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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1-17 (토)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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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751      
[고려]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문'
[고전기행]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문'

엔터테인먼트 / 2001년 5월 23일 12:06

800년전 지눌이 심은 나무가 잎 피울 날은...

조계산 송광사, 지리산 상무주암.

지리산 산야에 묻혀 지내온 지 20여년, 세속을 끊은 은둔의 스님은 꼬치꼬치 캐묻는 이방인이 거북스러운 듯했다. "보고 느끼면 떠나는 곳이니, 내려가면 잊으시오." 해발 1,225㎙ 지리산 삼정봉 정상 언저리의 상무주암(上無住庵) 암주 현기스님은 나이도 잊었다고 했다.

보조국사 지눌(知訥ㆍ1158~1210)이 송광사에서 포교의 대해(大海)를 열기 직전, 3년 동안 머물며 깨달음의 마지막 관문을 뚫고 자활자재한 경지를 터득했다고 전하는 상무주암이다. 땀으로 뒤범벅된 산행 끝에는 세간의 띠끌을 씻고 왔느냐고 묻기라도 하듯 하늘과 구름과 봉우리가 무심하게 맞닿아 있었다.

현기 스님은 "머무름이 없는 이곳에서는 부처도 중생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저 멀리 형태조차 흐릿해 보이는 지리산 반야봉처럼. 그렇다면 청년 지눌의 사자후는 어디에 있다는 뜻일까. 1190년 서른셋의 청년 지눌이 터뜨렸던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은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초대장이자 타락한 현세에 대한 강한 고발장이었다.

"불법을 빙자하여 나와 남을 따지며 이양(利養)의 길에 허덕이며 풍진의 세계에 골몰하여 도는 닦지 않고 옷과 음식만 허비하니 또다시 출가한들 무슨 덕이 있는가!"

무신의 난으로 혼란한 시국에 민중의 고통은 더해갔지만 불교는 권력의 비호 아래서 세속의 명리에 사로잡힌 채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눌의 결사문은 이에 대한 반항의 격문이면서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두루 닦는, 즉 선교(禪敎)가 합치된 '이상적 수도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권유문이었다.

"예불하고 경을 읽는 일부터 시작하여 노동하고 운력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각자 그 맡은 바에 따라 하며 상황에 따라 심성을 기르며 평생을 자유롭게 지내면서 달사와 진인의 높은 수행을 멀리서 좇은즉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청년 지눌의 이상적인 종교적 삶의 포부로 가득한 글귀다. 그 실천의 장이 전남 순천의 조계산 자락에 자리잡은 송광사(당시에는 수선사)이다. 정혜결사 선언 후 10년, 당초 지눌의 수행 출발지 팔공산 거조사로 도반이 몰려들자 더 넓은 도량으로 옮겨 본격적인 수행 공동체를 창조한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대안공동체였던 셈이다.

송광사는 한국의 대표적 사찰의 명성에 걸맞게 아늑하면서도 도도한 절집의 품위를 지키고 있었다. 지난달부터 하안거 결제에 들어간 40여명의 선승들은 외부와의 출입을 끊은 채 선방에서 지눌의 800여년 전의 사자후를 되새길 터였다.

아직도 불모의 땅이란 뜻일까. 지눌이 심었다는 조계산 송광사 일주문 안 고향수(枯香樹)는 잎을 피우지 못하는 고목인 채로 800여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한다.

"내가 죽으면 네가 숨죽였다가 내가 다시 이 도량에 오면 너는 다시 잎을 피어 나와 더불어 살자꾸나"라는 지눌 스님의 언약이었다. 세상의 어지러움은 여전하고, 승가가 타락했다는 풍문은 지금도 나돈다. 마치 지눌이 꿈꾸었던 이상적 공동체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듯. 고향수는 그래서 지눌이 염원한 정토의 도래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성성하게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후대에 지어진 전설임이 분명하다. 지눌의 깨침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정토의 도래 같은 것을 믿지 않았다. '정혜결사문' 당시 지눌을 괴롭혔던 것도 말법 사상이었다. 어지러운 말세에 정과 혜가 무슨 소용이냐며 아미타불의 염불로 정토의 업을 쌓는게 낫다는 것이었다.

"부처님 세계를 장식하는 아름다움은 가고 오는 일이 없으며 단지 마음에 의해 나타날 뿐이다." 시대에 변함없이 인간 본연의 깨달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눌의 생각은 단호했다. 결사 선언 10년 후 청년 지눌은 상무주암에서 또 다른 깨달음의 비약을 이룬다. 그것은 "깨달음은 고요한 곳에 있지 않으며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다. 그렇다고 그것을 버리고 참구해서도 안된다"는 역설적 진리였다.

이상적 공동체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고요한 산사에도 시끄러운 도심에도 진리는 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버려서도 안된다는 역설이다. '정혜결사'는 타락의 반대편 정토의 세계도, 이상적 종교적 삶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에서 민중의 자성을 일깨우는 끊임없는 생성의 운동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부처님 없고 중생도 없는 공간에서 홀연히 알을 깨고 나오는 것. 그것이 반야의 경지다." 상무주암 현기 스님이 일러준 말도 그런 것이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입력시간 2001/05/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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