍과 같이 펼쳐진다. 만대루의 주된 효용은 이처럼 자연을 선택하고 재단하여 인간에게 의미를 전해 주는 그릇으로 작용한다.

이제 조금 더 눈을 높여 강당과 사당의 엇갈려 있는 위치에 주목하자. 서원의 일반적 범례는 강당 바로 뒤에 사당을 놓는 것이다. 그러나 병산서원의 사당은 강당의 동쪽 뒤에 치우쳐 있다. 평면도를 본다면 부자연스러운 비대칭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보는 이의 체험은 전혀 다르다. 강당 마당의 한 귀퉁이로 가면 뒤쪽 사당이 슬며시 다가오고, 자연스럽게 사당 마당으로 나아가게 된다. 형식적 규범보다 실제의 체험을 더욱 중요시한 고도의 수법이다. 이 서원에 모셔진 유성룡은 임진왜란을 수습한 명정치가였다. 그의 학문세계는 명분보다 현실을 중시했고, 규범의 변용에 스스럼이 없었다. 병산서원은 그의 그런 정신이 형상화된 건축이 아닐까?

성리학적 건축원리가 엄격히 적용된 도동서원. 안장헌 사진도동서원 : 엄격한 규범 속에 파격이 돋보이는 건축

대구시 달성구 구지면 도동리에 위치한 도동서원은 1605년 설립되어 1607년에 사액되었으며, 주향자는 김굉필이다. 유성룡이 현실주의적 성리학자였다면, 김굉필은 원리주의적 성리학자라 할 수 있다. 엄격한 규범과 질서, 성리학적 위계에 따라 건축된 도동서원은 아마도 성리학적 원칙을 가장 잘 구현한 서원일 것이다.

경사지에 좁고 긴 석단을 놓아 터를 이루고, 그 위에 정확하게 좌우 대칭으로 건물들을 배열했다. 그럼에도 단조롭지 않고 변화를 느끼게 되는 이유는 그 석단들의 간격과 넓이가 다양한 운율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단 위에 조성된 건물들은 모두가 맞배지붕으로 형태가 동일하다. 1960년대에 복원된 누각 수월루만 제외하고 형태와 형식 면에서 모든 건물들이 통일되어 있다.

그러나 건물들 간의 위계는 명확하다. 스승이 있는 강당은 제자들의 건물보다 크고 고급스럽다. 일절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스승 김굉필을 모신 사당은 채색으로 장식되어 있다. 선현-스승-제자-노비들의 공간은 그 인격을 따라 서열화되어 있다. 누각-환주문-강당-사당이 중심축 선상에 일렬로 정연하게 놓여 있고, 다른 건물들도 좌우 대칭으로 정확한 위치에 놓였다. 건물과 건물들은 엄격하게 직각 또는 평행으로 놓여서 완벽히 기하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건물과 계단들의 구성만 본다면, 질식할 것같이 엄격한 건축 같으나 숨통은 있다. 환주문과 사당문 앞 계단들에 조각된 봉황과 용머리, 조각보처럼 복잡하게 쌓인 강당의 기단과, 기단에 새겨진 다람쥐와 연꽃과 용머리는 의외로 해학적인 요소들로, 엄격하고 신성한 서원의 권위에 눌리면서도 킥킥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파격들이다.

도동서원 역시 강당 대청의 원장석에 앉아 앞을 바라보아야 한다. 낙동강변과 멀리 고령들, 그리고 아스라이 앞산이 보인다. 그 뾰족한 앞산에 맞춰 서원건축의 축선을 잡았고, 축선을 따라 정확히 좌우 대칭으로 건물이 배치된 것이다. 정문이라 할 수 있는 환주문은 지붕이 낮고 뾰족하다. 문만 쳐다보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지만, 강당에서 바라보면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앞산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다.

출전 : [문화와 나] 200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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